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정원의 멘탈은 괜찮아 보였다. 한참 전부터 김찬규와의 만남을 통해 이런 사달이 날 걸 알고 있어서였을까. 제법 덤덤한 얼굴로 멤버들을 돌아봤다.
…취소. 덤덤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치 욕설을 집어삼키는 듯한 매서운 눈빛이다.
무슨 말이 나올지 염려하던 사이 이정원이 모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그룹 이미지에 문제가 생겼어. 미리 방법을 생각해 놨어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라서 두고 본 게 큰일이 되어 버렸네. 사과할게.”
갑작스러운 사과에 놀란 마음이다. 그건 모두 비슷했는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이미 한차례 이런 일을 겪었던 멤버들은 대수롭지 않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윤명부터 문채민과 이유준, 강태오에 이어 나까지. 권혜성을 제외하면 전부 루머에 시달려 봤던 터라 진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유준이 턱을 괴며 이정원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형은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번앤유라니. 솔라가 첫 소속사는 아니었구나.”
“그러게. 거기서도 여러모로 일이 많았잖아.”
문채민은 차마 이정원의 소속사 운에 대해선 말할 수 없었나 보다. 뒤를 흐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이정원, 무슨 일인데. 우선 설명부터 해 줘. 적어도 진실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야.”
“믿어 주는 거야? 아무 얘기도 못들었는데?”
“에엥, 정원이 형, 이럴 땐 남들이랑 다를 게 없네~ 우리가 형이랑 하루 이틀 같이 지냈나? 대충 봐도 딱 견적 나오는구만.”
권혜성이 머리 뒤로 뒷짐을 지며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연습실 바닥에 앉아 있던 윤명 역시 당연한 소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일이 있었던 건 분명해 보이는데. …형, 혹시 이 루머, 형 쪽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문제야? …최한성이랬나.”
윤명의 이야기에 이정원이 맞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내뱉는다.
“어.”
“자기 일을 남이 한 것처럼 뒤집어씌운 건가. 수법 한번 확실한 사람들이네.”
본인이 겪었던 사건과 비슷한 패턴을 띄어서였는지, 강태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히 좀 얘기해 줘. 그래야 우리도 대책을 세우지. 김성하 매니저님이 아실 정도면 상부에도 이야기가 들어갔을 것 같은데. 거기도 회의 중이겠지만 우리 쪽에서 더 좋은 방법이 나올 수도 있잖아.”
“어려울 건 없어. 신해신, 너 지금까지 많이 봐 왔을 거 아니야. 애들 일 해결해 주려고 나서면서 파악했을 그거랑 비슷할걸.”
“…그 소리는 실제로 있던 일이긴 하나 그 주체가 너는 아니란 소리지?”
“정답.”
이정원의 무딘 긍정에 머리를 움켜쥐었다. 어째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오니, 순탄한 적이 없는 아이돌 생활이었다. 그나마 안도할 점이라면 돌아가면서 공격을 받는 점이라고 해야겠다. 여러 명으로 분포되어 정신적인 데미지가 축적되지 않는 것을 위안 삼았다.
“번앤유라… 나도 진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인데. 거기 망한 건 맞아. 최한성이 사고 쳐서 프로젝트 하나 날리고 도산했던 것도 진실이고. 근데 몇 가지 틀린 게 있네. 일단 나는 데뷔조 멤버라기 보다는 교체 후보군에 가까웠어.”
“교체 후보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소속사가 고민이 좀 많았거든. 멤버 수를 개편한다느니 하면서 인원 조정이 있던 탓에 언제 사람이 추가되고 빠질지 모르던 상황이었달까.”
“엑, 보통 데뷔조는 그룹 정체성을 만들고 꾸리는 거 아니야?”
“글에 써 있잖아, 작은 회사였다고.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었다면 안 망했겠지.”
이정원은 재능에 비해 소속되어 있던 곳들이 좋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나 보다. 스스로 밝히기 힘든 치부일 텐데도 능청스럽게 설명해 줬다.
