170화
무대에서 내려온 이후였다. 모든 팀의 공연이 끝난 뒤 클로징을 위해 복도로 나와 있었다.
“팬들이 댄브 좋아해 줘서 기분 짱이야~”
“권혜성, 너 턴할 때 힘이 너무 들어간 것 같던데.”
“에이, 태오 형. 그냥 칭찬 한번 툭 해 주면 되지! 형도 참 형이라니까~ 됐고, 얼른 이것부터 봐봐!”
“…뭐, 나도 좋긴 했어.”
“크으, 결국 이럴 거면서!”
화기애애한 멤버들을 뒤로하고 나는 커뮤니티를 확인하기 바빴다. 예상대로 팬덤은 살벌한 분위기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를 응원해 준 팬들에겐 항상 미안함 반, 고마움 반이었다.
[솔까 엠엑스피즈가 더 잘하지 않았었음?]
────────────────────────
연말 하이사인 얘기만 해서 좀 이상함;;
갠적으로 디레스트+스턴즈 무대가 더 좋았는데
퍼포 구성 알차고 화려해서 보는 맛 있었잖아
지금 커뮤랑 슨스 반응 얼척없음 ㅎ
────────────────────────
- 예 다음 견제~
- 에휴 하 무수리들 몰려온다
- 얘넨 뻑하면 우리 후려치더라 취존은 해주겠는데 억까는 하지 말자 ㅜㅜ 텍미나도 잘 봤는데 내 취향은 우리 애들이었음 제발 상도 좀 지킵시다
- 나 진짜 타빠인데 중립충으로서 말하자면 하이사인이 진짜 여운이 오래 남았던 것 같아 순서도 인기에 비해서 꽤 앞이던데 끝까지 기억난 거 보면 잘한 거 아니야?? 턴즈온 요즘 좀 시비 좀 심하긴 하더라
- 응 타빠라서~ ezr 그 팬덤인거 투리구슬
- 대니랑 정문이 댄브에서 진짜 입틀막하고 봤는데 다 하이사인 얘기만 해서 슬퍼 ㅠㅠ
- 아니 너네 우리 견제 안 한다며 ㅋㅋㅋㅋㅋ 왜 하이눈들은 가만히 있는데 맨날 멱살 못 잡아서 난리임? 머리채 잡히니까 같이 싸워야 하잖아;
- 지나가던 워닝인데 우린 끼워 넣지 마라 솔직히 자꾸 엮이는 것도 별로 맘에 안 들어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그냥 무대 후기.”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숨기자 그런 날 돌아본 이유준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인 거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지? 하지만 장소가 장소였던 탓이었을까, 지금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가면 또 불려 가겠군.
“나중에 다 확인할 거야.”
“꼭 그래야겠냐.”
“이럴 때만큼은 믿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위해서 스테이지 쪽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다른 그룹들이 보이던 타이밍에 옆의 문을 열고 스턴즈와 디레스트가 나타났다.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친 스턴즈의 리더 녀석이 나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넌 연기 그만해도 괜찮아.
얼마 전까진 제법 괜찮게 본 사람이었는데. 실체를 알게 돼서 그런 걸까 씁쓸한 마음뿐이다.
사실 이번 작전에 있어서 스턴즈의 리더 박정문이 조금 걸렸었다. 조승화를 컨트롤하느라 고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 됨됨이가 꽤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전부 철회해야 했지.
월간 아이돌 촬영장에서 겪은 일이었다.
쉬는 시간을 가지며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었다.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려 하던 도중 비상계단의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걸 목격했다.
닫고 돌아갈까 싶어서 문고리를 잡았다가 계단 너머에서 박정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훔쳐 듣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몸을 돌리려고 하던 찰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주제를 듣게 됐다.
‘너 걔네 앞에서 잘도 굽실거리더라? 하여간에 이거 순 양아치 새끼라니까?’
