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미팅하러 왔던 건지 연습실 방문 복장치고는 단정한 차림의 김환준이었다. 뒤쫓아 오던 멤버들은 나와 대치하고 있는 김환준을 보곤 등 뒤에 붙어 고개를 내밀었다.
“어? 어?!”
“안녕하세요.”
“예, 일단 안녕하세요.”
손가락질하는 권혜성과 더불어 떨떠름하단 표정으로 마주 인사해 주는 이정원이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들어오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맞닥뜨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단 얼굴이다.
“다들 왜 그러고 있어? …아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아, 이유준 씨죠? 이렇게 뵙게 돼서 기쁩니다.”
뻘쭘한 얼굴로 서 있던 내 뒤에선 물통에 물을 따라 온 이유준이 나타났다. 이정원 다음으로 주저 없이 연습실에 들어간 후 김환준에게 대뜸 인사를 던진다.
김환준은 그런 이유준에게 재밌다는 듯이 손을 건넸다.
웃으면서 주고받는 악수가 저렇게 살벌한 일인가 싶다. 이유준과 함께 왔던 문채민은 권혜성과 윤명의 사이에 껴서 그 광경을 구경 중이었다.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돌아보니, 나 대신 고통을 드러내고 있는 강태오가 보인다.
“환준이 형~ 어?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하이사인 후배님들 아니야~”
김환준만 보여서 이상하다 싶은 순간이었다. 문 뒤쪽 벤치에 앉아 있던 디레스트의 멤버들이 모습을 보였다. 가장 먼저 일어나서 반갑다는 듯이 말을 거는 건 라디오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도민이다.
“그러니까, 여기가 명이 씨? 여기가 혜성 씨 그리고 막내인 채민 씨!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세요.”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럼~ 이제 한식구가 될 건데. 하핫! 너무 갑작스러웠나? 그래도 잘 좀 부탁해요.”
도민은 묘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는 제 리더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가장 가까이에 모여 앉아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관전하고 있던 멤버 셋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그사이, 강태오도 멀리서 고갯짓하는 다른 멤버들과 인사를 나눴다. 많이 어색해 보이는 태도였지만, 이전처럼 경계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유준과 대화를 나누는 김환준을 보니 저렇게 둬선 안 될 것 같았다. 곧 연습도 들어가야 하고.
우선은 김환준에게 이야기하자는 제스처를 보냈다.
“아, 죄송해요. 미팅 끝나고 돌아가기 전에 회사 구경 좀 한다는 게 방해해 버렸네요.”
“얘들아, 너희 먼저 연습하고 있어. …선배님들 좀 모셔다드리고 올게.”
김환준과 디레스트의 멤버들이 문 밖을 나서던 찰나였다. 가까이 다가온 이정원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야, 해신아. 그냥 대충 주차장 인근에 버리고 와.”
“버리다니…….”
“누구든 차 끌고 왔을텐데, 여기서 뻐겼으면 뻔하지. 일부러 한 거야, 지금 저거.”
“그건 나도 안다.”
이정원의 가설에 고개를 끄덕이자 연습실 한가운데 서 있던 이유준이 다가왔다. 그러곤 김환준과 악수를 했던 손을 쥐었다 펴며 혼잣말을 내뱉듯이 이야기해 줬다.
“재밌는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안 그런 척 손에 힘 주더라. 형, 저 사람. 이제 믿어도 되는 거 맞지?”
“…생각보다 유치한 구석이 있네.”
쪼그려 앉아 있던 권혜성도 뒷짐을 지며 문가를 바라봤다. 아까완 달리 제법 침착한 표정이었다.
“애매모호하게 중립인거지~ 형, 저기 돌아본다. 갈 거면 얼른 갔다가 와~”
“어, 어.”
“저희만 가요?!”
권혜성이 눈짓해 줌과 동시에 몸을 돌린 김환준이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다른 멤버들도 여길 보고 있는 게 그냥 빨리 보내 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등을 한 대 치는 이정원에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쳐 지나가는 내 옆으론 강태오가 작은 목소리로 조언했다.
“…일단 방심만 하지 마.”
