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81화 (180/328)

181화

지이잉-

또냐. 끊이지 않는 문자에 다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손제완]

컴백까지 많이 남은 거야? 데뷔 이후론 계속 엇갈리는 것 같아서. 도대체 우린 언제 겹치는 걸까? ㅠㅠ

손제완, 진짜 끈기만큼은 인정해 줘야겠는데.

지친 얼굴을 하고서 녀석에게 형식적으로나마 답장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안 겹칠 것 같은데]

아이돌 전국 체전 촬영이 완료된 이후 본방송을 기다리며 공백기에 들어간 무렵이었다.

우리는 팀 우승을 비롯하여 MVP 계주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가장 연차가 길었던 인클루가 소감을 발표했지만, 멤버들의 활약이 적지 않았던 터라 사람들의 관심이 우리에게 쏟아졌던 게 기억난다.

- 하이사인 편집 구리면 pd 척살하러 감

- 얘네 활약이 ㄹㅇ 쩔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 팀 블루 우승 이바지한건 맞음 불만 있음 척살

- 양궁즈는 얼굴로 겜 끝냈잖아

- 개인적으로 기존세즈 사이에 강태오 낀 게 내 웃음벨임 부장과 과장사이에 낀 대리같은 처연함……

-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나 얘네 나올 때 무슨 영화 찍는 줄 알았어 ㅜ 특히 강태오 와꾸 돌았나

- 존나 진심이 느껴진다 ㅋㅋㅋㅋ 이유준 퍼펙트 골드 딸 때 슬로건 떨굼 ㅎ 이유준 유죄

- 중간에 이가든 긴장했는지 표정 굳던데 그게 리얼 맛도리였음 시발 그때 좌석 다 술렁거렸다

- 그 분위기면 실수해도 괜찮아 정원아 물론 후반부가서 존나 깃쫄해졌지만……

- 챔니 게임 중독이었니 마지막에 엉아들 표정잡힌 거 봤냐곸ㅋㅋㅋㅋ

- 이런 건 혜성이가 잘할 줄 알았는데 역시 현역 고딩은 어쩔 수 없는 건가

- ………아가명 승마복……? 어디다 절하면 될까요? ㅅㅣ발 감사합니다 ㅠㅠㅜㅠㅜㅠ 필승조합 미쳤다 ㅜㅜㅜ

- 저기 혹시 명이 금수저였냐?? 어릴 때 취미로 승마하는 남돌이 있다?

- 아니 미자즈 개인부문에서 날뛴 거 개웃겨 ㅋㅋㅋㅋㅋ 혜성이도 2위 했지만 잘했다 잘했어 ㅜ 진짜 개빨랐음 한끗차이였던 ㅜㅜㅜ

- ㄱㅎㅈ이랑 저 정도 차이로 들어간 60m 남돌 ㅇㄱ말곤 없었음 지금 타팬덤에서도 그 얘기 많더라

- 그 ㄱㅎㅈ과 ㅇㄱ을 이긴 신해신은……?

- 갓해는 신이다 달리기의 신

- 개짜릿함

- 얘가 60m 나갔으면 금메달 땄을 듯 근데 일부러 숨긴 거 같지? 다들 놀랐잖아 팬석에서 막 ……해신이가 계주 막타라고……? 이러고 ㅋㅋㅋㅋㅋㅋ

- ㅁㅈ 신해신 진짜 존~~~~나 빠름 얘 운동 뚝딱이 아니었냐?? 자컨에서 본 걔가 아니어서 개 놀랐다 ㄹㅇ 팬석에서 보다가 눈알 빠질 뻔;

- 마지막에 뭐라고 말하는 거 같던데 ㅜ 아무튼 진짜 멋있었음 알고보니 내 새끼가 달리기 천재?

사건,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된 촬영에 드디어 나도 좀 쉬어 보나 했는데. 새로 알게 된 인물 하나가 복병으로 다가왔다.

손제완. 얼티밋 나인에서 권혜성 포지션으로 추측하던, 나와는 동갑내기인 아이돌 녀석이었다.

연락처를 달라길래 얼떨결에 교환했던 일이었다. 간혹가다 연락할 정도로만 알았지, 이렇게 수다 떨길 좋아하는 놈일 줄은 몰랐다.

