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12화 (211/328)

212화

시작은 산뜻한 느낌의 신스 베이스였다. 등장을 보여 주는 서정적인 변주에서 빠른 BPM으로 전환이 됐다.

무대 바로 직전 한다은과 최정윤에게 주입당하듯이 듣게 된 멤버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한가운데로 치고 나오는 것은 인클루의 지원겸이었다. 어깨에 걸치고 있던 스포츠 백을 내던진 채 손을 이마에 댔다. 반대쪽 손은 허리에 올리곤 리듬에 맞춰 다리를 꺾으며 씨익 미소를 짓는다.

- Oh d-day 난 준비가 됐어

새로 마련한 Sneakers

무릎이 찢어진 파란 Overalls을 어깨에 걸쳐 (Hey)

도입부를 넘어가니 뭄바톤 리듬이 경쾌하게 느껴지는 구간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일렉트로닉한 사운드가 섞여 있어서 해외 팝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화려한 음악에 맞춰 학생들을 자처하던 백댄서들이 넓은 동선으로 퍼져 나갔다. 환호하는 모습의 손뼉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권혜성이 발을 맞춰 움직인다.

손가락 두 개를 겹쳐서 이마 위에 붙였다 떼어 내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춤을 췄다. 청 재킷 속 받쳐 입고 있는 회색 후드 집업의 줄을 당겨 재치 있는 무드를 만들어 냈다. 특유의 높지만 텐션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특이한 전개의 곡과 잘 어울린다.

- At last 어때? 평가는 듣지도 받지도 않을게

지금을 즐겨 봐 No way

겁을 먹는 건 아니겠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권혜성이 옆으로 비켜서면서 백댄서들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엔 이동식 계단형 벤치가 놓여 있었는데, 위에 앉아 있는 것은 이유준과 공태서이다. 레더 재킷을 걸친 이유준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공을 손가락 위에서 굴렸다. 공태서는 무릎이 훤히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손을 뻗어 이유준이 갖고 있던 공을 빼앗는 시늉을 했다.

해외 하이틴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근사한 남자 둘의 케미에 팬덤에선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간단한 모션을 취한 둘은 싱잉에 가까운 랩을 주고받으며 비트에 맞춰 안무를 췄다.

앉아서 팔을 돌리던 순간이었다. 벤치 뒤편에서 여러 명의 백댄서가 나타나 그들의 손짓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 너의 (나의)

모든 걸 펼쳐 보자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 (Absolutely)

그건 당연한 일이니까

자연스럽게 그저 웃어 주면 되는 거야

낮고 묵직한 목소리의 이유준과 탁기가 섞여 있으면서도 재지함이 들어 있는 공태서의 목소리가 좋은 합을 이뤄 낸다.

파트를 끝마친 둘은 몸을 일으켜 카메라를 향해 따라오란 듯이 손가락질했다. 공태서의 행동에 이유준이 입 동굴이 파일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카메라 양 측면에 손을 올리고선 운동선수 같은 활달한 느낌의 동작을 취했다. 대형 스크린 위로는 그런 이유준의 얼굴이 꽉 들어차며 팬들의 비명을 자아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코트처럼 꾸며져 있는 무대 정중앙이었다. 몽환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오며 가운데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건 바로 신해신이었다.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는 고개를 까딱이며 윙크한다.

양손을 모은 상태에서 브이자 대형을 갖춰 서 있던 멤버들이 싸비를 들어감과 동시에 사이드로 퍼져 나갔다.

신해신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능숙한 바이브를 뽐내며 최고 고음까지 쭉 올리는 중이었다. 반은 까서 넘긴 앞머리가 신해신의 측면 얼굴을 잘 보이게 만들었다. 심플하지만, 밸런스 있게 착용한 액세사리하며, 살짝 투박한 것 같은 동작까지 누가 봐도 하이틴 영화의 남자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 One two three piece of cake

조금만 더 기다리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야 (I know)

신해신의 파트에 맞춰 더블링을 해 주는 건 목소리에 힘이 있는 지원겸이었다. 합을 맞춰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도 생생함이 느껴지는 라이브를 진행했다.