“…그럼 정원이 형은 제3자였다는 소리네. …데뷔조도 아니었단 말이잖아.”
“뭐, 그렇지.”
“엮으려고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 거군. 그럼 다른 이야기들은.”
“여자 연생이란 연애했다는 것도 거짓일걸? 걔가 연애하는 건 맞긴 했지만, 일반인이라고 들었던 것 같아서. 나도 다른 애들이 말해 줘서 안 건데 그쪽에 문제가 있었나 봐. 다들 쉬쉬하고 연생이라는 식으로 소문을 돌리려고 했던 걸 보면 작은 문제는 아닌 것 같지?”
이정원의 이야기에 새로운 포인트를 짚어 냈다. 아이돌 멤버가 연습생과 연애했다고 해도 논란이 될 텐데. 그걸 핑계로 만들었을 정도라면 더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말해 줄 수 있는 건 전부 얘기해 준 것 같네. 내가 여기와 연관된 건 이게 전부야. 번앤유에는 정말 짧게 있었으니까. 여기 도산하고 옮긴 게 너희도 알고 있는 솔라고. …뭐, 찬규랑 트러블이 있었던 건 인정하지. 하지만 부정적인 내용으로만 보기엔 그렇다고 하기가 힘든데.”
그건 내가 가장 잘 아는 바였다. 야구장 복도에서 대화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정원도 김찬규와 같은 피해자였다. 게다가 지금은 친형제처럼 잘 지내고 있는 둘이었다.
“뭐야~ 정원이 형은 아무 관련도 없네!”
“…그렇긴 한데, 좀 애매하지 않나.”
“왜? 이것도 회사 측에서 공식 입장 내 주면 되는 거 아니야? 사실무근이라고?”
“음… 그러려면 정원이 형이…….”
“윤명, 네 말은 내가 증거를 줘야 한다는 뜻이지? 하다못해 증언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든가.”
“뭐야? 그런 거야? 정원이 형… 설마…….”
권혜성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풀어져 있던 자세를 바로잡아 이정원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미안. 그런 거 없다. 그래서 나도 지금 골치 아파.”
“뭐?!”
“큰일이네…….”
“하아.”
이정원의 대답에 이마를 붙잡았다. 어쩐지 담담한 것치곤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더라니. 아까부터 힐끔거리던 시선의 의미가 바로 이거였나 보다.
“말했잖아, 정말 짧게 있었다고. 최한성이랑 같이 연습생을 했던 녀석들은 다 뿔뿔이 흩어진 데다가 회사 자체가 소수 정예라 여유 연습생들도 별로 없었어.”
“쉽게 말하자면 그거지? 걔네 말곤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거.”
“어, 근데 걔네도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몰라.”
이정원의 설명에 고민하던 이유준이 차분히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거기서 증언이라도 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러기엔 그 사람들이 연습생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쉽게 입을 열진 않겠네. 거기에 블릭투 회사 너머로 MXP가 붙었다면.”
“…돈 좀 주지 않았을까? 걔네 규모 크잖아. 번앤유에서도 데뷔조 담당자라고 해 봤자 소규모였으니까 진실을 아는 사람도 적을 테고.”
“그 정도면 충분히 돈 먹여서 조용히 시켰겠지.”
결국 돈인가. 사람 입 단속하는 데에는 그만한 게 없었으니 말이다. 이거 잘못하면 완전 이정원이 덤터기를 쓸 상황이었다. 여기서 백번을 아니라고 설명해 봤자 증거를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존재할 게 분명했다.
“빨리 해결해야 하는 건 맞는데…….”
우린 지금 크라운 게임의 3차 경연을 앞두고 있었다. 간신히 눌러 놓은 조진만 패거리가 다시 기세등등해질 수도 있었기에 촉박한 심경을 전달했다.
“너희한텐 정말 미안해. 일단 방법을 찾아보긴 하겠지만, 길어진다 싶으면 내가 책임질게.”
“혀엉~! 무슨 소리야!”