“야, 진짜……. 도대체 몇 시간째냐. 너네 활동 중이라며.”

종일 소파에 앉아서 하고 있는 거라곤 손제완의 문자에 답장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형, 아직도 하고 있었어?”

“…그러게.”

지나가던 문채민은 아까도 본 풍경이 계속 이어지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혀를 내두르며 녀석의 끈기에 크게 감탄했다.

“나랑 명이 형한텐 그렇게 연락 안 하던데. 아까 보니까 명이 형은 자고 있더라.”

“뭐? 근데 나한테는 왜 이러는 거야?”

“형이 동갑이라 마음에 들었나 보지.”

“하나도 안 기뻐…….”

지쳐 보이는 내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제 방으로 들어간 문채민이었다.

에휴, 내 팔자에 휴식은 사치였나 봐. 어차피 쉬지도 못할 거, 이 김에 여론 탐색이나 해 보자며 인터넷을 뒤적였다.

[ㅎㅇㅅㅇ 아전체 현장 후기 스포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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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 또 갈 줄은 몰랐지 ㅎㅇㅅㅇ 입덕한 내 잘못이다…

솔까 첨에 여기 나온다고 했을 때 ㅅㅂ 나오지마 아니 나와줘 두 개 반복하면서

내적갈등 쩔었거든? 근데 와서 실물영접하고 걍 존나존나 오길 잘했다고 생각함

ㅌㅣ위터 후일담 돌았잖아 오버 안 떨고 진짜 애들 다 날아다니더라 ㅋㅋㅋㅋㅋ

여돌 친목도 말 많았는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ㅎ

같은 팀의 ㄴㅂㅅㄴ랑 비즈니스도 안 함 그래서 우리가 대리로 어색해 했잖아 ㅋㅋㅋ

뒷계가면 전부 이 얘기중이던데 ㅋㅋㅋㅋㅋㅋㅋ

애들이 아직 막 이십대 초반이란 거 여기서 제대로 느끼고 간다

진짜 승부욕에 쩔어서 남고딩같은 모습 보니까 ㅎㅇㄴ으로선 개개개개재밌었음

역조공은 두말할 것도 없고 갔다가 평이눈 할 것 다짐하고 나옴 ㅎㅎ

팬사랑 쩌는 그룹 빠는 게 이런 맛이었구나

돌잡이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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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ㅅㅂ 염장인가

- 팬 기만은 팬이 한다

- 현장 반응 제일 좋은 거 얘네 같긴 하더라 물론 견제도 오지긴 했지만 ㅋㅋㅋㅋㅋ

- 나도 방청 다녀왔는데 하이눈 애들 양손 가득 뭐 바리바리 들고 나가서 쟤네 그날 별명 바리바리꾼됨

-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리바리꾼이래 ㅋㅋㅋㅋㅋㅋㅋ

- 전체적으로 얘네 멤 전부 반응 쩔었어 가서 겸덕하겠단 애들도 꽤 많이 봄

- 돈 쓰는 거 보니까 정산 많이 받았나 봐? ㅋㅋㅋㅋㅋ

- 재밌다고 쓰면 꼭 죽자고 달려드는 애들 있더라 ㅠ 제발 뇌절은 하지 말자

- 팬석 진짜 많이 와주고 밥 먹을 때도 제일 마지막에 내려갔음 ㅜㅜㅜㅜ 아전체 나간다고 했을 때 걱정됐는데 너무 잘해줘서 고맙더라 ㅠㅠㅠ

- 본방 어떻게 편집될지는 모르겠지만 얘네 커트치면 방송국 개양아치인건 확실 ㅇㅋㄹ랑 ㄷㄹㅅㅌ처럼 짬있고 실력좋은 애들만큼 활약했거든 얘들아 그건 꼭 알아줘 ㅜㅜ

다들 재밌게 즐기고 간 모양이네. 뭐 이런 걸 노리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게임에서 죽자 사자 덤빈 것은 애들 본연의 성격이었다.

유어돌 땐 꽤 차분해 보였지만, 이런 승부욕은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애들이었다.

역조공이니 뭐니, 준비했던 것도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어그로성 멘트나 좋지 못한 반응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매번 있었으니까 그러려니 하며 넘겨 버렸다.

