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93화 (192/328)

193화

블릭투. 김찬규의 입에서 나온 그룹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아이돌이었다. 작년 신인상 수상을 기점으로 팬덤 사이에서 우리와 같이 호명됐던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이정원은 블릭투의 한 멤버를 보고 낯이 익은 것 같다고 말한 전적이 있었다.

그때 넘어가선 안 되는 거였는데. 찜찜함이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최한성. 얘가 그 최한성이라고?”

핸드폰을 들어 최한성이란 놈의 사진을 살펴본 이정원이었다. 아는 사이라는 건 맞는 것 같았으나, 뭔가 애매모호한 반응이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 내가 알던 놈이랑 얼굴이 좀 달라져서. 자세히 뜯어보면 비슷한 것 같기는 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살을 뺐나? 그것도 좀 있는 것 같고…….”

영문 모를 소리만 중얼거리는 이정원에, 나도 김찬규도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분 풀어 주려고 만났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뭔가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자세히 캐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이정원의 태도로 보아하니 오늘은 그른 느낌이었다.

김찬규와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이정원의 주의를 돌리려고 노력했다.

“형, 나 배고파. 우리 밥부터 먹으면 안 될까?”

“아, 아아… 미안하다. 내가 너무 분위기를 망쳤네. 나 때문에 나와 준 거였는데. 그럼 저녁 먹으러 갈까?”

이정원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당사자는 애써 정신을 차린 척했지만, 어색한 태도로 보아 티가 많이 나는 듯했다.

쟤가 저러는 건 진짜 흔치 않은 일인데…….

아무래도 이 건은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은 이정원 때문이었다.

* * *

“자, 김 매니저님한테 온 자료. 네 연락처로도 보내 놨어.”

“어, 고맙다.”

김찬규와의 만남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밤이었다. 방에 들어와선 이정원을 떠볼 계획이었는데, 타이밍 나쁘게 김성하에게 부탁한 자료가 도착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무리 같네. 같이 확인하자며 옆에 붙어 앉은 이정원을 보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아니야, 이거나 확인하자.”

핸드폰에 들어온 파일을 확인하니 몇 명의 간략한 프로필이 들어 있었다. 많아야 다섯 정도의 인원이었음에도 제법 긴 스크롤에 놀라고 있었다.

“밑에는 죄다 개인 사족 같지? 봐 봐, 여긴 거의 뒷담 아니야?”

“이 사람도 특이하네.”

초반엔 나름 질서 정연하게 공적인 내용만 적은 듯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내려갈수록 직장인으로서의 애환과 조진만 패거리에 대한 분노가 가득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일단 거의 다 사원급은 아니구나. 애매하게 경력직으로 넣어서 기존 사람들만 힘들게 만들었어. 뭐, 진짜 그 정도 능력자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공감되네.”

“대표님도 자기 사람들 박아 넣었으니까 공정성으로 따지자면 비슷한가?”

“야~ 그래도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적어도 서도경은 철저한 능력 위주의 선발이었다. 돌아가는 꼴이나 기존 직원들과 서도경의 분노를 보면 그렇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라곤 볼 수 없었다.

“제일 난감한 건 여기 세 군데지? 매니지먼트실 박용훈, 마케팅실 권기윤, A&R 팀 김현석.”

이정원의 호명에 세 명의 프로필을 훑어봤다. 마지막 A&R팀의 낙하산을 부를 땐 이를 악무는 것 같긴 했지만 일단 그건 못 본 척 무시하고 넘겨 버렸다.

셋 모두 본관이 엔필름의 본사는 아닌 것 같았다. 정직원인 건 맞았으나 아래 계열사에서 근무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낙하산치고는 엔필름과 그 아래 사람들 사이의 커넥션이 없어 보였다. 그럼 조진만의 단독 진행인가? 여기서 두 가지의 가설이 떠올랐다.

“사내 정치는 그 사람의 독단적인 행동이거나, 아니면…….”

엔필름의 목표가 메이터스에 자기네 사람을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서도경의 기를 누르기 위해 문제아들을 투입했다는 방향이었다.

“전자면 오히려 유리하겠지. 건수가 하나 생겼잖아.”

