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89화 (188/328)

189화

오프닝 현장은 기존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메인 MC 넷이 호들갑을 떨며 게스트들을 반겨 줬다. 데뷔가 빠른 순으로 사람들을 불러 우린 아직도 패널 뒤에 숨어 있었다.

긴장한 낯으로 고개를 내민 문채민이 특이한 라인업이라며 신기하다고 말했다.

디레스트를 확인했을 때만해도 아이돌 특집인가 했는데, 배우부터 모델까지 제법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자, 그럼 오늘 마지막 게스트죠?”

“난 누군지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 없거든.”

“저 형은 나만 보면 시비 걸더라!”

“아우, 정신없어! 그냥 빨리 불러요! 나 저 둘이 싸우는 거 보기 싫어~”

“여기서 가장 어린 사람들이려나? 젊은 피 수혈!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하이사인의 해신, 혜성, 채민~!”

MC의 소개와 동시에 곁에 있던 스태프가 신호를 줬다. 박수 쳐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며 현장에 합류했다.

“형, 형 아들이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것 같은데.”

“야, 가족은 건들지 말자?”

반겨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를 따라 웃었다. 그러곤 적당히 대본과 흐름에 맞춰 몸을 실었다.

오프닝은 포맷이 있어서 다행이다……. 티가 나지 않게 식은땀을 흘리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릴 보고 있는 김환준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촬영 직전 제법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것에 반해, 그리 사이가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웃는 척 고개를 돌려 버리니 그런 날 보던 김환준이 입가를 가리곤 쿡쿡거린다.

“뭐야, 뭐야, 저기요~ 여기 이미 담합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어? 뭐? 벌써 편먹은 사람들 누구야!”

“디레스트의 환준 씨랑 하이사인 해신 씨요~ 저기, 여기 모델 한 명만 더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갈게, 내가.”

“모델을 찾는데 왜 네가 가.”

자신의 분량을 생각했는지 김환준과 우리 사이에 껴 있던 모델 한 명이 손을 들어 말했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는데, MC들의 다툼 비슷한 루틴으로 넘어가며 무사히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형, 이거 나가면.”

카메라가 중앙 MC들에게 쏠린 사이 내 옆구리를 찌른 문채민이었다. 뒷말은 잇지 않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유추할 수 있었다.

나도 알아, 이런 장면이 나가면 이유준이랑 이정원한테 끌려갈 거란 거.

“난 몰라~ 충분히 말렸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봐.”

“헤헹, 아까 거절할 땐 언제고? 나도 마음대로 할 거야. 흥!”

문채민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권혜성은 작은 목소리로 반항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일단 지금은 녹화 시간이었다. 그냥 되는 대로 해 보자며 포기한 상태였다.

출연진들의 소개 멘트가 끝난 이후론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팀 편성이 시작됐다. 메인 MC 넷이 둘씩 나뉘어 선 뒤 간단한 게임을 통해 게스트들을 섭외하는 거였다.

“후후후…….”

“와, 진짜 저 형, 저 사이에 있으니까 평소보다 3배는 늙어 보인다.”

“야!”

“형, 진짜 얼굴 컸구나…….”

“내가 큰 게 아니라 얘네들이 작은 거야! 난 평균이라고! 그렇죠! 해신 씨!”

“네? 네. 평균이십니다.”

“왜 애꿎은 해신 씨 잡고 그래. 사회생활 할 필요 없어~”

가장 맏형으로서 괴롭힘을 자주 당하는 MC였다. 나를 비롯하여 문채민까지 연달아 뽑더니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며 다음 타깃을 고르고 있었다.

“아주 그룹 수집가네, 수집가. 저렇게 나오면 또 가만 있긴 싫지. 우린 혜성 씨~”

그때 유일하게 남아 있던 멤버, 권혜성이 상대 팀으로 불려 갔다. 울먹거리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나와 문채민을 향해 손을 쭉 뻗고 있었다.

하여간에 적응력 하난 끝내줘요. 저것도 다 위트였다. 우리 둘은 쟤의 수법을 알아서 무덤덤하게 대처했다.

