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와~ 육상은 이제 여자 부문으로 체인지 하네? 엄청 빠르다.”
“씨름은 지금 하나 봐. 명이 형, 저긴 제완이 형이 출전했다.”
동시에 진행되는 경기가 많아서 혼란스러운 사방이었다.
우선 애들부터 확인하자는 생각에 양궁장 응원석에 착석했다.
여긴 팬들의 관심도가 높은 만큼 남자 단체전, 여자 단체전 그리고 혼성 2인으로 치러진다고 전달받았다.
거기서 가장 점수가 높았던 하이사인 멤버들이 양궁 남자 단체전의 출전권을 따냈다.
지금만 해도 봐 봐.
[유준~! 9점을 맞히며 평균 포인트 9점을 달성합니다! 신궁의 탄생!]
집중력이 높은 편이어서 그런가, 우리 팀의 이유준이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자컨에서 게임할 때 보인 허당미와 달리 여기서만큼은 강한 에이스의 기운을 내뿜는다.
그러고 보니까 확률 성장 트리가 리듬과 관련된 일이었던 게 떠올랐다.
정확한 타이밍과 칼같은 모션으로 해설 위원들의 칭찬을 받은 게 벌써 여러 차례였다.
[다음 타자로는 태오 선수가 나왔는데요? 아, 이 선수도 상당히 훌륭한 기백을 보여 줬죠?]
상대 팀과 바통 터치 하듯이 경기장으로 들어선 강태오였다.
활시위를 당긴 녀석의 얼굴이 전광판 내 크게 확대되어 나타난다.
“꺄아악! 태오야!”
굿 초이스, 강태오. 진짜 생긴 걸로는 뭘 해도 그림이 되는 녀석이었다.
팬 유입이 많아졌겠군. 보이는 비주얼에 다른 아이돌들도 연신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정원 선수가 스타트에서 안정적인 포문을 열면, 유준 선수가 공격으로 포인트를 획득하고, 태오 선수가 마무리를 짓는 패턴으로 보이는데요. 자, 셋업, 앤 드로잉. 그다음은 풀 드로 가죠. 조준하고, 쏩니다! 폴로 스루까지 안정적으로! 네! 이번 점수는 8점입니다! 9점과 경계에 걸려서 굉장히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잘 쐈습니다!]
“형들은 성격 때문에 그런가, 이런 거 되게 잘한다.”
“…확실히. 차분하면 양궁을 잘하나 봐. …그래서 권혜성이 여기 출전 못 했던 거구나.”
“야, 윤명. 나 다 듣고 있는데. 뒷담도 아니고 앞담을 까냐?!”
승승장구하는 애들을 철부지 3인방과 함께 지켜봤다.
그때, 누군가 내 옆자리에 다가와선 털썩 주저앉았다.
“오~ 신해신, 쟤네 제법 쏜다?”
그건 목에 수건을 건 채 물병을 들고 있는 지원겸이었다.
인클루 멤버들은 저기 있는데 도대체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손을 들어 인클루 멤버들과 나비소녀 멤버들이 가 있는 혼성 경기장의 대기 줄을 알려 줬다.
“쟤네한테 가 보라고? 야, 너 진짜 매정하다. 기껏 1등한 거 보여 주려고 왔더니.”
안 보여 줘도 괜찮은데. 결국 남자 육상 100M는 지원겸 저 인간이 1등을 했나 보다.
주머니에 넣어둔 메달을 꺼내 우리 앞으로 내밀어 줬다.
확실히 잘 뛴다고 했었지. 미리 찾아본 자료 속에서 지원겸은 김환준과 쌍벽을 가르는 육상 부문의 챔피언이었다.
“어? 멘토님! 1등 하셨어요?”
“어, 혜성이, 네가 제일 먼저 알아주네? 신해신, 넌 좀 더 분발해라.”
내가 왜. 비슷한 종목에 출전했던 권혜성은 지원겸의 메달에 큰 반응을 보였다.
문채민과 윤명은 디자인이 다른 육상 메달이 신기했는지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바쁘다.
