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첫 번째 무대가 종료된 이후였다. 류정 그리고 오정오와 헤어진 뒤 대기실로 돌아갔다.
“오~”
“…오.”
문을 열자 보이는 광경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권혜성, 윤명, 쟤네 지금 뭐 하는 거야? 모니터로 모두 보고 있었는지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다른 듯 닮은 행동의 스무 살 동갑내기 둘을 지나 소파에 안착한 순간이었다. 등받이에 기대 서 있던 이유준이 고생했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 빼고 너무 잘하니까, 서운하던데.”
“이유준 얜 칭찬도 특이하게 하네.”
이정원의 태클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팔짱을 끼며 웃는다.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핸드폰을 들어서 여론부터 확인하려고 했다. 아침부터 푼 자료와 지금의 무대를 통해 이정원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채민과 강태오는 앞뒤 사정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나 보다. 성큼 다가와선 내게 본인들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 봐.”
“이럴 줄 알고 미리 찾아보고 있었지.”
문채민이야 팬 반응을 확인하는 것에 능숙해서 대충 이해됐는데, 강태오 얘가 이러는 걸 보니 색달랐다. 그건 이정원도 마찬가지였는지 재밌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들 내가 걱정되긴 했나 봐?”
“넌 당사자치고 전혀 타격이 없어 보인다.”
“…됐으니까 얼른 받아.”
강태오의 재촉에 녀석의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지금까지 찾아본 반응을 살펴봤다.
…이거 괜찮은데? 아침부터 이런저런 이슈로 시끄러웠던 티위터였다. 하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아 우리에게 유리한 판으로 전환된 듯했다.
- 크겜 3차 경연 보컬 부문이 실력으로 압살함 ㅎㅇㅅㅇ이랑 ㅇㅌㅁㄴㅇ
- 와 현장 분위기 완전 뒤집혔네 ㅋㅋㅋㅋㅋ 어젯밤까지 기세등등하던 그 팬덤 지금 다 아닥이고요~
- ㅇㅈㅇ 존나 기존세인 거 딱 느낀 게 거짓 논란 이런 거 다 상관없이 무대 완성도로 자기 인증함 힘있게 소리 받쳐주는 것 보고 걍 입 벌어졌다 타 그룹 멤이랑도 보컬 합 좋으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고 뭐고 하나도 생각 안 남
- 얘 기존세는 솔직히 외유내강의 정석 아니냐 다들 기존세 기존세 그런 것뿐이지 사실 똑 부러지고 자기 본업 잘하는 애인 거잖아 ㅜㅠ
- 맞아 팬들이 밈으로 장난치던 거에 이 악물고 욕하던 까들… 이번 본방 보고 다 반성했으면 좋겠다
- 억까 돌았었지 얘네 유달리 짭루머도 많은데 하나 나오기만 하면 물어뜯느라 바쁘고
- 오늘 아침부터 입 싹 닫은 거 보고 이마 쳤다 투리구슬 팬덤 개 못됐어 진짜 ㅠㅠㅠ
- 선곡 미쳤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걸 보컬로 썼구나 각 팀에서 나온 멤들 보자마자 이 간 거 딱 느꼈잖아;
- 방송에서 후보정 안 했으면 좋겠을 정도로 무대 좋았음 ㅠ
- 현장감 찐으로 돌았다 퍼포까지 같이 보여줘서 걍 4분이 4초 같았음
- 누구 아이디어냐 ㅋㅋㅋㅋㅋㅋ ㅎㅇㅅㅇ 얘넨 컨셉 안 겹치게 잘 꺼내오네
- 인정 나 타팬인데도 매번 볼 때마다 느낌 중간에서 머리 잘 쓰는 애 하나 있는 거 분명함;
- 원래 그런 멤이 있어야 경연을 잘해 메이터스가 다 생각이 있었구나 그냥 얘네 서바이벌에 강한 팀이었음 엔넷 푸시빨 있단 소리 싹 들어가게 만들면서 실력 인정받는 거 보면 괜히 머기업이 아닌 듯
두루뭉술하게 돌린 스포일러 글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자세하지 않았던 탓에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늘어나며 판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였다.
