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38화 (237/328)

238화

“진짜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우리 대표님, 사실 무슨 첩보 기관 같은 곳에 다니셨던 걸까.”

3차 경연 연습이 한참 진행되던 어느 날이었다. 쉬는 시간을 빌미 삼아 멤버들을 불러 세우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의 일부분을 설명해 줬다.

“그러니까 신해신 네 말은, 최한성이 나한테 뒤집어씌운 증거를 발견했다는 거지?”

자세한 사정은 건너뛰고, 대충 이정원이 쓴 억울한 누명을 해결할 방법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어. 증언해 줄 사람도 찾아서 지금 협력 문의 중이래. 근데 분위기를 봐선 해 줄 것 같다나 봐.”

서도경이 힘을 써 최한성과 만났다던 여자의 신상을 알아냈다. 꽤 예전 일이라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장소에서 힌트가 발견된 덕분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진 않았다.

그땐 정신없어서 몰랐지. 내가 찍었던 파일 속에 그 여자에 대한 신상이 적힌 서류가 있었을 줄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바라봤다. 얼마 전 서도경에게 데이터 복구를 문의했던 과거의 사진 파일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혹시나 했던 가설이 맞아떨어졌다. 현대의 시스템으로 메모리 서칭 엔진을 사용하여 찍었던 사진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건 곧 최한성을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카드이자, 이정원이 얽힌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법이었다.

그 사진만 적당히 풀어 줬어도 팬덤은 크게 술렁거렸을 텐데, 좀 더 확실하게 뒤집어 버리고자 최한성의 구 여자 친구를 찾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서도경은 이번 기회로 블릭투 쪽을 치워 버릴 예정이었다. 라스트 공격은 파이널 당일, MXP가 블릭투와 블릭투의 회사를 버리도록 할 작정이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가능하면 걔네까지 친다…….”

서도경에게 얼핏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유로워서 몰랐으나 뒤쪽에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나 보다. 새로운 정보를 찾아냈다고 알려 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꽤 살벌하게 웃길래 믿고 맡긴 상태였다. 알아서 자폭해 주면 나야 좋지. 파이널에 들이닥칠 사건들을 떠올리며 턱을 괬다.

그때 날 지켜보던 이유준이 옆구리를 찔렀다. 푹 하고 들어오는 손가락에 몸이 휘청거렸다.

“악!”

“뭘 생각하길래 그렇게 음침하게 웃어? 형, 이거 대표님이 다 한 거 아니지.”

“…뭐라는 거야. 나도 알아보긴 했는데, 이번엔 진짜 내 몫은 없어.”

“흐음~”

“…이정원, 너. 왜 그렇게 쳐다보냐.”

이정원의 긴 콧소리에 눈치를 살피게 된다. 사실 이번 일의 배후에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서도경에게 부탁하여 비밀로 해 달라고 간청해 놓은 이후였다.

아이돌인 내가 매번 사건의 해결책이 될 정보들을 물어 온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멤버들이야 익숙해졌다곤 하더라도 당사자 역시 애매모호하게 본 사건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어느 정도 본인이 힌트를 갖고 있었지, 이번처럼 무대책에 가까운 사태는 아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료를 내놓는다는 건 너무 수상쩍어 보일 것 같았다. 하물며 지금 이정원은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무척이나 많아 보였다.

“얼굴 뚫어지겠다.”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저 모습만 해도 그랬다. 메모리 서칭 엔진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효과였는지 모르겠으나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기억 속에서 만난 상대에게 각인이 됐다.

친분이 없거나 적대적인 감정을 지닌 사람들은 마주해도 모르는 것 같았는데. 이정원처럼 오랜 시간 교류가 있었고 호감을 품은 대상은 나를 기억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메모리 서칭 엔진을 쓰지 않고 해결했던 윤명이나, 가장 처음에 사용한 문채민과 이유준은 괜찮았다. 강태오 역시 동화되기 시작한 초창기 인물로서 그럭저럭 잘 넘어갔다고 봤다.

