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33화 (232/328)

233화

“…반겨 주셔서 감사하네요.”

“얼굴에서 다 티가 나는데.”

“정원이, 넌 좀 조용히 해.”

얼티밋 나인의 멤버들과 함께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격한 환영에 감사하다고 말하니 이정원에게서 태클이 들어온다.

정신없는 광경 속에서 류정의 말을 들으니 손제완의 의견으로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케줄이 없었던 터라 시간이 난 건 알겠는데 정말 더럽게 부담스러웠다.

“아, 유닛 미션이 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나갈 수 있고 말이야.”

“멍청아, 해신 씨는 보컬이거든. 랩이었어도 같은 무대는 못 해.”

내 손을 잡아 위아래로 흔드는 해맑은 얼굴에 할 말을 잃었다. 손제완 목줄 담당 멤버의 제지에 슬그머니 눈썹을 내리 깐다.

다 됐으니까 제발 무대 준비 좀 하게 해 줘…….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오정오라고 불린 사람이 얼티밋 나인 멤버들의 등을 떠밀었다.

“얼른 나가. 우리 무대 준비해야 하는 거 안 보여?”

“어, 어……. 밀지 마! 그리고 어차피 한편인데, 머리가 여럿이면 좋은 거 아니야?!”

“형들 머리면 없는 게 낫거든.”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그래도!”

“야, 손제완. 이제 그만하고 가자. 실례 많았습니다.”

“진짜 피곤하네. 끝나면 다시 인사드리러 올게요. 실례 많았습니다.”

이제 보니까 저기 막내도 우리 막내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던 듯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문채민보다 더한 독설의 소유자 같았다.

그 광경을 본 류정이 한숨을 내쉬며 우리에게 사과했다. 어쩐지 동질감이 들어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비슷한 걸 자주 봐서요. 익숙하거든요.”

이정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지금쯤 숙소 혹은 개인 스케줄로 흩어져 있을 멤버들이 떠오른다.

간신히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돈하고 연습실 한구석에 마련된 테이블 앞에 앉았다. 손제완네가 준비해 놓은 것으로 보이는 음료를 마시며 세팅된 노트북을 구경했다.

“일단 후보군이라든지 컨셉 같은 큰 틀은 저희끼리 편하게 정해 보라고 하셔서요. 메이터스에서도 비슷한 의견이라고 하셨죠?”

“네.”

샘플링을 떠 놓은 곡들의 리스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블릭투에 치이고, 엔넷에 치이고, 여러모로 고생 중이던 그룹이어서 그랬던 걸까. 철저한 준비성이 돋보인다.

“혹시 생각 중인 곡이 있으세요?”

오정오의 질문에 이정원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까지와 달리 유닛 미션만큼은 자율 선곡이 가능했다. 오기 전부터 나름 이런저런 후보들을 꺼내 봤는데, 이렇다 할 선택지는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끼리 정한다고 해서 확정이 날 것 같지도 않았고.

애매모호한 태도에 류정과 오정오가 노트북을 살폈다. 그러곤 깊숙이 숨겨져 있던 폴더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놨다.

“그렇다면 저희가 짜본 시안을 보여 드려도 될까요? 확정은 아닌데, 크게 두 갈래로 나눠 봤거든요. 정오야.”

“응.”

오정오가 클릭한 파일을 여니 두 개로 나뉜 레퍼토리가 보인다.

[보컬+퍼포먼스]

[보컬 단독]

단순하다 못해 심플한 이름에 이정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자가 댄스곡이고 후자가 발라드인가요?”

“네, 맞아요. 보컬 유닛이라고 해서 반드시 발라드만 불러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류정에 말에는 나도 공감하는 바였다. 기획 의도라던가 프로그램 자체에서는 우리가 발라드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음, 오히려 좋은데? 전자의 선택지를 보니 재밌는 마음이 든다. 블릭투 놈들도 그렇고, 엔필름 쪽도 그렇고. 얘네가 예상하지 못한 선상에서 무대를 펼치는 게 상대방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거란 계획이었다.

보컬이 강한 무대에 고음 파트를 전반으로 하여 퍼포먼스를 곁들이면 보컬 유닛에 대한 정당성도 어느 정도 피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얼티밋 나인은 이런 쪽에 특화되어 있었으니까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후보군이었다.

