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점수 배점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3종 유닛(40)’, 랜덤 초이스 (Random Choice)(60)으로 진행됩니다.”
유닛 미션이 들어가 있긴 했어도 팀끼리 하는 경쟁이다, 이건가? 안지하의 외침을 들은 출연진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여러 가지로 참 재밌는 무대가 많이 나왔던 이번 경연이었는데요.”
뭐지? 순간 안지하와 눈이 마주친 듯했다. 우리가 있는 곳과 얼티밋 나인이 있는 방향을 빠르게 스캔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 큐 카드를 읽었다.
아, 이제 안 건데, 아무래도 안지하는 3차 유닛 미션에서 보컬 파트를 맡은 우리와 얼티밋 나인의 무대가 제법 재미있었나 보다.
원곡자로서 방송이 끝나면 한 번쯤은 언급해 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반응을 보여 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선 3종 유닛 미션 점수부터 공개하겠습니다. 스크린 오픈!”
안지하의 외침에 따라 사방이 술렁거렸다. 스테이지 정중앙에 있던 대형 스크린 위로 불이 들어왔다.
[3종 유닛]
1. 디레스트/원더보이즈
2. 얼티밋 나인/하이사인
3. 인클루/블릭투
공개된 점수표 너머로 지금까지 정해진 순위가 뒤바꼈다. 원더보이즈와 디레스트 진영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들으며 일단 축하의 박수를 쳐 줬다.
사실 대충 이럴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김환준 저 사람, 머리를 잘 썼다. 본인들과는 전혀 다른 색을 지닌 원더보이즈와 합을 맞을 맞췄다.
잘못하면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장점이 돋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를 구성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있었던 방해 공작들이 수그러든 것도 한몫했다. 1차와 2차에서 고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게 큰 반전이 되어 돌아왔다.
아마 상대적으로 훨씬 잘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기회를 엿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는 게 이런 걸까. 김환준이 있는 디레스트의 진영을 바라봤다.
씨익- 언제부터였을까, 여길 보고 있던 김환준이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아, 얄미워. 자기 딴에는 칭찬해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경쟁하는 입장에선 그저 열받는 적 중 하나일 뿐이었다.
[도합 순위]
1. 원더보이즈 (360)
2. 디레스트 (345) / 하이사인 (345)
3. 인클루 (330)
4. 얼티밋 나인 (300)
5. 블릭투 (300)
“와, 이게 이렇게 되네.”
이유준의 혼잣말을 들으며 살펴본 표였다. 유닛 3종 미션의 점수만으로 큰 변동이 생겼다. 90점부터 시작하여 60점, 30점으로 쪼개진 점수였다. 단 30점의 배차가 상황을 뒤집었다.
우선 1위는 원더보이즈가 차지했다. 1차에서 블릭투에게 방패막이 당하긴 했지만, 좋은 점수를 받은 건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거기서 이번 유닛 미션을 통해 디레스트와 함께 1위를 차지했다. 여태까지 좋지 못한 흐름을 가져간 것치곤 이래저래 상위 라인을 유지한 팀이었다.
흐음, 김환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의미심장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랜덤 초이스에서 나온 결과물을 보고 원더보이즈를 누를지 말지 결정하겠군.
이민석에겐 다소 안됐다는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도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저기가 독주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원더보이즈를 제외하면 그다음 자리는 우리와 디레스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초반에 가장 표면적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2위까지 올라간 건 기쁘지만, 아직은 안도해선 안 됐다. 멤버들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표정들이 결연해 보였다. 특히…….
“2위, 많이 올라갔네. 좋다, 그렇지?”
“…으응.”
이정원 이 녀석, 좋다는 말과는 달리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녹화가 되고 있다는 걸 알아서 둘러 표현한 것 같았으나, 저건 상대를 먹이는 행동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한솥밥 먹은 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속이 훤히 내다보였다. 하여간에 기도 더럽게 세요. 뭐, 그간 당한 게 있었으니 이해해 주기로 했다.
얘네야 나중에 어르고 달래 가며 3차에서 뒤집으면 된다 친다. 그럼 남은 문제는 인클루인데.
이런. 지원겸 제대로 열받은 모양이다. 실력만 따지면 저기 있을 양반들이 아니긴 했다. 그런데 또 블릭투 놈들 때문에 손해를 봐 버렸다.