‘허, 그럼 보는 눈이 그렇게 많은데 조승화처럼 야리리? 미친놈아, 너희 나 덕분에 그나마 사회생활 하고 있다고 생각해. 꼴통들 데리고 그룹 하려니까 진이 다 빠지네.’
‘아, 진짜 존나 약았어. 그래도 너 조승화 덕 많이 보지 않았냐? 하이사인 걔네 되게 안 좋아하잖아. 서바이벌인지 뭔지 관심사는 죄다 갖고 가서 열받는다고 했던 거 분명 들었는데.’
‘시발, 걔네 얘긴 꺼내지도 마. 안 그래도 거기 리더한테 설설 기는 거 빡치니까. 내가 다른 놈들 더 잡을 수도 있는데 왜 가만 놔뒀겠냐? 이렇게라도 엿 먹이려고 머리 쓴 거지.’
‘미친 새끼.’
음, 이런 식으로 머리를 굴리는 놈일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인간성은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세상을 너무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걸까? 조용히 열려 있던 문을 놔두곤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그날은 녹화 종료까지 박정문을 상대하는 게 고역이었지.
태연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놈을 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런 나를 살피던 문채민이 무슨 일이 있었냐며 되물어 본다.
“형,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여.”
“아니야. 괜찮아.”
인근에 있던 김환준도 여길 보고 질문했다.
“진짜 괜찮아요?”
“네??”
의외의 친분이 신기했는지 스턴즈를 비롯한 다른 아이돌 가수들의 눈길이 이어진다.
이거 전부 너희 때문이거든? 보는 눈이 많아서 거절하기도 뭐하고. 적당히 대꾸하며 김환준을 피해 걸었다.
“네, 뭐. 괜찮습니다.”
“긴장하면 컨디션이 나빠지는 스타일인가 봐요? 실전엔 강하더니. 특이하네.”
지금 내가 도망가고 있는 건 안 보이나? 화려한 라이더 재킷을 걸친 채 묵묵히 제 말만 잇는 사람이다.
겉만 봐선 천상 아이돌감인데, 성격에 모난 구석이 있어서 상대하기 벅찬 편인 듯하다.
물러서고 싶어 하던 나를 알아챈 것일까, 인근에 있던 이정원이 조용히 내 팔을 잡아 뺐다.
자연스레 잡아끌어 애들 사이에 밀어 넣고는 시야를 가리듯이 김환준을 차단한다.
“나이스 캐치.”
“하아…….”
나를 받아 낸 이유준과 강태오가 여길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지쳤다는 기색의 강태오와 달리 이유준은 퍽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우릴 지켜보던 19살 둘도 서로의 귓가에 대고 대화를 나눴다.
“야, 명아. 우리도 낄까?”
“으음… 그럼 형이 힘들어할 것 같은데. 권혜성 너, 해신이 형 얼굴 좀 봐 봐…….”
제발 너희라도 얌전히 있어 주면 안 될까.
그 말을 끝으로 머리 뒤에 뒷짐을 진 권혜성이 윤명과 함께 선두로 이동했다.
“에이~ 재미없어.”
사이엔 문채민이 끼어 있었는데, 눈치를 보는 것인지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형들, 우리 얼른 가자…….”
이정원 쟤는 괜찮은 거야?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 했던 둘이 다이렉트로 맞붙은 상황이었다.
“어? 이정원 씨 맞죠? 여기랑은 통 얘기할 기회가 없었네.”
“예, 안녕하세요. 선배님.”
김환준을 흘낏 살핀 이정원이 대수롭지 않다는 양 무뚝뚝하게 답했다.
“음, 내가 이렇게까지 경계당할 일을 했던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제법 용호상박인걸. 느긋한 미소를 지은 김환준과 무표정한 얼굴의 이정원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오늘 무대는 잘 봤습니다. 엄청 화려하던데요. 인원수가 많아서 그런지 무대가 꽉 차는 느낌이었습니다.” (너희 돈 쓴 티 많이 나더라. 그리고 치사하게 둘이 붙어서 덤비냐.)