이정원과는 눈빛으로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이정원은 발라드도 잘했지만, 댄스와 곁들인 라이브 실력도 상당한 편이어서 아이돌 특유의 화려함을 선보였을 때의 시너지가 강한 편이다.

물론 그건 나도 흡사한 양상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가 아이돌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전 1번이요. 퍼포먼스를 같이 가져가고 싶은데요.”

“저도요.”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사실 저희도 그쪽이 더 끌렸거든요. 회사 측에서도 꽤 이를 갈고 계셔서 준비는 철저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말을 들은 류정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오정오는 무뚝뚝하지만 좋다는 듯이 주억거렸다. 라인은 정해졌으니까, 남은 건 곡과 컨셉에 대한 후보군 선정이다.

퍼포먼스가 있으면서도 보컬 유닛이란 티가 날 정도의 난이도가 높은 곡들을 꼽아 봤다.

“장르는요? 기존과 동일한 댄스곡을 편곡하는 방식?”

“그쪽이 낫지 않을까요. 발라드를 억지로 편곡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커요.”

“그럼 단체? 아님 솔로? 남자 보컬인지, 여자 보컬 키를 재조정할지도 선택해야 해요.”

“이건 둘 다 상관없을 것 같은데…….”

팬덤이 싫어하는 부분을 피하고, 억지력이 떨어지는 방안들이 나온다. 완성도 있는 무대를 꾸리기 위한 머리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게 플레이 리스트를 보고 또 봤다. 오늘 이 선택이 확정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우리도 상대방도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내 눈에 걸리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하나 스쳐 지나갔다.

이정원을 불러 세워 이름을 보여 주니 녀석의 눈에서 재밌다는 기색이 엿보인다.

“야, 정원아. 여기…….”

“…하. 신해신 너, 진짜 머리 잘 쓴다.”

알고 있는 노래가 적어 물어본 거였는데, 다행히도 이쪽 분야는 이정원의 주특기였나 보다. 액정을 쓸어내린 이정원이 몇 군데를 가리켰다.

“칭찬 고맙네. 그나저나 선택지는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모르는 곡들이 좀 많아서. 너 뭐 좀 아는 거 있냐.”

“거긴 내게 맡겨. …음,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것도 괜찮은데. …아, 이거다. 이거 너도 알아?”

“어, 이건 나도 아는 건데. …괜찮지 않나?”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온 곡명에 번뜩 좋은 생각이 들었다. 잠깐, 왜 이렇게 앞이 조용하지? 아까까지만 해도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 얼티밋 나인 이인방이 조용한 상태였다.

이상함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묘하단 얼굴로 여길 보고 있는 류정이 나타난다. 오정오는 쥐고 있던 마우스를 내려놓은 채 턱을 괴고 있었다.

뭔가 잘못한 것 같다는 기분으로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음, 마저 해도 되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 것 같아서요. 우리도 좀 알려 줄 수 있을까요?”

“역시 강하네, 하이사인.”

“우리도 열심히 해야지, 인마.”

오정오의 혼잣말을 들은 류정이 오정오의 머리를 헤집는다. 어차피 공유는 해야 했으니까.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걸 본 두 사람이 동시에 리액션을 펼쳤다.

“와~”

“…위험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화제성도 좋고, 보컬 난이도도 충분하고, 거기에 퍼포먼스도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 고르는 다른 팀은 없을 것 같지?”

“애초에 랩을 하시는 분이 아니잖아. 비중은 보컬인 데다가 댄스에서 넘보기엔 경계가 모호하고.”

반응을 보아하니 괜찮게 먹혀든 듯하다. 이정원과는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부딪쳤다. 같이 무대를 한다지만 어느 정도 페이스는 가지고 가야 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두 분 다 괜찮으신 거예요?”

“예, 물론이죠. 하이사인은 매번 허를 찌르는 독특함이 있네요?”

“그러니까 그렇게 강한 거겠지. 물론 우리도 안 집니다.”

류정과 오정오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선곡이 정해졌다.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게 확정되리란 건 뻔한 일이었다.

* * *

소속사끼리의 피드백을 통해 무대 연습을 이어 가던 나날이었다. 본경연에서 들어갈 우리 것까지 진행하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연습실에 갇혀 있던 하루였다. 땀에 절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정원 씨!”

“…저요?”

거기서 등장한 건 오랜만에 보는 김성하였다. 다급하단 얼굴로 이정원을 찾으니 멤버들의 시선이 이정원을 향한다.