이쯤 되면 원한은 우리가 아니라 저기에 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애써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면서도 힐끔 눈치를 살피게 된다. 피해야겠네. 당분간은 지원겸과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일 듯하다.
마지막 6위는 블릭투였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 법이라고. 지금까지 수 쓴 게 전부 소용없어진 상황이었다.
“우와~ 완전 대박!”
권혜성 이 녀석, 저 밝은 얼굴로 살살 엿을 먹인다. 내용만 봐선 신기하단 느낌이었으나, 내가 보기엔 저건 블릭투를 겨냥하고 하는 말이었다.
권선징악이라 이건가? 덤덤한 얼굴로 주변을 보는 강태오도, 멍한 시선으로 권혜성의 말에 동조해 주는 윤명도, 안 그러는 척 블릭투의 최한성을 살피는 문채민도.
모두 블릭투와 녀석들의 소속사 그리고 MXP에게 원한이 있었다. 이건 귀찮게 굴던 적 중 하나를 물리칠 기회였다.
“그럼 바로 다음으로 ‘랜덤 초이스’ 미션의 점수도 공개하겠습니다. 스크린 오픈!”
안지하의 외침과 동시에 다시 한번 스크린 위의 화면이 바뀌었다. 1위, 1위는 누구지? 180점부터 시작하는 배점은 상황을 뒤집을 찬스가 될 수도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3차 경연의 최종 순위를 살펴봤다.
[랜덤 초이스]
1. 하이사인
2. 디레스트
3. 인클루
4. 얼티밋 나인
5. 원더보이즈
6. 블릭투
[3차 경연 점수 및 최종 순위]
1. 하이사인 (525)
2. 디레스트 (495)
3. 인클루 (450)
4. 원더보이즈 (420)
5. 얼티밋 나인 (390)
6. 블릭투 (330)
뒤집었다! 1위 옆에 적힌 우리의 이름이 보였다. 됐다며 멤버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데 등 뒤에서 무거운 체중들이 몸을 내리눌렀다.
“1위!”
“형, 됐다!”
“야, 신해신!”
“…무, 무거워!”
그건 바로 멤버들이었다. 계단형 좌석으로 앉아 있었던 탓에 하중이 장난 아니다. 점잖은 이유준과 강태오는 이 사태에 끼어 있지 않았지만, 문채민을 비롯하여 윤명 그리고 권혜성 셋은 뜯어말리지 못한 상태였다.
하물며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정원까지 내 어깨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넘어가겠어! 1위를 차지했다는 기쁨도 잠시 녹화 도중 엎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이어졌다.
“하하, 다들 적당히 해. 해신이 형 눌린다!”
“이유준, 넌 말로만 그러지 말고 좀 뜯어내.”
강태오와 이유준이 아니었다면 정말 넘어질 뻔했다. 가장 위쪽의 문채민부터 걷어 낸 강태오가 이유준을 타박하며 다른 녀석을 떼어 냈다.
이유준의 손짓에 목덜미가 들린 권혜성이었다. 윤명은 둘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내게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정원에게 붙잡힌 어깨는 여전했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살 만했다.
그나저나 블릭투 저놈들, 완전히 추락했군. 논란에 이어 유닛 미션에서 이뤄진 실수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거기까지만 했어도 충분히 안 좋은 상황이었는데. 본미션에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최한성이 또 다른 실수를 했다.
“하하, 1위의 하이사인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좋은 무대 보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때 스테이지 중앙에서 안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술렁거리는 출연진들을 보며 다음 경연에 대한 설명을 잇고 있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 4차 경연의 주제를 발표해보겠습니다. 4차 경연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For, 그들을 위하여]
“대망의 크라운 게임 마지막 주제는 바로 ‘For, 그들을 위하여’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여러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보여 주세요. 그럼 크라운 게임, 그 왕관의 주인은? 마지막 생방송 경연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MC 안지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클로징 멘트 너머로 빛나는 문구가 보였다. ‘For, 그들을 위하여’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다운 슬로건이었다.
아마도 저기 저 그들이란 건 팬들과 가족들 그리고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뜻하는 거겠지.
카메라의 불이 꺼지며 모든 녹화가 종료됐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3차 경연이 끝이 났다.
* * *
일단은 우리도 철수하기로 한 상태였다. 백스테이지를 통해 대기실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힐끔 한곳을 쳐다보기 바빴다. …블릭투 그리고 최한성.