“잘 가.”

“형, 숙소에서 보자.”

“둘 다 너무해! 그리고 우리 하루 종일 못 보는 거 아니거든! 그냥 팀만 갈리는 거거든!”

“아, 나 혜성 씨한테 너무 동질감 느껴진다. 저길 데려왔어야 했나.”

“이미 늦으셨어요.”

아련한 표정의 우리 팀 MC에겐 고개를 내저어 줬다. 문채민은 어깨를 토닥이며 포기하란 뉘앙스를 보였다.

“나 이제 저기 무슨 관계인지 알 것 같아~ 저 형은 오늘 게스트들한테 못 당하겠는데?”

그렇게 마저 이어지는 팀 편성 속에서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그건 바로 옆에 있는 장신의 남자 때문이었다.

“둘이 친해?”

“몇 번 뵀던 선배님이십니다.”

“네.”

“저기, 이럴 거면 미리 말 좀 맞춰 줄래?”

“그럴까요? 해신 씨,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맞춰 줄까, 아님 거기서 답을 바꿀래?”

“…바꾸겠습니다. …ㄴ, 네. 저희… 친합니다…….”

“망했다! 얘네 엄청 어색해! 너희 같은 아이돌이잖아!”

“형도 같은 개그맨들이랑 다 친한 거 아니면서. 내가 아는 것만 해도 ㅇ…….”

“쉿, 쉿!”

김환준 이 자식……. 제 그룹의 멤버와는 팀이 갈렸음에도 틈틈이 내게 말을 걸며 반응을 확인하던 놈이었다. 카메라를 신경 써 대답해 주는 척은 했지만, MC들의 눈은 피할 수 없던 모양이다.

연차도 있고 팬들도 있어서 적당히 선을 긋는 답변을 던졌는데, 그에 김환준은 칼같이 긍정한다는 뜻을 전했다.

야, 네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 신종 욕먹이기 수법이라면 잘 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얼떨결에 김환준과 한 팀이 된 문채민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던 것 같았다. 이걸 아군이라고 해야 할지, 적군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저 팀은 벌써 와해인가? 투닥거리는데? 아싸, 우리가 이겼… 어라? 너희 왜 이렇게 어색하냐. 혜성! 너 친화력 짱이었잖아. 같은 아이돌 선배라며, 여기랑은 얘기 안 해 봤어? 션!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닌데? 둘이 왜 그래! 기준 씨는……. 미안합니다, 이 사이에 세워 놔서.”

“저 자리 좀 바꿔 주실래요.”

“그건 안 돼. 좀 섞여 있어야 재밌지~ 우리 팀 모토야. 아이돌 모델 아이돌 탤런트!”

“제발 혼자 있게 해 주세요…….”

상대 팀에 있던 권혜성도 우리와 다른 듯 비슷한 광경이었다. 디레스트의 멤버 하나와 묶여서 MC에게 추궁을 받았다.

하긴, 저긴 연관이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로 인해 대치 아닌 대치를 겪어야 했던 과거였다. 그 상태에서 안면도 없는 사람과 단둘이 한 팀으로 묶여 들어가게 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른 게스트들도 어색해 죽으려고 한다는 것?

덕분에 그룹 간의 불화 혹은 문제로 비추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오늘의 출연진 모두가 어색한 사이로 보일 뿐이었다.

“이야~ 오늘 촬영 좀 힘들겠는데? 진규야? 이거 괜찮겠냐? 너 일부러 이런 특집 만든 거 아니지?”

“이게 무슨 특집이에요? 나도 이젠 모르겠다~”

“어쩐지 게스트 직군이 되게 다양하다 싶었지. 야! 너, 그냥 잘 뛰는 사람들 긁어모은 거지! 다들 얼굴 봐! 엄청 잘 뛰게 생겼잖아!”

손으로 T자를 그린 메인 MC가 PD를 향해 시비를 걸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저 PD는 출연진 괴롭히는 재미로 연출을 한다고 유명했던 사람이었다.