“하하, 그랬나요? 저도 이 정도로 연출에 힘을 줬을 줄은 몰랐거든요. 다음엔 좀 더 멋있게 해 볼게요.” (전부 회사에서 시켜서 한 겁니다. 내 탓 아닙니다.)
자동으로 해석돼서 들리는 말에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둘 다 머리는 잘 굴러갔으니까 여기서 대놓고 싸울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위험한 수위인 건 맞는 것 같은데. 시선으로나마 이정원을 달래 봤지만, 김환준과의 입씨름을 멈추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뒤통수가 따갑단 말이야……. 흘낏 돌아본 그곳엔 조승화의 매서운 눈길이 존재했다. 아, 괜히 봤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 밀렸을 때 핑계 대기는 좋겠어요?”
…제발 한 놈만 하자. 그리고 우리 안 밀렸거든. 티가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조승화의 말에 반박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우리 무대, 팬들은 좋아했습니다. 이걸 에둘러 표현하니 조승화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진다.
휘익- 그때 디레스트의 멤버로 보이는 사람이 내 멘트에 맞춰 휘파람을 불어 댔다.
저 자식은 또 뭐야? 제발 제정신 아닌 인간이 그만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 길이 이렇게 길었던가. 백스테이지에 들어가기까지 한참 걸린 기분이었다.
지이잉-
지칠 대로 지친 나를 알아챈 것처럼 주머니에 넣어 놓은 핸드폰이 길게 진동했다.
[서도경]
나이스 타이밍, 서도경.
슬쩍 열어 내용을 확인한 뒤 떨어진 곳에 있던 박재민을 불러 핸드폰을 제출했다.
“아… 이걸 안 두고 왔구나. 저기, 매니저님, 핸드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저한테 주세요.”
박재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 이건 본격적인 공격에 대한 수신호였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척 무대를 돌아봤다.
* * *
팬들에겐 손을 흔들며 인사하길 한참, 백스테이지에 엔터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엔딩까지 끝내고 내려가는데, MXP 진영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바쁘다.
새파랗게 질린 스턴즈의 매니저를 뒤로하고, 디레스트 전담으로 보이는 남자가 김환준을 이끌었다.
“환준아! 지금 빨리 소속사로 가 봐야 할 것 같다.”
“흠? 저희요? 무슨 일 있었나요?”
“아니, 우리가 아니긴 한데… 일단 가면서 얘기해 줄게.”
김환준은 이동하는 멤버들을 살피다가 슬쩍 여길 한번 돌아본다.
왜, 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녀석을 쳐다보자 고개를 까딱이곤 조용히 사라진다.
“…정문아, 큰일 났어. 너희도 얼른 가 봐야 해.”
“네? 저희가 왜요?”
“아, 여기서 말하긴 좀 그런데……. 귀 좀.”
매니저의 이야기가 길어짐에 따라 박정문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빨개졌다가 파래졌다가 최후엔 희게 질려 버렸는데 지금 저길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태를 모르는 멤버들과 함께 무슨 일이냐는 둥 MXP 진영을 바라봤다. 다른 아이돌 그룹도 이 이야기를 전달받았는지 연신 스턴즈를 힐끔거리는 중이었다.
“빨리!”
“시ㅂ…….”
“조승화! 넌, 입조심해!”
거칠게 제 재킷을 벗어 든 조승화가 멤버들과 함께 대기실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일부 멤버는 머리를 탈탈 털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주변 시선이 더욱 쏠리는 상황이었다.
“…저기, 무슨 일 있대요?”
“그러게? 갑자기 왜 저래??”
“글쎄요.”
의미심장한 얼굴의 오병은과 박재민이 우리를 대기실로 이동시켰다.
지금 얘기해 봤자 좋을 게 없단 걸 눈치챘구나. 멤버 몇이 대화의 주제를 돌려 버린다.