“오케이.”
* * *
왠지 부담감이 넘치는 상황에 껴 있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김환준을 제외한 디레스트 멤버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될 것을. 저마다 눈치를 살피는지 눈동자가 구르는 소리라도 들릴 것 같다.
대충 예의만 차리자 싶어서 김환준에겐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사실 이건 그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오늘이 라스트 미팅이셨어요?”
“네, 계약 도장 전부 찍었습니다. 대충 여론 보고 알고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어요?”
쉽게 말해도 꼭 배배 꼬는 인간이다. 김환준은 지금 여러 가지로 욕먹고 있는 자신들을 알고 있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꼭 사람 할 말 없게 만든다며 고개를 돌려 궁시렁거렸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멤버 하나가 여길 슬그머니 바라본다.
아차, 깜빡 잊고 있었다. 지금 여긴 사방이 적이었다. 둥글게 웃으며 말을 돌리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맞다는 소리로 듣겠습니다.”
“정답.”
“차 타고 오신 것 같으니까 주차장으로 가시는 거죠?”
“네, 올 땐 저희 차 타고 왔거든요. 뭐, 매니저님은 없었지만?”
그러고 보니까 멤버들을 제외하면 평소처럼 케어하던 인력이 없는 상태였다. MXP와는 완전한 결별이 진행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뭐,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금 이건 MXP의 기 싸움일 수도 있었다.
연예계엔 계약 종료 이후 상대방을 압박하여 다시 불러들이는 작전도 자주 있었으니까 말이다.
“서 대표님이 바로 인력 붙여 주시겠다고 했는데, 저희가 거절했습니다. 활동 정리될 때까진 저희끼리도 한번 지내 보고 싶었거든요. 그렇지? 윤형아?”
“어~”
김환준이 고갯짓하자 주변에 있던 윤형이라 불린 멤버가 주머니에 있던 차 키를 꺼내 흔들어 보인다.
그동안 루머로 고생했던 것치곤 모두 얼굴이 밝아 보여 이상했는데.
이제 보니까 멤버들은 하나같이 모두 튼튼한 정신력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궁금하지 않았던 사실까지 알게 된 이후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디레스트가 타고 온 걸로 보이는 차량으로 다가갔다. 운전석에 차 키를 든 멤버가 올라타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사람들도 탑승했다.
김환준은 마중을 나온 내 앞에 서서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직도 경계하는 것 같은데. 뭐, 시간이 약이겠죠. 그래도 근래 말했던 건 전부 사실이니까, 그걸로 좀 봐주세요.”
마지막까지 능글거리는 태도를 고수하더니 이내 차 문을 닫으며 손을 흔들었다.
“뭐야, 저 인간…….”
멀어지는 디레스트의 차량을 바라보며 지금 이게 현실인가 뺨을 꼬집어 봤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내 입장에선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 * *
한쪽이 난리여도 우린 상관없다고 컴백한 일정에 맞춰 스케줄을 다니던 날이었다. 오늘은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바랬던 경연 프로그램의 첫 대면 촬영일이었다.
디레스트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게 공식 기사화되어 갈 때쯤 프로그램에 대한 명칭이 오픈됐다.
[크라운 게임(Crown game)]
일명 왕의 자리를 컨셉으로 다투는 아이돌 서바이벌이었다. 초반에는 김환준의 말대로 이런 포맷이 아니었단 걸 알게 됐다. 아이돌 멤버들이 나오는 건 맞았지만, 새로운 팀을 만들어 퍼포먼스를 보이는 방식의 무대형 프로그램이란 사실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 계획이 전면 철회되었다고 설명했다. 엔필름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팬덤 내 경쟁을 통한 시청률 공급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춤과 노래만 선보이던 경연 프로그램은 여섯 아이돌 그룹을 불러 단계별로 무대를 하는 작은 서바이벌이 되었다.