“후자였을 때가 문제야. 조 이사 그 사람을 치웠을 때,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르잖아.”

“그래도 치우고 보는 게 낫지 않겠어? 난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거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폭력을 행사해? 고소하려다가 참았다, 진짜.”

“…정확히 말하자면 폭력을 행사했다기보단, 물건을 집어 던진 거거든. 그리고 맞은 건 난데, 왜 네가 더 열받아 하냐.”

“신해신, 넌 아직 멀었다~ 이러니까 나랑 이유준한테 맨날 핍박당하지.”

“무슨 헛소리야…….”

이정원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돈 남 말하는 것 같은 소리에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기로 했다.

* * *

“스타 코인 스탯 해금, 운 스탯 올려 줘.”

[‘스타 코인 스탯 해금’ 운에 1,000 코인을 지불합니다.]

[현재 코인]

5,665 코인

[운 스탯 해금 방법]

별자리 순위가 1위인 날, 타인에게서 좋은 말 3번을 들으세요.

[변화 가능 스탯]

운: B- → B

정말 컴백을 코앞에 두고 있던 어느 날의 오후였다. 연습실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스타 코인 스탯 해금을 오픈했다.

요즘 있었던 수많은 일들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찰나였다.

김환준도 그렇고, 조진만과 그 패거리도 그렇고. 운이 얼마나 없으면 이렇게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고 있나 싶었다.

버그로 인해 코인 캐기가 모두 막혀 있었지만, 블랙 쿠폰도 3매나 있고, 모두 소진하기 전엔 버그를 해결하잔 심산이었다.

예전보다 묘하게 복잡해진 것 같은 미션을 받아 들곤 핸드폰을 들어 오늘의 별자리 순위를 찾아봤다.

[물병자리]

4위

“이런…….”

당장 시도하기엔 전제조건부터가 맞지 않는 듯했다. 컴백 전에 1위를 하는 날이 있긴 하겠지. 다시 모여 연습을 재개하자는 소리에 맞춰 고개를 돌렸다.

좀 더 빡세진 것 같은 안무에 이어 이정원이 센터인 곡답게 안 그러는 척 어려운 보컬이 이어졌다.

나랑은 이제 같은 스탯인데, 왜 이정원은 안 힘들어 보이는 거지?

이상하단 생각이 뒤를 따랐다.

“왜?”

“음? 아니야.”

“하여간에 싱겁기는.”

“하여간에 예민하기는.”

오가는 이정원과 내 대화에, 곁에 있던 권혜성에게서 폭소가 터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물을 마시던 윤명 역시 그게 무슨 대화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이 더 친해진 것 같다? 무슨 일 있었어?”

“별거 없는데……. 채민아, 이게 정다워 보이는 거라면 리더로서 네 인간관계가 조금 걱정스러워진다.”

일이라면 많이 있긴 했다. 이정원이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다는 걸 알게 됐고, 의도치 않게 내부 방해자들에 대한 토론도 나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대화로 봐선 정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정원이 장난삼아 시비를 걸면 당하던 과거와 달리 맞받아칠 수 있게 됐다는 것 정도였다.

“…이정원, 너 왜 웃냐?”

“하하! 그냥 웃겨서! 왜, 웃으면 안 돼?”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문채민~ 봐 봐~ 아직 해신이 형은 정원이 형한테 안 된다니까~”

“그건 형도 마찬가지잖아.”

“채민이, 말 잘하네……. 권혜성, 넌 본전도 못 건졌다, 야…….”

“야! 문채민! 윤명! 너희 진짜!”

가벼운 토론으로 시작했던 대화는 막둥이 삼인방의 치열한 공방전이 되어 있었다.

이것도 뭐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 지켜보던 이유준은 가벼운 미소만 지었다.

운도 나쁘게 자리 선정을 잘못한 강태오만이 권혜성과 윤명 사이에서 팔을 들어 거리를 벌렸다.

“야……! 가만히 있어! 왜 형들은 지켜만 보고 있는 거야. 이거 형들 때문에 시작한 거잖아!”

“강태오, 난 억울하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미안한데 별로 끼고 싶지 않아.”

“하하! 강태오, 버림받았네. 내가 편들어 줄까?”

“…됐거든.”

