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그 뒤로 이어진 다른 멤버들의 등장 역시 대환장의 연속이었다. 여섯 번째로 등장한 것은 착실한 반장 같은 분위기를 뽐내며 독설을 내뱉는 이정원이었다.
[교통 정체, 누가 시작이냐.]
[정원아… 일단 자기소개부터…….]
- 일짱의 외관을 한 해신이랑 유약 반장st 정원이 둘의 대사가 바뀐 것 같지 않나요
- 걍 대놓고 기존쎄임 광기 돌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권혜성, 너지.]
[…전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저 빵을 맛있게 먹었을 뿐…….]
이정원의 타기팅에 권혜성이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근처에 앉아 있던 윤명은 자기완 상관없다는 듯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 태오야! 얼른 나와라!]
보다 못한 신해신의 중재가 이어지고 이유준의 이끌림에 이정원이 강제 착석했다.
신해신의 부름에 강태오는 문 앞에 서서 떨떠름한 얼굴로 모두를 훑어봤다.
여긴 운동부가 컨셉이었던 듯이 교복 위로 트레이닝복 저지를 걸친 상태였다. 커다란 스포츠 백과 농구공을 들고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서 있었다.
[아주 개판이구만…….]
- 운동부가 가장 착실해보이는뎁쇼
- 강태오 저지 돌았나 마
- 들어오자마자 개판이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판 5분전도 아니고 걍 개판이랰ㅋㅋㅋㅋ
[제발, 너라도 그만하자…….]
- 신해신 존나 존나 불쌍한데 귀엽다 ㅜ
- 일짱 컨셉 버린지 억만년 ㅠㅜㅠ
- 원래 저런 애들이 제일 마음 약해… ㅠㅜㅜㅜㅜㅜㅜㅜ
그렇게 드디어 모든 멤버들의 등장이 끝나고, 본격적인 진행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친 표정의 신해신이 주섬주섬 자신의 복장을 정비했다. 뺨에 붙어 있던 반창고를 떼고 넥타이를 동여맨 뒤 MC를 보기 시작했다.
약간의 상황극과 함께 이어진 장면들이 팬들에겐 어이가 없으면서도 마냥 귀엽게 보였다.
문채민의 하극상에 극대노하는 권혜성과, 윤명의 비닐 봉투가 공개되는 장면이 이어지고, 간략한 미니 게임이 시작됐다.
사실 미니 게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격한 면이 있어 보였다.
- ……??? 얘들아 너네 뭐해………????
- 미쳤나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 팬들은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을 떠올렸다. 아이돌이라면 응당 하는 작고 소박한 레크리에이션 이벤트였다.
그러나 하이사인이 하게 된 것은 광기의 좀비 게임이었다.
교실로 보이는 세트장 내부에선 진짜 남고생들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술래로 꼽힌 것은 가위바위보에서 진 이정원이었다. 소품으로 쓰고 있던 안경까지 벗어 든 채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눈을 가린 이정원이 의자와 책상을 민 교실 센터에서 30초를 세면 나머지 멤버들은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게임이었다.
이정원에게 물리면 같은 좀비가 되어 탈락하는 룰이 이어졌다.
- 아니 시바 왜 교실에서 좀비 게임을 하는 건데
- ㅋㅋㅋㄲㅋㄱㅋㄱㅋ찐 남고생들 바이븤ㅋㅋㅋㅋㅋ
- 나만 포카포카 청춘을 생각했던거냐곸ㅋㅋㅋㅋㅋ 현실 패치 돌았낰ㅋㅋㅋㅋㅋㅋㅋ
[1, 2, 3…….]
[숨자! 숨자!]
[정원이 형! 숫자 너무 빠르다! 약았어!]
[난 태어났을 때부터 숫자 이렇게 세.]
[와, 뻔뻔한 거 봐…….]
[방금 그거, 태오 너지.]
[…….]
이정원의 호명 아래 흩어진 멤버들이 서둘러 자신의 아지트를 찾았다.
