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컴백 무대가 끝난 며칠 뒤였다. 스케줄을 가는 틈을 타서 인터넷으로 대중들의 반응을 확인해 봤다.
기간 한정이라더니 아이템이 이름값을 하는 듯하다. 확실히 몸놀림이 가벼운 것 같기는 했는데.
버즈량이 높아진 걸 느끼면서 팬들의 주접이 담긴 응원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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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사이 성장한 것 좀 보세요
생태계 포식자 최상위권 같은 이 남자 신해신
컴백 무대로 음방 부숴 먹는 중 ㅜ
내용물이 말랑콩떡이란 모에포인트
오지니까 모두 꼭꼭 관심 가져주기 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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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격한 안무 추다가 2절 싸비 뒤에
2옥파 이상 더블링을 깔아주는 돌이 있다?
메보 아님 리드보컬임 모두 외쳐 갓해 ㅠㅠ
물론 메보도 오집니다 예쁜 얼굴로
아포칼립스 세계관 짱 먹은 최종 보스
하이사인의 정원이도 많관부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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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주년 안됐는데 3활동 실화?
거기에 1정규 포함되어 있습니다
휴식기때도 지상파 케이블 자컨 쉬지 않고
떡밥주는 이 시대의 효자돌 하이사인
올해 티친비는 이거 알티로 해줘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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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컴백 무대 장난 아니더라
누군지 모르겠는데 오타쿠 가슴 뻐렁차는 컨셉 맞고요;;
메이터스에 빠순질 좀 해본 경력자 있음 인정
무엇보다 이 아기들이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사진) (사진)
건물 무너지는 세계관의 주인 짱이사인 (쩌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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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강한 무대와 난이도 높도 거친 동작이 많았는데, 그게 팬들에겐 나름 좋은 반응을 이끈 듯했다. 전체를 응원하는 글들도 보이고, 개인 멤버의 성장을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첫 정규치곤 좋은 흐름을 탄 듯했다.
거기엔 이번에 내가 쓴 ‘마에스트로 이펙트’에 대한 효과도 포함된 것 같았다. 센터로 등장한 이정원만큼 나도 언급이 되는 게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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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신 쟤 뭐임? 시비 ㄴㄴ
진짜 걍 궁금해서 묻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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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전에 팬들한테 손 흔들어주던
와기고양이가 상남자가 되는 건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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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 안치고 이번에 무슨 일 있었니??
해신아 너 뭐야 무슨 일인데 왜이렇게 잘해 ㅜㅠㅜㅠㅜㅜㅠ
공방 갔다가 주먹 울음하면서 나옴
진짜 성장캐 독기 오지는 남자야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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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방 뛰면서 하이사인 봤는데
얘네 이번 음원 쩐다; 케이팝 빠순이라면 심장이 뛰는 비트
근데 신해신 원래 저런 느낌이었나?
스타일링 차이는 아닌 것 같고 춤선이랑 보컬이
왜 이렇게 달라진 것 같지? 물론 좋은 뜻임;;
내 티친들 뒷계에서 요즘 얘 얘기 많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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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치곤 너무 칭찬을 많이 들어 버렸다. 효과가 끝나는 즉시 끼 스탯을 올려야겠다는 강박이 들 정도였다.
헛웃음을 지으며 나머지 피드백들을 메모했다.
물론 호불호가 안 갈린다고는 할 수 없었다. 첫 정규인 만큼 대중성보다는 팬들을 위한 앨범을 제작했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듣기 편한 느낌보단 컨셉추얼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그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팬들과 그런 팬들인 척 어그로를 끄는 까빠 내지 타 팬들도 보였다.
- 개인적으로 너무 오타쿠스러움 뭐 노린지 보여서 더 노맛이랄까
- 남돌판이면 다 먹고 본다는 와장창쾅창 컨셉 지겨움
- 이가든 센터로 안 어울리지 않아? 타멤 세우지…… 피지컬 쩌는 애들 놔두고 감이 좀 떨어졌나 봐
뭐, 이런 것 정도야 이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수용할 생각도 있었고, 애초부터 예상 범위 안의 댓글이었다.
멤버들도 회사도 감수했던 내용이기에 정말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만 확인했다.
악플 내지 수위성이 높은 발언들은 서도경 측에서 먼저 처리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뉘앙스의 멘트들이 오픈된 장소에 보이면 하이눈들이 나서 줬다.
타이밍 좋게 풀린 우리의 활동에 대해 칭찬하며 악플을 덮어 보지 못하도록 정화해 주는 일이었다.
이쪽은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밴 안에서 기절한 것처럼 잠들어 있는 멤버들을 보다가 눈앞에 떠 있는 상태 창을 훑어 내렸다.