“으아~! 퇴근! 오늘도 무사히 끝!”
조용히 짐 정리에 들어가려던 찰나 곁으로 다가온 윤명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형, 도대체 뭘 한 거야?”
“음, 내가 한 건 아니고…….”
서도경이 힘 좀 썼지. 주변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돌려받은 핸드폰을 보여 줬다. 거기엔 아까 도착한 링크가 하나 띄워져 있었는데, 헤드라인의 제목이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기사였다.
[연예계에 들이닥친 음원 사재기. 이대로 괜찮은가?]
…올 하반기 다시 한번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의혹이 떠올랐다. 단독으로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브로커를 통한 거래들이 있었다고 알려 준다. 적지 않은 아티스트가 이들과 접촉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그중 신예라고 떠오른 그룹 A와 퍼포먼스로 입소문을 탄 D 그리고 실력파 보이스를 자랑하던 K가 그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요즘 같은 시대엔 언론에서도 SNS와 커뮤니티를 눈여겨보거든. 힌트만 적당히 흘려주면 주워 가겠다는 확신이 든 상태였지.
윤명을 뒤로한 채 서도경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여론에 언질만 던져 주자고요?’
‘네. 걔네로 한정 짓지 말고 전체를 묶어 버리면 금방 퍼질걸요. 사람들 유추하는 거 좋아하니까, 밝혀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확실히, 이야기가 나오면 기자들이 달려들 건 뻔하겠네요. 어떻게든 증거를 캐내서 기사를 쓰겠군요. 우리가 심증을 던져 주면 저기서 물증을 구해 내겠다, 이 이야기죠?’
‘어, 대충은… 네.’
서도경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서 한지헌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자세한 내막까진 모르겠지만 어련히 잘하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커뮤니티 내부에 소문이 돌았다. 그건 근래 보이고 있는 음원들의 수상쩍은 성적 이야기였다.
[요즘 스밍 점수 존나 이상한 애들 많이 보임]
────────────────────────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냐
초동에 비해서 음원 점수 높은 애들 있던데
이거 딱 사재기 각인 듯
총판이랑 집계만 봐도 걍 끝이지 ㅋㅋㅋㅋㅋ
────────────────────────
커뮤니티에 올라간 글들은 곧 알음알음 입소문을 탔고, 언론에게 포착되어 본격적인 기사로 나오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빠른 걸 보아하니, 서도경이나 윤명의 누나가 아는 기자에게 슬쩍 흘린 것 같기도 하다.
기자가 팩트를 따져 가며 흔적을 남기자 네티즌 수사대 역시 자료 조사에 착수했다.
각종 음원 차트를 비롯하여 온갖 기록을 꺼내 온 팬들은 이번 논란에서 가장 화두가 될 아이돌 그룹들을 꺼내 왔다.
낙인이 찍히면 해결되기 전까진 그 프레임을 벗어나기는 힘든 일이었으니까. 해명되지 않는 한 대중은 우리 편이 될 것이다.
────────────
야 리스트 떴다
갑자기 차트인하는 듣보 제외하고
나름 인지도 있는 돌 애들임
ㅁㅈㄴㅂ ㅎㅌㅂㅅㅌ ㅅㅌㅈ 이 셋 거의 확실한 듯
예판을 다 못 팔았는데 초동만 존나 높은 기괴 탑쓰리
────────────
────────────
아 ㅅㅂ 영수증 보여주면 될걸
왜 그걸 못 보여줘서 뻐기는지
진짜 이해 못함;
────────────
- 왜긴 왜야 이유는 뻔하지 ㅋㅋㅋㅋㅋ
- 예 초동 45만 슈스~ 신인상 안녕이고요~
- 잊지 않고 있었어 ㅎ 맨날 별일도 아닌 일로 우리 후려치던 거 너흰 더 한 거 했더라?