- A piece of cake

마법처럼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My dream)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Easy does it (Yhah yeah-)

헷갈려하지 마 시작이야

잘은 모르겠지만 곁에서 들리는 대화에 의하면 기존 원곡은 청량하고 귀여운 느낌이 강한 댄스곡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노래를 세련된 뉴 잭 스윙과 팝적인 그루브로 탈바꿈했다.

컨셉까지 미국 하이틴물의 인기 있는 운동부 무리로 선별하여 마치 하나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그리 길지 않은 전주를 배경 삼아 대형이 크게 변경됐다. 다시 뿔뿔히 흩어지는 듯한 동작이었는데, 이번 주인공은 캐비닛 앞에 서서 편지를 쥐고 있는 윤명이었다.

책들 사이에 가득 끼인 종이 뭉텅이를 들어 올린다. 흰 얼굴 위로 펌을 하여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살랑이는데, 그걸 지켜보는 듯한 동작으로 춤을 추던 백댄서들이 윤명에게 다가갔다.

남자들은 하이터치를 하는 것 같은 몸놀림을 했으며, 여자들은 뒷짐을 지고 한 손을 흔드는 둥 호감을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섞여 있던 윤명이 입고 있던 야구 점퍼의 소매를 걷었다.

측면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눈웃음을 짓는다. 물론 이 장면도 대형 스크린에 생생하게 중계되는 중이었다. 라이브로 찍는 것 같은 모션이 방청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맑지만 가늘지 않고 탄탄한 바리에이션을 지닌 목소리였다. 그루브한 박자에 맞춰 리듬을 타며 웨이브를 하니 핫한 장면이 연출됐다.

- 흩날린 바람에 몸과 마음을 담아

Wow 크게 내딛은 그 걸음을 따라 (Fly high)

풀린 끈은 잠시 무시하더라도

그리고 그런 윤명에게 덮치듯이 달려드는 멤버가 하나 있었다. 캐비닛 너머에서 큰 보폭의 발걸음으로 어깨동무를 한 박선빈이었다. 뒤쪽을 가리키는 손짓에 맞춰 댄스 브레이크가 시작됐다. 팀 내 메인 댄서를 맡고 있었는지 큰 동작이 시원시원하게 이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벤치 위에서 권혜성이 뛰어내리며 박선빈과 합류했다. 큰 품의 셔츠를 펄럭이는 안무가 특유의 시원한 보컬과 잘 어울렸다.

- It`s like 잠시 이 시간을 즐겨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 (Try it out)

가슴이 뛰는 이 순간

난 누구보다 자유를 느껴

권혜성과는 어깨를 부딪치며 붙었다 떨어지는 동작을 이어 갔다. 개구진 두 남자에게서 돌아간 카메라가 등을 지고 서 있는 남자 한 명을 촬영했다.

그건 청으로 된 셔츠를 걸치고 있던 강태오였다. 타이밍에 맞춰 돌린 얼굴을 카메라가 줌 인한다. 러프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보이며 목에 걸친 목걸이가 크게 흔들렸다.

머리부터 어깨를 터치하는 그루브한 동작에 맞춰 강태오 특유의 섬세한 춤선이 돋보인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화려한 비주얼과 안무가 겹쳐지니 장면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듯하다.

그 상태에서 강태오가 경쾌한 구간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깊지만 부드럽고, R&B풍과도 잘 어울릴 것 같던 음색이 편곡된 이 곡과 최상의 합을 자랑했다.