“근데 이건 또 뭐야?”

스크롤을 한참 내리던 와중에, 생소한 내용의 게시글을 발견했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이 이슈처럼 널리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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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이랑 ㅎㅇㅅㅇ ㅎㅅ이 존나 친한가봄

우리 애가 저렇게 순한 맛으로 굴다니

시력 검사 다시 받아야 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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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체 방청 다녀온 클러스터인디

지원겸 신해신한테 존나 치댐 ㅋㅋㅋㅋㅋㅋ

데뷔곡 묘하게 홍보해준다 싶더니

ㅅㅂ 겸아 다 티난다 ㅋㅋㅋㅋㅋ

갠적으로 좃목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얘넨 나름 서사가 있어서 ㅇㅋ임

지원겸이 선생님인게 내 웃음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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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태서는 아직도 어색해하는데

왜 지 혼자 존나 천년친구처럼 구냐고 ㅋㅋㅋㅋㅋ

와중에 해신 후배님 안절부절 못하는 거 귀엽네

얘 갭모에 쩐다고 할 때 나도 빠순이지만 이해 못한다 했는데

얘들아 미안하다 내가 맛잘알들을 무시했다

이 쩝쩝박사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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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겸……! 방송에선 티 내지 말자고 하더니, 기어코 먼저 사고를 치는 양반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반응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유어돌에 본 스승과 제자 서사가 괜찮은 방패 노릇을 해 준 모양이다.

설마 이 자식, 이거 노리고 그런 거였나?

문득 저번 지원겸과의 통화에서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전체 출전을 코앞에 두고 이유 없이 전화를 걸었던 날이었다.

- 야, 신해신. 너 저번에 우리 도움으로 잘 빠져나갔었지?

‘네? 예, 뭐 그렇죠. 그런데 그건 왜요?’

- 흐~음, 아니, 뭐. 생각난 게 하나 있어서. 우리도 약간의 이슈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거든. 성격 파탄 나서 친구 없단 소문이 이럴 때는 도움되네. 실패해도 본전치기니까 한번 해 볼까?

‘…네?’

갑자기 전화해서 무슨 헛소리야. 영문을 몰라 하는 날 두고 한참을 저 혼자 주절거린 지원겸이었다.

- 이건 상부상조다? 애초에 내가 손해 보는 계약이었잖아. 그러니까 너무 원망하진 마라~ 너희한테도 나쁠 건 없을 거야.

‘네? 아까부터 무슨 얘기ㅅ…….’

- 그럼 끊는다. 녹화장에서 보자.

‘저기요? 저……!’

뚝-

마지막까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내뱉더니, 이내 전화를 뚝 하고 끊어 버렸다.

이슈, 그게 이거였구나. 인클루는 연차가 있었지만, 폐쇄적인 성향의 아이돌이라고 유명했다.

실제로 만났을 땐 그런 성격들이 아닌 것 같았는데, 의외로 선을 잘 긋는 편들이었나 보다.

심지어 알음알음 팬들 사이에선 디레스트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루머도 떠돌았다.

뭐, 루머라고 하기엔 진실이었지만 말이야.

그러던 와중에 컴백을 비롯하여 아전체에서까지 경쟁이 붙었다.

매번 한 팀씩은 엇갈렸던 것 같은데, 이번 시즌은 참 재수도 나쁜 듯했다.

지원겸은 까와 빠로 혼란스러울 상황에 긍정적인 소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게 바로 우리였을 것이다. 여러 사건들을 헤쳐 나간 뒤 신인상까지 수상하며 좋은 노선도를 타고 있던 하이사인이었다.

유어돌에서 함께 했다는 서사까지 부여된 후배 그룹이었으니, 여기서 친하단 티를 내면 이슈가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못해도 본전인 시도는 맞군. 능글거리고 욱해서 그렇지, 여기도 잔머리 쓰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 우리도 도움받았으니까.”

이걸로 마음의 짐은 내려놨다며 마저 커뮤니티를 정독했다.