- 오프 적었다는 증언도 많이 나오는 중; 얘네 아직 해외팬 도움받을 정돈 아니지 않냐;;
- 그러니까 씹구라였던거 어쩐지 근래 자꾸 ㄷㄹㅅㅌ랑 묶으려고 들더라
- 아 ㅅㅂ 우린 패지마 닝이들도 쟤네 싫어하거든 일부 대가리 꽃밭들만 좋다고 감싸 안은 건데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읍엑스피놈들 죽일까
뭐, 실드를 치는 팬들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소문이 난 이상 스턴즈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벌써 업계에는 누구인지 특정하는 이야기도 돌아다니는 것 같고 말이야.
무엇보다 이렇게 되면 가장 열받아 할 건 디레스트의 팬들이다. 이건 곧 내부 분열이 발생할 거란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SNS 실시간 트렌드에 ‘#MXP_사과해’와 ‘#디레스트_그만_이용해’란 문구가 떠올랐다.
그간 묶어서 마케팅하던 것을 전부 철회해야 할 정도의 거센 비판이 몰아치는 중이었다.
디레스트가 빠진 스턴즈는 위험 요소라고 볼 수 없지. 녀석들의 성격으로 보아 알아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 애들이 좋다 좋다하니까 이용하는 거 너무 빡치는데
- 그놈의 동생그룹; 그냥 ㅍㅇㅈ랑 엮어 거긴 이렇게 해주지도 않더니 왜 ㅇㅈㄹ??
- 읍엑스피 너… 뭐… 돼…?
- 언플 오구오구 했더니 아주 끝도 모르고 함 주제 파악 심각
- 우리 애들로 언플 좀 그만하자 읍진아~
그 뒤로는 서도경이 말해준 대로 진행됐다.
스턴즈가 1주나 빨리 활동을 접겠다는 공지를 발표한 것이다.
그렇게 연말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녀석들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먼저 말을 걸곤 고개를 숙이니, 나를 본 조승화가 이를 악문다.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한 것 같은데. 사재기 프레임이란 게 전부 이런 거였다.
직접적인 처벌은 힘들더라도 주변의 시선에선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것.
서도경이 했다는 건 꿈에도 모르겠지. 재수 나쁘게 걸린 걸로 느낀 게 전부일 것이다.
조승화는 여전히 사나운 눈빛이었지만 예전처럼은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서서 씩씩거리길 한참, 같이 있는 게 고역이었는지 몸을 돌려 우리를 지나쳐 버린다.
“…….”
“스, 승화야!”
그 뒤로 다른 멤버들이 다급하게 조승화의 뒤를 따라갔다. 회사 측에선 매니저에게 스턴즈를 꽉 잡으라고 지시내린 모양이다. 예전보다 많은 인원이 녀석들을 따라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
문득 지금 이 일이, 조승화가 물병 빌런이 되는 과정을 조기 진압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런 일을 해 줄 정도로 녀석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기 운이 엄청 나쁘네~”
“그러게.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봐.”
“오구 오구, 우리 막내, 여기서 교훈이라도 얻었어용~?”
“윽, 혜성이 형, 징그럽게 왜 그래!”
시끌벅적한 멤버들 사이에서 권혜성과 문채민이 투닥거렸다. 애들을 두고 먼저 걸음을 옮기는데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아는 윤명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이런 식으로도 가능했구나.”
“쉿, 명아, 이거 전부 비밀이야.”
“비밀?”
“응. 아, 누나분께는 감사하다고 말씀 좀 전달해 줘. 그리고 명이 너도 수고했어.”
“…으응.”
팔을 들어 녀석의 머리를 헤집으니, 제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숙인 윤명이다.
그리곤 이내 반짝 눈을 빛내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미션 임파서블 같다. 형…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또 둘이 하는 거야……? 알았지?”
“…이거 그렇게 좋은 일 아닌데.”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스턴즈 가지고 시비 안 걸겠지.
드디어 끈질기게 붙던 녀석들을 처리했다. 사실 이건 알아서들 자멸했다는 게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