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18화 (217/328)

218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의논하고자 회사로 가고 있는 길이었다. 저마다 핸드폰을 보며 실시간 모니터링을 진행하기 바빠 보인다. 정신없는 멤버들이 확인되자마자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살폈다.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이건 크라운 게임 2차 경연이 종료된 이후 새롭게 떠올랐던 미션이었다. ‘Piece of cake’ 무대를 통해 무사히 끝냈다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최한성의 도발을 마지막으로 알림 소리가 들렸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사건이 터졌다는 생각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알게 된 것인데. 당시 내게 처한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내용이었다.

‘활동은 화려하게’ - 부속 미션 그 세 번째

부정적인 여론을 이용하여 새로운 버즈량으로 늘려 보세요. 유입 버즈량 10% 이상 달성

성공 시 - 보상: 1,000 코인 + 블랙 쿠폰 1매 + (프리미엄)메모리 서칭 엔진 추가 슬롯 2회

실패 시 - 페널티: 랜덤 (데미지 크리티컬 5단계 - 내용 비공개)

올라가는 페널티의 단계가 두려워서라도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놓은 게 있어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다 성공 시 주어지는 보상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메모리 서칭 엔진 추가 슬롯이라……. 1회밖에 남지 않은 아이템 항목이 눈에 띄었다.

이유준과 문채민의 과거부터, 강태오의 숨겨진 속사정까지. 저게 정말 여러모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어 줬었다.

한번 구매하면 재구매가 불가능한 박스 상점의 이용 방침상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던 찰나였는데, 갑자기 1회 남은 슬롯을 3회로 재생해 주겠다는 말이 전달됐다.

그룹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또 내가 아프기 싫어서라도,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미션임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서도경과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간 거였는데. 최주형을 비롯하여 여러 인물에게 은혜를 입어 무사 성공할 수 있게 됐다.

[유입 버즈량]

현재: 13.7% (Final)

[현재 코인]

7,165 코인

[블랙 쿠폰]

3매

흠, 만족스럽네. 버그로 인해 코인 캐기가 완전히 막혀 있던 상황이었지만 미션 성공들로 차분히 메꿔 가는 현재가 만족스럽던 상황이었다.

논란이 있었던 걸 뒤집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스탯을 비롯하여 만반의 준비를 해 보자고 다짐했다.

비슷한 타이밍에 회사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여론을 보고 있던 멤버들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하차 준비를 했다.

다들 그날 이후론 뭔가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원래도 독한 녀석들이었지만, 터닝 포인트가 된 것처럼 살벌함이 추가되어 있었다. 다부지게 입을 다문 권혜성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어깨에 힘 좀 빼라. 누구 잡으러 가는 거 아니지?”

“에에~”

“…해신이 형은, 너무 물러.”

“윤명, 너까지 그러기 있냐.”

그나마 이런 농담을 하면 원래 모습을 보여 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복잡한 심경으로 걸음을 옮기니 앞서 걷고 있던 이유준이 뒤를 돌아봤다.

“이제 시작이란 느낌이 드는데. 앞으론 만반의 준비를 해 둬야겠어.”

“나도 유준이 형 말에 공감. 이렇게까지 사람을 압박하려 들 줄은 몰랐잖아.”

“…최한성.”

“야, 야, 정원아. 나 무섭다.”

이유준과 문채민의 냉소적인 말에 이정원이 이를 짓씹었다. 회사 내부라지만 누가 들을까 무서워 입을 막으려던 중이었다. 나와 함께 그룹 내 온건파를 담당하던 강태오도 이정원을 뜯어말리진 않았다. 이번엔 편을 들어 줄 수가 없겠다며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강태오, 너도 저쪽 편이야?”

“남들 일엔 그렇게 앞장서면서, 제 일만 무던하게 넘기는 거. 좀 열받거든.”

“…나?”

의미 불명인 말을 내뱉으며 그대로 나를 추월해 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미팅 룸 안에는 잘 아는 인물이 앉아 있었다.

