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35화 (234/328)

235화

언제나처럼 반투명해진 몸이 보인다. 제대로 들어오긴 한 건가. 연습실 같아 보이는 공간이었는데, 묘하게 좁고 어둡다는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전면에 붙은 거울을 보아 내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확한 상황에 대해 파악하려고 애썼다.

돌린 고개 너머로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던 작은 패널이다.

[Burn & U Ent.]

‘맞게 찾아오긴 한 모양이네.’

메이터스와는 다르게 어수선한 분위기가 맴도는 듯하다. 지하였는지 창이 없는 형태의 연습실이었다. 낮일까, 밤일까. 시간조차 가늠이 되지 않아 우선은 여길 벗어나기로 했다.

문을 열 필요도 없이 스르륵 통과하니 좁은 복도 너머로 여러 가지 포스터들이 보였다.

‘…중소였다더니, 작은 회사긴 했구나.’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건 별로 문제라고 보진 않았지만, 그 내용이 걸렸다. 보통 회사 소속 아티스트들의 관련 작품을 홍보하는 느낌으로 걸곤 했는데. 여긴 아직 제대로 데뷔한 사람이 없었는지 인테리어용 소품들만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뭐, 그건 딱히 상관없으니까. 일단 뭐든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이정원도 볼 수 있으려나. 거기서 내가 들어온 기억이 최한성에 대한 부분이었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복도 가장 끝에 있던 방 인근에서였다.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옥 관계자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와 그보단 조금 어려 보이는 사람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보아 여기서 큰 힌트를 얻게 될 듯했다.

‘최한성, 이 자식…….’

‘대표님, 어떡하죠?’

‘뭘 어떡하긴 어떡해. 최 사장님 댁에 연락해서 무마 부탁드려야지.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야? 편의점에서 신분증 조작하다가 걸린 지 얼마나 됐다고……. 아, 두야.’

최한성은 회사 내부에서도 블랙리스트였던 것 같다. 미성년자 시절 흡연에 이어 신분증 조작이라……. 한 건 건졌다며 좀 더 들어 보기로 했다.

대표라고 하던 중년의 남성은 내내 불편하단 얼굴이었다. 눈빛 자체는 괜찮아 보이는데, 저 최한성을 감싸 도는 걸 보니 내막에 무언의 사연이 있는 듯하다.

‘오진구, 너. 일단 가서 한성이 녀석 좀 감시해라. 난 최 사장님한테 전화 좀 하고 올 테니까…….’

‘네, 네!’

‘내가 어쩌자고 그런 새끼랑 계약해서. 사기당한 건 나구나, 나야…….’

대표라고 불린 남자가 사라지자 매니저가 홀로 남아 중얼거렸다.

‘그러게, 계약서 좀 잘 만들지. 하다 하다 연습생한테 잡혀 사는 호구는 또 처음 보네……. 나도 빨리 때려치워야겠다.’

으음, 내 생각보다 더 막장 기업이었던 것 같았다. 대충 들어 본 매니저의 혼잣말에 지금까지의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다.

대표라는 인물이 엔터 사업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됐었다는 건 이정원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었다. 뭣도 모른 상태에서 뛰어들어 미흡한 계약서가 나오고, 그로 인해 대표가 손해를 보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완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체계가 덜 잡혔다지만 연쇄적으로 사고를 치는 연습생을 품에 안을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것에 대한 해답이 바로 최 사장이라는 사람 같았다. 성씨만 들어도 최한성과 가족 내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발길을 돌리는 매니저를 보다가 우선은 대표의 통화를 엿듣기로 했다.

터덜터덜 지친 얼굴로 들어간 방을 살피니 핸드폰을 든 채 굽신거리는 대표가 보였다. 나름 그럴듯하게 꾸며는 놨으나 묘하게 정신없는 방 안이 회사 내부의 사정을 설명해 주는 듯하다.

