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그로부터 몇 시간 되지 않아 공식 답변이 올라왔다. 루머로 돌고 있는 게 모두 사실이란 설명이었다.
[안녕하세요. 메이터스 en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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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메이터스 ent입니다.
근래 돌고 있는 하이사인의 멤버 해신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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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이 사실과 별개로 저희 메이터스 ent는 아티스트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진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루머 및 악플에 대해서는 강한 제재를 할 예정입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많은 팬분들께 혼란을 끼쳐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하이사인의 해신과 여섯 멤버들에 대한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메이터스 ent. 대표 서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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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머리를 잘 썼어.”
놀랐을 팬들에겐 미안하다며 사과하면서도 사실이 아닌 루머에 대해선 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말을 덧붙인 공지였다.
대표가 직접 날인과 인장까지 찍어 대중들에 대한 동정을 이끌면서도 깔끔하게 기승전결을 담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타이밍 되게 잘 잡네.”
사실 이게 준비된 건 한참도 전의 일이었다. 2차 경연이 끝난 이후 최한성에게 시비가 걸리기도 전, 아니, 본경연의 녹화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깔아 놓았던 판이었다.
한동준 PD와 다른 소속사의 유착 관계를 캐내기 위해 방송국에 잠입했던 그날, 나는 흥미로운 일들을 접하게 됐다.
그중 마지막으로 듣게 된 것이 조만간 터뜨릴 일에 관한 것이었다. 멤버들 중 누굴 건드리려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타깃으로 선택된 것이 나였던 모양이다. 가장 위험했던 멤버로 이정원을 꼽고 있었으니까. 걔가 당할 바엔 내 쪽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저기라면 아직 몰라도 여기는 대응책을 구할 수 있지.
그날 저녁 아이템의 효과가 풀리자마자 서도경에게 연락을 넣었다. 조진만과 그 패거리가 없을 시간을 노려 새벽녘 회사에서 접선을 시도했다.
불이 꺼져 깜깜한 사옥 내부, 스탠드를 켠 대표실에서 서도경과 만남을 가졌다.
다리를 꼰 채 팔짱을 낀 서도경의 모습에 질린 건 비밀이다.
‘…그러니까 조만간 신해신 씨의 가정사가 터질 거란 얘기죠?’
‘네, 확실해요. 타이밍을 봐선 1차 경연 전, 후일 것 같은데……. 저희 멘탈을 무너트리려고 무대 직전에 뺄 수도 있어 보입니다. 가능한 끝난 이후였으면 하긴 하는데…….’
‘근데 이거, 출처가 어딥니까.’
‘…그건 비밀로 하면 안 될까요. 확증은 있습니다. 그리고…….’
출처가 어디냐고 물으며 눈빛을 빛내는 서도경이 무서웠다. 말을 돌리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 둔 녹음기를 테이블 위로 밀었다.
자고로 패는 여러 개일수록 좋은 법. 가장 최고의 타이밍에,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한 번에 적들을 소탕하려고 준비해 놓은 음성본이었다.
서도경은 테이블 위로 시선을 뒀다. 뭔가 생각이 있는지 가만히 있더니 손을 뻗어 녹음기를 재생했다.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재밌다는 듯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귀신같이 해당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줄줄 외기 시작했다.
‘한동준 PD, 유어돌 담당자이던 남현욱관 사이가 좋지 못한 인물이죠. 야망이 있는 건 좋은데 무리수를 잘 둬서 뒷소문이 꽤 있는 사람입니다. 간간이 엔터 쪽 인물들과 자리를 만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털면 뭐든 나오겠네요.’
‘…잘 아시네요.’
‘이 정도 갖고 뭘요. 나머지 둘도 대충은 알 것 같습니다만. …MXP 김 팀장이라면 김문익일 가능성이 크군요. 실질적인 선이 아니라 바로 그 밑 사람입니다. …부장 라인이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조심성이 있는 회사답게 꼬리 자르기용 인력을 보낸 모양입니다. …블릭투 쪽 사무실의 안 부장은 그 사람 같습니다. 블릭투의 기획을 맡았다던 경력직 말입니다. 다른 엔터에서 넘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 작은 규모의 기업으로 이직한 거라 전에 있던 회사를 털어 보면 뭐든 나오겠죠. 좋아요. 수고했어요.’