책상과 의자를 적당히 밀어낸 탓에 크게 숨을 곳이 없던 공간으로 멤버들은 안절부절못하다가 각자 방식대로 미친 장면을 만들어 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막내인 문채민이었다. 세트장만 나가지 않으면 되냐며 제작진에게 다급히 물어봤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세트장 경계선에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와 뒤에 있는 카메라 감독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실례합니다.]
[…….]
당황한 것 같은 감독님의 끄덕임 속에서 카메라까지 잡으며 제작진인 척 몸을 숨긴 문채민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채민앜ㅋㅋㅋㅋㅋ카감님 당황하셨잖앜ㅋㅋㅋㅋㅋㅋ
- 유사 아기 캥거루ㅋㅋㅋ
- 미쳤나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로맨스찍냐ㅋㅋㅋㅋㅋㅋ카메라 위에 있는 손은 또 왜 포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 와중에 인사성은 좋아섴ㅋ ㅋㅋㅋㅋㅋ근데 형아들이 다 얼척없이 쳐다보는 거 리얼 킬포임
[윽, 질 수 없지!]
그런 문채민을 확인한 권혜성은 몸을 돌려 빠르게 교실 내부를 스캔했다.
그러곤 이내 자신들이 들어왔던 문을 바라봤다. 미닫이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한 뒤 그 가운데에서 팔다리를 뻗어 문 옆의 몰딩을 타고 올라갔다.
[혜성이는 참 돌은 아이야.]
[…권혜성, 지가 스파이더맨인 줄 아나.]
[쉬잇! 쉿!!! 다 들킨다!!]
사지를 활짝 펼친 채 가장 위쪽에서 몸을 구기고 있던 권혜성이었다.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는 멤버들을 보며 목소리를 죽인 채 외치고 있었다.
- 하이사인은 승부욕에 미쳤다
- 그 와중에 왜 이렇게 잘 기어 올라감? ㅋㅋㅋㅋㄱㅋ 저 정도면 거의 경험자인데
- 권혜성 육아 난이도 최상급 추정
- 어머님…… 아버님…… 고생 많으셨어요……
- 그 와중에 이유준 바른말로 욕하는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은 아이랰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저…….]
- 아니;; 해신아;;; 놀라기엔 너도 만만치 않은데;;;
이번엔 권혜성을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던 신해신이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교탁을 밟고 올라가더니 칠판 위에 나와 있는 홈으로 건너 올라간 것이었다.
50cm도 안 나와 있을 좁은 틈에서 멤버들을 내려다보며 몸을 구기고 앉아 있었다.
술래인 이정원이 안대 너머로 투시를 하지 않는 이상 잡긴 힘든 구역이었다.
[…이제 보니까, 저 형이 제일 심해.]
윤명의 팩트 폭력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신해신은 멤버들보단 제가 낫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 해신아 너도 똑같아 당당하단 표정 짓지마 ㅜ
- 과연 일짱은 숨는 곳도 예사롭지 않구나……
- ㅅㅂ 일단 일짱은 저런 게임에 진심이지 않다고
- 아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2m 위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거 왜 이렇게 동떨어져 보이냐ㅋㅋㅋㅋ 혼자 먼지 다 뒤집어써서ㅋㅋㅋㅋ
- 코디분 오열하는 소리 여기까지 들리네
- 잊고 있었다 해신이도 하이사인이었다 (다 같이 돌은 자들이란 뜻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기행을 바라보던 이유준과, 윤명 그리고 강태오는 15초가량 남은 시간을 들으며 교실 내부를 동분서주했다.
- 명아;;;
- 역시 권혜성 친구 윤명
윤명은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끙끙거리며 버티고 있던 권혜성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미닫이문 바로 옆에 있던 대형 창틀 위로 올라가 앉았다.
팔과 다리의 힘으로 지탱해야 하는 권혜성에 비한다면 저긴 좁지만,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걸 확인한 권혜성은 윤명을 향해 속삭였다.