조용할 날이 없는 멤버들 사이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차라리 정신없는 게 쓸데없는 고민이 떠오르지 않았다.

* * *

[큰 거 왔다 하이사인 드디어 학교 자컨함]

어느 날 갑자기 올라온 게시글이었다. 팬들은 저마다 할 일을 하던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 해당 게시물을 확인했다.

[큰 거 왔다 하이사인 드디어 학교 자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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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데뷔하고 나서부터 쭉 빌었던 거 나옴;

와이튜브 링크 들어가봐라 얘들아

‘하이사인 다이어리’ 이건 상황극 라인인 듯

미친 애들 교복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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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돌았나 교복? 교복??? 찐 교복???

- 유어돌 이후 처음 보는 내 새끼의 교복 ㅜ

- 상황극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얘넨 리얼 지들끼리 노는 것만 봐도 웃긴데 ㅋㅋㅋㅋㄱㅋㄱㅋㅋ

- 아 벌써 혜성이 날뛰는 거 상상됨 얼마나 더 날뛸까 완전 물만난 물고기 아니냐곸ㅋㅋㅋ

- 난 무엇보다 현역 고딩이 너무 궁금하다 막내 챔니 찐 일상 엿볼 수 있는 거 아니야?? ㅠㅠㅠ

- 상황극이라니 돌았나 얘들아 정장도 입어줘 제복도 입어줘 잠옷 파티도 해줘 한복도 입어줘

- 거의 욕망의 항아리 아니냐

평소에도 외부 방송이나 자잘한 자컨 및 여행기 등을 통해 팬들을 찾아왔던 하이사인이었다.

리얼리티라곤 했지만, 일상복에 가까운 사복 차림만 해 왔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상황극 라인의 자체 콘텐츠 오픈이 밝혀졌다. 첫 편부터 모두가 외쳐 오던 학생 특집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하이사인 다이어리란 이름의 첫 자컨이 오픈되는 날이었다. 기대감에 부푼 팬들은 영상이 올라오기 무섭게 클릭했다.

상큼 발랄한 BGM이 흘러나오고 크레파스로 낙서한 듯한 공식 로고가 등장했다.

유어돌에서 봤던 조금은 진지하고 긴장된 상황을 생각했던 팬들은 가장 먼저 나타난 멤버의 모습에 어리둥절하단 반응을 이어갔다.

- ?

- ??????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드르륵- 탕!

텅 비어 있던 교실의 문을 열리며 껄렁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풀어 헤친 남색의 블레이저 너머론 끌어 내린 넥타이와 빠져나온 셔츠가 보였다.

가방을 손에 걸어 어깨 뒤로 넘긴 자세에서 왼쪽 뺨에 반창고를 붙인 신해신이 들어왔다.

[야! 여기서 짱이 누구냐!]

- 저기 해신아… 나 너가 너무 낯설다

- 이게 바로 상황극의 참맛인가 저기 우리 애가 아닌데요

허허벌판에 서선 불량한 얼굴로 교실을 훑어본 신해신이었다.

그렇게 3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어깨에 걸친 손이 다소곳하게 내려왔다.

들고 있던 가방은 양손으로 쥔 채 고개를 푹 숙인 자세였다.

[…나밖에 없구나. 저, 전학생입니다.]

- 우리 애가 맞습니다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태세전환 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ㅠㅜㅠㅜㅠㅜㅠㅠ 선생님들 저희 애는 저런 컨셉 못한다구욬ㅋㅋㅋㅋㅋㅋㅋ

민망하다는 듯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신해신이 카메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착석했다.

그때, 열린 문 사이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목에는 헤드셋을 걸친 채 빵을 수북히 안고 있는 권혜성이었다.

[욥! 전학생입니다!]

- 저기 이 반은 전학생이 몇 명인?

- 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혜성아, 그거 내가 먼저 했다.]

[엑, 진짜?! …그럼 취소. 매점 다녀왔습니다!]

- 너희 사전에 말 안 맞췄구나

- 이게 찐 리얼리티짘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부터 느껴지는 야생의 향기ㅋㅋㅋㅋㅋㅋ

- 혜성아 어떤 전학생이 전학오자마자 매점부터 털어오는데

부시럭거리는 권혜성 역시 신해신을 따라 주변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 멀지 않은 자리였음에도 신해신을 관찰하며 신기하단 눈빛을 보냈다.