- 서사고 나발이고 좃목은 싫다니까 ㅜ

- 솔까 이건 ㅎㅇㅅㅇ 애들이 개이득 아니냐? 서바빨로 계속 어그로 끄는 거잖아 ㅋㅋㅋ

- 에휴 누가 봐도 지땡겸이 치덕이는데 왜 우리 애한테 지랄이냐

- 저기 계정 생성 시간 보니까 타빠들임 하이눈 클러스터는 먹금 부탁해

- ㅅㅎㅅ 벌써 동태 눈깔 삘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참 선배 아니냐 태도 존나 무례해 ㅠㅠ

- 무례한 건 너겠지 대충 봐도 둘이 개 친해 보이는데

- 겸이 저러는 거 보면 모르겠냐 우리 애 성깔 유명한디 ㅋㅋㅋㅋ 지원겸 싫어하는 사람은 존나 티 나거든? 카메라 앞이라고 치덕일 일 1도 없어

역시 불호하는 사람들은 있네.

써방 단어들을 검색해 보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사람도 신경 쓰이는데.”

어렴풋이 녹화장에서 겪은 일이 스쳐 지나간다. 그건 바로 김환준이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먼저 이동한 멤버들을 따라 이정원과 함께 복도를 거닐었다.

‘정원아, 너 그때 무슨 얘길 들었길래 그런 거야?’

‘…뭐가?’

하여간에 모르는 척하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뻔뻔하게 굴던 이정원이었다.

‘양궁 결승.’

‘…….’

‘맨날 나한텐 거짓말하지 말라더니.’

‘넌 상습범이잖아.’

‘됐으니까 얼른 불어.’

집요한 내 질문에 이마를 긁적인 이정원은 멤버들이 신경 쓰였는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을 주지 못한 게 아니냐고 했어.’

‘뭐?’

‘…멤버한테 믿음을 주지 못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런 날 보던 이정원은 속이 갑갑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얼핏 보인 눈가에는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누군가를 원망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네가 이렇게 위험한 일에 나서는 건, 우리 때문이라고.’

…김환준, 이 미친 자식이!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건 애들 때문이 아니라 MXP와 김환준의 뒷공작 때문이었다.

아주 우리를 와해시키려고 작정했나 본데.

저런 말을 경기 중에 들었다면 천하의 이정원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기를 위해서 한 이야기였는지, 또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지, 녀석의 심중에 머리가 아파졌다.

‘야, 그, 정원아. 너 설마…….’

그걸 믿는 건 아니지? 불안한 눈빛으로 이정원을 바라봤다.

기가 센 강철 멘탈이긴 했지만, 어딘가 불안한 면모도 존재하는 녀석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정원은 김환준에게 크게 휘말리진 않은 것 같았다.

평소의 냉정한 눈빛을 보이며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미쳤냐, 그 사람 말을 듣게? 처음에 좀 울컥한 건 사실이긴 한데 뒤에 가선 오히려 냉정해졌어. 아! 생각할수록 열받네?! 양궁 우리가 우승할 수도 있었는데 하필 거기서 딱 흔들어서……. 진짜 성격 더러운 인간이야. 뭐, 내가 할 말은 아닌가?’

‘하하…….’

‘뭐야, 신해신. 너 왜 웃냐? 내가 할 말이 아니라고 한 게 그렇게 공감돼?’

‘아니, 그건 아닌데.’

‘어쭈, 그런 것치곤 계속 웃는다?’

능청스러운 이정원이 내 목덜미를 누르며 장난을 걸었다. 단편적인 이야기에 휘말릴 정도로 믿음이 얄팍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아무리 두꺼운 유리라도 계속 부딪치면 결국 깨지는 법. 그렇게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두통을 앓아야만 했다.

걔는 진짜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거야. 여기도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핸드폰 위로 문자 메시지의 알림이 떠오른다. 손제완인가 싶어서 확인해 보니, 예상 밖의 사람이 우릴 호출했다.

[서도경]

신해신 씨, 멤버들 전원을 데리고 회사로 와 주세요.

아, 이제 시작이구나……. 지금 이 평화는 폭풍전야였던 것 같다.

* * *

관상이 썩 좋지 않은 것 같단 말이야.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낯선 인물에게 인사를 했다.

우린 지금 사옥에 출근하여 새로 부임한 사외 이사를 소개받는 중이었다.

“여긴, 이번 메이터스 ent 사외 이사로 발령 나신 조진만 이사님이십니다.”

