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09화 (208/328)

209화

와이튜브로 공개된 무대 반응을 체크했다. 생각보다 나빠 보이진 않는데, 본방송에선 어떤 식으로 악의적인 편집이 들어갔을지를 몰라 눈여겨봐야 할 것 같았다.

컴백 이후 3주차를 넘어가던 시점에서 촬영에 들어갔던 크라운 게임이었다. 1차 경연을 준비하는 이제는 Rule(도취)의 활동이 완전히 종료됐다.

본격적으로 경연 준비에 몰두하기 위해 회사에 출근했다.

“그러면 임시로 1팀과 2팀이 분리된다는 거죠?”

“네.”

서도경이 보이지 않아 물어보자 한지헌에게 새로운 사실을 전달받았다. 디레스트가 프로그램 출연을 확정 지은 이후 메이터스로 소속을 이전하며 같은 소속사 내 두 그룹이 한 경연에 출연하게 됐다.

회사에선 이를 보고 임시방편으로나마 두 개의 본부를 세워 준비에 돌입하고자 하는 듯하다.

얼핏 지나가며 보인 미팅 룸 유리 너머로 디레스트가 앉아 있는 걸 확인했다. 우리도 우리지만 저쪽은 제대로 지뢰를 밟아 우중충해 보인다.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도 멤버들은 그에 대해 쑥덕거렸다.

“와우. 분위기 대박.”

“권혜성 너… 진짜 눈치 없다…….”

“야, 윤명, 근데 솔직히 네가 봐도 저기 난리 같긴 하잖아.”

“뭐, 그렇긴 하지…….”

권혜성과 윤명이 앞서 걷는 한지헌의 눈치를 보면서도 궁금했다는 듯이 대화를 나눈다. 곁에 있던 문채민이 힐끔 지나온 문을 돌아봤다.

“형들, 우리도 썩 순탄대로는 아니야.”

“권혜성, 윤명. 오늘 너희 둘은 요주의 대상이야. 입단속 잘해.”

“에이~ 정원이 형은 우리한테만 뭐래.”

이정원의 타박에 권혜성이 뒷짐을 지며 능청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윤명은 별다른 대꾸 없이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까부터 고민하는 듯한 얼굴의 이유준이나 별다른 말은 없지만 걱정스럽다는 뉘앙스를 보인 강태오가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한지헌이 우리를 데려다준 장소 때문이었다.

아, 이 문 별로 열고 싶지 않은데…….

“야! 왔냐! 왜 이렇게 늦었어!”

“…안녕하세요.”

그건 바로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인크루의 멤버들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가운데에서 탁자를 짚고 일어선 지원겸이다.

“회사 좋던데요~? 엄청 깔끔하다~ 신축이라 이건가?”

“넌 또 무슨 건물 평가를 하고 있어. 우리가 너무 일찍 약속을 잡았죠?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녕하세요~”

두 그룹 사이에 인사가 오가며 한지헌이 문을 닫아 주고 사라진다. 디레스트는 노선도를 파악하기 위해 긴급 모집된 거였지만, 우리 쪽은 다른 방향으로 인클루와 만남을 가졌다.

트레이드할 곡은 각자 알아서 하되, 매칭 퍼포먼스에 관련된 회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뭐, 겸사겸사 커버할 만한 곡도 추천받으면 좋고. 이정원과 이유준은 나와 같은 속셈을 갖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3배는 더 친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으음, 야, 신해신. 오늘 몇 명은 좀 수상쩍어 보인다?”

“그럴 리가요. 어서 앉으시죠.”

“…쓰읍, 잘못 걸린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자리하는 지원겸을 보고 우리도 적당히 인클루의 멤버들과 섞여 앉았다. 프로그램 측엔 보고하지 않은 비밀 만남이었기에 어지간한 큰 틀은 모두 맞춰 놓기로 얘기했다.

“자, 그럼 본론부터 얘기하죠. 저희 매칭 퍼포먼스, 무슨 노래 할까요?”

“오~ 해신이 형, 오늘 쿨하다!”

“쟤가 웬일이래.”

“형들, 해신이 형 눈이 죽어 가잖아. 제발 지방 방송들 좀 꺼…….”

시끌벅적한 상황에 손을 든 나만 뻘쭘해진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자 그런 우리를 보고 있던 지원겸이 킬킬거렸다.

“진짜 여전하구나~ 자자, 의견 있으면 우선 얘기 좀 해 보자! 일단은 우리 임시 아군이야! 뭐 좋은 의견 있어?”

