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수고하셨습니다!”
“우와! 실수 안 했다!”
시끌벅적한 스테이지 너머.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다음 차례의 무대가 끝나면 새로운 파트의 경연이 시작되니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인클루 사람들과 서로를 다독이고 있는 멤버들을 이끌고 대기실로 향했다.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확인했다.
이건 본 경연 준비에 돌입하던 무렵, 새로 나타난 미션이었다.
[미션]
‘활동은 화려하게’ - 부속 미션 그 두 번째
크라운 게임의 첫 무대에서 강한 임팩트를 선보이세요. 라이브 + 안무 퀄리티 95% 달성
성공 시 - 보상: 1,000 코인 + 블랙 쿠폰 1매 + !HIT!어드벤티지 찬스
실패 시 - 페널티: 랜덤 (데미지 크리티컬 4단계 - 내용 비공개)
아직 초동 이벤트를 성공하지 못한 무렵이라 새로운 미션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전에 구매해 둔 미션 오프너가 큰 힘을 발휘했다.
하마터면 아무것도 모르고 경연 날이 되어서야 알 뻔했어.
이를 통해 인클루와의 무대에서 큰 임팩트를 남겨야겠다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래서 최종 퍼센티지는……?
새로 떠오른 화면을 유심히 살펴봤다. 파란빛으로 선명히 빛나는 공간 위엔 시스템에 의해 측정된 숫자가 적혀 있었다.
[무대 퀄리티]
현재: 96.8% (final)
…됐다! 남들 몰래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트레이드 커버곡은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페널티를 받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었다.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시스템을 확인하자 미션에 성공했다는 알림과 동시에 로딩 창이 나타났다. 보상과 코인도 중요하지만 저 ‘!HIT!어드밴티지 찬스’라는 것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저번엔 저당금을 부풀려 주는 큰 혜택을 전달해 줬다.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가해지는 행운같은 거였으니까. 이번엔 프로그램에 맞는 도움을 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생전 본 적 없는 방식의 능력이 주어진 것이었다.
[!HIT!어드밴티지 찬스]
스폐셜 버프
영구성 기능: 무대 몰입도 +200%
일회성 기능: 끼 스탯 일시 ‘S’ 업그레이드
*본 버프는 특수 버프로 영구성 기능과 일회성 기능이 동시 진행됩니다.
*시전자를 포함하여 1인의 동기화가 가능하니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아이템도 스킬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효과였다. 하지만 그 능력치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무대 몰입도가 영구적으로 주어진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실수할 일만큼은 절대 없을 거란 뜻이기도 했다.
일회성이나마 끼 스탯도 ‘S’로 올려 준다고 한다. 저건 마에스트로 이펙트를 구매한 당시 직접 겪어서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효과만큼은 반응으로 확인했었으니 뒤돌아볼 게 없었다.
고를 게 있다면 동기화 대상인데……. 다른 날이라면 모를까 오늘은 정해진 선택지가 있었다.
“형들, 나 옷 다 갈아입었는데. 탈의실 이용해도 괜찮아.”
커튼을 치며 나온 문채민을 바라봤다. 매칭 퍼포먼스 이후로 들어갈 트레이드 커버곡의 센터가 될 녀석이었다.
“…뭐야? 해신이 형, 왜 그렇게 쳐다봐? 형, 옷 갈아입을래?”
“아니, 난 조금 있다가.”
눈이 마주친 문채민이 당황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갈아입은 의상으로 인상이 달라진 녀석의 어깨를 두들기며 다짐했다.
문채민, 형만 믿어라. 스폐셜 버프 사용할게. 동기화 대상, 문채민.
[스폐셜 버프를 사용합니다. 시전자 ‘신해신’ 동기화 대상 ‘문채민’ 확인 완료.]
[신해신]
나이: 23
외모: A
보컬: A+
댄스: A-
운: B
끼: S
정보: 플레이어
[문채민]
나이: 19
외모: A-
보컬: B+ / 랩 A+
댄스: B+
운: A-
끼: S
경연에 대한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
* * *
모든 매칭 퍼포먼스가 완료된 이후였다. 오랜 녹화 시간으로 지칠 법도 했지만, 상당한 퀄리티의 무대들이 이어지니 방청석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다시 등장한 안지하에 의해 간략한 설명이 이어지고, 이제부턴 그룹 개별 무대인 트레이드 커버곡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잠깐 주어진 쉬는 시간에 한다은과 최정윤의 핸드폰을 구경하니 즉석에서 올라온 후기들이 인터넷에 판을 치고 있었다. 이 둘도 계정이 있었는지 무대를 본 후기를 설명하며 각자 최애에 대한 응원을 이어 가고 있었다.
나는 아까부터 눈에 들어온 신해신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반 장난으로 따라온 프로그램이었는데 입덕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다른 무대들을 보면 좀 괜찮아질까 싶어서 태연한 척 등장하는 그룹들을 봤는데 그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인지 크게 마음이 울리진 않았다.
어리고 풋풋한 멤버들이 저마다 내세운 컨셉으로 퍼포먼스를 이어 가는 걸 확인했다.