얼굴 보니까 기억이 나네. …남현욱 후배였지, 저 인간.

못된 건 아닌데 묘하게 악동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둘 다 같은 방송국 소속으로 일하다가 저 PD가 남현욱을 버리고 탈주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아, 오늘도 힘들겠구나. 좌 문채민 우 김환준을 낀 이상한 상태에서 히죽거리는 웃음의 PD를 바라봤다.

* * *

이래서 프로그램 제목이 ‘쉬지 말고 달려라.’였구나. 정말 제목 값하는 방송이라고 생각했다.

“허억, 헉……. 으악, 포기! 안 되겠다! 쟤 못 잡아!”

“선배니임~~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야! 너 서라고 할 땐 안 서더니! 이럴 때만 예의 차리냐!”

냐- 냐- 냐- 상대 팀의 MC 하나의 외침이 거대한 홀 너머로 울려 퍼졌다. 주저앉은 MC에겐 허리를 꾸벅 숙여 준 뒤 냉정하게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아, 쟤를 어떻게 잡아~! 철민아~ 살아 있냐~~~”

“허억, 허억, 헉…….”

아, 내 담당 카메라 감독 이름이 철민이었구나. 포기한 MC와는 달리 끝까지 날 쫓아다녀야 하는 사람이었다.

초반까진 사운드가 잡히지 않도록 숨을 참는 것 같았는데. 이젠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어느 정도 상대 팀에게서 안전해졌다고 느껴졌을 때 카메라 감독에게 질문했다.

거, 괜찮은……? 고개를 내젓는 걸 보니 아닌 모양이다.

그나저나 문채민은 잘하고 있는 거야? 힌트 방에 들어가선 퀴즈를 풀고 있는 녀석이 떠올랐다. 지금 이 상황이 되기까진 제법 긴 녹화가 존재했었다.

아침 오프닝에서 팀 편성이 이어진 이후 각 팀 컬러에 맞춰 옷을 갈아입었다. 그와 동시에 소매에는 잡아당기기만 하면 끊어지는 이름표를 감게 됐다.

간단한 이동 장소를 거쳐 미니 게임을 하고 아이템이라고 부르는 특혜들을 받아 온 하루였다.

최종 레이스가 진행되는 장소에 들어와선 게임 룰을 들었다. 오늘의 방송은 일명 ‘체스 레이스’. 각 팀의 우두머리를 지키는 게임이었다.

사전 팀원들은 상의를 통해 킹과 퀸 그리고 나이트들을 정했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은 지는 함구한 채, 각자 흩어져선 상대 팀 킹의 이름표를 떼거나 모두를 탈락시켜야 하는 게 규칙이었다.

여기서 퀸에게는 능력이 하나 부여됐다. 그건 바로 체스판의 방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말이 체스판의 방이지, 사실 거긴 CCTV실이었다. 거기서 퀸은 제작진과의 오락을 통해 약 24개의 CCTV의 전원을 켤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한마디로 어디 있는지 모를 팀원들과 상대 팀의 장소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였다.

또한 이 넓은 아트 홀 내부에는 상대 팀 킹에 대한 힌트를 알 수 있는 보물 상자가 몇 개 숨겨져 있었다.

누가 킹인지 알 수 없게 하려면 우리 팀의 상자를 먼저 찾아서 처분해야만 했다.

“쓰읍, 2층으로 가 볼까.”

[딩동- 화이트 팀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이런…….”

화이트라는 건 우리 팀의 상징 컬러였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팀 킹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는 보물 상자가 발견됐단 뜻이었다.

누구지? 상대 팀인가? 방송에 알려주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누가 발견했는지 개봉은 했는지 그 여부조차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일단은 몸을 숨겨야겠단 생각에 비상구 계단으로 달려 나갔다.

“나이트인 척하는 것도 힘드네요~ 감독님, 파이팅!”

“예, 예에……. 해신 씨도 파이팅…….”