얘들아, 너희 쟤네 경기는 안 보냐.
어쩔 수 없다며 나 혼자라도 관람하려는데, 옆에 앉은 지원겸이 허리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야, 근데 이거 이기면 결승에서 팀 레드랑 붙는 거지.”
“그런 것 같은데요?”
“에이 씨, 역시 우리가 나갔어야 했는데.”
“왜요? 아, 저기 디레스트가 나오는구나. 운동 되게 잘하나 봐요.”
김환준 저 인간 말이다. 어지간해서 나갈 수 있는 부문은 전부 출전한 모양인데.
“못해도 준결승전엔 들어가는 것 같네요.”
“재수 없지?”
잘하면 메달권, 못해도 메달권 바로 아래인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원겸도 그게 불만이었는지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쪽도 그렇게 다를 바 없으면서. 지원겸도 벌써 육상과 높이뛰기 두 개 부문에서 메달을 차지했다.
“너, 나 욕하고 있지.”
“아닌데요.”
“이거 점점 더 뻔뻔해져.”
“응원하러 오신 거 아니면 가 주실래요.”
방해되거든.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던 찰나, 양궁 준결승의 승패가 정해졌다.
[남자 양궁 단체전, 팀 블루 하이사인이 결승에 진출합니다.]
“어? 야! 윤명, 문채민! 형들 결승 올라갔다!”
“야, 권혜성… 형이 우리가 응원 안 하는 거 봤나 본데.”
“형들, 정원이 형 눈빛 봐. 이따 집중 안 하면 혼나겠어.”
이정원, 살벌하네.
승부사 기질이 강하던 애답게 마지막 10포인트를 따내며 승리를 가져온 인물이었다.
자리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여길 향해 연신 뻐끔거리기 바쁘다.
“제대로… 응원… 안… 해? …제대로 응원 안 하냐고?”
경기에 집중하기도 바빴을 텐데, 그건 또 언제 본 거야.
이유준이 손가락으로 T자를 그리며 우는 시늉을 하곤 서운하단 뉘앙스를 보였다.
팬들이야 귀엽다고 응원해 줬지만, 저걸 본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녀석, 진짜 삐졌네.”
저건 다음 경기에 집중 안 하면 집요하게 괴롭히겠단 의미였다.
팬석을 향해 손을 흔들던 강태오가 그걸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저놈들 사이에 끼워 넣어서 미안하다, 강태오…….
왠지 쟤한테는 사과해야 할 것 같아졌다.
* * *
[잘 쏴요! 유준~! 역시 9점의 남자!]
[양궁 선수들에겐 스탠스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리듬감이 뛰어나서 그런가, 일절 흔들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원겸은 인클루 멤버들이 출전하는 혼성 관객석으로 이동했다.
남자 양궁 단체전, 팀 블루의 대표인 하이사인과 팀 레드의 대표 디레스트가 맞붙게 됐다.
아까부터 묘하게 자주 부딪치는 것 같은데, 그 경쟁이 신기했는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여길 돌아본다.
“신궁 이유준! 천재 이유준! 잘 쏜다~ 이유준! 이. 유. 준. 짱~!”
“…권혜성, 넌 방해 좀 하지 마…….”
[하하! 팀 블루 하이사인 응원석이 굉장히 뜨거운데요? 선수들은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형들, 창피해.”
동감이야, 채민아.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바닥에 숨기곤 다음 차례로 나선 김환준을 쳐다봤다. 주변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꼿꼿하게 시위를 잡아당기는 모습이다.
[네! 팀 레드 디레스트의 김환준 선수! 10점입니다! 편차가 조금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량이 굉장히 탄탄한 선수예요~!]
[저번 아전체에선 비공식 카운트 MVP를 달성했었죠? 디레스트 멤버들은 양궁 챔피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야말로 만능돌! 이거 완전 기존 만능돌 VS 新 만능돌의 싸움이 됐어요!]
…그런 경쟁은 붙이지 마. 괜히 팬덤 싸움 날라.
해설 위원의 설명을 들으며 점수 판을 살펴봤다.
