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디레스트 ‘MXP와 전원 계약 해지 절차 진행 중’]
[MXP ‘확실한 사실은 아냐, 계약 종료가 되더라도 디레스트의 멋진 행보를 기도할 것’]
[MXP의 첫 그룹 디레스트와 공식 이별? 전속 계약 종료 소식 물망]
[디레스트 ‘끝이 아니다.’ 같은 엔터테인먼트 이적 소식 알림]
[디레스트의 새 거취는 어디? 유력 후보로 ‘하이사인’이 있는 메이터스 물망]
[디레스트 메이터스 · 하이사인과 한솥밥 먹는다. 배우 팀 관련 고우림 이야기도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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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부터 뜨거운 화두에 오른 우리와 회사 이야기였다. SNS의 버즈량을 폭발시킨 이 사건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거실에 모여 비상 대책 회의를 하면서도 멤버들은 놀랐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이정원이 손을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뭔데.”
“우리는 곧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갈 거고, MXP에 있던 디레스트는 우리 회사로 이적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 아니야?”
“문채민~ 그게 그렇게 쉽게 얘기할 건 아니잖아~ 으악, 머리 아파!”
기사를 꼼꼼히 읽어 보던 문채민이 덤덤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옆에 있던 권혜성은 영문 모를 사태에 제 머리를 헤집더니 드러누워 버렸다.
권혜성에게 떠밀려 반쯤 넘어간 윤명이 소파에 기댄 자세로 모두를 훑어봤다. 심각한 표정의 강태오와 이유준을 제외하면 당황스럽다는 행동이 대다수였다.
“…그럼 지금 온라인 반응들은 어떤데?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아, 안 그래도 찾아보고 있어.”
윤명의 이야기에 노트북을 살펴보던 이유준이 우리 쪽으로 화면을 돌려 줬다. 얕게 내쉰 한숨에서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는 듯했다.
역시 각종 SNS와 기사가 리티윗되며 난리통인 사태였다. 알게 모르게 붙어 왔던 사태를 알아서인지 팬들도 혼란스럽단 반응이 주를 이뤘다.
- 헐 미친
- 얘네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음? 안 그래도 서로 언급되면 질색했는데 이제 더 난리 나겠네;;
- 사이는 ㅅㅌㅈ랑 ㅎㅇㅅㅇ이랑 붙던 거 아니었나? ㄷㄹㅅㅌ가 그럴 짬은 아니잖아 차라리 선배가 하나 생기는 게 나을 수도 있고……
- 선배는 무슨 요즘 메이터스 내부 무슨 일 있는지 놓치는 것 많더만 디레스트까지 영입하면 애들 케어 되겠냐 난 결사반대임
팬들 사이에선 디레스트 영입 환영파와 반대파가 갈려 격한 싸움 중이었다. 초반부터 경쟁 룰로 붙어 온 스턴즈의 선배를 어떻게 믿고 같이 응원해 주냐는 의견이었다.
환영파는 그래도 가요계 대선배로 적당한 코어와 해외 팬덤을 지닌 디레스트가 있으면 좋지 않겠냔 말을 꺼냈다.
양측 모두 그럴듯한 의견임은 맞았으나, 앞으로 닥칠 여러 일들을 떠올리면 그리 순탄치는 않을 것 같았다.
- 뭔 김칫국을 사발로 드링킹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정 중이란 거 안보이나 지금 이렇게 먼저 기사 띄운 거 보면 MXP가 잡을 확률이 크지
- 맞아 퍽도 놓치겠다 김환준 하나만 빠져나가도 난리인데 애들이 통으로 간다고? 미친 소리하지마 ㅋㅋㅋㅋㅋㅋ
- 우리도 우린데 리얼 워닝들이 개판남 그나마 희망이라고 하면 움직여도 다같이 움직이겠다는건데
- 강 건너 불구경인 줄 알았더니 우리집에도 불이 옮겨붙게 생겼네요 ㅜ ㅅㅂ……
- 아주 난리로구나~ ㅋㅋㅋㅋㅋㅋ
- 타팬덤 팝콘하고 있음 리얼 개꿀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미친 너네 그럴 때냐? 쟤네 합치면 규모 존나 커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복잡해진 사태에 머리가 아팠다. 우선은 사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 서도경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엔필름으로부터 당한 전적이 있어서, 이것도 그쪽에 의한 물타기인가 싶어 걱정스러웠다.
“얘기 들어 봐야지. 형, 형이 연락해 볼래?”
노트북을 덮은 이유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소속사에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며 연락해 볼 것을 종용했다.
