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82화 (181/328)

182화

올라온 게시글은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학창 시절 강태오와 같은 반의 학우였으며, 자신이 그 강태오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 서바이벌 출신 아이돌 그룹 멤버 하나의 학교 폭력을 고발합니다.]

────────────────────────

(같은 반 단체 사진) (출석부 사진)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으로 해당 멤버가 전학을 왔습니다.

잘생긴 외모와 큰 키로 모두에게 인기를 얻은 멤버였으나,

까칠하고 억압적인 성격으로 반에서는 곧잘 혼자 겉돌았습니다.

저는 그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습니다만,

돌아온 건 매서운 비난과 날카로운 무시였습니다…….

────────────────────────

게시글 작성자는 강태오에게 폭언과 무시를 포함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년을 채 다니지 않고 사라지듯 전학을 가 버렸는데, 이건 아이돌 준비를 위해서 과거를 청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올라온 지 3시간이 넘었구나. 나도 놓쳤네.”

“형, 이거 어떡하지?”

- 사진 있으면 이미 빼박 아님? 게다가 다른 동창들이 그랬다며 얘 진짜 말도 안 하고 겉돌았다고

- 미친 얼굴값 하는 건 이해하는데 학폭은 아니지; 손절이다 학폭돌 못 빨아요

- 마음고생 많으셨겠어요. 지금까지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 야 근데 아직은 중립 박아야 하는 거 아니냐; 사진 말고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리고 반에서 조용했던 건 말 그대로 얌전히만 있었단 것 아닌가 플로우 너무 탄 것 같아서 좀 무서움;;

- 으 쉴드 극혐 아직도 남돌 못 버려서 피해자한테 중립 ezr 제발 현실 좀 살아 ㅜㅜ

- 팬들 개극성이네

- 아 토쏠려 역겨움 멀리 안 간다

댓글에는 엄청난 악플들과 높은 수위의 비난이 쌓여 가고 있었다. 아직 진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진이란 증거로 인해 선동된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강태오가 그럴 리 없잖아. 이유준도 이것만큼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당하면 당해 줬겠지. 우리가 알고 있는 강태오는 남을 괴롭힐 만한 성정이 못 됐다.

강태오를 불러서 확인해야겠다고 다짐한 찰나,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지이잉-

지이잉-

그런데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쥐고 있던 이유준의 핸드폰에도 문자 메시지 알림이 떠올랐다.

평소라면 나한테만 먼저 연락했을 텐데, 의문을 품자마자 바로 이유를 알게 됐다.

조진만 이 인간… 사외 이사인지 나부랭이인지가 서도경에게 진상 짓을 펼친 모양이었다.

[서도경]

조 이사님 호출입니다.

회사로 와 주세요.

아,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이상한 놈이 하나 더 껴 버렸다.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타이밍에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한 건 확실해 보인다.

* * *

직함은 사외 이사 정도였으면서 서도경보다 높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구는 조진만이었다.

“아니, 어떻게 부임하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합니까, 서 대표? 거, 이래서 아무나 데려다 놓으면 안 된다니까…….”

우릴 부른 목적이 이거였냐. 브레이크 없는 비꼼에 서도경의 눈이 싸늘해졌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잖습니까. 사실 확인부터 제대로 하고, 뒷일을 해야죠.”

“주가가 떨어지지 않습니까! 이름에 먹칠을 했어요!”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었나.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끌려온 회사 미팅실이었다.

우리가 여기 온 지 20분이 넘었으나, 사실 여부에 대한 질문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서도경이 제대로 사태 파악이라도 할라치면, 조진만 저 인간이 깽판을 쳤다.

강태오는 시간이 갈수록 지쳐 가는 것 같았는데, 하얗게 질린 안색에서 상태가 좋지 못함을 알게 됐다.

거 사내 정치질 할 거면 우린 빼고 하라니까. 아무래도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진짜인지도 모릅니다. 저희도 태오에게 얘기 한번 못 듣고 바로 회사로 온 상황인데, 우선 저희끼리라도 먼저 시간을 주시면 안 될ㄲ…….”

“뭘 잘했다고! …아, 크흠. 낄 자리 안 낄 자리 구분도 못 하나?”

역시 성깔 나오네. 그럼 한 번 더 건드려 볼까.

서도경은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어렴풋이나마 눈치챘나 보다. 꽉 다물어져 있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알아챘으면 뒤나 잘 부탁해요. 이 작전에선 무조건 서도경이 마무리를 지어 줘야 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문채민을 뒤로 민 채, 멤버들을 가로막듯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곤 서도경과 멤버들이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흥분한 조진만의 말에 끼어들었다.

“누가 뭐래도 당사자는 저희 멤버이니까ㅇ… 윽!”

조진만과 사정거리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무렵.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조진만이 앞에 놓인 제 핸드폰을 던졌다.

퍽- 안면부 오른쪽에 부딪친 기계가 그대로 내 몸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다.

어우, 진짜 더럽게 아프네. 그래도 코나 눈은 다치지 않게 잘 피했다.

“형!”