“이상한 말 좀 하지 마. 메인 보컬이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정원이 형이 약하게 나오니까 색다르네. 우리도 저랬으려나, 채민아?”
“비슷했을걸. 형, 봐 봐. 결국 해결은 된다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다 같이 방법을 찾아 보자.”
권혜성이 표정을 구기며 이정원에게 매달렸다. 별말 없이 조용히 몸을 기댄 윤명하며, 헛소리 말라고 자르는 강태오와 분위기를 풀려는 듯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유준 그리고 문채민까지. 이정원의 얼굴이 풀어지지 않으니 멤버들이 먼저 나선다.
“폐 끼치긴 싫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네.”
이정원은 태연해 보이던 겉과 달리 속이 쓰렸나 보다. 다른 녀석들의 태도를 확인하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제야 좀 솔직하게 말할 만하냐.”
“…어.”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간신히 정착했던 곳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를 게 분명했다. 그걸 알고 있었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조용히 팔을 뻗어 이정원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러곤 낮은 목소리로 생각해 둔 바를 꺼냈다.
“이정원, 나 믿을 수 있어?”
“뭐?”
“나 믿을 수 있냐고. 그것만 대답해.”
“…어.”
처음엔 흔들리는 것 같던 이정원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단단해진 눈빛을 보곤 확신을 가졌다.
“해결할 수 있는 정보를 가져올게. …대신, 나 믿는다고 했으니까, 출처만 묻지 마라.”
“어?”
“형, 이번엔 또 뭘 하려고…….”
“제발 위험한 짓만 하지 마.”
“근데 해신이 형이 저러니까 든든하다. 다들 겪어 봤잖아. 우리 해결사는 늘…….”
멤버들의 이목과 걱정 속에서 문채민이 말끝을 흐렸다. 다 듣지도 못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해신이지.”
이정원의 목소리를 듣고 다짐했다. 그래, 그 해결사. 오늘도 한 번 나서 볼게. 녀석들에겐 설명하지 못할 특수한 창을 쳐다봤다.
[(프리미엄)메모리 서칭 엔진 - 다회성 아이템]
미션 성공 보상으로 다시 3회 사용이 가능한 메모리 서칭 엔진이었다.
그럼 예전처럼 이정원의 기억을 검색하냐? 그건 아니었다. 제3자의 경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죄를 뒤집어쓴 이정원의 기억은 의미가 없었다.
내가 검색할 것은 단 하나. 이정원이 아닌 최한성의 기억이었다.
무슨 사고를 쳤는지 확인이나 해 보자. 거기서 사태를 해결한 실마리가 나올 게 분명하다.
* * *
이정원은 서도경과 먼저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태 파악이 필요할 테니 당연한 과정 중 하나였다.
사건 해결을 위해 어딜 가 봐야 한다는 핑계를 댄 나를 제외하곤 나머지 멤버들은 이정원이 있을 대표실에서 멀지 않은 미팅룸으로 이동했다.
CCTV는 상관없겠지. 타인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몰랐지만, 정신만 넘어간다는 가설을 믿고 있었으므로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날 믿어 주는 것 같긴 하지만…….”
이건 설명할 수가 없었다. 말했다간 상담이나 받아 보자는 이야기나 들을 거, 차라리 흥신소에 의뢰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게 낫겠단 취지였다.
연습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곤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뭐라도 건져 와야 한다는 다짐으로 주먹을 움켜쥔 상태였다.
“아, 멤버가 아닌 타인의 기억을 검색하는 건 처음인데…….”
그것도 하필이면 썩 호감으로 보지 않던 인물이다. 찜찜한 기분을 물리치자며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메모리 서칭 엔진 사용할게. 최한성의 번앤유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시절.”
[메모리 서칭 엔진]
사용 가능 횟수: ☆☆
[‘최한성의 번앤유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시절’을 검색합니다.]
익숙한 빛이 시야를 감싸 안았다. 이정원, 기다려. 놈과 한 약속을 품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