[와, 와! 저기가 있었구나! 나 왜 여길 올라간 거지!]
[…바보. 높이는 너나 나나 비슷한데…….]
덩치가 컸던 탓에 상체를 수그리긴 해야 했지만 쪼그려 앉아 구경할 수 있는 윤명은 권혜성보다 편해 보였다.
그걸 본 권혜성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제작진의 웃음을 받아야 했다.
- 혜성아 늦었다 5초 남았다…… 버텨라 우리의 장꾸 ㅜ
- 아가명 혜성 한정 딜먹이기 왜이렇게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응 그렇지… 어차피 같은 높이라면 앉을 수 있는 게 개이득이지…… 혜성아… 오늘도 한 건 했다 너…….
- 혜성이 특 죽 쒀서 윤명 주기 장인
- ㅋㄱㅋㄱ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흐음, 고지대는 다 차지해 버렸네. 야, 태오야. 넌 어떡할래?]
[각자도생.]
[냉정하다~ 냉정해~]
멀뚱히 팔짱을 끼고 있는 이유준을 뒤로한 채 강태오가 척척 걸음을 내디뎠다.
초반엔 멤버들의 기행에 질색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교실 여기저기를 확인하며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태오가 교실 뒤편의 캐비닛과 사물함을 발견했다. 배치상 가운데에 묘한 틈이 생겨 있었는데 그걸 본 강태오가 사물함 위로 올라가 틈에 몸을 구겨 넣었다.
진지한 얼굴로 쪼그려 앉고선 사방에 분포되어 있는 멤버들을 둘러봤다.
[푸학……! 태오 혀엉~ 나 웃기게 하지 마, 윽, 악, 힘 빠지잖아~~!]
[…바보.]
[와, 태오 형, 생각보다 더 진심이었네. 근데 그건 좀 꼴이 너무하지 않아? 형, 우리 팀 비주얼인데…….]
갈색의 사물함과 녹색의 캐비닛 틈 사이로 간신히 몸만 욱여넣은 상태였다. 정자세를 유지한 채 고개만 돌려 대니, 멤버들은 그런 강태오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웃어. 아주 자기들 모습은 생각도 안 하지?]
- 아…… 맞다… 태오도 하이사인이었지
- 윗댓 점이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말하않을 그대로 축약한 게 보여 ㅋㅋㅋㄱㅋㄱㅋㅋㅋ
- 아니 어케 저렇게 딱 끼냐 제작진이 혹시 강태오 몸 사이즈 재서 세팅함??
- 태오얔ㅋㅋㅋㅋㅋ 고개 돌리지맠ㅋㅋㅋㅋㅋㅋㅋ 두더지 게임 같잖아 ㅠㅜㅠㅜㅠ
- 잠깐 유준아 넌 또 어딜 기어 들어가는 거야
강태오가 몸을 돌려 교실 뒤편으로 향하는 사이, 이정원을 확인하곤 움직인 이유준이었다.
강태오에게 포커스가 쏠려 뒤늦게 발견됐지만 숨은 장소를 보며 멤버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이유준은 신해신이 숨어 있던 칠판 쪽으로 가 있었다. 그러곤 신해신이 올라간 좁은 틈이 아닌, 교탁 속에 몸을 구겨 넣었다.
카메라도 잘 잡히지 않는 공간이라 제작진의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유준 전용 카메라가 세팅되는 것을 정면 위측에서 내려다본 신해신 고개를 내저었다.
몰딩 위에 있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몸을 구긴 신해신이 할 말은 아니었다.
[쯧쯧…….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형도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거든.]
- 너네 다 제정신 아니거든 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왜 덩치도 큰 놈들이 전부 몸을 접어야 하는 곳에 들어가냐곸ㅋㅋㅋㅋ
- 강태오랑 앞뒤로 갈라진 것도 존나 웃김 역시 공명이 1도 안 되는 동갑즈ㅋㅋㅋㅋㅋㅋ
이유준이 교탁 속에 자리함과 동시에 이정원이 고개를 휙 돌렸다. 좀비 게임이라는 컨셉에 맞춰 과몰입한 상태였다.