차분한 성격의 강태오가 선발로 나선 결승전이었다. 다시 한번 이유준이 중간을 차지하고, 이정원으로 마무리 짓는 패턴이 이어졌다.
점수 차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한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승패가 갈릴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졌다.
선수들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너네답지 않게 왜 그러냐. 간절한 마음에 두 손을 부여잡은 채 멤버들을 응원해 봤다.
그때, 자리로 돌아가던 김환준이 이정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쪽에선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뭐라고 말이라도 거는 것 같았다.
“…정원이 형, 화났다.”
“와, 진짜네. 살벌한데.”
“뭐?! 혀, 형~! 왜 그래!”
야, 이정원!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이정원의 눈이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설마 김환준, 저 자식이……. 이정원의 욱하는 구석을 이용한 느낌이었다.
이유준과 강태오는 이정원이 김환준에게 말린 걸 눈치챈 모양이다.
미미한 웃음으로 가려 봤지만 멤버인 우리는 전부 눈치챈 사실이었다.
“유준이 형, 대박 난처한 얼굴.”
“태오 형도 그러네……. 저건, 나랑 권혜성이 사고 쳤을 때 짓는 표정이야…….”
“비유는 좀 그렇지만 일단 윤명 말엔 공감. 와, 태오 형 진짜 당황했네? 해신이 형, 형이 봐서 정원이 형은 어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형이 제일 잘 알잖아.”
“추측이긴 한데, 이정원, 쟤 지금…….”
좀 빡친 게 아니야. 저런 상태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정원에게서 첫 실수가 발생했다.
[아! 팀 블루! 하이사인의 정원 선수, 풀 드로에서 살짝 흔들렸어요!]
[지금까지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던 정원 선수답지 않은데요~? 처음으로 팀 블루 하이사인에서 7점이 나옵니다!]
과녁에 꽂힌 화살이 보이자 사방에선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녀석들의 오두방정을 들으며 조용히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이정원 쟤, 김환준한테 제대로 당했네.
본인도 뒤늦게 깨달았는지 분하단 얼굴로 자리에 돌아간다.
이유준과 강태오는 차분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이정원을 달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저런 거야.”
그런 이정원의 실수를 보며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태연한 자세를 고수한 김환준이다.
다음 차례인 디레스트의 멤버가 나와 9점을 쏘며 점수의 격차가 벌어졌다.
저거 다시 메꿀 수 있으려나. 디레스트 팬석의 함성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엔 이유준의 차례가 돌아왔다.
신중하다 못해 까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과녁을 바라보며 시위를 당긴다.
슉-
화살이 이유준의 손을 떠남과 동시에 해설 위원들로부터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 …저게 뭐야?
파삭-!
이유준이 쏜 화살 하나가 과녁 정중앙의 카메라 렌즈를 깨부쉈다. 나도 깜짝 놀라서 이유준과 과녁만 번갈아 바라봤다.
[유준 선수! 퍼펙트! 여기서 퍼펙트 골드가 나옵니다! 팀 블루 하이사인의 위기 대탈출~!]
[남자 양궁 단체전~! 첫 퍼펙트 골드! 렌즈가 부서졌어요! 깔끔하게 부쉈습니다! 중앙에 박힌 화살이에요! 퍼펙트~~~ 골드~~~!]
“으악! 유준이 형!”
“…윽, 권혜성, 흔들지 마……!”
“유준이 혀엉~! 다른 게임은 못 해도 괜찮아! 양궁만큼은 천재니까~!”
미친 거 아니야? 쟤 진짜 잘하네?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사방을 향해 손을 흔든 이유준이었다.
멤버들을 돌아본 뒤에야 안심했다는 듯이 활짝 미소 짓는다.
갑자기 이뤄진 반전 분위기에 디레스트 진영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 차례의 강태오가 10점을 쏘며 디레스트의 점수와 격차를 좁혀 갔다.
[태오 선수 10점~~! 여기서 제대로 팀을 지탱해 줍니다! 아~~ 아주 중요한 역할을 잘 해내 줬어요, 태오 선수!]