- 알잖아 실패도 성공도 그 무엇도

우리에겐 상관이 없다는 걸 (Ah-)

A piece of cake

Get it together

두려움도 기다림으로 바꾸는 마법

높게 치고 빠지는 피치도 무리 없다는 듯 소화해 내는 강태오였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이동해 멤버들과 합류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다시 신해신과 지원겸이 서 있었다. 둘이 함께 화음을 쌓아 올리며 가장 높은 텐션의 음을 찍어 냈다. 골반과 다리 보폭이 넓게 벌어지는 동작이 리드미컬하게 느껴졌다.

- One two three piece of cake

조금만 더 기다리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야 (I know)

1절과 달리 2절 싸비 후반부에선 다른 멤버가 새로운 목소리로 분위기를 탈바꿈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 사람이 원곡의 작곡가라던 서은휘 같았다. 노래를 만들어 낸 사람답게 이해도가 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브라스 리프에 맞춰진 청량한 음색이 곡에 색다른 묘미를 자아냈다.

- A piece of cake

마법처럼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My dream)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Easy does it (Yhah yeah-)

헷갈려하지 마 시작이야

힙하면서도 세련된 바이브가 이어진 무드에 맞춰 모든 멤버가 곡의 하이라이트를 즐겼다. 넓게 퍼져 춤을 추는 백댄서들이 보인다. 사방은 열광에 빠져 있었다. 경쾌하면서도 탄성 있는 박자가 귀를 사로잡았다.

손을 양쪽으로 터는 움직임에 맞춰 벤치 위 양쪽으로 거대한 현수막이 내려왔다. 자세히 보니 하이사인과 인클루의 공식 로고가 박힌 것이었다.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한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우승기와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아래 달려 있는 기다란 술들과 두툼해 보이는 벨벳 재질이 가 보지도 않은 대회 현장에 대한 생생함을 느끼게 해 줬다.

- 난 준비가 됐어 새로 마련한 Sneakers

꽉 동여맨 운동화 끈

더 높게 하늘 위로 Jump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가 다시 들림과 함께, 스크린 위로 커다란 로고가 떠올랐다. 저건 미국 대학교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운동부만의 고유 시그니처였다. 새로 제작한 듯 ‘CLUESIGN’이라는 영문이 크게 박혀 있었다. 환호하는 제스처의 백댄서들 사이에서 저마다의 자세를 취한 멤버들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그중 가운데에 있던 지원겸을 향해 아몬드 모양의 공이 날아들었다. 갈색에 가죽으로 이루어진 럭비공이다. 얼기설기 이어진 흰색의 실들이 지원겸의 손에 걸려 잡혔다. 한 손으로 캐치한 지원겸은 공을 옆구리에 끼며 손을 흔들고 몸을 돌렸다.

- 자유를 느껴 모든 건 A piece of cake

다 이루어질 거야

관객들의 함성에 맞춰 모든 멤버들이 걸음을 내딛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등을 보인 상태에서 고개를 돌리며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뮤지컬 같았던 퍼포먼스였다. 화려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공연과 풍성한 라이브가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대박…….”

거기서 유달리 내 눈을 사라잡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지원겸의 우측에 서서 땀에 젖은 채 헐떡이고 있던 신해신이었다. 까만 눈이 객석을 훑던 와중에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고른 치열이 훤히 드러나 시원한 미소가 쿵쿵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아악! 혜성아!”

“미쳤다, 진짜 해신이 오늘 미쳤다…….”

곁에 있던 한다은과 최정윤의 앓는 소리에도 정신이 쉽게 차려지지 않았다. 신해신의 얼굴 위에 세팅되어 있던 앞머리가 흘러내리는 순간, 한 가지를 깨달았다.

“망했다…….”

“어? 박 쌤? 얼굴이…….”

까맣게 암전된 무대 위를 보다가 나를 살핀 한다은이 눈을 크게 떴다. 거울을 보지 않았음에도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진 예상이 갔다.

“박 선생님, 설마…….”

“…네.”

그래, 나는 입덕한 게 틀림없었다. 폭풍 같았던 5분의 무대 끝에 나는 하이사인과 신해신이라는 아이돌 그룹 멤버에게 잠식당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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