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사실 파악도 완료되었으니까 슬슬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과거 최한성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직 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가? 그 여자의 신원을 찾을 시간이 주워지니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이렇게 된 거 좀 더 증거를 수집해 보기로 했다. 최한성을 찾아 따라다닌다면 하나 정도는 더 건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절주절 입이 가벼운 매니저에게서 등을 돌려 처음에 봤던 연습실로 향했다. 아무리 망나니라지만 이런 사건이 있었으면 다른 사람들과 얘기 정도는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복도를 지나 연습실 문 앞에 다다르자 누군가의 대화가 들렸다. 최한성인가? 남들에겐 들키지 않을 테니 눈치 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다들 괜찮은 거야? 이대로 끝내도?’
…이정원? 연습실 안에 있던 사람은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이정원, 바로 이번 사건에서 덤터기를 쓰게 된 우리 메인 보컬 녀석 말이다. 그러고 보니까 데뷔조까지는 아니었더라도 그 비슷한 위치까진 올라갔다고 말했다.
매니저가 말하던 후보 어쩌고 하던 게 이정원이 속한 무리를 말했던 모양이다. 여기에는 이정원을 제외하고도 어린 인상의 남자애가 몇 명 더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모습으로 가방을 챙겨 들고 있었다.
각자 남은 짐을 찾는지 여기저기 흩어져선 물건들을 정리한다. 중앙에 서 있던 이정원만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럼 뭐 어떡해. 이미 끝났는걸.’
‘정원아, 솔직히 네가 속이 쓰리겠냐. 아니면 데뷔 코앞까지 갔던 우리가 더 속이 쓰리겠냐.’
‘…그건.’
‘그리고 따져 보면 여기까지 온 것도 한성이 형 덕분이었잖아. 다들 알고 있지? 우리 회사 언제 넘어갈지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했던 거. 한성이 형네 아버지가 투자도 해 주고 돈도 대 줘서 버텼던 걸로 알고 있는데. 대표님도 그냥 계약 해지해 준다고 하시고, 이럴 때 빨리 각자 길 찾아가야지. 솔직히 트레이닝 받았던 능력으로 인정받으면 나쁘진 않다고 봐.’
‘진심이야?’
아, 이제 보니까 최한성과 함께 데뷔를 준비했다던 연습생들은 정신 상태가 좋지 못했던 것 같았다. 이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 좋게 말해선 호구였고, 나쁘게 말해선 멍청이들이었다.
애초부터 회사가 휘청거리게 된 것이 최한성이 사고를 쳐서 프로젝트가 딜레이 되며 돈이 새어 나갔기 때문이었는데.
이정원은 바보 같은 제 동료들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 그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제 머리만 쓸어 넘겼다.
다른 녀석들은 그런 이정원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제 할 일을 끝내며 체념했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고개를 내저은 뒤 연습실을 떠났다. 한 명, 또 한 명, 그렇게 이정원 홀로 연습실에 남아 있을 때까지 모두가 녀석을 외면했다.
‘저게 뭐야.’
보고 있는 나로선 열불이 터졌다. 아무리 데뷔 후보군이라고 하더라도 이 작은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었으면 동료였던 거 아닌가.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해야지. 내 속이 다 갑갑했다.
이런 상황은 천하의 이정원이라고 하더라도 버티기 힘들었나 보다. 모두가 빠져나간 연습실에서 조용히 바닥에 주저앉는다.
‘…아, 내가 잘못된 거야? 진짜?’
그럴 리가 없잖아, 멍청아. 앳된 얼굴의 이정원이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여기가 첫 회사라서 그랬던 걸까. 현실에서 본 이정원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혀를 차며 이정원의 곁으로 다가가 마주 앉은 자세에서 놈을 쳐다봤다. 쟤는 내가 보이지 않을지언정, 이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팔을 뻗어 이정원의 어깨를 토닥이며 미성년자였을 녀석을 달랬다. 이 회사를 떠나서도 김찬규의 삼촌 때문에 한 번 더 속이 썩는다는 게 분통 터졌다.
‘너도 나만큼 팔자가 참 기구하다. 그래서 그렇게 강해진 거였냐.’
이정원의 뒤를 돌아보지 않는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발을 멈추면 절망에 빠져들어 버릴 테니까.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세게 나간 것이었다.
단순히 기가 센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생존을 위해 진화했던 거라고 보자 뭐든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가면 조금 더 잘해 줘 보자며 쉼 없이 어깨를 토닥거렸다.
‘…….’
그때 이정원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허공을 보고 있던 아까와는 달리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이 이어졌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가설이지만. 이정원이 쳐다보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코앞에 있는 내 눈을 바라보며 의문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까딱이는 눈썹과 벌어진 입술 너머로 당황스럽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놀란 마음에 몸을 일으켜 한 걸음 물러나자 이정원의 시선이 나를 따라붙었다.
‘…너, 내가 보여?’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바보같이 질문해 버렸다. 뻐끔뻐끔 입술을 오므리자 이정원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누구세요?’
‘진짜 보이는 거야?’
이정원의 반응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담력은 여전했던 모양인지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이정원이 진지한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그쪽,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귀신이에요? 회사가 망한다고 하니까 마지막으로 나타난 거예요? …하, 아니면 내가 미치기라도 했나.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아, 목소리. 목소리는 안 들리는구나.’
생각해 보면 강태오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강태오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현실에 돌아간 이후 과거 기억 속에서 나를 본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메모리 서칭 엔진. 이건 쓰면 쓸수록 기억 속에 내가 동화되는 형식이었나 보다.