서도경의 말을 들으며 질린 기색을 내비쳤다. …어쩌면 내가 고생하지 않아도 됐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현타에 접어들었을 무렵, 서도경에게서 질문이 들어왔다.
‘내게 이걸 알려 오는 걸 보면, 뭔가 상의할 게 있는 모양이죠?’
귀신같은 인간. 그래, 내게도 방법은 있었다. 이정원보다 여기가 낫다고 한 이유도 이거였다.
‘동정론이요.’
‘…의외네요. 그런 게 신해신 씨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는데.’
‘뭐든 해 봐야죠.’
담담하게 생각해 둔 일들을 꺼내니 서도경이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유어돌 때였다면 가정사 팔이라며 욕을 먹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죠. 저희 쪽에서 터뜨린 것도 아니고, 타인에 의해 밝혀진 거니까 걱정스러운 방면은 적을 것 같습니다. 아, 참고로 사측에서 그쪽 방향을 유도하는 건 안 될 것 같은데……. 차라리 여긴 깔끔하게 인정을 하되 오히려 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어떨까요. 새로 서바이벌에 들어가서 일부러 풀었다느니 하는 추론을 차단하는 겁니다.’
‘음, 나쁘진 않긴 한데…….’
‘그런 공지가 나가면 처음엔 욕을 먹을 순 있습니다. 거짓말을 했다느니, 속였다느니, 사전에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이 갈릴 수도 있겠죠. …대신 이건 뒤에 가서 큰 효과를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뒷일을 위한 빌드 업이군요.’
‘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도 여기서 풀었다는 의심을 하지 못할테니까요. 일부러 욕을 먹는 사람들은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럼 그 뒷일은요?’
‘여론을 이용해 공격당했으면 여론을 이용해 마음을 돌려야죠. …제가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라서요.’
‘하하!’
내 말에 서도경이 폭소를 터뜨렸다. 재밌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유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하자면 그거였다. 동정받되, 우리 손으로 이끄는 게 아닌 주변 인물에 의해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걸 이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음 날 곧바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둘에게 연락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어울려 다니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술을 마시곤 했던 녀석들이었다.
성격 때문인지 과묵하고 입이 무거운 놈들이었기에 다른 곳으로 샐 걱정은 들지 않았다. 아이돌로 데뷔한 후에도 교류는 이어졌으니까.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였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밑밥을 까니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선뜻 제의를 해 줬다. 원래도 이런 놈들이란 건 알고 있었는데 묘하게 감동이 밀려왔다.
‘야, 그, 너희도 알고 있었어? …내 사정.’
‘무슨 개소리야. 내가 그런 걸 왜 신경 써. 우리도 인터넷 보고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죽는다, 진짜! 그런 건 미리미리 좀 말해라! …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거 있냐. 뭐, 그, 동생한테 물어보니까 이런 건 인터넷에 글이라도 올려 주면 도움이 된다던데…….’
연예계 활동을 하며 성격이 바뀐 걸까. 예전 같았으면 머뭇거렸을 텐데, 이젠 그런 것 따윈 없었다. 목표로 삼던 주제가 나오자마자 냅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걸 본 놈들은 웃기다는 듯이 내 등짝을 때려 댔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 조용하던 나보단 보기 좋다며 흔쾌히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게 바로 이 게시글이었다. 두 놈이었으니까 타이밍을 봐서 서도경의 지시하에 올라간 경험담이었다.
[신해신 고교 동창입니다.]
“딱딱도 하네, 누가 지 성격 모른달까 봐…….”
먼저 올라간 글을 살피는데 거기엔 과거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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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이 녀석,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수더분하고 착한 놈입니다.
아이돌이 꿈이었다는 걸 몰랐을 정도로 얌전히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희도 비단 모르던 사실이었지만, 티 하나 내지 않고 성실하게
산 것, 그것만큼은 제가 인증하겠습니다.
부디 제 친구 녀석이 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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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감동받았나.”
이 글은 곧 큰 역풍을 불러들였다. 개인사를 가지고 욕하지 말란 사람들과 그래도 여태껏 숨긴 게 아니냐며 팽팽히 대립하던 사람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들인 것이었다.
이전에 올라간 회사의 공식문까지 합쳐지니 동정론이라는 사실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착실하게 깔아 온 밑밥을 통해 하나둘씩 우리의 편이 되어 줬다.