“아, 역시 아직 모르시는구나……. 그, 인터넷 좀 확인해 보실래요?”

김성하의 말에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슬슬 이 턴이 돈 것 같기는 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맞아떨어지니 한 번쯤은 틀리길 바라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불길함은 적중했다. 지금까지 멤버들이 거쳐 왔던 것처럼 이정원을 향한 문제성 게시글이 올라가 있던 것이었다.

“정원이 형… 괜찮아?”

“…뭐, 각오는 하고 있었어. 다들 알고 있었잖아. 슬슬 내 차례일 거란 걸. …오히려 조금 늦었는걸.”

열받은 건지, 아니면 어이가 없는 건지 이정원의 헛웃음이 이어진다. 아직 자세한 내용을 못 봐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사자가 담담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자세한 글을 읽게 되니 그 마음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거, 규모가 너무 큰데?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찡그려졌다.

[ㅎㅇㅅㅇ ㅇㅈㅇ 지금 실트 사실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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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옮긴 회사마다 트러블 조졌다는 거

지금이야 메이터스에서 하하호호 하고 있다지만 솔라 측에서도 문제 많았다며

증거라고 나오는 게 초반부터 김찬규랑 사이 안 좋아 보인단 클립이 많네

예전엔 초반 통편집이라서 다들 눈치 못 챈 거 같은데;; 뭔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사실 진짜 문제는 솔라가 아니라 번앤유인가

좃소라서 잘 몰랐지만, 진짜라면 얘 인성은 바닥이다;;

자세한 건 여기 링크 타고 가서 보고 와봐

재밌는 얘기 진짜 많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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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지금 하이사인 이정원 얘기하는 거임?

- 실트 정복하고 난리났는데 ㅋㅋㅋㅋㅋ 이래서 겉만 보면 안됨

- 얘 기세다고 원래 유명했잖아 팬들끼린 기존세돌 개웃기다고 밈화 시켜주더니 알고 보니 시녀들이 실드쳐주는 거였음

- 뭐야뭐야; 요약 좀 해줄 사람

- 이정원 유어돌로 데뷔하면서 현 메이터스 실 소속은 솔라 미디어인데 솔라 전에 번앤유라는 좃소에 있었다고 함. 오래 발 담그지 않았던데다가 규모도 작고, 지금은 없어진 곳이라 팬들도 크게 관심 안 둔 회사인데 여기 제대로 빠그라진 게 이정원 때문이래. 소규모 엔터에선 데뷔조 하나 만드는데 진심 목숨 걸잖아 ㅋㅋㅋㅋ 근데 그 데뷔조가 엎어진 게 얘때문이라던데? 심지어 팬들이 제일 질색하는 연애 관련 문제임; 내부 여자 연생이랑 썸 타느라 존나 대충하고 사고도 치고 다녔다고 함. 그거 마무리 해야 애들 내보낼 수 있는데 자본 바닥치다 못해 이미 지하 땅굴판 회사에서 더는 못견디고 전원 방출한 뒤 회사 문 닫았다 하네;; 진짜면 리얼 인성핵폐기물. 솔라에서도 유어돌 같이 나왔던 김찬규랑 트러블 설 떴으니까 한번 봐봐 증거라고 나오는 게 꽤 구체적이어서 사실 아니냐는 말이 많아

- ㅁㅊ;;;

- ? 아직 팩트 아무것도 없는데 또또 물타기 들어가지 ㅜ 시발 하이사인 이런 일이 한 두 번이냐 그동안 루머였다고 뜬 거 줄 세우면 도미노도 하겠음 ㅋㅋㅋㅋㅋㅋㅋ

- 억까 뒤지는데 연생 하나로 무슨 회사가 쪽박 친다는 거야; 정원이가 잘나긴 했어도 여기저기 굴러다니기만 했거든요

- 그것도 조목조목 설명해놨던데? 솔직히 얘 실력 비주얼 끼 어느 정도 다 되잖아 좃소의 기적감인데 회사에서 안 놓치려고 했겠어? 아 물론 인성은 제외임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이정원이 희대의 망할 놈이 되어 있었다. 중소 엔터테인먼트를 나락으로 보낸 못된 인간 말이다. 그것만 해도 벅찰 텐데, 열애설이란 특수 상황이 끼어 있었다.

“하, 최한성 이 자식…….”

뭐, 이정원의 표정을 보아 진실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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