근래 들어 허구한 날 마주치던 서도경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 다른 분들은 안 계시네요?”

“이런 건 알고 있는 눈이 적어야 좋거든요.”

의미심장한 얼굴을 한 서도경을 보며 이정원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째 멤버들이 대표인 저 인간과 동기화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다 됐다는 생각으로 착석하니 대략적인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한지헌이 준비한 슬라이드를 보며 사건의 개요를 파악해 봤다.

“운이 좋게도 논란이 역전환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아직 불안정하긴 하지만, 나쁜 방향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아아, 운이요?”

이유준이 눈을 굴리다가 샐쭉 입꼬리를 올렸다. 대강 큰 흐름은 알려 준 이후였으나 자세한 계획까진 모두 밝히지 않았는데.

저 귀신같은 놈이 우리 머릿속을 전부 꿰뚫은 모양이다. 서도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뻔뻔스레 마저 말을 이었다.

“그래서 2차 경연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화력을 실었다면 제대로 이끌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건 저도 공감해요. 관심이 쏠린 만큼 여기서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판도가 뒤집힐 테니까요.”

다들 비슷한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 같다. 이어지는 분석 속에서도 여러 의견이 오가며 이번 사건을 잠재우는 것과 동시에 대중적인 관심을 기회로 변모시킬 방안을 강구해 냈다.

애초부터 뭔가 큰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불렀던 건 아니었나 보다. 서도경의 표정하며 여유로운 자세를 보니 오랜 시간 회의가 이어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진만네 패거리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응급인 척 외부만 꾸민 거였구나. 사실 사태는 거의 가라앉은 이후였으니, 엔필름과 내부의 적들에게 혼동을 주려고 이런 연극을 꾸민 것 같았다.

그렇게 허울만 좋은 미팅이 종료되고, 다음 2차 경연 준비에 대한 일정을 정한 뒤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일부 멤버는 공백기를 이용한 틈새 스케줄을 가야 했기에 여기서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 저녁에 봐~~!”

“강태오, 혜성이 잘 부탁한다. …사고 안 치나 눈여겨봐.”

“…하아, 어.”

강태오와 권혜성은 함께 잡혀 있는 라디오를 하러 떠나고.

“명 씨! 잘됐다! 의상 피팅! 키 또 컸죠! 의상 피팅 때문에 김 팀장님께서 찾으세요!”

“…어, 어. …네. 가요.”

“아, 그리고 채민 씨도 같이!”

“저도요? 네……. 형들, 나랑 명이 형은 팀장님한테 다녀올게. 밴 같이 타고 갈 거지? 기다려, 끝나면 연락할테니까.”

“그래라.”

윤명과 문채민은 스타일링 팀의 직원에게 잡혀가 버렸다.

남은 건 나와 이정원 그리고 이유준 셋뿐인데. 스케줄을 간 둘에겐 박재민이 붙었으나 오병에게 두 번을 왕복해 달라곤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윤명과 문채민을 기다리기로 한 찰나, 이정원이 우리에게 제안을 하나 건넸다.

“얘들아, 나 믹싱실에 가 볼건데. 너희도 갈래?”

“믹싱실? 그러고 보니까 정원이 형, 요즘 작곡이랑 편곡에 관심 있어 보이네?”

“뭐… 당장 해 보겠다는 건 아닌데. 윤 팀장님이 제안해 주셔서.”

…이정원이 작곡? 그러고 보니까 유어돌 당시부터 보컬 스탯이 유달리 높던 녀석이었다. 음악적 견해도 높고, 센스도 좋은 모습이 자주 보여서 이런 걸 하면 잘하겠다 싶은 마음은 있었다.

거기에 지원겸의 말이 겹쳐 들렸다. 디레스트와 인클루가 신인 시절, 곡을 두고 다투다가 내부 작곡가 멤버가 생겼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 안 닥치리란 보장은 없겠지. 사내 정치를 하려고 드는 인간이 있는 회사였으니 대비를 위해서라도 좋은 방안인 것 같았다.