“신해신! 괜찮아?”

“해, 해신이 형……!”

뒤에서 달려오는 멤버들은 얼굴을 부여잡은 날 확인하기 바빴다.

알싸한 통증에 그대로 고개를 숙여 적당히 몸을 말고 버티던 중이다.

멤버들의 발에 치이고 있는 조진만의 핸드폰이 보이는데, 머리 위에선 어렴풋이 사고를 친 자의 침음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조 이ㅅ……!”

“쉿, 가만히 있어.”

이유준의 항의에는 시선을 맞추며 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멀리 있는 멤버들에겐 팔을 뻗어 얌전히 있으란 뉘앙스를 전달했다.

놔두면 알아서 원하는 대로 될 거야.

그리고 정말 얼마 가지 않아 조진만은 우리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지금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는지 더듬거리는 말투였다.

“이, 이건……. 그, 그러게 누가 말대꾸를 하래! 보기도 싫으니까 일단 나, 나가 있어! …우선, 서 대표만 나랑 얘기합시다!”

빙고, 쉽게 흥분하는 인간인 것 같길래 한번 흔들어 본 거였는데.

비틀비틀 몸을 움직이며 상석을 향해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조진만이 보지 못한 틈을 타서는, 서도경에게도 의사를 전달했다.

‘연락할게요.’

그걸 확인한 서도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멤버들의 부축을 받는 척 전원을 이끌고 방 밖으로 나갔다.

큰 소리가 바깥까지 새어 나갔는지 주변 부서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온 상태였다. 놀랐다는 표정의 직원들에겐 한쪽 얼굴을 가리며 괜찮다고 이야기해 줬다.

“매니저님, 우선 숙소로 좀 갈 수 있을까요?”

“네! 바로 차량 준비해 놓겠습니다!”

“해, 해신 씨,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오병은이 지하로 달려가는 걸 확인한 뒤, 나는 박재민과 멤버들과 함께 차량에 탑승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그런 얼굴을 했던 거구나.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한쪽 뺨엔 새파란 멍이 올라와 있다.

핸드폰도 참 튼튼한 거 쓰네. 그 와중에 입술은 터지지 않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삭막하다 못해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얼핏 돌아본 멤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얼굴로 밖은 못 돌아다니겠는데? 비활동기에 들어간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박스 상점에 회복 아이템은 없었던가 하고 떠올린 찰나였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강태오가 바지 자락을 한가득 움켜쥐었다.

어찌나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희게 질려 떨리는 게 보인다.

많이 놀란 모양인데.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라. 이건 전부 강태오와 멤버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 * *

“신해신, 너……!”

“정원아, 미안한데. 우선 다른 것부터 해결하면 안 될까?”

문을 닫자마자 이정원의 울컥한 얼굴이 보였다.

“…혀엉, 얼굴…….”

“마, 맞아! 일단 치료부터 받아! 응?”

구급상자부터 챙겨 온 윤명과 권혜성에겐 미안하다며 손짓하길 한참이었다.

그때, 이유준이 비틀거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걸 발견했다. 많이 놀랐는지 양손으로 제 얼굴을 푹 가려 버렸다.

“…채민아, 이런 부탁해서 미안한데. 유준이 좀 부탁한다.”

“으, 으응.”

허겁지겁 이유준에게 달려간 문채민을 확인하며 고개를 숙인 강태오를 돌아봤다.

“태오야, 형이랑 얘기 좀 할까?”

“…어.”

부드러운 내 말투를 들었음에도 강태오의 시선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걱정하는 시선의 멤버들을 뒤로한 채, 강태오와 함께 녀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너도 알고 있는 거지? 우리가 왜 불려 간 건지.”

“…가는 길에, 애들이 얘기해 줬어.”

“형도 그렇고 유준이도 그렇고, 모두 같은 마음이야. 네가 그러지 않았던 건 우리가 가장 잘 알아. 태오야, 네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일들에 많이 놀란 건 알고 있지만 말이야.

지금 가장 급한 건 강태오의 이미지였다. 미션이고 뭐고를 떠나서 학교 폭력은 오래 끌면 안 되는 일이었다. 업계 스태프로 있던 과거에 이 건으로 나락 간 아이돌을 많이 봤다.

사실이 아니라면 빨리 고쳐야지. 그게 안전제일주의인 내가 몸빵까지 하며 탈출한 이유다.

올라오는 통증을 무시하고 강태오를 바라봤는데, 뭐가 그리 무거운 건지 괴로워 보이는 녀석이었다.

“혹시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거야?”

“그건……. 아니야, 형, 나, 난. 난 사람 괴롭힌 적 없어……!”

이제야 제대로 내 눈을 보는구나. 마주친 시선 너머의 강태오는 깨끗하고 맑은 눈을 갖고 있었다.

그래, 애초에 이런 녀석이 학교 폭력을 했다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럼, 얘기해 줄래? 그때 너의 반년을 말이야.”

“…응.”