[경기는 다시 원점! 끝까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각 팀에 남은 선수들은 단 한 명씩. 팀 레드의 김환준 선수와 팀 블루의 정원 선수! 현재 포인트는 80:79! 단 1점 차! 팀 레드가 우세한 상황에서 김환준 선수, 셋업합니다.]
슉-! 탁!
[9점! 김환준 선수! 9점을 쏘면서 훌륭히 방어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팀 레드는 89점! 팀 블루 정원 선수가 10점을 쏘면 연장전에 들어갑니다!]
“으악, 나, 심장이 너무 떨려. 아전체 원래 이렇게 살벌한 게임이었어?”
“…쉿, 조용. 정원이 형 나간다…….”
“정원이 형, 제발, 제발…….”
아쉽다는 기색으로 들어간 김환준 뒤에 차분한 얼굴의 이정원이 등장했다.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이 좋은 스탠스를 이어 가던 녀석이었다.
이제 완전히 회복했군. 주변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침착한 얼굴의 이정원이 활 시위를 당겼다.
냉정한 눈의 이정원이 클로즈업되고, 그와 동시에 숨을 고른 이정원이 화살을 잡고 있던 손가락을 풀었다.
픽- 슉- 탁!
…그래서 점수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과녁으로 집중됐다. 이정원도 자세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전광판에 떠오른 점수부터 확인했다.
[COUNT: 9]
[Team Red 89 : Team Blue 88]
[Team Red 승리]
“와아아~!”
디레스트 팬석으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앉아 있던 김환준과 멤버들이 서로를 토닥이고, 팀 레드의 승리가 사방에 공표됐다.
아쉽지만 그래도 잘했어. 허탈한 얼굴의 이정원에게는 손을 말아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정원! 잘했어!”
“형들! 멋있었어~!”
“신궁 이유준! 카운터 강태오! 수문장 이정원! 짱~!”
우리의 외침에 따라 하이눈에게서도 응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를 확인한 이정원이 이제야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인다.
“미안해, 신해신! 뒤를 부탁한다!”
이유준과 강태오, 이정원이 우리가 있는 응원석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여길 향해 주먹을 뻗으며 부탁한다는 느낌의 제스처를 취했다.
“이거 부담이 막중한걸.”
저 녀석들을 봐서라도, 이겨야 할 것 같지?
다음은 아전체의 하이라이트인 MVP 계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종일 응원만 하던 내가 출전하기로 한 부문이었다.
* * *
모든 경기가 막바지에 치닫고, 마지막 육상 계주 파트가 시작됐다.
여긴 컬러로 나뉜 팀과 상관없이 그룹별로 진행되는 구간이었다.
성별에 따라 예선 기록을 측정했는데 거기서 최종 선발된 다섯 그룹이 MVP 계주의 선수로 나가게 됐다.
1위를 차지하면 자신이 속한 팀에 포인트를 주면서 MVP 아이돌 후보군에 입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먼저 시작된 여자 그룹 계주에선 팀 그린의 걸 그룹이 1위를 차지했다.
“형들, 잘하고 와.”
“오냐.”
“아까 당한 수모는 그대로 갚고 온다. 딱 기다려.”
“…정원이 형은 승부욕 만만이네.”
“하하! 기대할게!”
“해신이 형, 정원이 형, 파이팅.”
“야아 문채민~ 우린 왜 안 불러!”
“혜성이랑 명이, 너희도 안 다치게 조심하고.”
“역쉬! 태오 형밖에 없다니까~~”
“징그러우니까 얼른 가기나 해.”
뒤이어 남자 그룹의 경기에 들어가서, 우리도 트랙을 향해 이동했다.
“야, 신해신. 너희도 출전하냐?”
“멘토님네도 기록 들어가셨나 보네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지원겸이 다가온다. 사전 공유되지 않은 기록으로 여기의 계주 출전은 모르고 있었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를 향해 작게 불만을 내비친다.
거기도 말 안 해 줬으면서. 덤덤한 내 반응에 지원겸이 연신 툴툴거렸다.