“어, 오 팀장님이든 한 실장님이든 연락해 볼게.”
“도대체 그 사람들 무슨 생각인 거야? 신해신, 넌 뭐 좀 알고 있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져 보는데, 곁에 있던 이정원의 눈빛이 매서웠다. 내 액정을 살펴본 후 시선을 마주하며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이실직고하라 말한다.
“그런 거 없어. 내 표정 보면 모르겠어?”
“맞아, 정원이 형. 이번엔 저 형도 아무것도 몰랐어.”
“웬일? 강태오, 네가 편을 다 들어 주고.”
“…사실이니까.”
김환준과의 마지막 대면을 함께 했던 강태오였다. 지쳤다는 듯이 굴면서도 팩트를 전달했다. 문채민과 권혜성도 합류하여 설명해 줬다. 저기라면 내 무고를 가장 잘 알 멤버들이다.
“그 사람~ 나쁜 것 같진 않았어. 아! 속은 좀 구려 보였지만.”
“나도 혜성이 형 말엔 동감. 우린 예능 찍으면서 마주쳤었잖아. 형들이 봐도 MXP랑은 갈라서려는 것 같았지?”
“어, 애초부터 악의는 없었다고 봐.”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웬일로 윤명, 너랑 내가 의견이 맞는다?”
얘네 덕분인지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가 풀렸다. 우선은 내가 연락을 통해 회사와의 만남을 조율하기로 했다.
그사이 스케줄을 대기하면서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있으라고 전달했다.
사실 내게는 이게 아니더라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시끌벅적한 멤버들을 둔 채, 전화 통화를 핑계로 방에 들어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는 수신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 말만 하는 인간]
[지 말만 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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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몇 통을 해 놓는 거야? 이 인간…….”
이건 어제 밤부터 끊이지 않고 밀려든 지원겸의 연락이었다. 우선은 정신이 없어서 확인 후 다시 전화 주겠다며 메시지를 보내 놓은 게 마지막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성격이 급해서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회사 전에 여기부터 가라앉혀 놔야겠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달칵, 그리 길게 가지도 않은 대기음 너머로 우렁찬 목소리의 질문이 쏟아졌다.
- 야! 너 왜 전화 안 받아!
“윽, 멘토님, 저 귀 아파요. 그리고 문자 보내 놨잖아요. 확인 후 연락 드리겠다고…….”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뭐야! 어떻게 된 건데? 그 기사 사실이야?
화가 났다기보다는 어이없다는 어투의 지원겸이었다. 데시벨이 큰 걸 제외하면 좀 더 전투적인 정도이다. 우선은 지원겸에게 우리완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미워하진 않는다고 얘기했지만, 인클루가 디레스트에게 당했던 일은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지원겸과 어떻게 쌓은 우호 관계인데, 지금까지 받은 도움만 봐도 배신해선 안 될 입장이었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려 하니 숨을 고른 지원겸이 애써 진정하려고 노력한다.
- 후, 하, 후……. 그래. 좋아, 천천히 얘기해 봐.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아직 저희도 사실관계 파악을 못 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짜 무고하단 거예요. 회사 쪽에서도 디레스트 쪽에서도 제대로 들은 적 없는 이야기입니다. 멘토님이랑 통화 끝나면 회사쪽에 문의해 보려고요.”
- 야~ 그럼 거기랑 전화하고 연락 주지. 왜 먼저 했어~
“멘토님이 전화 계속 거셨잖아요…….”
이제야 원래 상태로 돌아온 지원겸이었다. 투덜거리는 어조를 보아하니 어느 정도는 이성을 되찾은 모양이다.
“게다가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 것 같긴 해요. MXP 쪽을 좋게 감싸는 기사가 많은 걸 보니 언플용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 …뭐, 대충은 나랑 비슷한 의견이네. 한 가지 확실한 건 MXP 이 새끼들이 김환준 자식네 잡으려고 밑밥 까는 것 같다는 거? 말로만 아름다운 이별, 이 난리지. 연예계에 아름다운 이별이 어딨냐? 계약 종결되고 넘어가는 순간부터 디레스트 잡으려고 온갖 루머 다 퍼 나를걸.
질색한다는 뉘앙스가 담긴 말이었다. 솔직히 나도 거기엔 공감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우리 회사가 거론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수 나쁘면 저기 싸움에 등골이 터질 위험성도 있었다.
그걸 넌지시 알려 주니 지원겸에게서 몇 가지 추측성 이야기가 나왔다.