어떻게 이름도 조진만이냐. 설마 다 조진다고 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멤버들도 표정이 좋지 못한 게 직감적으로 위기 상황이란 걸 느낀 듯하다.

“안녕하세요.”

이정원 저기도 눈빛이 매서운걸. 웃는 얼굴의 이유준도 썩 좋은 기운은 아니었다.

다급한 마음에 서도경을 바라보니 이를 꽉 깨문 채 간신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엔필름 본사에 있었는데, 이쪽으로 발령이 난 건 처음이라서 말이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첫 대면부터 반말하는 태도가 그리 훌륭한 성인은 아닌 것 같았다.

애들이 배우면 안 되는데. 도대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뭘 보여 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 막 스물이 된 윤명과 권혜성 그리고 문채민은 뒤로 밀어서 숨겼다.

“…형?”

“가만히 있어.”

서도경을 비롯하여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보니 앞으로의 난관이 예상되는 바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좋은 느낌은 아닌데, 굳이 입까지 열어서 자기 이미지를 깎아 먹는다.

“아, 서 대표. 낙하산이란 얘기가 좀 돌던데? 오명 풀려면 애들 관리 잘해야겠어~ 나도 많이 도와줄 테니까 잘해 보자고. 하하!”

“…네, 잘해 보죠.”

저 아저씨는 눈이 없는 건가. 서도경은 지금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얼굴이었다.

주제 파악을 못 하면 눈치라도 있든지. 둘 다 없는 것 같은데 이건 재앙이다.

한 번 실패했던 엔터를 야망 하나로 일으켜 세운 서도경이었다. 외국에 있었을 때 좋은 자리를 박차고 온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인간이 악착같이 지반을 세우자, 본사에서 똥파리 한 마리를 투척했다.

서도경처럼 능력으로 온 건 아닌 것 같고, 상황을 보니 제대로 인맥과 라인을 탄 모양이다.

그럼 낙하산은 저기겠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이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아, 나름 희망찼던 내 사회생활이……. 꿈같던 회사가 한순간에 블랙이 될 위기에 처해 버렸다.

“그럼 인사는 여기까지로 하시죠.”

“그럴까? 하긴, 나도 슬슬 업무 들어가 봐야지~ 거, 신해신? 자네가 리더라고 했지?”

“네? 네. 그렇습니다만.”

“반반하긴 한데, 영 대답에 매가리가 없어? 쯧, 제대로 해.”

“예? 예.”

…지금 나랑 싸우잔 거지? 웃는 척 눈에 힘을 주니, 움찔하고 몸을 떠는 남자였다.

이럴 땐 내 인상이 도움되는 것 같네.

보아하니 기를 누를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서도경을 상사로 두고 있던 입장에선 무섭기는커녕, 어이만 없었다.

대충 축객령 비슷한 게 내려지고, 그제야 사외 이사실이라고 적힌 방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차량에 탑승한 뒤였다. 멤버들이 참아 왔던 불만을 뱉어 낸다.

“그 진상은 뭐야? 신해신, 너 뭐 알고 있지. 얼른 다 불어.”

“와우~ 이거 그 드라마에서 보던 상황인가? 하긴 우리 회사가 너무 평화롭긴 했었어! 이래야 연예계지! 아~ 예전 회사 생각나고 참 기분이 좋네?”

“…나이 많다고 다 어른은 아니었구나. …그런 사람도 회사에서 이사로 불리다니.”

“명아, 원래 사회는 좀 썩어 있거든. 벌써 이런 걸 배우게 하긴 싫었는데. 흐음, 서 대표님도 여간 열받은 게 아닌 얼굴이었지? 근데 그 사람,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걸까. 아! 눈치가 있었으면 그런 태도는 안 보였겠지? 하하, 여러모로 모자란 상사가 생겨 버렸네.”

“전부 말이 세다?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냐.”

“그래서, 강태오, 넌 그런 생각 안 들어?”

“솔직히 별로 본받고 싶은 인간상은 아니었지.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래, 애들이 이런 걸로 주눅 들 성격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믿었던 강태오마저 떨떠름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매니저들은 전부 서도경의 사람이니까. 일단 안심하며 알고 있던 사실들을 알려 줬다.