“흥, 이래 봬도 우리 저번 MVP 계주 챔피언이었거든? 긴장해라.”
“알고 있어요.”
그쪽들 무진장 잘 뛰는 거. 여기 출전을 따낸 뒤에는 우리도 손가락만 빨고 있진 않았다.
제 나름의 전술까지 세워 가며 그 전 기록들을 분석했던 과거였었다.
육상 부문에는 강자 두 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건 바로 저기 있는 디레스트와 여기 있는 인클루였다.
진짜 사사건건 부딪치네. 부상이 있던 김환준이 출전하지 않은 저번 시즌에선 지원겸이 들어가 있는 인클루가 우승했다고 들었다.
반대로 인클루가 월드 투어로 참석하지 않은 아전체에선 김환준이 속한 디레스트가 우승을 차지했었다고 한다.
한 번씩 사이좋게 승리를 쟁취하고서도 뭐가 그리 불만인지 경기만 하면 피가 터졌다.
뭐, 그건 너희 사정이고. 우리는 별로 저기 낄 생각이 없었다.
“진짜 이번 아전체 다 해 먹네, 치사하게.”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멘토님네도 여러 부문에서 메달 따셨잖아요.”
“야, 따지고 보면 우리 한 팀이거든?”
“예에.”
“성의 없는 것 좀 봐.”
대충 답변을 해 주는 척하면서 다가온 스태프의 설명을 들었다.
각 그룹당 출전 선수는 4명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에 들어가면 되는 경기였다.
‘혜성이 형은 잘 뛸 것 같긴 했는데, 진짜 잘 뛰네.’
‘…쟨 지치지도 않아. 그러니까 두 개 내보내 버려.’
‘야! 윤명!’
‘윤명, 너도 기록으론 혜성이랑 엇비슷하거든? 승마랑 계주 두 개 나가라.’
‘…으응, 그러지 뭐.’
‘그럼 네 번째로 기록이 좋은 정원이 형까지지?’
어렴풋이 트랙에서 기록을 재던 날이 떠올랐다. 사전에 공지 받은 거리에 맞춰 멤버들과 달리기 시합을 펼쳤었다.
초시계로 정확한 시간을 측정한 뒤 그걸 반복해서 평균 기록을 도출했다. 그렇게 나온 순위를 통해 2위인 권혜성부터 3위 윤명, 그리고 4위 이정원까지 계주 선수로 선발됐다.
‘제일 의외는 해신이 형이란 말이야.’
‘그러게, 형이 저렇게 빠른 줄은 몰랐는데.’
‘문채민, 이유준. 다 들린다.’
한바탕 실컷 달리고 난 뒤 멤버들에게 합류하러 가던 길이었다.
입이 떡 벌어진 권혜성의 뒤로 문채민과 이유준이 쑥덕거렸다.
신기하단 눈치의 윤명과 이정원은 둘째치고 그 얌전한 강태오 마저 뭐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 팀 달리기 기록 1위가 나였기 때문이었다.
뭐, 왜. 내가 빠르니까 이상하냐?
‘해신이 형, 대박!’
‘신해신이 권혜성보다 잘 뛸 줄이야……. 달리기랑 관상은 별로 관계가 없었나 봐.’
‘이정원, 그거 지금 내가 못 뛸 것 같은 얼굴이란 거지?’
‘…솔직히 해신이 형, 게임 진짜 못하잖아…….’
‘그건.’
할 말이 없긴 한데.
‘됐어. 잘 뛰면 좋은 거지, 뭐. 그럼, 형까지 계주는 4명이 나가는 걸로 하자.’
피곤하다는 듯이 마무리 짓는 강태오에 의해 그렇게 최종 선발이 완료됐다.
근데 여기 자리는 또 왜 이런 거야?
정해진 위치에 맞춰 대기하자 양옆에 남아 있던 선수들이 눈에 띈다.
1번부터 5번 트랙까지 다섯 개나 있는 후보군에서 2번인 내 좌우로 인클루의 지원겸과 디레스트의 김환준이 서 있었다.
