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회사에 도착한 이후였다. 밴에서 내려 사옥으로 들어가는데 기묘한 공기가 사방을 옥죄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긴 했나 보네.
이정원은 아까 본 문자를 떠올렸는지 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들 얌전한 척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문자 보면 잡힌 것 같지?”
“어.”
“이게 재밌게 됐네?”
“…빨리 해결된 거면 다행이지.”
뒷짐을 진 상태에서 휘파람을 내분 권혜성과 이렇게라도 사건이 종결되면 다행이라는 윤명을 쫓아 서도경이 오라고 했던 대표실로 올라갔다.
오가는 직원들을 비롯하여 유리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에서 아는 얼굴이 있나 힐끔거리며 발을 옮기는 중이었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들어가려 하는데, 바로 옆 코너에서 손이 하나 튀어나왔다. 어깨를 움켜쥐는 힘에 놀라 불쑥 고개가 돌아간다.
“누구……! 아, 안녕하세요.”
“무대 잘 끝났다고 얘기 들었는데.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들어가는 길이시죠? 그럼 같이 가시죠.”
“네.”
이건 우리와 한 편처럼 작전을 수행하던 A&R 팀의 팀장 윤재희였다. 저기도 서도경의 호출에 맞춰 올라왔는지 서류철을 하나 든 채로 문을 가리킨다.
“팀장님, 감사드렸습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요. 그나저나 계획대로 됐다니 다행이네요. 저도 저지만, 여러분이 가장 고생이 많으셨잖아요.”
이유준 그리고 문채민과 대화를 하며 뒤를 쫓아오는 윤재희를 확인하곤 대표실에 노크했다. 얼마 가지 않아 들어오란 허락이 떨어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왔나요? 음, 윤 팀장님도 같이 오셨네요?”
평소보다 3배는 더 웃고 있는 듯한 화사한 얼굴의 서도경이 우리를 반긴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 눈을 굴려 대표실 내부를 돌아보는데 서도경 맞은편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남자 직원 한 명이 발견된다.
“다들 뭐 하세요? 안 들어오시고. 오늘은 삼자대면하는 날이잖아요.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피해자들의 대표이자 조력자로서?”
서도경의 웃음이 짙어짐에 따라 멤버들이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무던한 표정의 이유준과 문채민부터, 남자를 향해 흉흉한 눈빛을 내비치는 이정원, 해당 인물이 궁금했는지 턱을 쭉 뺀 권혜성과 여느 때와 같은 얼굴의 윤명까지. 여기서 한숨을 내쉬며 피곤하단 안색을 한 나와 강태오가 합류하니 방이 꽉 들어차 버렸다.
적당히 앉으라는 손짓에 따라 인근 소파에 몸을 앉혔다. 저게 누구인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어서 설명하란 뉘앙스로 서도경을 바라봤다.
“흐음, 배후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는데, 파일을 빼내서 다른 쪽으로 유출할 거면 후자 정도는 회사 PC를 사용하지 말았어야죠. 데이터 유출 감지 소프트웨어가 회사 전 PC에 깔린 건 모르고 있으셨던 모양이네요, 김현석 씨.”
서도경의 설명에 남자가 놀라 상체를 들어 올렸다. 거기서 보인 익숙한 얼굴에 윤재희의 표정이 종이처럼 구겨진다.
“김현석 씨…….”
“아하, 역시 A&R이었구나.”
이정원은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 사람은 이정원이 질색하던 조진만 패거리의 일행 중 하나이자 A&R 팀에 들어간 낙하산 멤버였다.
윤재희를 부른 이유가 이거였구나. 단순히 같은 작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이라 불렀던 건 줄 알았는데. 윤재희가 담당하고 있는 팀 내부에 유출자가 있어서 책임자를 부른 거였다.
“업계에 있으면서 내부 기밀이 외부로 유출되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몰랐다곤 하지 않았겠죠?”
“그, 그건……!”