지쳐 보이는 카메라 감독에겐 기운 내라며 말을 걸었다. 미안하지만 제가 잡히면 게임이 끝나 버려서요. 탈진한 남자를 뒤로 하곤, 어쩔 수 없다며 몸을 움직였다.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팀의 킹은 바로 나였다. 그러니까 이 게임이 끝나기 전까진 절대로 잡히면 안 된다는 소리였다.

* * *

“왁!”

“……!”

“어, 어… 안 도망가도 돼요! 나예요! 나! 다시 와!”

3층과 4층 중간 계단 사이, 고민에 빠진 내 어깨를 누른 이가 하나 있었다. 놀란 마음에 반 층을 뛰어넘다시피 내려갔다.

김환준, 저 자식! 난간에 손을 얹은 채 웃고 있는 건 같은 팀인 김환준이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평소와 다르게 실실거리는 얼굴이었다.

“아, 진짜 엄청 빠르네~ 나, 오면서 상대 팀 많이 봤는데, 죄다 해신 씨 얘기하던데요?”

“…저 들켰어요?”

“아니, 포지션은 모르는 것 같고, 그냥 못 잡겠다고 항의하는 뉘앙스?”

“그럼 좀 잘 부탁할게요.”

“에이, 너무 간절하지가 않다.”

“저희 같은 팀이거든요.”

김환준의 설레발에 흐린 눈을 했다. 방송 때마다 이런 식으로 능청을 부렸던 거였구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 김환준이 주머니를 뒤적여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내가 해신 씨 목숨 줄 연명해 줬는데. 좀 잘해 줘 봐요.”

[화이트 팀의 킹은 ‘아이돌’입니다.]

“그거 힌트!”

아무래도 방송으로 나온 힌트 박스를 발견한 건 김환준이었던 듯하다.

“딩동댕, 그대로 이것만 꺼내 가긴 아쉬워서 내가 교란 쪽지를 좀 넣어 놨지.”

“아까 게임에서 딴 거요?”

메인 레이스를 하기 전에 얻어 낸 아이템 중에는 박스에 넣을 수 있는 가짜 힌트 쪽지가 있었다.

팀장인 MC가 레이스 전 누군가에게 줬다고 말했는데, 그걸 받은 당사자는 김환준이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뭘 넣었길래. 미심쩍은 눈으로 김환준을 쳐다봤다. 여긴 아까부터 이 상황이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기왕 희생하기로 한 거 확실하게 서비스해 줬죠. 화이트 팀의 킹은 25세 이상입니다. 어때요, 진짜 킹? 교묘하게 잘 빼냈죠?”

“아, 예. 가짜 킹……. 참 고맙습니다.”

우리 팀에선 나와 문채민이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었다. 팀원 여섯 중 넷으로 묶은 척하면서 진짜 킹인 나를 빼낸 노림수였다.

사실 이번 게임에서 김환준의 포지션은 나이트였다. 하지만 무언의 회의를 통해 가짜 킹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녀석은 나를 지키는 대역이란 뜻이었다.

“나올 때마다 중요 역할을 맡았던 게 이번엔 반대로 도움이 되네요? 다들 나인 줄 아는 것 같던데. 해신 씨는 그대로 나이트인 척 계속 혼동시켜요. 체력이 안 되겠으면 바로 몸을 숨기고요.”

김환준은 여러 번 이 프로그램에 나오며 메인 레이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었다. 뛰어난 달리기 실력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그런 김환준이 이번엔 나이트 역할로 빠져나갔다. 아전체 계주에서 내게 졌다며 혼동을 줘 보자고 말했다.

‘진짜? 해신 씨가 그렇게 빨라?’

‘저도 못 쫓아갔어요. 상대 팀의 혜성 씨보다도 잘 뛰어요. 그렇죠?’

‘아, 네. 아마도…….’

김환준의 추천에 MC와 다른 게스트가 날 쳐다봤다. 중요한 역할에 욕심은 없었지만, 시키니 잘됐다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잘 뛰는 거 아는 사람들은 해신 씨 의심할 것 같은데…….’