- …그, 너네 회사 내부에 미꾸라지 몇 마리 있다며. 혹시, 거기 의견이냐? 얘네 데리고 가는 거?
“아직 모른다니까요. 애매해요. 그 사람들이 넘어오게 되면 단점도 있겠지만 장점도 크거든요. 서 대표님 생각인지, 아니면 또 당한 건지 확인을 해 봐야겠어요.”
- …또?
“아, 멘토님, 그 기사 못 보셨어요? …저희 경연 또 나가요.”
- 아아~ 그거? 안 그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더 큰 게 터져서 잊고 있었네. …또라고 하는 거 보니까 그쪽은 당한 건인가 보다?
지원겸이 아픈 구석을 찔렀다. 어쩐지 디레스트와 공동 출연을 하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까 물어보려다가 더 큰 거에 놀라서 깜빡 잊고 있었나 보다.
허심탄회하게 맞다고 설명해 줬다. 그랬더니 거기도 출연자 리스트 물망에 올랐었다며 사실을 알려 준다.
- 우리도 이름 거론되고 있어.
“……네?”
- 기사로 본 리스트가 전부가 아니라고. 너 제대로 안 읽었지. 출연진은 총 여섯 그룹이라고 적혀 있었잖아.
“아, 그러고 보니까…….”
기사에서 봤던 프로그램의 포맷이 떠올랐다. 확정됐다고 나온 그룹명을 밝힌 곳은 단 네 군데뿐이었다. 설마…….
심란한 마음이 앞서 지원겸을 떠봤다. 여기까지 출연하게 된다면 난리통일 것은 분명했다.
“설마, 멘토님네도…….”
- 어, 얘기 오가는 중. 멤버들 일부는 상관없다고 하는데, 몇은 반대하고 있어. 뭐, 우리가 생각한다고 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큰 문제라고 하면 대표님이 이 프로그램 출연에 긍정적인 의사가 있다는 거?
“…아.”
망했다. 지원겸도 반쯤은 포기했다는 듯이 해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더 나한테 연락하려고 난리였구나.
정말 디레스트가 우리 쪽으로 이적하게 된다면 인클루, 아니 지원겸의 입장에선 디레스트를 적이라고 판단하기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 온 골은 있는데, 그 원망의 대상이 애매하게 떠 버리는 것이었다.
회사로 봐선 디레스트란 산이 사라진 MXP만 견제하면 되니 좋다고도 할 수 있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해야 한다.
“지금 심경이 어떠세요?”
- 내가 물을 말 같은데? 넌 지금 어떠냐?
“하아, …복잡합니다.”
- 멘토님도 이하동문이다.
내 한숨을 들은 지원겸은 뭐가 웃긴지 낄낄거렸다. 시원시원한 건 알고 있었지만, 회복 한번 참 빠른 듯하다.
미워할 땐 신명나게 미워하더니 지금은 도리어 조금 호쾌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 통화를 통해서 가야 할 방향을 정한 것 같았다.
결국 지원겸과는 다시 한번 자세한 상황을 파악한 후 재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나 먼저 닥친 상황부터 확인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한지헌과 오병은의 이름 위에서 손가락을 올려놓고 고민하던 찰나였다. 우리를 이 복잡한 사태에 끼게 만든 당사자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도경]
궁금한 게 많죠? 전화 가능합니까?
“…장난하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호랑이가 알아서 연락을 해 왔다. 가능하다고 답장하자마자 길게 진동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신해신입니다.”
- 통화는 오랜만이네요. 활동 잘하고 있냐고 묻고 싶은데, 그리 반갑진 않을 것 같아요.
“…활동은 잘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대표님, 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궁금해합니다.”
핸드폰 너머로 들린 서도경의 목소리는 평온하다 못해 웃음기를 담고 있었다.
…어라? 이럴 인간이 아닌데. 저번에 조진만에게 당했을 때 봤던 태도와는 너무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상함을 감지하여 말을 잃자, 낮게 웃어 보인 서도경이 이야기했다.
-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음, 그럼 오늘 스케줄 완료하는 대로 미팅하시겠어요?
설마, 설마. 호쾌하다 못해 유쾌한 서도경의 말투에서 뭔가 말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사람…….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 입은 착실히 대답했다.
“…네.”
- 좋아요. 그럼 오 팀장님께 전달해 놓겠습니다. 이따 뵙죠.
끊긴 통화 액정을 살펴보며 새로운 가설이 하나 떠올랐다. 그건 어쩌면 우리 대표가 MXP나 엔필름보다도 무서운 인간이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