팬들도 이 소식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는지 여섯 그룹의 리스트가 떠올랐을 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라인업 전부 다 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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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서 애매하게 말하던 그룹들까지 전부 다 밝혀짐
연차순으로 따지면
[디레스트]
[인클루]
[원더보이즈]
[얼티밋나인]
[하이사인]
[블릭투]
이렇게 인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환가 돌판 싸움 오지겠는데
본진있는 순이들에겐 안타까운 마음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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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눈들은 체념했어 유어돌 타고 올라와서 버틸만 해
- 시바 가보자고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들아 울지마 눈물 흘리는 거 다 보여
- 와 그럼 이민석 하이사인이랑 다시 마주치는 게 서바이벌인거야?? 나 같으면 엔넷 죽이고 싶었을 듯
- 랜드들이 그 마음이다 ㅎ 엔넷 사장 객사 기도 3일차 내가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매일 기도할거야
- 디레스트랑 인클루 올 해 무슨 일 났음???? 저기 또 붙었네 아니 본 활동기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서로 못붙어서 안달이야 시바 정신차려 ~~~~
- 근데 지금 쟤네 싸우기도 애매하지 않냐 클러스터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MXP인데 디레스트가 탈엑스피했잖아;;
- 난 하이사인이 제일 웃김 아니 쟤네 관련 없는 그룹이 없네 ㅋㅋㅋㅋㅋㅋ 디레스트랑은 한솥밥 식구됐고 인클루랑은 멘토로 인연있지 않음? 얼티밋 나인 노래로 1차 했던 것도 유명하고 원더보이즈 민이랑은 같이 나갔던 출연진이야 ㅋㅋㅋㅋㅋ 블릭투라도 없나 싶었더니 아니 얘네 작년에 신인상으로 몇 번 붙은 적 있네
- 마치 거대한 하나의 아이돌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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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사건도 있었고, 서로 얽히고 얽힌 관계였기 때문에 남다른 관심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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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 게임이요? 시발 저 왕좌 왕관 높은 곳
세 단어에 알러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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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저거 전부
서바이벌 단골 소재 아니냐고 ㅋㅋㅋㅋ
하필이면 또 게임을 붙여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냐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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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끼들아 작작 우려먹어 ㅜ
제발 우리 멘탈 좀 놔두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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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스트레스를 표현하던 팬들은 이내 새로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관심이 쏠리면서 들이닥칠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우리가 데뷔했던 프로그램인 유어돌은 엔넷에서 제작한 서바이벌이었다. 거기서 경합하여 엔필름 직관의 엔터테인먼트 소속인 우리가 또 엔넷발 프로그램에 나가면 특혜를 받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 응 주작 믿고 거릅니다
- 하이사인이 좋은 성적 거두면 백퍼 뭐 있는 거 아님??? 아 이젠 디레스트도 인가 ㅋㅋㅋㅋ
- 타이밍 너무 그들을 위한 리그… 같은 느낌이라 흠스러움 앵간히 못하면 바로 들통날 각 아니야??
애초부터 이런 건 예상하던 부분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할 순 없다는 걸 알리지 못해 난감했다.
사실 엔필름과 서도경이 기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특혜란 건 있기 힘들다고 봐야 했다.
오히려 서도경을 누르려고 악조건을 받으면 악조건을 받았겠지. 다소 억울한 루머 속에서 멤버들과는 여러 이야기를 나눠 놨다.
‘잘못하면 영락없이 주작 취급받을 텐데…….’
‘성적으로 좋은 얘기 들으려면, 그만큼 실력을 보여야 한단 뜻이지?’
‘평가 기준이 까다로울 만큼, 우린 잘해야 본전인 프로그램인 거야.’
‘그래서 대표님도 그렇고, 형들도 전부 그랬던 거구나…….’
어차피 출연은 확정 지어졌으니 이렇게 된 거 실력으로 인정받아야겠단 역발상을 시전했다. 매번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유어돌과 엔필름 관련 사항을 지울 기회라고 생각했다.
멘탈이 강한 멤버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정면 돌파를 해야겠단 생각이 우선시됐다.
대기실을 나가던 순간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쳐 보자는 다짐이었다.
[받지 마]
오늘 알죠? PD 조심해요. 그럼 금방 봅시다.
김환준에게 받은 문자를 보니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