‘저도 비슷한 생각이긴 해요. 제가 킹 하면 좀 뻔해 보이지 않을까요?’

‘음, 과연 그럴까요?’

‘뭐야, 뭐야~ 환준이 너 뭐 좀 알아?’

‘해신 씨 달리기 실력 아는 사람들은 해신 씨가 킹 자처할 만한 성격 아니란 거 알고 있을 거예요. 안 그래요, 당사자?’

‘오! 진짜? 그런 거야?’

굳이 따지자면 김환준의 말도 정답이었다. 아전체를 보거나 같이 출연했어야만 내가 잘 뛴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나란 인간 자체도 전부 파악했겠다고 봤다. 어딜 봐도 킹 같은 걸 욕심내서 맡을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같은 그룹의 권혜성은 더욱 그러겠지. 누군가 이걸 시키지 않는 한 빠져나갔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컸다.

…짜증은 나지만 정확하네. 문채민도 이 의견엔 공감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마침 상대 팀엔 혜성이 형이 있네요. 조금만 뒤흔들면 해신이 형은 후보군 제외일걸요? 으음, 대역이 하나 있으면 완벽할 것 같은데.’

‘그 아이디어는 공감. 그럼 그건 제가 맡을게요.’

‘엑? 이렇게 정해도 괜찮아?’

‘제가 딱이잖아요. 가짜 킹. 션이도 있으니까 속아 줄 것 같은데요? 저 원래 이런 거 잘 안 하거든요. 해신 씨는 혜성 씨를 속이고, 전 션이를 속이는 거죠.’

‘뭐야~ 오늘 환준이 너, 좀 무섭다?’

‘전 찬성! 왠지 두근거려요!’

‘저도 찬성이요. 이번 우리 팀 포지션 하난 확실하네요. 그럼 퀸은 머리 잘 쓰고 게임에 능숙한 것 같던 채민 씨?’

‘…네? 저요?’

여기서 문채민이 이 프로그램 출연진 리스트에 있게 된 이유도 알게 됐다. 아무래도 PD는 아전체를 봤던 모양이었다.

e스포츠에서 대활약한 문채민을 눈여겨보곤 퀸의 역할이 제격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거기다 희한하게 똥촉이면서 자신만만한 기운을 가진 특이한 성격이었다.

퀸은 사령탑 밖으로도 나갈 수 있는 포지션이었지만, 비중은 갇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혼자 있어도 보는 맛이 있을 인물을 컨택한 게 틀림없었다.

메인 MC들은 그런 PD의 노림수를 꿰고 있던 것 같았다. 그 덕분에 문채민은 퀸이 그리고 나는 킹이 되어 게임을 하게 됐다.

옆에 있던 가짜 킹은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 홀라당 잊어 먹은 듯했다. 아무리 방송이라지만 녹화 전 나눈 대화에 대해선 전혀 개의치 않아 보인다.

“그럼 가짜 킹, 여기서 이만 갈라지죠?”

“음, 우리 왕은 너무 냉정하네요. 기사가 지켜 준다고 하면 가만히 받아들이시지.”

“…그게 더 위험한 것 같거든요.”

그때 홀 내부로 방송이 울려 퍼졌다.

[딩동- 블랙 팀의 13번째 CCTV가 오픈되었습니다.]

[화이트 팀 퀸의 지령이 전달됩니다.]

[1층 세미나 홀 C열 9번 좌석 아래, 블랙 팀 상자 발견.]

[다시 한번 화이트 팀 퀸의 지령이 전달됩니다.]

[1층 세미나 홀 C열 9번 좌석 아래, 블랙 팀 상자 발견.]

문채민, 해냈구나. 제작진과의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 문채민이 24개의 CCTV 중 하나를 오픈했다. 마침 거긴 운이 좋게도 블랙 팀의 상자가 있는 곳이었던 것 같았다.

퀸의 정체는 알 수 없도록 제작진을 통해 지령이 내려오고, 가짜 킹 김환준과 모두가 모일 세미나 홀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다.

쉽게 말하자면 누가 킹인지 헷갈리게 하자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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