하지만 이 녀석, 이정원은 달랐다. 꿈이나 헛것을 봤다고 치부할 법도 한데, 본인 성격 때문이었을까, 나라는 확신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서도경에겐 입단속을 부탁했다. 나는 정보만 물어온 거지 실질적인 조사는 댁이 했다며 모든 공로를 대표 쪽으로 몰아준 거다.

서도경은 자신이 이런 쪽으로 욕심 있던 사람은 아니라며 재밌다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사람 놀리는 게 분명한데. 그 당시 을은 나였던 터라 두 눈 질끈 감고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내가 했던 걸로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냥 운수 좋게 주변 탐문 하다가 알게 된 일들인데. 멤버들한테 의심 사고 싶지 않아서요. 부탁 좀 드릴게요.’

‘뭐,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 두죠. 저도 신해신 씨의 조사 능력은 신기하게 보고 있으니까요. 나중엔 비법 좀 알려 주세요.’

‘…예.’

알려 줄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겠지만 당시를 모면하기 위해서 비위를 맞췄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면초가도 이런 사면초가가 없구나. 근래 나만 보이면 시선을 던지던 이정원하며, 흥미롭다는 얼굴로 미소 짓는 이유준에 이어 다른 멤버들도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일단 피하자. 쉬는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른 핑계를 대며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모두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핑곗거리가 있었다.

“맞다. 선배님들한테 한 번 더 연락드리기로 했는데. 통화 좀 하고 올 테니까, 너희끼리 쉬고 있어.”

“…흐음.”

“이정원, 넌 제발 그 콧소리 좀 어떻게 해 보고. 이유준, 강태오. 부탁 좀 할게?”

“어, 다녀와~”

“부탁할 게 따로 있나. 저 망나니 둘만 조용히 있으면 됐지.”

“…태오 형, 그거 나랑 권혜성 쟤 이야기야?”

“윤명, 넌 불쑥불쑥 튀어나오지 좀 마.”

“내가 왜 망나니야! 난 칼춤 춘 적도 없는데!”

“혜성이 형, 진짜 나중에 추게 될 일 생길 것 같으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자.”

시끌벅적한 녀석들을 등지고 연습실을 나섰다. 변명이라고 하면 변명일 수도 있겠으나 해야 할 일은 맞았다.

우리끼리 하는 무대가 있었다면 상관없었겠는데, 3차 경연에는 페어로 같이 무대를 꾸려야 할 사람들이 존재했다.

“얼티밋 나인. 류정, 오정오.”

유닛 3종 경연에서 보컬 파트로 무대를 준비하고 있던 선배 아이돌 그룹이었다. 이정원 관련 사건이 발발한 이후, 해결법을 찾자마자 여기에도 연락을 남겼다.

크라운 게임에 출연한 후부턴 사방에 치이느라 정신없던 사람들이었다. 블릭투에게 이용당하고, 엔넷 측 악편으로 고생하고. 하여간에 참 여러모로 다사다난한 팔자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인물들이었기에 최소한의 사정 설명과 사건 개요는 보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안 그래도 궁금했던 건지 교환했던 연락처로 문자를 넣었더니 몇 분 안 되어 통화가 진행됐었다.

- …그러니까 전부 악성 루머라고요?

‘네. 일단 너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만, 염려 끼쳐서 죄송합니다, 선배님.’

류정의 놀랐다는 목소리 너머로 술렁이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사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얼티밋 나인 멤버들은 한자리에 모여 있었나 보다. 그러면 일일이 설명 안 해도 좋지, 뭐.

손제완의 전화 폭탄도 감당이 안 되던 무렵이라 긍정적인 뉘앙스로 말을 전했다.

메모리 서칭 엔진도 사용하고, 서도경과의 면담으로 해결법도 정리한 이후여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계속 놔두면 경연에 방해가 될 테니까요. 좋지 못한 반응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래서 조만간 해결할 생각입니다. 아, 해결할 방법은 다 찾아놨어요. 정원이도 많이 당황했는데, 아직 멘탈 수습을 못 해서요. 다음 연습 전에 꼭 연락드릴게요.’