잘 뛰어서 마지막 순서인 건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겹쳐 버리니 조금 징그럽다.
“신해신, 너도 마지막이냐? 여기 출전한 것도 신기한데. 의외다?”
두고 봐, 지원겸. 멤버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낄낄거리는 지원겸이었다.
얄미워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김환준과 눈이 마주쳤다.
아, 자리 최악이야…….
진짜 눈 둘 곳이 없다는 건 지금 내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신기하네요. 운동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강제 출전이에요?”
말 걸지마, 인마. 하지만 이렇게 대답할 순 없었다.
“아뇨.”
“그래요? 잘 뛰나 보네? 재밌는 점 하나 알고 가요.”
그거 알아서 어디다 쓸 건데. 미운털이 박혀서일까, 김환준이 말만 하면 전부 삐딱선 타게 된다.
그때, 그런 우릴 살핀 지원겸이 김환준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아, 어디서 개소리가 들리네.”
“남 눈치 안 보는 건 여전하구나. 멤버들이 힘들어하겠어.”
“뭐라는 거야. 사돈 남 말하세요. 어째 사람이 점점 더 음습해지냐.”
“넌 그만 솔직해도 될 것 같은데.”
저거 순 날 위하는 척하면서, 지 사리사욕 채우기 바쁘구만.
“너 같은 놈보단 내가 낫거든. 야, 신해신, 안 그래?”
“신해신 씨는 공감하는 얼굴이 아닌걸.”
제발 너희 싸움에 나 좀 끼워 넣지 마라. 한숨이 절로 나오는 환경이다.
“저기, 경기 시작하는데요.”
조용히 하고, 뛸 준비나 해.
둘의 말다툼이 깊어지기 직전,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탕-!
“달려!”
“정원이 형! 빨리 와!”
[빠릅니다! 빨라요! 현재 선두는 인클루의 션 선수!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은 하이사인의 정원 선수와 디레스트의 도민 선수입니다! 코너링까지 비슷한 상태에서 두 번째 선수에게 바통 전달이 이뤄집니다! 이런! 에이티 케인의 백민 선수! 넘어지는데요! 다시, 다시 일어나세요!]
첫 타자인 이정원이 달려 나간다. 1, 2, 3 레인의 선수들이 선두를 자치한 상태에서 뒤로는 자잘한 실수가 발생하며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 디레스트와 인클루, 각자 바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 손이 엇갈렸습니다! 한 번 떨어트렸다가 다시 줍는데요! 정원 선수의 능숙한 전달 속에서 선두를 차지한 건 하이사인의 명 선수!]
인 코너와 멀지 않은 곳에서 선두에 있던 인클루와 디레스트의 멤버였다. 서로의 바통을 쥐고 다급하게 교환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둘 사이에 껴 있던 이정원도 위험한 상태였으나, 해설 위원의 설명처럼 냉정한 얼굴로 몸을 틀어 피했다.
양궁 때 흔들린 게 거짓말 같네. 역시 우리 팀 강철 멘탈다운 처신이다.
운동신경도 팀 내 윤명과 투 톱으로, 얼굴과 상반된 체력과 스피드에 사방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그룹 최고의 밸런스를 자랑하는 윤명이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명 선수! 빨라요! 격차를 유지한 채 가속합니다! 현재 1위는 하이사인! 그 뒤를 바짝 쫓아 붙고 있는 건 인클루와 디레스트! 이건 박빙입니다! 박빙이에요!]
정신을 차린 후발 주자들이 윤명의 뒤를 쫓아 붙었다. 하지만 아까 벌어진 거리를 따라잡긴 힘든 여건이다. 그렇게 세 번째 주자의 순서가 다가오고 헤어밴드를 동여맨 권혜성이 윤명에게 바통을 전달받았다.
“권혜성!”
“윤명! 땡큐!”
그새 우릴 따라붙은 인클루의 멤버가 권혜성과 함께 라인을 출발한다.
연달아 온 디레스트의 세 번째 주자도 아슬아슬한 거리에 맞춰 땅을 박차고 나섰다.