얼티밋 나인과 원더보이즈의 순서가 끝난 이후였다. 새로 정비된 세트 위로 검은 실루엣이 등장했다.
“어? 뭐지?”
“앞이랑 완전 다른가 본데요? 공학실인가?”
화려하되 세련된 복장을 하고 있던 앞 팀들과 달리 전투복으로 보이는 셔츠와 투박한 디자인의 가죽 워커를 신고 있던 신해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트장 위의 소품들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선이 달린 거대한 시스템 부스와 쇠로 이루어진 모니터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웅성거리는 방청석을 돌아본 신해신 뒤로 녹화에 들어간다는 알림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하이사인의 두 번째 경연곡이 시작됐다.
팟- 파란빛이 섞인 조명이 켜지며 무대 위가 환하게 밝혀졌다. 스크린에는 복잡한 영어와 알 수 없는 숫자들이 섞여 지저분하게 이어졌다.
빨간색으로 깜빡거리는 글귀들은 이내 거친 노이즈와 함께 사라졌다. 바코드로 보이는 가는 실선들이 나타나며 새로운 문구가 하나 떠올랐다.
[A fatal error occurred in the system.]
낮게 울리는 드럼 비트 너머로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키보드 자판을 치는 것 같은 사운드가 음악의 도입부로 연결됐다. 무전기로 보이는 기계를 찬 신해신이 고개를 돌리며 노래를 불렀다. 평소와 달리 저음의 파트를 맡아 경계하는 듯한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 갇힌 몸 사로잡힌 Desire
꿈을 잃은 아이는 Think less of someone
일렉트릭 베이스가 섞인 빠른 비트가 번쩍거리는 스크린과 잘 어울렸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빨간색의 조명이 쏟아지고, 고개를 돌린 신해신의 뒤로 스크린이 열리며 누군가의 모습이 비쳤다.
신해신과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으면서도 왼쪽 팔에 붉은 완장을 차고 있던 강태오였다.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신해신을 바라보더니 빠른 몸짓으로 달려들어 페어 안무를 췄다.
- 초심을 잃은 마음에
비바람이 휘몰아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버린 나, Who will come and rescue me)
마치 크게 싸우는 것만 같은 동작으로 서로를 향해 팔과 다리를 뻗는 춤이었다. 강태오의 손이 신해신의 뺨을 스치려던 순간, 커다란 안경을 쓰고 흰 가운을 입은 권혜성이 시스템 부스 너머에서 서류 더미를 던지며 나왔다.
강태오의 파트에 더블링을 해 준 이후 희번뜩하게 눈을 빛내는데, 그게 어딘가 미친 것 같은 광기를 표현해 냈다. 초입부터 강렬하게 이어진 음악은 메인 싸비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긴박한 전개로 진행되는 듯하다.
둘을 뜯어말리는 느낌으로 몸을 이동한 권혜성이 신해신과 강태오를 뒤에 둔 채 리듬을 타며 동작을 이어 나갔다. 어깨를 튕기는 움직임에 맞춰 신해신과 강태오가 같은 방향을 돌아본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종일관 무감각한 얼굴이었다.
그때, 몽환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변주하며 높은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성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컴퓨터 책상 너머 의자에 앉아 있던 이정원이었다. 강태오와 마찬가지로 붉은 완장을 찬 상태에서 권혜성을 향해 미소 지었다.
-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서
이상을 느껴 그 Sign을 발견해
절망의 늪에서 소리쳐 벗어나면 돼
이정원의 보컬이 끝나자마자 트랩 비트가 중첩되어 사방을 크게 울렸다. 깜빡이는 라이트와 권혜성의 다급해 보이는 몸짓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느덧 넷으로 이루어진 무리는 동선을 바꿔 가며 댄스 브레이크를 선보였다. 그사이 갈라진 무대 외벽 너머에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있었다.
붉은 완장을 찬 채, 고글을 쓰고 있던 문채민이 손을 들어 올렸다. 뒤로는 뒷짐을 진 채 미소 짓고 있는 이유준과 윤명이 서 있었다.
하이키 조명이 쏠리며 여러 전자음이 중첩됐다. 사이렌에 맞춰 모두와 합류한 문채민 일행은 메인 싸비에 돌입했다.
- Code' B- I can do this
Bar code의 선을 잘라 내
칼날을 들이밀어 널 옭아맨 그 감옥을 벗어나
이 기억 속에서 달려 또 달려 그렇게 이겨 내
윤명의 힘이 있고 맑은 음색에 신해신과 이정원이 화음을 깔아 넣었다. 치고받는 것처럼 거칠게 올라간 피치가 입을 쩍 벌리게 만들었다.
그 뒤로 붙어 온 것은 이유준의 저음 싱잉랩이었다. 예상 밖의 전개 방식이 곡에 대한 몰입도를 올렸다.
- Help me now
If you can help me, help me now
I need you to help me now
There's no one who can help me now
전신을 이용하여 퍼졌다가 다시 모여드는 동작들이 이어졌다. 디테일 면이 촘촘하고 흐름이 끊이지 않는 고난이도의 안무였다.