“그러니까, 엔필름에서 서 대표님을 견제하는 거라고? 근데 그럴 거면 거기나 싸우지. 왜 애꿎은 우리를 끼게 하고 난ㄹ… 읍!”

“저, 정원아? 일단 같은 편이거든?”

야! 매니저들은 서도경 사람이라니까! 브레이크 따위는 없는 이정원의 모습에 황급히 손을 뻗어 입을 틀어막았다.

“형들… 그럼, 우린 어떡해야 해?”

회사에 크게 당한 적 있는 문채민이 나직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연신 이유준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일단 서 대표님이 최전선에서 버티겠지만,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수도 있어. 어떤 식으로 개입하려 들진 모르겠는데, 뭔가 기미가 보이면 바로 공유해 줘.”

서도경과 협력 관계임은 숨기고, 다른 부분들에 대해 조언해 줬다.

“그건 우리가 할 말이거든. 신해신, 또 혼자 다 안고 가려 하지 말고.”

“맞아, 형. 형 주특기잖아. 상황이 이런데 계속 비밀 만들고 다닐 건 아니지?”

“…봐서.”

이정원과 이유준의 공격 비슷한 질문에 열심히 방어하길 한참이었다. 핸드폰이 진동하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보낸 이는 서도경이다.

[서도경]

그 인간, 눈앞에서 치워야겠습니다.

상황 봐서 공격할 거니까, 신해신 씨도 마음의 준비 하고 계세요.

…이 사람은 적으로 안 삼아야지. 사실, 협력 관계라기보단 내가 끌려가고 있다는 게 정답이다.

그래도 최악은 아닌 것 같다며 웃는 얼굴로 욕을 하는 멤버들을 구경했다.

“안 마주치는 방법 없나? 사외 이사라며. 내부 일엔 많이 연관 못 할 거 아니야.”

“말만 사외 이사겠지. 하는 태도 보니까 어디 낙하산이라도 타고 온 것 같은데…….”

“강태오, 네가 웬일로 말이 세다?”

“말했잖아, 별로 좋아하는 인간상 아니라고.”

“에이~ 아침부터 기분 나빠졌어~ 모처럼 휴식기인데, 에비비, 오늘 꿈자리 사나울라.”

“…권혜성, 넌 그런 아저씨 꿈 꾸고 싶어……?”

“윤명, 넌 아주 욕을 해라!”

“형들, 나 속이 별로 안 좋아…….”

“채민아, 너 또 상상했지.”

“야! 문채민! 너까지!”

…얘네도 참 강하다니까. 그 순간 내 눈앞에는 새로운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저건 아주 오랜만에 보는 시스템 미션이었다.

[미션]

‘활동은 화려하게’ - 부속 미션 그 첫 번째

하이사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제거하세요.

성공 시 - 보상: 1,000 코인 + 블랙 쿠폰 1매

실패 시 - 페널티: 랜덤 (데미지 크리티컬 3단계 - 내용 비공개)

장난하는 거 아니지? 실패에 적혀 있던 페널티를 보고 위가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쇼케이스 때 했던 걸 한 번 더 하라고? 심지어 그땐 1단계였다. 이번엔 무려 2단계나 높아진 숫자가 보인다.

성공하자며 이를 악물던 참에 난관이 하나 더 있단 걸 깨달았다.

…그래서 도대체 그 부정적인 여론이란 게 뭔데?

해야 할 미션의 내용이 유추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 *

며칠 지나지 않아서 궁금증이 해결됐다. 설 명절을 조금 앞둔 상황에 인터넷에 올라온 게시글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최초 발견자인 이유준이 내 앞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형.”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정색한 얼굴로, 그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 주는 듯하다.

[현 서바이벌 출신 아이돌 그룹 멤버 하나의 학교 폭력을 고발합니다.]

이건 여태까지 논란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손꼽힐 만한 상황이었다. 일단 다른 걸 떠나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유준, 누구인지는 확인했냐.”

“…어.”

이유준의 침음성에 스크롤을 내려 올라가 있는 사진 한 장을 확인했다. 거기 찍혀 있는 건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원래도 무뚝뚝한 편이긴 했지만, 지금과는 인상이 다를 정도의 싸늘한 얼굴이다.

…얘가 학폭 가해자라고? 그건 바로 강태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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