[29… 30……. 크릉.]
- 정원아 스탑
- 야 너네 아이돌이야
[아, 이건 너무 갔나. 인격이 있는 좀비로 하겠습니다.]
- 휴 다행이다
- 태세 전환 미쳤나 봐 ㅜㅠㅜㅠㅜㅠㅠㅜㅜㅜㅋㅋㅋㅋㅋㅋㅋㅋ
숨죽이고 숨어 있는 멤버들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이정원이었다.
손을 휘적거리면서도 뭐라고 말을 하는데, 그 내용이 너무 살벌하여 몇몇 멤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첫 번째 목표… 권혜성. 왠지 얜 무모한 곳에 기어 올라가서 제풀에 지칠 것 같은데.]
정답이었다. 이정원의 이야기를 들은 권혜성은 이정원이 25초를 세던 무렵부터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움직이면 바로 탈락하는 규칙이 있었다.
빠르게 항복하고 가장 많은 탈락자 친구를 사귈까, 권혜성의 얼굴 위로 고민하는 듯한 자막이 이어졌다.
[…으헉! 안 되겠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문 몰딩에 매달려 있던 권혜성이 추락했다.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와 동시에 게임 시작 10초 만에 탈락한 권혜성이었다.
[권혜성, 너 맞지? 탈락자석으로 가라.]
[악! 자신 있었는데!]
터덜터덜 움직이는 권혜성을 바라보며 여유만만이던 윤명이 바보라고 속삭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건만 이정원이 윤명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휙-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좀비의 시선에 윤명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곤 위기감을 느꼈다는 듯이 큰 몸을 더욱이 구겨 작게 만들었다.
[흠, 단내. 이거 아까 윤명이 대기실에 먹던 초콜릿 냄샌데.]
[……!]
- 이정원 청각도 뒤졌는데 후각도 미쳤나
- 하이사인 정말 버라이어티하다 학교에서 교복 입는 자컨 찍으면서 좀비 게임을 하고 또 그 좀비 게임 술래가 찐 좀비 같은 멤버임
- 라임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확하게 냄새를 쫓아 이동한 이정원이 고개를 틀어 윤명의 다리에 코를 박았다. 긴장감 어린 분위기 속에서 휘적거린 이정원의 팔에 붙잡힌 윤명이었다.
[물리고 참으시면 살아남습니다!]
제작진의 다급한 외침에 이정원이 윤명의 종아리를 물었다. 남은 시간은 아직 많았던 터라 윤명에게 희망이 없어 보였다.
[……! 끄읍……! 항복! 항복! 항보오옥~!]
[퉤.]
- 나 아가명이 저렇게 소리 지르는 거 첨 봄;;;
- 퉤 돌았냐 ㅋㅋㄱㅋㄱ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ㅋ
울상을 지은 윤명이 절뚝거리며 권혜성의 옆으로 다가갔다. 안 그래도 흰 얼굴이 이정원의 공격으로 인해 더욱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 형, 뭐야……. 진짜 좀비인가 봐.]
[헐, 대박! 윤명! 야 너 다리에 이빨 자국!]
[…진심으로 물었어. 장난 아니야…….]
생존해 있던 멤버들에게까지 들린 대화였다. 그 얘기에 멤버들은 가운데에 서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팀의 맏형을 바라봤다.
[제, 제작진입니다.]
[어딜 속여. …크왁!]
[아악, 아악, 아아악! 진짜 물었어! 진짜 물었어! 정원이 형! 내 손! 손! 손가라악!]
- 막내에게도 자비란 없다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저 비명은 찐이다……
세 번째 희생양은 막내인 문채민이 되시겠다.
가운데는 텅 비어 있어서 외곽을 돌던 이정원이 카메라 스탠드에 몸을 부딪쳤다.
죄송하다며 사과하곤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이상한 기색을 눈치챈 이정원이 정지했다.