[형, 혹시 일짱? 얼굴의 반창고는 뭐야? 형 얼굴에 상처 없잖아! 혹시 컨셉?]

[제발 그만해…….]

- 대리수치 미쳤다

- 저 머글의 순박하고 잔인한 질문st 내 가슴이 다 아프네 ㅜ

- ㅋㄱㅋㄱㅋㄱㅋㄱㅋ해신이 컨셉 일짱이 아니라 중2병 오타쿠였냐고ㅋㅋㅋㅋㅋㅋ

[저기, 이제 나도 말 좀 하면 안 될까?]

권혜성과 신해신에게 시선이 쏠린 틈을 타 교탁 바로 앞에는 다른 멤버가 들어와 있었다.

그건 바로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채 책을 껴안고 있던 이유준이었다.

척 봐도 두꺼워 보이는 문제집에 권혜성과 신해신의 동공이 흔들렸다.

[너만 그런 건전한 컨셉이냐.]

[우우~ 모범생 반대~~ 재미없다~~]

[그러는 둘은 아주 컨셉이 확고해 보이네. 혜성이 넌 무슨 편의점 털었니? 그거 명이 소품 아니었어?]

[돈은 올려놓고 왔걸랑?]

[아, 혹시 그 소품 박스 위에 있던 3천 원?]

- 권혜성 리얼 매점 다녀온 거였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소품 박스 위에 3천원 올려놓고 왔단 건 뭔데 ㅋㄱㅋㄱㅋ

권혜성과 대화를 끝낸 이유준의 시선 끝에 신해신이 나타났다. 불량해 보이는 복장과 반대되게 가장 다소곳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흐음~ 형, 의상 갈아입고 안 보여 준 이유가 이거였구나.]

[뭐, 뭐! 넌 모범생 컨셉이잖아! 앞뒤가 안 맞는다?]

[아, 이거? 풀려고 들고 다니는 것 아닌데?]

[엥? 그게 무슨 소리야, 형?]

[왜, 그, 책은 흉기로 쳐주지 않는다고 하잖아.]

[……!]

음습한 미소를 짓는 이유준의 뒤로 희게 질린 권혜성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신해신의 머리 위로도 느낌표가 솟아 있었다.

- 진정한 짱은 저런 것이다

- 신해신 일짱 지위 박탈

- 일짱인 적은 있었음?

- 2초 정도는 있었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ㄱㅋㅋㅋ 핑퐁 오지네 ㅋㅋㅋㅋㅋㅋㅋㅋ

- 얘들아… 유준이 유어돌 때도 책 들지 않았었냐 그럼 혹시……

- 쉿, 그만. 우리 그 이상은 비밀로 하자

그렇게 이유준이 자리에 착석하고, 먼저 와 있던 신해신과 권혜성은 이유준에게서 멀찍이 몸을 물렸다.

당사자는 이 모든 걸 지켜보며 그저 재밌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빵 도둑 잡으러 왔습니다. 권혜성 어딨어.]

검은 비닐 봉투를 든 채 윤명이 나타났다. 교복은 단정하게 입고 있었지만, 가방이나 필기구로 보이는 물품은 그 어디에도 소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대뜸 권혜성을 저격하며 반대 손에 들고 있던 지폐 3장을 들이밀었다.

파란색의 펄렁거리는 저것은 권혜성이 소품 박스 위에 올려놓고 갔다던 3천 원이었다.

[안 팔아요… 다시 내놔]

- 혹시 매점 주인이신?

- ㅋㄲㄲ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왜 명이는 학생도 아닌데 ㅋㅋㅋㅋ 저기요 교복입고 있잖아요 ㅠㅠㅠㅜㅠㅠ

- 윤명 개 힙하다 등교하는 학생의 필수템: 검정 봉다리

윤명의 압박 아래 다급해진 권혜성이 빵 봉투를 뜯어 제 입에 밀어 넣었다. 그러곤 의기양양하게 말을 하는데 윤명은 경멸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긋하고 조용한 말투로 순식간에 치고 들어온 윤명이었다.