방송 막바지에 가선 아예 말을 잃은 녀석들이었다. 카메라 앞이라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젠 상관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움직이고 있던 김환준 역시 최한성을 보고 있었다. 블릭투와 MXP의 공작만 아니었다면 지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김환준네가 있는 디레스트였을 것이다.
랜덤 초이스에서 우리가 1위를 받은 건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약간의 운도 따른 것이었다. 이정원에 대한 동정론과 감정선을 건드린 것도 없지 않아 있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뭐,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멤버들은 모두 아무렇지 않아 했다. 우리가 블릭투 쟤네처럼 치사한 짓을 펼친 것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여긴 피해자였다.
흠, 불똥 튀기 전에 먼저 가 볼까. 녹화장으로부터 제법 멀어진 이후였다. 대기실이 흩어지는 갈림길이 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최한성의 얼굴이 영 심상치 않았다.
문채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정원을 보다가 최한성의 시선으로부터 이정원을 차단하려던 순간이었다.
“…야!”
아, 젠장. 최한성의 외침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각자 가던 길에서 발을 멈추고 최한성을 보기 바빴다.
“나?”
“그래, 야. 이정원, 너 미쳤냐?”
엄마야. 이런 개싸움이 될 줄은 몰랐다. 천천히 최한성을 돌아본 이정원이 삐딱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저기도 열받았군.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내가 형 아니던가.”
“…정원이 형은 저게 더 중요한가 봐.”
“쉿, 윤명, 쉬잇!”
웅얼웅얼 혼잣말을 내뱉은 윤명을 권혜성이 끌어당겼다. 문채민까지 대피시킨 강태오가 내 쪽을 돌아봤다.
…안 되겠네. 일단 강태오에겐 세 명을 데리고 가란 눈짓을 했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강태오가 문채민, 윤명 그리고 권혜성을 끌고 사라졌다.
곁에 있던 이유준 역시 강태오를 따라가 보겠다는 얼굴을 했다. 굳이 여기 잔뜩 있어서 휘말리는 것보단, 한 놈이라도 더 빠져나가 있는 것이 수습하기 좋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일단 멤버들을 피신시킨 이후였다. 씩씩거리는 최한성과 이정원의 대치 너머로 술렁이는 타 그룹 멤버들이 보였다.
저기도 너무 몰려 있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리더인 류정과 이민석에겐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했다. 댁들은 됐으니까 일부 멤버들이라도 좀 안으로 보내 달라는 의미였다.
“너희, 들어가 있어.”
“…엥, 형? 우리만?”
“얼른.”
류정과 이민석의 말을 들은 얼티밋 나인과 원더보이즈 멤버들이 각자의 대기실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힐끔거리는 손제완을 목격하곤 안도 반, 걱정 반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도 말소리가 이어졌다. 그건 바로 부탁할 엄두도 못 했던 인클루와 디레스트의 진영이었다.
“야, 진재영.”
“네, 네~ 분부대로 하죠~ 가자, 얘들아.”
“헉,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넵, 얌전히 따르겠습니다. 알았어, 간다니까? 겸이 형, 그만 봐!”
지원겸이 진재영이라고 불린 멤버에게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침착해 보이는 진재영이란 사람이 지원겸 너머로 이정원과 최한성을 살펴보곤 멤버들과 대기실로 향했다.
“도민아, 너도 들어가 있을래? 매니저님들 이쪽으로 못 오게 하고.”
“얼라리요~ 살벌한 게 영 재밌어 보이는데~”
“최도민.”
“알았어, 알았어~ 대신 나중에 얘기해 줘야 한다? 해신 씨, 이따 회사에서 봅시다?”
그 뒤를 이은 게 김환준이었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도민을 비롯하여 디레스트의 멤버들이 등을 돌렸다. 나는 도민의 윙크를 받아 떨떠름한 상태였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블릭투의 멤버들을 제외하면 각 팀의 리더와 사태의 주인공 중 하나인 이정원만이 남아 있던 현장이었다.
주변 상황을 전부 파악했는지 이정원이 고개를 기울이며 삐딱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오면 나도 못 넘어가지.”
“아, 망했다.”
이정원의 말을 듣자마자 망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혼잣말을 들은 지원겸과 김환준 그리고 류정과 이민석이 여길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정원 저 녀석, 여기서 담판을 지으려는 모양이었다. 악연을 끊는 건 좋았는데, 내 입장도 생각해 주면 더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