‘예, 예, 한성이 녀석… 생각보단 잘하고 있습니다. …네, 그러니까 그, 이번 건도 어떻게 잘 무마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네, 네. 물론이죠. 최 사장님 아드님이라 그런 게 아니고, 정말 재능이 있습니다. 본인도 무대에 관심이 있으니, 사장님께서도 얼마나 대견하십니까.’

거기서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최한성은 제법 사는 집의 자식이었던 모양이다. 대표는 계약서를 통해 호구가 잡힌 상태에서 최한성 집의 도움을 받아 회사를 연명 중이었다.

그래서 최한성이 사고를 계속 넘어갔던 것이었다. 최한성 관련 프로젝트만 도움을 줬는지 여타 다른 재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통화하는 대표를 지나서 테이블에 어지럽게 놓인 서류 더미를 확인했다.

‘…진짜 종류별로 사고란 사고는 다 쳤네.’

지금까지 발생한 일들을 정리해 놓은 서류철이 꺼내져 있었다. 과거 세탁을 하고 데뷔한 것이 용할 정도로 가지각색의 사건 사고 리스트가 보였다.

학교 폭력 비슷한 전적도 있는데 이건 해외라서 적당히 무마한 것 같았다. 허, 술, 담배는 한두 번 걸렸던 게 아니었다.

거기에 오토바이까지? 최한성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애가 교복을 입은 채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사진이 발견된다.

지금까지 안 걸린 건 그 최 사장이란 최한성의 아버지가 많은 힘을 써서였다. 다른 아이돌이었으면 진즉 매장되고도 남을 사고들의 총집합에 내 머리가 다 아픈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활개를 치고 다녔으면서도 적당히 아이돌 연습생 시늉을 하던 놈이, 어쩌다가 오랜 시간 동안 잠적했던 걸까.

최한성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데뷔 프로젝트를 이끌던 대표였으니까, 이 뒷배경에는 최한성의 아버지가 투자를 멈춘 이유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이정원에게 덮어씌웠던 거겠지. 최한성을 찾으러 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돌려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번뜩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되려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에 대표의 책상 위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져 갖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메모리 서칭 아이템을 쓰면 그 당시의 소지품과 차림새 그대로 넘어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핸드폰도 가지고 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액정을 터치해 봤다.

‘…일단 켜지기는 하고.’

60% 정도 남은 배터리와 현실 시각으로 추정되는 시계가 작동된다. 혹시 몰라서 이런저런 어플도 구동해 보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인터넷이 연결되고 있었다.

돌아간 뒤 다시 확인해 봐야겠지만 왠지 될 것 같다는 마음에 카메라를 켰다. 그러곤 대표의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서류들을 촬영했다.

찰칵- 찰칵- 갤러리 속으로 저장된 증거물들을 보자 빠른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원, 기다려. 촬영이 끝난 핸드폰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더 큰 건을 찾기 위해 대표실을 나섰다.

* * *

몸이 이끌리는 대로 걷다 보니 회의실이라고 적힌 방이 나타났다. 최한성을 매개체로 검색해서 그랬던 것일까, 시스템이 인도해 주는 기분이었다.

얇은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확신했다. 제대로 찾아왔군. 바로 여기 최한성이 있었다.

스르륵 문을 통과하여 방에 들어가자 불량한 자세로 턱을 괴고 있는 남자애가 보인다.

…저거, 최한성이야? 나는 여기서 무언의 이질감을 느꼈다.

‘한성아, 그, 이번 건은 대표님께서 잘 무마해 보겠다고 하셨으니까.’

‘대표님은 무슨, 또 아버지가 했겠죠~ 그래도 큰 건 아니잖아요. 그걸로 좀 봐주세요~’

다소 앳된 얼굴이긴 했지만,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로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저기 앉아 있는 최한성은 내가 알고 있던 그 녀석과 많이 다른 인상이었다.

뭔가 비슷한 느낌은 들면서도 못 알아보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간극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아, 그래서 이정원이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거였구나. 복도에서 마주친 블릭투 놈들과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그때 당시 이정원은 최한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김찬규와의 대화를 통해 눈치챘던 일이었다.