“엇! 나! 나! 나 하이사인 노래 해 보고 싶은데! 1집 커플링곡 있잖아! 혜성 씨 센터 섰던 거~”

“오! 선배님! 뭘 좀 아시네요!”

“시끄러운 애한테 시끄러운 애가 붙었네…….”

여러 의견이 오고 가는 사이 팀 내 리더와 중재자 역할을 맡은 멤버들이 한곳으로 모였다. 우리 쪽은 나와 이유준, 이정원. 인클루 쪽은 지원겸과 잘 웃는 얼굴의 차분한 멤버 하나였다. 활동명이 진재랬나……. 본명은 진재영이었는지 지원겸에게서 부름을 받는다.

“‘Light’도 괜찮긴 하지. 야, 재영아, 넌 어떻게 생각하냐.”

“흐음, 후배님들 노래하는 것도 좋다고는 봐.”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이유준이 뭔가 아쉽다는 말을 꺼냈다.

“사실 전 선배님들 곡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나도 유준이 말에 공감. 혹시 추천해 주고 싶은 노래 있으세요?”

이정원도 이유준의 의견에 힘을 실으며 지원겸과 진재영에게서 리스트를 추천받았다. 이 자식들, 다 저거 기억해 놓고 트레이드 때 써먹으려는 거구나. 저기도 우리 수작은 눈치챈 것 같은데, 대놓고 해서 그런지 봐주려는 듯 웃어넘긴다.

“그럼 이거랑, 이거랑, 이거. 나쁘진 않지?”

“네.”

분명 웃고 있는 무리임에도 시커먼 기운이 넘실거린다. 아, 피곤해. 미간을 짓누르니 대화가 종료된 사람들이 날 쳐다봤다.

“야, 신해신. 넌 무슨 아이디어 좀 없냐.”

없긴 왜 없겠어. 댁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내겐 매칭 퍼포먼스곡으로 제안해 보고 싶은 노래가 하나 있었다.

“멘토님네 곡인데. Piece of cake요.”

“뭐?”

“진짜?”

“…그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이유는?”

예상외의 선곡에 다른 멤버들도 모두 여길 돌아봤다. 지원겸은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거, 다 생각이 있다니까. 가까이 모이라며 손을 까딱였다.

* * *

비밀 회담이 끝난 이후였다. 돌아가려는 듯 짐을 정리하는 인클루 멤버들 사이에서 지원겸이 슬쩍 내게로 다가왔다.

“너, 머리 좀 썼다?”

“일단은 아군이라면서요. 그리고 저도 언제까지 도움만 받을 순 없죠.”

“어쭈, 장해~ 그나저나 그쪽은? 잘되고 있냐?”

지금 지원겸이 묻는 건 대기실에서 꺼냈던 이야기에 관한 것이었다. 한동준 PD와 뒷일을 모의하는 놈들을 어찌 잡을 거냐는 질문이다.

“음, 이제 알아보려고요. 그래도 무모한 시도는 안 해요. 뭔가 걸리는 게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아직 실행한 건 없었지만 슬슬 행동 개시를 해 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걱정하진 말란 대답으로 받아쳤다.

다음에 볼 때는 꾸며진 장소에서 곡을 정하는 것 같은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대동한 이후일 것이다.

그때 적절한 연기를 부탁한다며 능청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뭐, 첫 경연의 아군으론 괜찮네. 오늘 나름 건져 간 것도 있고.”

“그럼 다행이고요.”

“…쟤네, 왜 이렇게 능글맞아졌냐?”

“글쎄요~”

지원겸이 웃으며 인클루의 멤버들을 상대하고 있는 애들을 쳐다본다. 저기도 얻은 게 있었는지 만족스럽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인클루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 이만 가 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후죽순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줬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미팅 룸 너머로 권혜성이 히죽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혀엉~ 오느을~~”

“윽, 야, 붙지 마!”

바싹 다가와선 내 옆구리에 손가락을 굴려 댄다. 간지럽히는 그 행동에 질겁하며 달아나니 팔짱을 끼고 있던 강태오가 메모를 적은 쪽지 한 장을 테이블 위로 던졌다.

“저기서 추천했던 인클루 관련 후보곡 리스트. 전부 받아 적어 놨어.”

“태오 형, 인기척 죽이기 달인이 되더니, 이런 곳에 능력을 써먹네.”

“…다 너희 때문이잖아.”