- 예, 뭐, 그렇다면 상관없죠. 솔직히 하이사인에서 그런 문제가 있었을 거라곤 믿지 않았으니까요. (해신아!) …민재야, 제완이 좀 끌고 가라. (손제완, 이 망할 자식아. 이리 안 와?) (아, 왜! 나도 말 좀 하ㅈ……!)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그때 그게 류정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손제완으로 인해 이도 저도 아닌 분위기가 되어 다시 한번 연락을 취하기로 했었다.

핸드폰을 켜고 최근 통화 목록을 뒤져 류정의 연락처를 눌렀다. 비활동기에 접어들어 스케줄이 없다고 하더니, 진짜였나 보다. 금방 받는다.

- 여보세요? 해신 씨?

“안녕하세요, 선배님. 연락드린다고 했는데, 너무 늦었죠?”

- 아니에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줬는데요.

저기도 경연 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묘하게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번에 이야기했던 걸 알려 드리고 싶어서요. 음, 아마 경연 녹화 전날쯤부터 루머 정리를 시작할 것 같습니다. 본 해결은… 3차 녹화 날 아침입니다.”

- 경연 전날이랑 당일 아침이요?

“네.”

- …그거, 이유가 있는 거죠?

류정의 의미심장한 질문을 듣고 눈을 굴렸다. ‘이 사람도 연예계에서 구를 만큼 굴렀는데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과 ‘여기까지 까는 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마음이 부딪쳤다.

아주 잠깐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전자였다. 같은 팀을 하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받은 건 불합리하겠단 판단이 들어서였다.

“…아시잖아요, 가장 효과가 클 시간이 언제인지.”

쉽게 불타오르는 사건은 그만큼 식는 것도 빠른 법이었다. ‘가장 화제성이 높을 시간을 골라 적들을 일망타진한다.’ 그게 바로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경연 전날 저녁 미리 일부를 푸는 것은 장작을 쌓고 아주 작은 불을 내 놓는 것이었다. 녹화 당일에 오픈하면 퍼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사전 밑밥이라고 볼 수 있었다.

미리 붙여 둔 불이 몸집을 부풀렸을 무렵, 그때가 가장 큰 기회였다.

서도경이 컨택 중인 최한성 전 여친의 증언, 그것과 내가 찍은 사진 파일을 풀어 블릭투 입장에선 소화할 수 없는 큰불로 만드는 거였다.

뭐, 최한성 전 여친의 증언을 얻어 내지 못하더라도 사진 파일만 있으면 진화는 불가능하겠지. 단계별로 구상해 둔 계획을 암묵적으로나마 티를 내니, 통화 중이던 류정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런, 너무 많이 깠나. 이 업계에 오래 몸 담근 것치곤 당하기도 자주 당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으니까. 혹여라도 내 모습을 보고 당황했을까 봐 후회가 들려 했다.

그때 핸드폰 너머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푸핫!

“…선배님?”

…이거 괜찮은 거야? 벽에 기대 팔짱을 끼곤 류정의 심리 상태를 분석했다. 웃는 걸 보아 최악은 아닌 듯한데.

- 하하하! 미쳤다!

“…괜찮으세요?”

- 아~ 난 하이사인 전부 순둥이로만 봤는데.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보네요. 지금까지 위기 극복한 거 전부 멤버들 스스로가 해낸 거였구나.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았어요. 박수가 절로 나오네.

“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류정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부정적인 감정 상태가 아니란 것이었다.

- 우리가 도와줄 거 있어요?

“선배님들이요?”

- 저 지금 너무 유쾌하거든요. 잊진 않았죠? 우리도 여기저기에 쌓인 게 많다는 것. 음, 내 생각이 맞기를 바라는데. 혹시 이거 블릭투 걔네도 연관되어 있어요?

이정원이 겪게 된 사태와 블릭투 최한성과의 연관성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류정 이 사람, 눈치가 빨랐다.

그러게, 적 좀 그만 만들지. 이건 블릭투 스스로 함정에 빠진 일이었다. 덕분에 괜찮은 아군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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