이번 앨범으로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는 이벤트였지만 그렇다고 포기했다는 듯이 놔둘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시스템이 친절하게 카운트해 준 초동 정보를 확인하며 앞으로의 성적에 대해 고민해 봤다.
지금까지 냈던 싱글들보단 좋은 수치의 초동이었지만 밀리언 셀러, 즉 100만을 달성하기엔 화력이 부족해 보였다.
[현재 초동 수치]
548,7**
RULE(도취)로 활동에 접어든 지 3일 차 되던 날의 일이었다.
* * *
“형, 형! 이거 봤어?”
“뭔데?”
“이거!”
이벤트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 다음 날이었다. 대기실에서 의상을 갈아입고 나오자 이유준의 곁에 붙어 있던 권혜성이 이유준의 핸드폰을 들고 눈앞에 들이밀었다.
평소에도 텐션이 높았지만 유달리 활기차 보이는 모습에 대기실 안에 있던 모든 멤버들과 회사 스태프들의 시선이 몰렸다.
이유가 뭔가 싶어서 조그만 화면을 쳐다봤다. 눈에 익은 인터페이스가 잘 알고 있는 SNS였다.
…저건 티위터잖아. 어제 밴 안에서 종일 확인한 터라 몇 초 만에 알아본 티위터였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천천히 읽어 보니 이유준이 부계정을 통해 누군가의 피드를 리티윗 해 놓은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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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포칼립스입니까?
(사진) (사진) (사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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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인가? 영어로 된 계정주의 이름에 이어 뭔가 어색한 문체의 티윗이었다. 올라간 시간은 어제 새벽인 것 같은데 그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리티윗 수와 관심 글이 찍혀 있었다.
특이한 문체 아래에는 4장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건 며칠 전 우리가 올라갔던 컴백 무대였다.
와이튜브에 올라간 해당 무대의 이미지를 캡쳐한 듯 거칠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가 보였다.
장비가 걸리지 않은 부분만 잘라서 그런지 뭔가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서도경이 조진만 몰래 힘을 써서 음방에선 꽤 규모가 큰 세트장을 받았다. 무대용 영상 스크린도 별도로 제작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상의 실감 나는 소품들이 깔려 있었다.
테크 웨어를 입고 무너지는 효과가 들어간 영상을 배경으로 조각난 건물 잔해들과 기둥 위에 서 있는 멤버들이었다. 1절은 지난 것 같은 안무로 땀줄기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게 도리어 실감 나는 액션 신처럼 보였다.
캡처를 잘해 준 건가, 아니면 이날 영상을 잘 찍은 건가. 헷갈리는 심경으로 글을 확인했다.
보통 때라면 국내 팬들의 반응이 더 컸을 텐데,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온 덕분인지 외국 팬덤에서 호응을 얻고 있었다.
어설프게 번역된 문체에 이어 국내 하이눈과의 핑퐁 섞인 멘션도 리티윗을 탔다.
그게 또 퍼지고 다시 또 퍼지며 무한 사이클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놀란 마음에 눈만 깜빡이니 히죽거리던 권혜성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리보고 아포칼립스물 영화배우 같대!”
“어, 어. 반응이 너무 좋은데?”
“…외국 사람들, 이런 거 좋아하니까, 해외 팬덤이 늘어날 느낌이지?”
“여기 이분은 우리 전 앨범들도 같이 들어 보셨다고 하시네?”
“야, 태오야. 누가 네 이름이 뭐냐는데? 답변 달아 드릴까? He is Tae O.”
문채민도 핸드폰을 들어 윤명과 함께 같은 글을 확인했다. 윤명의 뒤에 서 있던 이정원은 강태오에 대해 궁금해하는 팬의 글을 보고 농담까지 던지고 있었다.
나로선 조금 얼떨떨했지만 괜찮은 반향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 창을 보니 어제 보다 좀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초동의 수칫값이 보였다.
아, 해외 팬덤이 있었구나. 아직 연차가 덜 되어서인지, 서도경은 우리의 활동 무대를 국내 주력으로 삼고 있었다.
정규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던 터라 멤버들도 어느 정도 동의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흐름이 이어지니 앞으로의 활동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회사 사정도 파악할 겸 서도경을 만나 떠보자고 생각한 뒤 다음 스케줄에 대한 준비를 끝마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게 아니더라도 서도경과 만나야 할 일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으악, 거기서 팔 더 뻗었어야 했는데!”
“…내가 보기엔 충분했는데.”
음악 방송의 무대가 종료된 이후 대기실로 돌아가려던 무렵이었다. 땀에 절어 움직이려는데 무대 뒤편 카메라 장비 틈 사이에 서 있던 김환준과 눈이 마주쳤다.