무대가 좋았다는 후기들을 뒤로하고 이정원의 이미지 쇄신도 해결되었으니,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다.
그럼 블릭투 쪽은 어떨까. 본경연에 들어간 이후 마주치지 못한 최한성과 블릭투의 멤버들이 떠올랐다.
“형, 거기 글 찾아보고 있었지?”
그런 내 속마음을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 바로 문채민이었다. 강태오의 핸드폰에 이어 문채민의 핸드폰을 받았다. 여론 탐색용 계정으로 서칭된 페이지에는 블릭투의 팬덤으로 추정되는 팬들의 계정이 나와 있었다.
“여긴 분위기 어때?”
바짝 다가온 이정원의 고개가 문채민의 핸드폰 방향으로 수그러들었다. 본인에 대한 욕이 있을 수도 있는데. 하여간에 대담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직접 읽어 보라며 핸드폰을 넘기자 스크롤을 내린 이정원이 웃었다. 테이블 위에 문채민의 핸드폰을 내려놓은 뒤, 턱을 괴곤 모두에게 고갯짓했다.
도대체 뭐길래 저러는 거지. 이젠 완전히 제 페이스를 되찾은 이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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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까 중립 박기엔 너무 많이 나온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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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ㅎㅅ 제외한 나머지 멤버 체제 밉니다.
맞지 않으신 분들은 블언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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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막말로 미자 술, 담배까진 안아줄 수 있어
근데 한성아 오토바이에 성인 여성 등쳐먹어서 연애질
하는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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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성 #미자성인연애 #○○○○ #○○○
블릭투 최한성 포카 팝니다. 택포
가격은 이미지 확인, 연락은 DM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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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ㅎㅅ 팬들 아침까진 피의 쉴드 쳐주고 있었는데
지금 대거 현타 맞고 아닥한 거 개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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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연말인가요? 이런 거 원래 연말연초에
터져야 하는데 규모가 존나 크잖아;
나라에 무슨 일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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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지금 블투 홈 3개 닫음
홈마분들 제대로 현타맞고 먹먹문 쓰시면서
사라지셨는데; 타멤 파는 사람들 뒷계에서
리얼 망나니 칼춤 추기 일보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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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어떻게 멤 하나로 팀 이미지가
이렇게 족창이 나지요? ㅊㅎㅅ 이 배은망덕한 새끼
지금까지 실수해도 팬들이 빨아주면서
내새끼 잘한다 잘한다 올려쳐준 게 몇 번인데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할 망정이지 똥물을 튀겨
너가 무슨 10년차야? 대선배야? 이제 앞길이
9만리인 애들한테 뭔 짓 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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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나 이제 그 팬덤한테 약간 편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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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더 격한 분위기였다. 블릭투의 팬덤을 비롯하여 함께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타 그룹의 팬덤과 그걸 지켜보던 제3자들의 난입까지 포함하니 난리도 이런 난리통이 없었다.
이걸로 이정원 관련된 사건은 완전히 포커스가 넘어간 모양인데. 이정원에 대한 루머를 퍼뜨린 사람들의 사과는 듣지 못해 아쉬웠지만 일단 그쪽은 서도경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라며 넘겼다.
한동안 저긴 시끄럽겠구나. 유닛 무대만 끝났던 터라 본경연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이후로는 블릭투도 무대를 해야 했고, 랩 포지션이 아닌 탓에 나오지 않았던 최한성도 단체 미션에선 모습을 보여야 했다.
클로징 시간에는 이정원과도 얼굴을 마주하겠지. 옆에 있는 녀석을 흘낏 보자 바로 눈이 마주친다.
덤덤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데, 속이 시원하다거나 하는 후련함은 없어 보였다. 그저 무던한 자세를 유지하며 근처로 다가온 권혜성과 윤명의 등을 쳤다.