서도경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김현석은 사색이 됐다. 윤재희를 바라보며 도와 달라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
처음엔 놀란 것 같던 윤재희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는지 덤덤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곤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와 서도경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팀에 있을 줄은 알았지만, 정말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아티스트 여러분과 대표님께 사죄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허, 헉! 아니에요! 윤 팀장님은 저희 도와주셨잖아요!”
“맞습니다. 애초부터 알고 증거를 잡으려고 같이 하셨던 거죠?”
“…그건.”
강태오의 질문에 윤재희가 시선을 피했다. 조진만의 패거리 중 하나가 사고를 칠 거란 걸 알곤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릴 줄은 몰랐기에 저기도 난감하단 기색이었다.
우릴 지켜보던 서도경이 박수를 쳤다. 이목을 집중시키며 웃던 얼굴을 정리하고 김현식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들 화기애애한 건 좋은데, 저기부터 해결해야겠죠. 내가 의견 수용은 잘해 주는 편이지만, 이런 일을 가만히 넘어가진 않는 사람이라서요. 김현석 씨, 반박할 말이 있으면 해 보세요. 뭐, 태도를 보아하니 이미 인정하는 것 같지만.”
서도경이 눈짓을 보내자 한숨을 내쉰 윤재희가 들고 있던 서류철을 테이블 위로 올려놨다. 펼쳐진 파일 속엔 CCTV를 캡처한 걸로 보이는 사진 몇 장과 영문 및 데이터 파일이 잔뜩 기재된 종이 다발이 들어 있었다.
“00일 00시, 퇴근 후 물건을 두고 갔다는 핑계로 다시 회사 내부에 들어왔었네요? 대담하게도 야근 중인 직원들 옆에서 파일을 유출했어요. 게다가 날짜를 보아하니 이건……. 윤 팀장님과 여러분이 가장 잘 아시죠?”
“어!”
서도경이 가리킨 숫자에 권혜성이 무언가를 깨달았단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문채민도 말꼬리를 흐리며 김현석을 돌아봤다.
“2차 경연곡, 편곡 라인이랑 컨셉 시안 픽스된 날이네…….”
“맞아요. 정답입니다.”
윤명의 혼잣말에 서도경이 정답이라는 듯 파일을 김현석 쪽으로 밀어냈다. 파일 너머 사진과 종이 몇 장이 나와 이유준의 앞으로 떨어졌다. 주워서 확인해 보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
겉 파일명은 다른 이름으로 대체한 것 같지만 그 폴더 안에 들어간 자료들은 전부 이름이 그대로였다.
무대 시안부터 편곡 가이드 라인과 새로 잡은 비트 파일까지 전부 쓸어서 보낸 정황이 포착됐다.
그나저나 이걸 이렇게 쉽게 빼냈다고? 김현석의 대담함에 놀라기 이전에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이유준도 마찬가지였는지 서도경을 돌아본다.
“회사 사옥 내에선 개인 외장 하드나 USB 사용이 불가능하거든요. 기기 허락을 받고 암호화 해제가 되어야만 정식으로 연결할 수 있게 시스템화해 놨죠. 그러니 메일 말고는 파일을 빼낼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개인 메일로 이동하여 외부 PC를 쓸 줄 알았는데, 김현석 씨 사정이 생각보다 많이 급했나 봅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윤재희는 골치가 아프단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더는 못 참겠는지 한마디를 추가했다.
“속인 건 미안합니다만, 그 파일은 애초부터 미끼 파일이었습니다. 이상한 거 못 느끼셨어요? 아무리 한 팀이라지만 제가 이렇게 허술하게 음원을 보관했을 리 없잖습니까. 게다가 저흰 A&R입니다. 컨셉 라인이나 안무 쪽은 저희가 아니라 매니지먼트실에서 별도로 관리를 하고 있었겠죠. 이렇게 보기 좋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면 한 번쯤 의심도 해 봤을 텐데요.”
쉽게 말하자면 이거였다. 애초부터 윤재희는 음원 유출 사고가 있다면 자신의 팀 내부에서 벌어질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을 때도 흔쾌히 허락했던 것이고.