“다녀와. 난 여기 있을게.”

“넌 안 가?”

“응, 생각 없어. 아, 겸사겸사 유준이 쟤도 데리고 가라.”

“…나?”

“어, 너 저번에 수록 중에 싱잉 해 보고 싶다고 했었지. 이럴 때라도 윤 팀장님한테 피력해 보라고. 전체 미팅에선 그런 얘기 못 하잖아. 또 알아? 갔다가 좋은 곡 하나 받을지…….”

“어, 그런가.”

머뭇거리는 이유준의 등을 떠밀자 이정원의 눈썹이 물결쳤다.

“…쟤 혼자 두기 불안한데.”

“야, 나도 나름 팀 내 맏형이거든. 그리고 사고 수습은 내가 제일 잘해. 그러니까 얼른 가 봐.”

내 말에 마지못한 얼굴로 이유준과 이정원 역시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나는 사람이 없을 공간에서 모두를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멤버들이 있는 단톡방엔 할 일들이 끝나면 연락해 달라고 말을 남긴 뒤 복도를 걸어갔다.

“…지금 시간이라면 미팅 룸은 다 차 있겠고. …아, 연습실.”

근래 디레스트 영입을 비롯하여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고 있던 우리 탓에 모든 팀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대표실 벽에 걸려 있던 스케줄 표만 봐도 회의 일정이 빼곡했었으니까. 빈 방은 없다고 보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연습실은 제외겠지. 사내 아이돌이라고 해 봤자 우리와 디레스트뿐이었으니. 거기가 쓰지 않는다면 텅 비어 있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럴 때 딱 마주칠 리는 절대 없고.”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젓고는 연습실이 있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아무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옳다구나 싶은 마음에 문을 잡아당기는데 그 안에서 묘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

와, 이게 가능한 일이구나.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바닥에 널브러져 누워 있는 디레스트의 멤버들이었다.

…죽은 건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연습하러 온 건 맞는 것 같은데. 음악도 틀지 않고 쉬는 시간이라고 하기엔 대화가 없어서 부재인 줄 알았다.

도르륵, 눈동자를 굴려 내부를 훑다가 벽에 기대 서 있는 김환준을 발견했다. 모두가 눈을 감고 있기에 조용히 나가자고 뒷걸음질 치던 순간이었다.

“…어디 가요?”

“악!”

김환준이 팔짱을 낀 자세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눈은 뜨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안 건지 깜짝 놀라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누워 있던 멤버들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일부는 같이 놀랐는지 양팔을 들어 올리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헉, 뭐야! 뭐야!”

“우아악!”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연습실의 진풍경에 몇이 고개를 내저었다. …미친. 쪽팔리고, 부끄럽고, 나를 부른 김환준이 원망스러웠다.

“어? 해신 씨?”

“후배님! 여기 웬일이야? 아, 오늘 서 대표님이랑 미팅 있다고 했었지. 벌써 끝났나? 무진장 빠르네~”

“아, 안녕하세요……. 그,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이만 나가 볼게요.”

“우리 지금 연습하는 것 아니라 괜찮은데. 들어와요. 하이사인 연습실 스케줄 있던 건 아니죠? 우리도 갑자기 온 거라 신경 쓸 필욘 없어요.”

사양하고 싶은걸. 일부는 친절을 베푸는 줄 알고 내게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이럴 계획이 전혀 없던 나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이걸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데, 김환준이 마지막 체크메이트를 날렸다.

“신해신 씨는 나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지? 내가 그렇게 밉상이에요?”

…죽일까.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올 뻔했다. 간신히 아이돌 자아를 장착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호랑이 굴에 걸어 들어가면 이런 기분이려나. 등 뒤로 닫힌 문을 보고 한숨이 나오려 한다.

하아, 어쩌면 애들 말이 맞는 걸지도 몰랐다. 혼자 두기 불안하다던 이정원의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들키지만 말자. 다시 모이기 전까지 여길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저기 서 있는 밉상을 한 대만 때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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