이를 지켜보던 이유준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돌직구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열받아 하던 것치곤 통쾌해 보이진 않네?”
“그럴 게 뭐가 있냐. 그냥 해결됐구나 이 정도지. …그리고.”
“그리고?”
문채민이 이정원의 뒷말을 따라 했다. 이정원은 소파에 등을 기댄 자세로 고개를 돌려 멤버 전원을 돌아보고 있었다.
“너희한테 미안할 일이 끝나서 다행이다.”
“…형.”
“형!”
“미리 말해 두는데 윤명, 너는 매달릴 생각 하지 마. 무거워. 그리고 권혜성, 뛰어들지 마. 달라붙는 순간 나랑 싸우자는 걸로 알아듣는다.”
“…재미없어.”
“아~ 완전히 회복했네~ 정원이 형~”
시큰둥한 얼굴로 윤명과 권혜성을 차단한 이정원이었다. 그대로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이만 해산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다음 무대 준비 안 할 거야? 나 신파 찍는 성격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만 각자 할 일 하자?”
“에이~ 우리 팀 형들은 너무 강하다니까. 핑계 대고 장난 칠 틈을 안 줘. 그렇지, 윤명.”
“…약간은 공감.”
“형들 때문에 나도 쫓겨났잖아.”
“문채민, 너나 우리나거든.”
권혜성과 윤명 그리고 문채민이 투덜거리며 멀어졌다. 이정원의 말에도 꿋꿋하게 남아 있는 건 강태오와 이유준뿐이었다.
“너흰 안 가?”
“형들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여기 있었는데.”
“…이유준 쟨 뻔뻔하니까 그런다 치고. 강태오, 넌 웬일로 버티는 중이야?”
“여기 뜨면 쟤네, 나한테 맡길 거잖아.”
화장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삼인방을 본 강태오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겠지. 이정원과 같이 들어온 이후 쭉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래서 가만히 버티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정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신해신, 고맙다.”
“어?”
“고맙다고. 대표님도 물론 많은 걸 했겠지. 그런데 내가 보기엔 네가 가장 발 벗고 나선 것 같거든? 그러니까 인사하는 거야. …고마워, 그리고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
“…이정원, 너.”
“뭔지는 모르겠지만,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넘어가 주는 거야. 나 아직 의심 안 풀었어. 이번엔 도움도 받았겠다, 한 번만 넘어가 준다?”
그러고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찡긋 윙크했다. 그때, 귓가로 오랜만에 시스템 알림음이 들렸다.
[확률 성장 트리]
미개화: ??? ?? ??(??)
[19… 37… 58… 83… 92… 100%]
[확률 성장 트리 개화]
[확률 성장 트리]
개화: 보이스 오브 녹턴(심화)
노래로 감동을 주고 싶어. 보컬 소화력 +60%
아, 얘도 이게 있었겠구나.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능력이 개화하여 이정원의 스탯에 적용됐다.
하긴, 이정원은 이유준과 문채민 그리고 강태오에 이어 과거와 얽힌 문제가 해결된 네 번째 멤버였다. 능력치만 봐도 없는 게 이상할 정도로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나저나 뭐지? 평소라면 이것보다 더 긴 창이 이어져야만 했다. 이상함에 고민하던 찰나, 이번 사건에선 미션이 열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라면 문제점을 해결하라는 둥, 부정적인 여론을 제거하라는 둥 하는 일들이 붙어 와야 했다.
그런데 이번 일은 김찬규와의 만남에서부터 차근차근 사태 파악을 했던 탓일까, 시스템이 새로운 미션을 주지 않았다.
…아니면 당사자의 멘탈이 크게 무너지지 않아서 그랬나? 보상이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의아한 마음만 품은 상태였다.
[이정원]
나이: 23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D
끼: B-
저놈의 운 스탯. 문득 이정원의 운 스탯이 ‘D’라서 그 고생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때, 그것도 녀석과 눈이 마주친 이후론 내가 해결해 주면 된다고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