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김환준의 그 말은 곧 현실이 됐다. 엔넷발 프로그램이 기사화된 것이었다. 가장 먼저 접한 언론 속에는 하이사인도 출연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포맷이 바뀐 것도 사실이었는지, 단체 출연이 아닐 거라던 김환준의 말과 달리 이건 누가 봐도 팬덤 내 싸움이 붙을 만한 경연이었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들다는 서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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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두 번하는 그룹이 여깄네요 시바 우리사인 살려
메이터스 무슨 생각이야 아티스트 보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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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탈 와장창임 유어돌 때도 충분히 빡셌다
- 글로벌 ㅇㅈㄹ 이거 핑계로 해투 돌리려는 목적 투리구슬임
- 리얼 장기는 애들이 하고 돈은 엔넷이 쓸게 생겼네;;
- 벌써 타팬덤에서 내려치기 오지는데 엔넷에선 잘해봤자 엔필름빨이란 소리나 들음;
- 도대체 뭐 때문에 출연하는거야? ㅠㅜㅠㅜㅠㅠㅠ
- 진짜 잘하면 서바빨 소리 좀 들어가고 해외팬은 얻겠지 근데 그거 실패하면 걍 욕만 뒤지게 먹다가 오는 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쳤나 아 애들 이제 첫 정규인데
역시,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못해 온라인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첫 정규로 축제판이던 얼마 전과 달리 엔넷과 회사에 대한 분노가 차오른 듯했다.
나와 멤버들도 모르고 있던 사실에 기사를 보며 당황스러워하던 중이었다. 그날 어렴풋이 얘기를 들은 문채민과 강태오만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나를 바라봤다.
“뭐야, 이게. 우리 이런 얘기는 못 들었잖아.”
“…그럼 정규랑 서바이벌이랑 같이 하는 거야?”
“으악, 죽었다…….”
얘기를 듣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앞으로의 난관이 예상된다는 반응들이었다. 한번 겪어 본 서바이벌로 이 판이 얼마나 살벌한지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도경에게 연락을 청했다. 이런 게 있었다면 말해 줬을 대표라서 이상하단 생각을 했다.
다급하게 미팅을 잡고 나서야 멤버들과 함께 회사로 찾아갔다. 정식 만남은 아니었던 탓인지 서도경과 한지헌만이 남아 있던 방 안이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은 걸 보고 나서는 한지헌이 대표실이 문을 걸어 잠근다. 뭔가 싶어 살펴보자 서도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당했습니다.”
“네?”
“…저기, 설마, 대표님도 저희 출연 모르셨어요?”
윤명의 질문에 서도경의 눈빛이 날카로운 기색을 띠었다. 거기서 나는 그 추측이 정답이란 사실을 눈치챘다.
나름 조진만과 엔필름의 농간 속에서 방어를 잘해 왔다고 생각한 서도경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영락없이 뒤통수를 맞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규 편성될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었습니다. 여러분을 출연시키라는 상부의 명령도 있었고요. 물론 검토 중이던 단계였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때와는 시놉 자체가 변경된 듯합니다.”
“검토요? 그리고 시놉……?”
“본래 그룹 전체가 출연하는 서바이벌이 아닌, 일부 멤버만 나가서 새로 팀을 편성하여 무대를 펼치는 혼합식의 경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군요. 물론 검토 중이던 과정이라 확고하게 의사를 내비친 적도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더 윗선에서 건든 것 같네요.”
“이렇게 되면 저흰 안 나갈 수 없는 입장인거죠?”
서도경의 자세한 사정 설명에 가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정원이 질문했다.
“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네요.”
“최악이네요.”
이유준도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알아챘는지 보기 드물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팬들 반응은 회사에 대한 적개심만 높아진 상황이었다. 나가서 잘해 봤자 본전일 프로그램에 우릴 내보낸 걸 보니 엔필름의 목적이 서도경을 찍어 누르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방법이 있나,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이어지는 스케줄과 병행하며, 이 건에 관해서는 각 팀 책임자들과 비밀 미팅을 진행해 보기로 결정했다.