그러곤 카메라를 더듬거려 그 뒤에 서 있던 문채민의 재킷을 만져 댔다.
문채민은 목소리를 깔아 제작진의 흉내를 내며 넘어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술래는 1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멤버였다.
문채민의 되지도 않는 얄팍한 수는 카메라에 얹어진 손가락을 물리며 0.5초 만에 파탄 났다.
[너도 가라, 탈락자석.]
[저 형 돌았나 봐……. 진짜 좀비 아니야?]
[혀엉들~~~ 그냥 물리기 전에 항복해~~~]
탈락자석에 모인 막둥이 셋의 이야기에 생존해 있던 형들은 마른침을 삼켜 댔다.
지금이라도 체면 유지를 위해 갈등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러던 사이 이정원은 교실 정면까지 다가가 있던 상황이었다. 퉁- 다리에 부딪친 교탁을 더듬거리던 이정원이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여깄다.]
[우아악!]
- 미친 이유준 비명소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맑은 눈의 광인이란 건 이정원을 뜻하는 단어였구나 아 물론 눈은 안 보임
- 그럼 그냥 광인이란 뜻이잖아 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몸을 물리던 이정원이 팔을 뻗어 교탁 내부로 손을 밀어 넣었다.
이정원의 발이 멀어지는 걸 확인했던 이유준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꽥 소리를 질렀다.
특유의 낮은 저음으로 정확한 발음의 외침이 이어졌다. 성량이 좋은 탓에 절절하게 느껴지는 비명이었다.
[으악! 정원이 형, 항복! 항복! 물지 마!]
[좀비가 된 이상, 잡은 인간은 한번 물어 봐야지!]
[팔! 팔! 내 팔! 팔 끊어져! 항복!]
- 역시 래퍼다운 속사포 비명
- 비명이 비명이지 속사포는 뭔데요 ㅠㅜㅠㅜㅠㅜㅠ
- 그 와중에 딕션 정확한 거 킹받는다 ㅋㅋㄱㅋㄱㅋㅋㅋㅋ
그 신중하던 이유준마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몸을 굴리다시피 교탁 내부에서 기어 나왔다.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상태에서 제대로 갖춰 입은 교복이 너덜너덜하게 풀어 헤쳐져 있었다.
[이유준이 앞쪽에 있었으면, …강태오는 뒤겠네.]
[……!]
- 시발 하이사인은 멤잘알을 이렇게 쓰는구나…
- 강태오 해골이랑 느낌표 뜬 거 봐 ㅋㅋㅋㅋㅋㅋ
이정원의 예측은 정확했다. 가장 후미진 벽까지 다가가더니 사물함과 캐비닛이 있단 걸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하나하나 쓸어내리는 손길에선 단호함까지 비쳐졌다. 강태오는 반드시 이 인근에 숨어 있을 거라며 샅샅이 수색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리고 좁은 틈에 몸을 욱여넣었던 강태오는 곧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추한 모습은 안 된다며 사물함 위로 빠져나가 자진 탈락행을 자처했다.
[탈락하겠습니다. 물리고 싶지 않아요.]
- 태오가 제일 현명하구나
- 물리고 싶지 않대 아이돌 입에서 나올 말인가 ㅋㅋㅋㅋㅋㅋㅋ
- 피해자 1, 2, 3 어이없어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오 형, 치사하다!]
[권혜성, 너도 안 물렸잖아.]
[하핫, 그렇긴 하지~]
[뭐야, 시시하게. 어딜 물어 줄까 고민한 보람도 없이.]
이정원의 손길이 미치기 직전 강태오가 빠르게 탈락자석으로 이동했다. 멤버들 틈바구니에 엉덩이를 붙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이제 남은 인원은 단 한 명, 리더이자 술래인 이정원과 동갑인 신해신뿐이었다.
사실 신해신은 한참 전부터 자수를 할까 갈등하던 상태였다.
[신해신, 곱게 말할 때 나와라. 그럼 살살 물어 줄게.]