아, 맞다. 이거 쇼플레이였지. 김환준이 MC로 서고 있는 음악 방송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앞서 사라지는 멤버들을 쫓아 발걸음을 옮기려 하니, 그런 내 앞으로 긴 팔이 뻗어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가? 오늘은 좀 친절하네요, 신해신 씨.”
싱긋 웃는 김환준의 미소에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먼저 막아 놓고서. ‘쉬지 말고 달려라’ 이후 처음 본 상황이었지만, 그리 반가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 거 아시면 좀 보내 주세요.”
“으음, 그건 안되고. 아, 컴백 무대 잘 봤어요. 노래 좋던데요? 뮤직비디오 규모도 훌륭하고~ 역시 메이터스. 게다가 실력, 많이 늘었더라고요.”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할까 골치가 아픈데, 뭔가를 눈치챈 것처럼 입꼬리를 올리는 김환준이었다.
하여간에 이런 쪽 머리만 비상해서. 사람 골리는 데에 있어선 특화된 인물인 듯했다.
이 사람에겐 당황하는 것이 최악의 리액션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뻔뻔하게 나가며 김환준의 능청을 방어했다.
“연습한 보람이 있네요.”
“연습? 아, 하긴. 신해신 씨, 연습 벌레였지. 나중에 멤버들한테 신해신 씨 좀 배우라고 해야겠어요. 아니면 한번 만나 볼래요? 하이사인 멤버들 보고 싶어하는 녀석들이 몇 놈 있거든요.”
“…그런 건 괜찮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오지 않고 있음을 발견한 인물들이 있었다.
그건 가장 후미에서 멤버들을 따라가고 있던 강태오와 문채민이었다. 권혜성과 윤명의 수다를 받아 주느라 이정원과 이유준이 정신없는 틈을 타 김환준의 존재를 눈치챈 강태오와 문채민이 흔들리는 눈으로 속도를 낮췄다.
그러곤 천천히 제자리걸음을 하며 내쪽으로 다가왔다. 너희도 그러냐? 나도 그래…….
골치 아픈 일에 엮인 것 같다는 표정으로 어색한 얼굴을 한 멤버들이었다.
저 멀리서 우리 셋을 기다리고 있던 박재민에겐 슬쩍 먼저 가 있으란 의사를 표현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인 박재민의 뒤로 문이 닫히고 분주한 사람들이 가득한 무대 후미 어둠 속에서 김환준과의 사자대면이 시작됐다.
복잡하게 놓여 있는 장비와 자제들로 눈에 띌만한 상황은 아니었음에도 예전 비상구 계단에서의 만남처럼 쏘아붙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작게 한숨을 쉬고 말을 거니, 생글생글 미소 지은 김환준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강태오와 문채민에게 인사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조합이네요? 문채민 씨는 저번에도 있었고, 강태오 씨가 오랜만인가?”
“아, 예…….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런데 해신이 형은 왜…….”
“아니, 그냥 좀 반가워서요. 해 줄 말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늘어서 오랜 못 붙잡고 있겠네요.”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태도의 김환준에 강태오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안 봐도 무슨 생각일지 훤하다. 자기랑 천적처럼 구는 이유준이 떠오르기라도 한 모양이다.
‘쉬지 말고 달려라’ 이후 태도가 바뀐 김환준을 문채민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계는 풀지 않았는지 내 옆구리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형, 오늘은 또 왜 잡힌 거야…….”
“팔로 가로막는데 그럼 뿌리쳐? 보는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어.”
“진짜 철두철미하다…….”
문채민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자 그걸 또 들었는지 김환준이 고개를 돌렸다. 강태오와 나누던 이야기는 접은 채 몸을 숙여 내 쪽으로 기울인 상태였다.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아요. 난 선행 베풀려고 잡은 건데.”
“선행이요? …그럼 느낌은 안 드는데요.”
“에이, 지원겸한테 이런 것만 배웠구나. 초반에 찔러 보면 휘청거리던 신해신 씨가 더 재밌었는데. 뭐, 잡담은 뒤로 하고 사람들도 많으니 안건부터 해치우죠.”
이번에는 또 뭐로 시비를 걸려나 싶어서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김환준이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이건 저번 녹화에서 나눴던 대화의 연장선 같았다. 곁에 있던 강태오와 문채민 역시 슬쩍 들리는 주제에 놀란 듯한 얼굴을 했다.
“좋은 소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번에 얘기해 준 그 방송. 정규 편성됐습니다. 방송국은 엔넷, 엔필름 주관이에요. 근데 시놉이 조금 바뀐 것 같더라고요? 신해신 씨, 혹시 뭐 좀 알고 있는 거 있나요?”
“…네?”
“경연 프로그램 말입니다. 거기 우리도, 그쪽네도 출연하게 될 것 같다고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였다. 보기 드문 김환준의 심각한 얼굴에 철렁 마음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