문채민과 윤명 그리고 권혜성을 피하느라 소리 없이 움직이는데 이골이 났던 강태오였다. 저기 삼인방이 수다를 떠는 척 인클루 멤버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곡을 추천받으면 조용히 있던 강태오가 그걸 캐치하여 확인해 놓는 방식을 채택했었나 보다.

오늘의 아군은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고. 매칭 퍼포먼스는 매칭 퍼포먼스고, 우리에겐 트레이드 커버곡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카메라도 관계자도 없는 이 만남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참이었다.

안 그러는 척 공태서에게 랩 파트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이유준이나, 멤버들의 파트와 피치 관련 대화를 하는 척하면서 인클루의 곡 전반을 작곡하는 멤버 둘과 붙어 있던 이정원도 마찬가지였다.

제각기 기억해 뒀던 내용들을 강태오가 던진 메모지 위로 적었다. 하나같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게 악마들이 따로 없는 모습이었다.

“자, 그럼 우리도 커버곡 경연을 준비해 볼까?”

“…이제 보니까 저기가 보스였네.”

“명이 형, 쉿.”

윤명의 말은 애써 못 들은 척 종이를 살폈다.

“우선 내가 생각했던 노래도 있긴 한데.”

“뭔데, 꺼내 봐. 너, 아까도 꽤 괜찮은 의견을 냈잖아.”

손을 들어서 종이 한가운데에 적혀 있던 노래 하나를 짚어 냈다.

“code' B(bar code) 이거.”

“의외네? 그래서 근거는?”

“음, 새로운 컨셉의 도전 정도라고 해 둘까. 좀 모험적인 시도일 것 같기는 하지만. 센터로 생각해 둔 녀석도 하나 있고.”

이정원의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날 따라서 한 명을 바라봤다.

“나?”

그건 바로 강태오의 옆에 있던 문채민이었다. 자신을 가리키며 놀랐다는 표정을 짓는다.

* * *

경연 초반 과정도 잘 진행되고 있겠다. 슬슬 다른 쪽도 확인해 봐야 타이밍이 찾아왔다. 모두가 잠든 새벽녘, 거실로 나와선 식탁에 앉아 방법을 구상하던 중이다.

과거의 인연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있었다면 쉽게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기억은 어디까지나 기억이라고 그 사람들은 현재의 나를 알지 못했다.

아, 희태 선배나 다른 팀원들이랑 인연 좀 터 놓을걸. 유어돌 촬영 땐 저당금이니 아이돌 도전이니 정신이 없어서 그걸 놓친 게 후회스러웠다.

방송국 내부 정보를 아는 건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쉬쉬하고 있지만 제작진과 스태프 사이에선 결국 모든 정보가 오고 갔기 때문이었다. 외부 유출이 안 될 뿐이지 관련 업계에 발만 들이고 있다면 어지간한 이야기는 모두 확인이 됐다.

엔터에서 방송국 내에 다리를 만들려고 밑밥을 까는 것도 그게 이유이다.

지금 신분으론 뭘 한들 관계자들이 쉽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얼굴도 이름도 알려졌으니까, 이쪽으론 포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잠깐, 이름이랑 얼굴이 알려졌다? 그럼 반대로 아무것도 모른다면?”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눈이 번쩍 떠졌다. 분명 그걸 봤던 것 같은데. 내가 불러낸 것은 박스 상점이었다.

“아, 있다!”

과거 기억이 잘못됐던 것이 아닌지 프리미엄 탭이 아닌 일반 탭에서 발견한 상품이었다. 예전엔 이걸 어디다 써먹냐며 어이없어했던 것이 인상에 남아 현재 탈출구가 되어 줬다.

가격도 저기에 비하면 월등히 저렴하지. 아이돌로선 썩 의미 없는 능력이어서 그랬을까, 단 500코인으로 해결이 되는 상품이었다.

[섀도우 이레이져 - 일회성 아이템]

버프: 당신에 대한 모든 정보가 삭제됩니다. 단, 아이템 사용이 종료된 이후, 사용 당시 기억은 말소됩니다. (제한 시간: 12시간)

나는 지금부터 이 아이템을 사용하여 크라운 게임 제작진 본부 속에 침투해 볼 예정이었다. 출입만 넘긴다면 정신없는 방송국 내부에선 처음 보는 인물도 도급 인력으로 숨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난 경력직이란 말이지?”

업무를 보는 척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의심을 살 것 같을 땐 업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처럼 전문적으로 일하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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