지금 상황을 보자 이정원의 심정이 이해된다. 최한성 이놈, 얼굴을 제법 많이 고쳤다.

‘…어쩐지 과거사를 안 들킨 것 같더니만.’

묘하게 닮은 듯 다른 느낌이 나는 걸 보아 신분 세탁을 했던 모양이다. 느낌은 있으나 다른 사람이라고도 보일 정도였으니 네티즌 수사대도 놈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물며 집에 돈도 있었다. 입단속도 시키고 해외 몇 년 돌리면 데뷔에는 큰 문제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설이 맞아떨어짐과 동시에 혀가 내둘러졌다. 이정원은 회사가 도산하고 이후 최한성이 조용히 사라졌었던 게 의문이었다고 말했는데. 놈에겐 전부 그럴 만한 사정이 있던 것이었다.

아니, 뭐. 성형이야 자기 돈 주고 자기가 하는 거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이 포인트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거란 촉이 왔다.

각종 사고를 치면서도 뻔뻔하게 버텨 나가던 녀석과 녀석이 갑자기 성형까지 하며 자신을 케어했던 회사를 버리고 다른 곳에서 데뷔해야 했던 이유 말이다.

내가 흐름을 잡아서였을까. 눈앞이 어지럽게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며 다음 장면을 보여 주는 움직임이었다.

어수선하긴 했어도 사무실 분위기가 나던 회사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종 물품이 박스에 정리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이거, 망한 시점으로 온 건가.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당황하던 무렵이었다.

데뷔조 매니저로 추정되던 남자가 복도 한구석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 이직할 타이밍 기다리다가 이렇게 됐네. 빨리 나가긴 해야 했는데. 말했잖아, 여기 존나 엉망이었다니까?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해. 솔직히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냐? 지 아들자식 데뷔시켜 보겠다고 대충 회사에 돈 찔러 가면서까지 질질 끌어 봤는데. 뭐, 그 최 사장이란 사람도 정신 차린 거겠지. 이런 작은 데에서 그 사고뭉치 올려 봤자 얼마 못 가 전부 털릴 거란 거. 집에 돈도 많겠다, 차라리 싹 세탁하고 괜찮은 곳에서 나오는 게 낫지 않겠어? 사실 그 배경도 최한성 이 망나니가 만든 거지만. 아~ 이번 건은 너무 컸어. 술, 담배 정도야 미자 때 하다가 들켜도 유야무야 넘기는 아이돌 많다지만, 미성년자가 거짓말하고 성인이랑 연애하는 놈들은 없었잖냐. 심지어 등도 좀 쳐 먹은 것 같던데. 걔네 아버지 이번엔 거기 무마한다고 골치 좀 썩이고 있을걸? 야, 불쌍한 건 나나 그 애들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최한성 따까리나 하고 데뷔조 엎어진 바보들 말이야. 후보군도 몇 놈도 있었는데, 죄다 파토야, 파토. 괜찮은 애들도 쓸데없이 시간만 버렸다. 그마나 다행이라면 계약서가 호구라서 별 제약 없이 풀려난다는 거? 대표야 겉으로는 회사가 망한 것 같은데 아쉽지 않게 주머니 좀 찔러 받은 것 같고. 나는 먹고 살길이나 고민해 보련다~ 매니저? 어우, 이제 이 판도 지긋지긋해.’

친절한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성년자랑 성인이 연애? 그것도 상대방을 속여서?

등쳐 먹었다는 말을 들으면 금전적인 문제도 얽혀 있는 것 같은데. 이정원이 덮어쓴 오해를 풀어낼 실마리를 얻었다.

그 여자, 최한성과 연애하면서도 성인이라는 사실을 들통나지 않게 하려고 여자 연습생이라고 돌려 표현한 그 여자를 찾아야 한다.

속았다고 문제 제기 한 것을 보면 도덕적인 쪽으론 좋았던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최한성이 블릭투로 데뷔한 최한성이란 걸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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