* * *
그 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덧 초동 측정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마에스트로 이펙트’ 아이템과 갖은 노력을 해서 조금씩 올라가고는 있었으나 80만을 목전에 두고 멈춘 게 보인다.
[현재 초동 수치]
786,9**
그래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닌 활동이었다. 뮤직비디오 캡처본으로 해외에도 은근히 이름을 알렸고, 점차 상승하는 앨범의 판매량을 보니 다음 타이틀론 이벤트를 성공할 수 있을 듯했다.
갖은 스케줄을 이어 가면서 우리가 출연하게 될 거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탐색했다. 급작스러운 편성에 맞춰 대강의 라인업이 오픈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그룹들이 많았다. 밴 안에서 멤버들이 핸드폰 하나를 보며 옹기종기 모여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태오 형, 여기 민석이 형네지?”
“어. 연락해 보긴 했는데, 거기도 갑자기 잡혔다나 봐.”
윤명과 강태오의 눈길이 가 있는 곳은 유어돌 파이널에서 친분을 쌓은 이민석네 그룹이었다.
민이라는 활동명으로 원더보이즈라는 보이 그룹을 하고 있었는데, 유어돌이 끝난 이후 잠깐의 공백을 가지 더니 원래 그룹의 활동을 재개했었다.
반가운 인물이었으나 경연으로 다시 마주치게 된 상황이라 그리 기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듯하다.
게다가 이런 건 이민석네뿐만이 아니었다. …김환준. 디레스트도 출연할 것 같다고 한참 전부터 언질해 주더니, 정말 출연자 리스트 안에는 김환준네 그룹이 포함되어 있었다.
곁에 있던 권혜성은 내가 보고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선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다른 멤버들에겐 잘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다.
“…형, 이거 쉬말달 녹화에서 들었던 그 프로그램 맞아?!”
“어, 그런 것 같은데.”
“와~ 뭐야, 그 사람? 이거 어떻게 알았대? 아니 그전에 이런 걸 왜 알려 줬던 거야?”
권혜성은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거기도 당한 건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분명 김환준도 시놉이 바뀌었다며 나보고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냐 물었었다. 주변 시선을 신경 쓰던 사람이 촬영 현장에서 다급하게 질문했을 정도니까 거짓은 아니었다.
혹시 재계약을 안 하려던 걸 MXP 측에서 눈치챈 건가? 그럴듯한 가설을 하나 꺼내니 맞은 편에 있던 이정원이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까 출연진 리스트 안에는 그 그룹도 함께 있었다. 김찬규와 만남에서 말을 꺼냈던 블릭투 말이다.
“형들, 이 프로그램 연차나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모은 느낌이 들지 않아?”
“나도 채민이 얘기엔 공감해. 이렇게 서두르는 걸 보아하니, 차근차근한다는 이야긴 아닐 거야.”
“대박, 어그로 짱이겠네~”
문채민의 이야기에 강태오가 공감한다는 말을 꺼냈다. 권혜성은 반쯤 체념한 듯 제 머리에 뒷짐을 졌다.
PD가 누구인지 이름을 들었으니 한번 찾아볼 계획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엔필름 뜻대로 안 되려면 치열하게 붙어 봐야 했다.
* * *
결국 한주가 끝나고 나서야 1주일 초동은 80만에서 끝났다. 처음부터 이번 타이틀을 통해 이벤트를 성공하겠다는 확신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적당히 유념하고 넘기며 다음 음방을 촬영하러 왔다. 그래도 이번 곡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1위 후보라는 이야기에 무대를 끝낸 뒤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멤버들의 멘탈은 참 강한 것 같은 게, 각기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권혜성에게 음료수를 빼앗긴 윤명이 앉아 있던 권혜성의 발을 밟았다.
“악! 윤명! 쟤 진짜 밟았어!”
“…내 쉐이크의 복수다.”
“이 쫌생아! 너도 내 것 훔쳐 먹었잖아!”