[와~ 형~ 안 문다는 전제는 없는 거야?]
[좀비가 사람을 왜 안 물어. 잊었어? 나 좀비야.]
[과몰입 좀 그만해…….]
사방을 휘적거린 이정원의 손길에 신해신이 숨까지 참으며 타이머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30초, 그 안에 들키지 않으면 인간들의 승리였다.
[…킁, 이거. 신해신 향수 냄샌데.]
[……!]
그때, 교탁 언저리에서 수색하던 이정원이 다시 한번 후각을 발동했다. 신해신은 입 모양으로 메이크업 중 뿌렸던 향수에 대해 알려 왔다.
[아까 뿌린 그거… 마, 망했다…….]
냄새가 나는 곳이 너무 높은 곳이라 이정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 높이 팔을 들어 올리고는 연신 더듬거렸다.
[이상하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려면 하늘을 나는 수밖에 없는… 어라.]
그때, 턱, 하고 허공을 휘젓던 이정원의 손길이 칠판 위 몰딩을 잡았다. 나무의 두께를 확인한 후엔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찾. 았. 다.]
[끼야아아악!]
- 비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해신아……
- 지금까지 신해신이 낸 목소리중에 제일 하이톤일 듯…
- 왜 스타카토로 말하는 건데 정원아 ㅜㅜㅜㅜㅜ
더듬더듬 교탁 위로 올라간 이정원이 신해신이 있던 몰딩 위를 손으로 쓸었다. 중간에 있던 신해신은 이정원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살벌한 멘트와 함께 신해신이 비명이 울려 퍼지고, 그걸 지켜보던 멤버들은 바닥을 구르며 웃어 댔다.
[악! 해신이 형! 미쳤나 봐!]
[해신이 형이 불쌍해……. 정원이 형, 살살 물어 줘…….]
[와, 저길 들키네. 정원이 형, 무슨 개코야?]
[…물리기 전에 항복해서 다행이다.]
[하하! 해신이 형! 10초 남았다! 버텨 봐!]
- 거친 좀비 메보와 불안한 인간 리더와 그걸 지켜보는 탈락자 멤버들……
- 미친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어지는 응원에 힘입었는지 이정원의 입이 신해신의 팔뚝을 물었다.
교탁 위에 무릎 꿇고 올라간 자세로 참 안정적이게 버티는 좀비였다.
처음에는 이유준의 말 그대로 10초만 버텨 보려고 악을 쓴 신해신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진 못했는지 3초 만에 격렬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항복! 항복! 항복~~~!]
[흥븍흘그으?(항복할거야?)]
[졌어! 그래, 내가 졌어~!]
[게임 종료입니다! 좀비 승리!]
[퉤.]
신해신의 비명과 거의 동시에 제작진에게선 좀비 이정원의 승리가 발표됐다.
손을 뻗어 눈을 가린 안대를 풀어 헤친 이정원이 입안 가득 물고 있던 신해신의 팔뚝을 뱉어 냈다.
신해신은 칠판 몰딩 위에 무릎 꿇고 몸을 구긴 채로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좁은 면적이라 함부로 드러눕지도 못한 채 입술을 깨물며 고통에 숨죽였다.
[저게 사람이야, 진짜 좀비야…….]
[미안한데, 너희 팀 메인 보컬이다.]
- 마지막 확인 사살까지 완벽
- 좀비가 제일 멀쩡한 이유는 뭐지요
- 이가든이라 쌉가능한 것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개꿀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엉망진창인 나머지 멤버들과 달리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깔끔한 복장을 고수한 이정원이었다.
사정없이 사람을 물어 뜯을 땐 언제고 부드럽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렇게 하이사인의 첫 상황극은 학생으로 시작해서 좀비로 종료됐다.
그때, 까맣게 점멸된 화면 위로 새로운 폰트가 나타났다.
- …미쳤나
- 애들 컴백함?
그건 바로 하이사인 첫 정규 앨범에 대한 대형 떡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