고개를 끄덕인 강태오가 천천히 오래된 일들을 꺼냈다. 그건 이 녀석에겐 숨기고 싶은 치부이자, 선뜻 말하기 힘들었을 나날이었다.

* * *

“우리 집은 내가 아주 어릴 때, 가족 모두 해외로 이민을 갔어. 부모님 일 때문이었는데, 유년 시기부터 16살 때까진 쭉 거기 살았었거든. 한국에 잠시 들어왔던 게 바로 그 시기야.”

…이민? 그렇다면 한국 국적이 아닌가? 아니면 이중 국적?

하긴, 생각해 보니까 강태오는 다른 녀석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내가 함께 생활하면서도 특이한 구석이 있네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기 시작하면 우산부터 찾는 멤버들 사이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양 걸음을 옮기곤 했던 강태오였다.

권혜성이나 윤명이 왜 비를 맞냐며 우산을 씌워 주자 하늘을 쳐다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일도 기억난다.

분명 외국에선 약간의 비 정도는 그냥 맞고 다닌다고 했었지. 이런 걸 보면 한국 생활보다 해외 생활이 길었던 게 확실했다.

게다가 지금만 해도 강태오의 방 한편엔 외국 상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평소 입에 달고 마시던 차가 어릴 때 든 버릇이라고 했으니 정답일 것이다.

아, 맞아. 유어돌 때 최종 소감에서도…….

강태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족들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지역 차이 정도인 줄로만 알았는데, 외국에 있었을 거라는 건 꿈에도 알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에 바쁜 날 두고, 강태오가 부지런히 학창 시절에 대한 설명을 했다.

누굴 떠올리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조금은 씁쓸하단 표정을 지은 상태였다.

“그때, 난 심적으로 많이 방황하던 시기였거든. …알고 있지? 나한테 형이 하나 있는 거. 그 시기의 난 열등감 덩어리였어. 가족들은 날 아껴 줬는데, 그것조차 부정한 채 한국으로 혼자 도망쳐 버렸으니까.”

“…도망?”

“응, 도망친 거야, 여기로.”

그 뒤 이어진 내용들은 글에 적혀 있던 사실과 많이 달랐다.

강태오가 조용하고 말이 없었던 건 진실이었으나, 같은 반의 학우 중 그 누구도 괴롭힌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도리어 자신에게 다가와선 비꼬듯이 행동한 이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반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애들한테 선을 그었던 건 맞아. 다들 예민했을 시기니까, 불편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형. 진짜 아니야. 나, 누구도 괴롭힌 적 없어.”

“믿어.”

아니, 말하기 전부터 전부 알고 있었어. 이 녀석은 타인에게 폭언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전학을 갔던 것도 다시 독일로 돌아갔던 것뿐이야. 어머니가 나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해서, 그래서 가족에게 돌아갔던 거였는데…….”

그 글에선 강태오가 아이돌 준비를 위해 전학을 갔다고 말했었다. 이걸 보니 확실해진다.

게시글의 작성자는 강태오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다. 아, 그 인간을 어떻게 조지지. 같은 반이었던 학우들에게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일 텐데.

당시 강태오는 반에서 겉돈 듯하여, 비상 연락망이 있을 거란 기대도 하기 힘들었다.

…잠깐, 비상 연락망? 그거라면 직접 볼 수 있지 않으려나.

스치듯 떠오른 기억 하나에 강태오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태오야, 혹시 반에서 제대로 증언해 줄 만한 인물이 있을까?”

“…어? 아, 반장.”

내 말을 들은 강태오는 곧바로 누군가를 기억해 냈다.

강태오가 심리적인 방황을 겪었더라도, 특유의 성격은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놈이니까, 이 녀석에게 호감을 느낀 사람이 있겠다고 확신했다.

“반장은, 걔는 대충 내 사정 알고 있었어. 시비 거는 녀석한테 적당히 하라며 제지한 적도 있으니까. 아, 맞아. 얘한텐 마지막에 외국으로 전학 가게 될 것 같다고 말해 줬는데……. 형, 근데 그건 왜…….”

“이름, 이름 좀 알려 줘, 태오야.”

“뭐?”

“다른 건 괜찮으니까, 이름만 떠올려 줘.”

강태오가 당황했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 상황 속에서도 더듬더듬 해당 인물의 이름을 말해 왔다.

이렇게 순한 녀석이 무슨 사람을 괴롭혀. 나는 놀란 것 같은 강태오의 등을 두 번 토닥여 줬다.

“됐어, 이제 형한테 맡겨 줘. …그리고.”

“어?”

미안하다, 강태오.

어리둥절한 얼굴의 강태오를 앞에 두고 조용히 시스템 창을 불러냈다.

그러곤 반투명한 홀로그램 너머로 메모리 서칭 엔진을 찾았다.

…메모리 서칭 엔진 사용할게. 강태오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메모리 서칭 엔진]

사용 가능 횟수: ☆

[‘강태오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검색합니다.]

나는 지금부터 이 녀석이 밝히지 못한 사연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미안하다.”

번쩍거리는 시야를 느끼며 다시 한번 녀석에겐 사과를 남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