- 진짜 요즘 사람들 왜 이렇게 예민하냐;; 나도 너무 오바떠는 것 같긴 했음 케이팝 사람들 날카로운 건 알겠는데 우리 인간적인 도의는 챙기자
- 동정론이니 뭐니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게 그거 깔 생각이 있었으면 유어돌 때부터 흘렸었겠지 ㅜ 다들 잊었어? 해신이 초반엔 데뷔권도 아니었잖아 ㅠㅜㅠㅜㅠㅜㅠㅠ
- 일반인으로 나왔어도 프로그램 출연 자체로 화제가 됐으니까 다른 방향으로 흘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음 근데 그걸 안 했으면 뭐 빼박 아니냐….
- 응응 나도 빠순이지만 빠들에게 환멸할게
- 이때싶 지금까지 욕하던 거 입 싹 닫는 거 진짜 투리구슬이구요~
- 메이터스도 강경 대응하겠다고 나선 거 잘한 것 같음 초반엔 약간 읭스러웠는데 이제 와 보니 저게 맞지; 솔직히 애가 무슨 잘못을 했냐 고등학교 시절 나쁜 얘기 하나 안들리고 유어돌 때 과거사 하나 안 털렸으면 존나 클린하게 산 건데……. 얘들아 이런 희귀한 남돌도 없다 ㅠㅠ 있을 때 잘하자 나 더는 잃기 싫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기까지만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 뒤 예상치 못한 지원군이 달라붙었다. 그건 바로 최주형이었다.
사실 이 사건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으로 크게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은사님과 주형이, 날 위해 도움을 줬던 둘이었다.
이런 식으로 내 가정사가 들통날 줄은 몰랐으니 제대로 언급을 해 놓지 못한 상태였다. 서도경과 대면을 끝낸 이후론 급히 연락을 넣어 놓긴 했었다.
- …그러니까, 네 과거가 나올 거라고?’
‘어, …미안하다. 이렇게 빠를 줄 몰랐는데, 나 때문에……. 역시 그때 부탁하는 게 아니었어. 다 내 잘못이야. 너랑 은사님 인적 사항은 절대 건들지 못하게 할게. 사측에 부탁해서라도 요청해 놓을 테니까…….’
- 야! 넌 지금 그런 거 걱정할 때냐! 할머니도 지금 통화 듣고 있는데, 신경 쓰지 말래. 끽해야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정도나 털리는 거겠지. 학교에서 애들이 귀찮게 굴거나 네 욕하면 내가 가서 지랄해 줄 테니까…….
조만간 시간을 내서 내려가겠다는 말을 끝으로 거기에도 사전 설명을 해 놓은 이후였다. 그런데 그런 최주형이 나를 도와주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느린 속도지만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던 여론에 또다른 도움이 될 글이 올라왔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내 인생을 가장 잘 아는 녀석이었다.
[하이사인 신해신 가족석에 앉았던 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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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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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자신이 먼저 가족석으로 초대해 달라며 연락했던 문자 메시지의 캡처본이 올라가 있었다. 자신이 아주 어릴 적, 이모의 배 속 태아로 있을 때부터 친형처럼 함께했던 사람이고, 어린 시절에는 친형이 아니란 사실에 눈물을 터뜨렸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은사님 댁 앞마당에서 손을 잡고 찍은 어린 시절 사진을 보았을 땐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최주형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내가 선물해 준 장난감 자동차였다.
그걸 아직도 갖고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내뱉은 놈은 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과 나는 언제까지고 가족일 예정이니 남이라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비록 나와 서도경의 계획에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최주형의 진심 어린 글귀들은 팬들 너머 대중들에게 전달됐다.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자 예민하게 나오던 사람들에게는 손쓸 도리가 없어 보였다.
- 와…… 이런 거 보면 아이돌 애들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안 됨. 사연만 봐도 눈물 핑 도는데 이걸 욕한다고?? 야 너넨 좀……….
- 케이팝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이건 인터넷이 잘못한 것 같다. 기만? 이라도 하던데 난 그 기만의 정의를 잘 모르겠음
- 그냥 열심히 사는 애 괴롭힌 것 말고 뭐가 더 있나.
- 하이사인 이름이랑 얼굴은 알고 있었는데 괜히 노래 더 찾아보게 되네. 지금 들어보니까 듣기 좋은 것도 많더라.
새로운 방식으로 하이사인의 버즈량이 폭발한 사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