최한성이 날 못 알아본 걸 보면 서칭 엔진에 기억을 검색한 사람에 한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태오도 그렇고, 이정원이 그렇고. 아무래도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좋은 감정을 쌓은 멤버들이 주된 대상이었던 것 같았다.
이유준과 문채민이 날 보지 못했던 건 첫 사용자여서 그랬던 걸까. 쌓여 가는 의문 속에서 이정원을 쳐다보니 담담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너, 진짜 겁도 없다.’
주변 환경으로 인해 강해진 것도 있지만 태생적으로 센 면도 있었나 보다. 거침없이 걸음을 옮겨 다가와선 내 어깨로 손을 뻗는다.
그것도 이내 휙 하고 통과하자 이정원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진짜 귀신이야? 레코딩할 때 귀신 보면 대박 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저기요, 번지수 잘못 찾아왔어요. 우리 회사 오늘 망했거든요.’
‘넌 지금 농담이 나오냐. 하여간에.’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리자 그런 날 본 이정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곤 비슷한 뉘앙스로 웃기 시작했다.
둘 다 뭐가 씌인 것처럼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하하하……. 텅 빈 연습실 안으론 이정원의 호탕한 웃음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아, 진짜 오랜만에 웃었네. 저기요, 귀신 씨? 이름을 모르니까 일단 그렇게 부를게요. 우리 회사 망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댁이 보이는 것 보니까 나도 망한 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포기 안 해 볼게요.’
이정원의 이야기에 눈을 굴렸다. 내가 이정원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라도 되어 준 건가 싶다.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했지만 나쁜 방향은 아니었다.
목소리는 안 들리는 것 같아서 긍정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니 이정원이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혹시 괜찮으면…….’
‘뭐냐, 너 왜 그래? 머뭇거리니까 더 무섭잖아.’
‘…계속 나타나 줄래요? 성공할 테니까 종종 인사하자고요. 데뷔하고 난 뒤 녹음실에서 만나 주면 더 좋고요.’
‘하? 뭐라는 거야. 멍청아, 우리 같은 방 쓰거든.’
‘혹시 지박령 같은 건 아니죠? 여기 못 나가는 거 아니죠? 아, 건물 매각돼도 그쪽은 여기서 사는 거예요?’
‘얘가 미쳤나.’
어려서 그랬던 걸까. 이때 당시의 이정원은 아직 순수한 소년이었던 듯하다. 이런 애가 어떤 일을 겪었길래 그렇게 변하는 거지. 앳된 얼굴을 바라보다가 됐다는 의미로 고개를 내저었다.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걸 체감했다. 아까부터 손끝이 미묘하게 간지러운 느낌이 있었다.
이정원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던 타이밍이었는데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다리를 보아 시스템의 안배가 종료된 모양이다.
갑자기 사라지면 놀라겠지. 진지한 얼굴로 내가 지박령임을 걱정하는 이정원을 쳐다봤다. 그러곤 전달될지 모르는 말을 힘껏 내뱉었다. 최대한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한 자씩 외쳤다.
‘이정원, 금방 만나자!’
‘…어? 내 이름을 어떻게…….’
번쩍거리는 시야 너머로 이정원의 얼굴이 보였다. 내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입을 벌린 어리숙한 표정에 폭소가 터졌다.
설마 기억하는 건 아니겠지? 현실에서의 이정원은 모를 비밀을 하나 더 갖게 됐다. 녀석을 보면 이때의 어린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았다.
* * *
“돌아왔어.”
정신을 차렸을 땐 잘 알고 있는 장소에 서 있었다. 메모리 서칭 엔진을 사용했던 연습실 안이었다. 이질감이 드는 몸과 정신에 비틀비틀 구석의 벤치에 앉았다.
아직 멤버들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은데. 그전까지 멀쩡한 얼굴을 보여야 했다.
“이정원이랑 얘기하느라 최한성을 못 쫓아갔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마지막 목표는 최한성과 연애했다는 여자에 대한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기 힘든 어리숙한 이정원의 얼굴에 홀려 녀석과 시간을 보내 버렸다.
“뭐, 그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었으니까.”
힌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멤버, 그것도 그 기가 센 정원이 녀석의 색다른 점을 봤다는 거에서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얻은 정보만으로도 해결할 방법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다른 녀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까. 연습실의 문이 열리며 멤버들이 들어왔다.
“얘긴 잘했어?”
“어, 정원이 형만 들어갔었는데. 일단은 대충 끝난 것 같아. 그렇지, 형?”
덤덤한 얼굴의 강태오와 이유준을 보자 서도경이 크게 책을 잡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여론을 잠재울 방법을 찾기 위해 이정원을 부른 게 분명했다.
지쳐 보이는 문채민이나 호들갑 떠는 권혜성과 윤명을 살피다가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이정원을 쳐다봤다. 녀석에겐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았던 터라 한시가 급한 참이었다.
…뭐야. 근데 이정원의 태도가 수상쩍었다. 연습실에 들어오던 순간 주춤, 발을 물리더니 뭔가를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과 대화하던 사이 틈틈이 오가는 눈길과 더불어,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닫는 모습이 포착된다.
대놓고 이정원을 바라보자 이상한 낌새를 파악한 멤버들이 우리 둘의 눈치를 살폈다.
“일단 숙소로 돌아갈래?”
“…어? 어, 그래.”
말을 얼버무렸으나 대강의 뜻이 파악됐다. 아무래도 이정원 저 녀석, 내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