“이기는 편 우리편~”
사이에 낀 문채민은 여느 때와 비슷하게 둘 사이를 부채질하며 구경했다. 멀찍이 떨어진 강태오는 1위 후보로 불렸던 다른 가수의 무대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이정원도 팔짱을 끼며 그 옆에서 같은 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유준이 큰 목소리로 모두를 불렀다. 아까부터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는데,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놀랐단 표정을 지었다.
“형들! 얘들아! 이거 봐 봐!”
“…어? 이게 뭐야?”
이유준이 내민 핸드폰 위론 누군가의 아웃스타그램 스토리가 나왔다. 우리의 앨범을 찍은 사진과 함께 타이틀인 RULE(도취)를 스트리밍 중인 캡처 화면이었다.
위로는 추가로 적은 듯한 내용이 보였다. 다음으로 넘어가는 스토리에선 현재 생방 중인 음악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듯한 TV 화면이 찍혀 있었다.
[이번 곡도 좋네요. 파이팅 (엄지 이모티콘)]
그걸 올린 인물을 확인하자마자 이정원이 내 쪽을 돌아보며 질문했다.
“야, 신해신,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네가 모르면 누가 아는데.”
해당 스토리가 올라간 계정의 주인은 디레스트의 김환준이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우리를 응원하지? 근래 친한 척 굴기는 했으나 이런 식의 직접적인 발언은 처음이었다.
하물며 누가 봐도 우리가 1위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듯한 타이밍이었다.
장기적인 해외 투어를 통해 외국 팬도 많았고, 앨범 활동이 종료된 이후 잠시 쉬던 공백기라 김환준을 기다리던 국내 코어 팬들까지 해당 스토리를 본 듯했다.
서둘러 시간을 확인해 보니 시청자 투표가 이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리 1위 하라고?”
김환준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엔딩 무대에 올라간 이후 1위에 우리의 이름이 호명됐다.
“축하드립니다! 하이사인!”
펑! 터져 나오는 폭죽 소리를 들으면서 MC가 건네주는 상패를 받아 들었다. 며칠 전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서 얼떨떨한 상태였다.
우선은 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객석에 손을 흔들었다. 환호성과 함께 MR이 틀어지고 앵콜 무대도 진행됐다.
4분여간의 무대를 끝마치고 내려왔을 때는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도착해 있었다.
1위에 대한 기쁨을 나누는 멤버들 사이에서 액정 위에 찍힌 이름들을 보며 속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지 말만 하는 인간]
[받지 마]
[지 말만 하는 인간]
[지 말만 하는 인간]
.
.
.
전자는 지원겸, 후자는 김환준이었다.
지원겸 이 인간은… 김환준이 SNS를 통해 응원하자 그게 궁금해서 전화했던 모양이다. 김환준은 내 속이나 긁으려고 한번 연락해 본 게 틀림없었다.
“둘 다 똑같아.”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넣으려는데 부재중 전화 아래로 도착해 있는 메시지 아이콘이 눈에 띄었다.
뭐가 그리 급했으면 전화에 이어서 문자까지 넣어 놨나 궁금했다.
이런저런 대화로 바쁜 멤버들을 두고 내용을 살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함과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지 말만 하는 인간]
야, 신해신. 무슨 일이야. 김환준이 왜 너희를 응원해? 아니 그건 둘째 치고, 그 기사 뭐야?
거기까지만 봤을 땐 서바이벌에 대해 질문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좀 더 아래에는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디레스트 놈들 전원 계약 해지라니, 그리고 메이터스 이적 검토 중이라니? 야! 신해신! 이거 보는 대로 전화해!
“…뭐?”
“형 무슨 일이야?”
지원겸의 이야기에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졌다. 타각! 하고 이어지는 소음에 1위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던 멤버들이 나를 돌아봤다.
디레스트가 MXP와 계약을 해지를 하려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던 사항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메이터스? 우리 말고 메이터스란 이름의 엔터가 또 있던가? …그럴 리가 없잖아.
전원이 메이터스 이적을 검토 중이라고? 입이 떡 벌어지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