그런 제 동갑내기 친우의 말에 권혜성이 입에 물고 있던 빵들을 뿜어냈다.

[헹, 으므 머걱거등(이미 먹었거든).]

[…더러워.]

[풉! 야악~!]

그리고 그 피해자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권혜성의 인근에 앉아 있던 신해신의 눈앞으로 빵 조각들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신해신에 의해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그걸 지켜보던 이유준은 뭐가 그리 웃긴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들고 있던 문제집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원래의 용도와는 다른 쓰임새를 보여 줬다.

[악! 권혜성! 여기로도 튀었어!]

[으하하!]

쾅쾅쾅-

- 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거 아니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난리통이다 엄마 나 정신없어

- 이유준 문제집 물리력 100% 공격력 100%

- 철저하게 아이템 취급하는 것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

- 아무리 봐도 저 반에서 공부하는 애는 없을 듯

- ㅜ 우리 좀만 더 기다려보자 아직 셋이나 남아 있잖아

- 과연……

- 미친 그런 사족은 달지마ㅋㅋㅋㅋㅋㅋㅋㅋ

[저기, 뒤에 사람 밀렸거든요. 명이 형, 얼른 들어가. 정원이 형이 욕한다.]

[…들어가겠습니다. 참고로 이건 제 탓이 아닙니다. 빵을 뿜어낸 권혜성의 탓입니다.]

[야!]

윤명이 자리로 들어가지도 못한 상태에서 문 앞에는 정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딜레이 된 시간을 압박하듯이 손목시계를 보고 있던 문채민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선 이정원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사실을 알려 주자 윤명이 빠른 걸음으로 자리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보이던 여유롭던 행동과 달리 민첩하기 그지없는 태도이다.

마지막까지 권혜성의 탓으로 돌리며 들고 온 비닐 봉지를 부시럭거렸다.

- 하이사인 최강자 확정 났습니다

- 착장만 일짱인 신해신? 문제집 살인마 이유준? 아니, 얼굴도 보이지 않고 윤명을 움직인 이정원이 일류다

- 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ㄲ

[전학 가고 싶은데, 갈 수 있나요?]

아직 교실엔 발도 들이지 않았지만, 질렸다는 표정의 막내가 보였다.

고개만 내민 채 제작진에게 질문을 하는데 왠지 진심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전학생 컨셉을 잡은 멤버는 둘이나 있었지만, 등장하자마자 전학을 요청하는 멤버는 처음이었다. 팬들은 이 모습을 보며 낄낄거리기 바빴다.

- 형들이 조금(많이) 부끄러운 채민이

- 그 와중에 팩폭은 절대 놓지 않는다

- 아니 진짜 들어가기 싫은가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쿠ㅜㅜㅜㅠㅠㅠ 문턱도 안 밟고 있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안돼 가지마… 채민아 너처럼 평범한 학생도 하난 있어야지

- 평범??? 내가 잘못들었나

- 문채민은 이제 시작이야

[아, 우리 한 반에 있으면 동급생 컨셉이겠구나.]

[…응?]

[그러네, 우리 같은 반이었네.]

[채민아, 너 설마…….]

모두를 살피며 이야기한 문채민이 척척 걸음을 내디뎌 교탁 앞에 섰다. 그러곤 가방을 던져 교탁 위에 올리며 껄렁하게 이야기했다.

표정은 여전히 시크하다 못해 무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야, 여기 일짱이 누구야.]

[…….]

모두가 말을 잃은 상태로 정적만 이어지던 교실 안이었다.

[참고로 동급생 컨셉인데 치사하게 뒤에 가서 뒤끝을 보인다거나 귀여운 막내를 괴롭힌다거나 유치하게 구는 형들은 없겠지.]

- 시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ㅠㅜㅠㅜㅠㅜㅠㅠ애들 할 말 잃은 것봨ㅋㄱㅋㄱㅋㄱㅋ

- 아 나 코 먹었어 ㅠㅜㅠㅜㅋㅋㅋㄱㅋㄲㅋㅋㅋㅋ

- 막내의 강제 야자 타임 시작

- 형들 쌉손해 시작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

뒷일을 처리하는 것까지 정말 완벽한 막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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