착착- 박자에 맞춰 뒷짐을 진 멤버들이 몸을 돌렸다. 가장 끝에 있던 권혜성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언제 이동했는지 모를 문채민이 있었다. 시스템 부스 너머 사다리 위에 걸쳐 앉아선 흥미롭다는 얼굴로 턱을 괴고 있었다. 심심하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더니 이내 벽에 꽂혀 있는 핸드 마이크를 들었다. 그러곤 씨익 입꼬리를 올려 특유의 빠른 래핑을 선보였다.
- 구원은 Self 이건 기적의 섭리
남들도 너와 다를 바 없어
Self-destruction
자괴감이란 옷을 벗어
자신감이란 색깔을 칠해
선명해진 눈앞에 집중하면
너의 세상은 변하고 있을걸
문채민의 랩과 동시에 스크린 위로 거대한 글자가 떠올랐다.
[ERROR! ERROR!]
랩을 하는 와중에도 시스템 부스에 손을 뻗은 문채민이었다. 사다리 위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얼기설기 꽂혀 있는 온갖 전선을 손날로 세게 내려쳤다. 후두둑 뽑히는 전선들에 권혜성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뒷걸음질 친 권혜성이 대형을 갖춰 멤버들을 뒤로한 채 춤을 췄다. 한데 모였던 멤버들 너머로 각 잡힌 칼군무가 이어졌다. 사방을 울리는 전자음 사이, 권혜성의 어깨 위로 손이 하나 올라갔다. 돌아본 곳에 있던 것은 웃고 있는 얼굴의 이유준이었다. 휙하고 밀어내는 동작을 하더니 비틀거리며 넘어가는 권혜성을 이정원과 윤명이 받아 냈다. 신해신을 돌아본 권혜성은 신해신이 차고 있던 붉은 완장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 Trying and Error
Systematical한 세계에 의지해
허물어졌던 우리
Bar code 이미 사라진 장면 속에 갇혀 있지 마
난 더 나아가야 해 No one can stop me
Bar code 그 선은 이미 모두 잘려 버렸어
그런 권혜성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걸어온 문채민이 이유준과 랩을 주고받았다. 저음의 깊은 보이스와 호흡이 빠르고 정확한 발음의 랩이 뒤섞여 새로운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자연스럽게 대형을 이룬 일곱 남자가 한데 뭉쳐 싸비 파트에 돌입했다. 가장 앞에 나와 있던 것은 이정원으로, 이정원의 손끝에 따라 멤버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 Code' B- I can do this
Bar code의 선을 잘라 내
칼날을 들이밀어 널 옭아맨 그 감옥을 벗어나
이 기억 속에서 달려 또 달려 그렇게 이겨 내
EDM 속에서 탄탄하게 올라가는 보컬이었다. 숨 쉴 틈이 없어 보이는 파트임에도 거친 기색이 없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그 뒤를 이어 간 것은 옆으로 빠져 나와 있던 신해신이었다.
1절에선 이유준이 했던 싱잉 랩을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렀다. 리듬을 밀고 당기는 특징에 따라 신해신의 목덜미에 핏대가 올라섰다.
중반부를 넘어서선 윤명의 맑고 깊이감 있는 목소리가 화음을 깔았다.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팔을 뻗어 신해신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리는 페어 안무를 시전했다.
- Help me now
If you can help me, help me now
I need you to help me now
There's no one who can help me now
안정적인 사운드와 별개로 스크린 위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코드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특수 효과인지 사방에 놓여 있던 컴퓨터와 기기들 위로 작은 불꽃들이 터져 나간다.
사방에서 쏘아지는 현란한 조명에도 권혜성을 제외한 멤버들은 동요하는 법이 없었다. 개중 가운데에 있던 문채민만이 즐겁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포기한 것 같은 얼굴의 권혜성이 잡혀 나오고, 붉은 완장을 찬 여섯 남자가 둥글게 대형을 이동했다.
- 갇혀 버린 나, Who will come and rescue me
걱정하지 마 그 답을 알고 있잖아
강태오의 바이브레이션이 섞인 파트를 넘어서 담담한 목소리의 문채민이 내레이션을 깔았다.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대형은 꿇어앉은 권혜성의 뒤로 왕과 같이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문채민이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그들을 호위한 것처럼 뒷짐을 지곤 정면을 바라보며 무감각한 표정을 한 채 경례했다.
- Silly 속 작은 깨달음
정답은 하나야 It's me
누군가의 콧노래를 마지막으로 스크린 위의 문구들이 점멸했다. 시끄럽게 울리던 전자음들도 잠잠해진 채 사방을 고요하게 물들였다.
스으윽- 다시 재가동되는 것 같은 낮은 진동이 이어지고, 마지막 화면 위에 떠오른 문구를 보며 방청석에선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건 바로 무대에 대한 모든 서사의 종지부를 찍는 멘트 중 하나였다.
[암호를 재설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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