스파이가 외부 파일을 쉽게 꺼내 갈 수 있도록 서도경과 합을 맞춰 세팅해 놨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한 번은 경고했다고 볼 수도 있었는데. 압박이라도 들어왔는지 김현석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우와…….”
권혜성의 흥미진진하단 리액션에 이어 이정원이 낮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간단한 상황 정도는 이야기해 줘야 할 것 같아서 김현석을 향해 말해 줬다. 여태까지 한 게 소용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쪽에서 연락받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그 파일은 저희가 쓸 게 아니었습니다. 내부 직원분들을 의심한 건 죄송하나, 프로그램 도중 유출 위험이 있겠단 가능성을 포착해서요. 극비에 진행하기로 하고, 대표님과 윤 팀장님의 도움을 받아 함정을 하나 깔아뒀죠. …그게 바로 그 파일이었습니다. 매달리는 흉내를 내서 속으신 건 이해가 가지만, 실상 따져 보면 컨셉적으론 무던한 편이기도 하고, 편곡으로도 그렇게 완벽한 느낌은 아니었을 텐데……. 윤 팀장님 성격을 아셨다면 이상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아, …안무 연습도 들어가서 헷갈리셨으려나. 덕분에 좀 힘들었습니다. 보시다시피 2차 경연까지 무대를 2개나 준비했거든요. 비용 청구는 대표님이 알아서 하셨겠지만, 무대 연습은 저희가 몸으로 해야 해서요.”
“…풉.”
“야, 넌 왜 웃어.”
“아니, 그냥 조곤조곤 말로 잘 먹인다 싶어서.”
작지만 천천히 사정을 설명하니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타고 있던 이정원이 입을 틀어막은 채 고개를 틀고 있었다.
얘는 성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특이한 메인 보컬을 데리고 있다 싶어서 어깨를 으쓱이는데, 다른 멤버들도 이정원과 비슷한 행동을 했다.
“가끔 보면 해신이 형은 멘탈이 센 건지, 약한 건지 헷갈린단 말이야. 그렇지, 유준이 형.”
“리더잖아. 난 믿음직스럽고 좋은데?”
“…하아.”
“야, 윤명 저게 바로 팩트로 팬다는 거지?”
“…어, 너처럼 우와, 대박, 헉, 만 하진 않지, 해신이 형이.”
“…이 씨.”
얘네가 그러면 그렇지. 의심이 가고 못미더운 사람 아래의 낙하산이라지만, 내부 인물의 배신이 충격이었을 거라고 봤는데. 무던하게 이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서도경도 마찬가지였는지 진지한 얼굴로 팔짱을 낀다. 그런데 갑자기 김현석이 몸을 일으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덜컹거리는 소음에 놀라 쳐다보자 큰 목소리로 사과해 온다.
“죄, 죄송합니다! 그게, 이것만 해내면 고위 직급으로 스카우트해 준다고 해서……. 제가, 제가 돈이랑 지위에 눈이 멀었습니다!”
“배후는요?”
“…네?”
“배후 말입니다. 스카우트해 준다던 그 인물, 누구입니까?”
술술 불어오는 김현석에 서도경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떨어져 있는 상대방은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지금까지 압박성으로 시간을 들여 가며 연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윤재희도 그걸 알아챘나 보다. 우리 역할은 대충 끝이 난 것 같았다.
* * *
김현석은 감봉 및 해고 처리가 되기로 했으나 다른 이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끝까지 입을 다문 것으로 말을 맞췄다.
법적 처벌을 피하는 대신, 상대방이 접촉해 오면 모든 정보를 넘기는 것으로 정해진 이후였다.
하얗게 질린 김현석과 자세한 파악을 위해 김현석을 데리고 간 윤재희가 먼저 방을 나서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심문이라도 이어 갈 분위기를 보아하니 김현석, 저 사람은 서도경의 새로운 패가 되어 한껏 구를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