하지만 세 번째 주자는 육상 60M에서 김환준을 바짝 쫓아간 실력의 권혜성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앞서 나가며 2위와는 점점 더 거리를 벌린다.
[혜서엉~! 혜성~! 정말 혜성처럼 달려 나갑니다! 아~! 인클루, 디레스트! 많이 쫓아갔는데, 뒤처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밀리면 안 됩니다! 이젠 코너링~! 거길 넘어가면 마지막 주자예요!]
코너를 돌아가선 2m 정도 멀어진 격차였다. 권혜성이 이를 악문 얼굴로 다가와 나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해신이 형!”
대기하고 있던 내 손 위로 권혜성이 건네준 하얀 바통이 올라왔다.
그 순간 몸을 멈춘 권혜성을 향해서 큰 목소리로 한마디를 외쳐 줬다.
“맡겨 둬!”
그러곤 다리에 힘을 가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허억, 헉… 부탁할게……!”
“신해신! 달려!”
“혀엉~! 해신이 형!”
각자 할 일을 끝낸 뒤 트랙 안에 서 있던 이정원과 윤명이었다. 얼핏 들린 녀석들의 부름에 답을 하는 느낌으로 전력 질주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지만 도저히 발을 멈출 순 없었다.
한 입으로 두말할 순 없지. 책임감이 막중한 순간이다.
[하이사인 해신! 너무 빠릅니다! 너무 빨라요! 인클루 원겸~! 디레스트 김환준~! 분명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였는데! 아~~~ 점점 멀어집니다! 해신! 해신! 너무 빨라요! 쫓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2위 싸움!]
[하이사인! 너무 빠릅니다! 해신 선수~! 하이사인의 비장의 무기였어요! 왜 지금까지 육상 다른 부문에 안 나왔는지 모를! 막강한 달리기 실력!]
[이 정도면 오늘 신기록이 나올 것 같은데요! 코너링에서도 절대 속력을 줄이지 않습니다! 자세! 속도! 지면을 박차는 저 힘! 모두 완벽합니다!]
어느덧 따라붙던 지원겸과 김환준이 나와는 멀어진 걸 알 수 있었다.
심장이 요동치며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 멀지 않은 곳에 놓인 결승선이 보였다.
마지막 스퍼트로 속력을 붙이고, 내 몸이 결승선 위의 흰띠를 가로질렀다.
쏟아지는 꽃가루 속에서 몸을 돌려 옆으로 빠져나갔다.
[하이사인~! 1위! 마지막 주자 해신이 따라갈 수 없는 간격을 만들었습니다! 아전체 MVP 계주 新 챔피언의 탄생입니다~!]
“허억, 헉, 헉…….”
결승선을 넘어간 뒤에는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 아, 죽겠다. 그리고 해냈다.
비틀비틀 트랙 너머 바닥에 쓰러지니 어느새 달려온 멤버들이 날 얼싸안는다.
누가 누군지도 구분하기 힘들 마구잡이식의 포옹이 이어졌다.
“혀엉~! 해신이 형, 짱!”
“신해신 너……! 네가 진짜 해내는구나!”
“형! 진짜 장난 아니었어! 형이 거의 3분의 1트랙을 벌렸어! 형 진짜 대박!”
“이, 일단 물부터 마셔. 수건 줄까?”
“강태오, 여기 수건!”
“헉, 허억… 죽, 겠다……. 진짜, 나, 헉, 잘, 흐억, 뛰었냐……?”
간신히 멤버들을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날 감싸 안은 멤버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내용의 답변을 소리쳤다.
“물론이지!”
“형, 형이 제일 잘 뛰었어!”
“…하,하! 하하! 그, 럼, 됐다……!”
차례대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1위의 기쁨을 멤버들과 나눴다.
2위로 들어온 지원겸과 3위의 김환준이 여길 돌아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 뛰었는지 처음들 보는 눈빛이었다.
내가 이래 봬도 발은 참 빠르거든. 미안하다, 지원겸. 계주 챔피언 뺏어서.
참고로 김환준한텐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