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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46화 (245/328)

246화

분위기가 살벌했다. 앞을 내다보지 않는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당장 방송국 한가운데에서 치고 박고 할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이상한 곳에서 막무가내인 점은 있었기에 방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정원의 뒤에 서서 최한성과 그 주변을 둘러싼 다른 그룹의 리더들을 살폈다.

걱정스럽단 표정의 이민석과 복도 먼 곳을 훑어보며 오가는 이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 류정을 제외하면 지원겸과 김환준 역시 싸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까 폭탄은 둘이 아니라 넷이었군. 최한성과 이정원에 이어 저기도 재앙을 불러들일 것 같았다.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제발 입을 다물어 달란 제스처를 취했다.

그때 이정원에게서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얘와 1년도 훌쩍 넘게 알았지만, 처음 듣는 냉정한 어투였다.

“개인적인 일로 나만 건드렸으면 넘어가려고 했어. 최한성, 넌 원래 그런 녀석이었잖아.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은 낮아서 남의 것을 보고 질투하기만 바쁜 인간.”

“…뭐?!”

“왜? 내 말이 틀려? 여태까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망나니처럼 살면서 부모님 은혜로 혜택받았던 건 너였잖아. 그렇게 다 누리고서도 뭐가 그리 욕심이 난 거냐? 얼마나 더 성에 차야 했던 건데?”

…세다. 최한성이 반박할 틈도 주지 않는 맹공격이었다. 흥분한 티는 전혀 나지 않는 담담한 얼굴로 무차별적인 폭탄을 던졌다.

이정원의 이야기를 들은 리더들은 반응이 엇갈리고 있었다. 유어돌 때부터 놈의 성질을 알고 있었던 이민석은 놀란 것도 잠시 제법 적응한 듯했는데. 꽤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류정 쪽에서 당황스럽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지원겸은 이정원을 보며 재밌다는 듯이 대놓고 웃었다. 김환준도 어처구니는 없어 보였으나, 내심 당했던 게 속 시원했는지 팔짱까지 끼며 둘의 말싸움을 관전하고 있었다.

아, 여기서 멀쩡한 사고를 지닌 건 나뿐이구나. 조금은 절망적이면서도 암담한 사태를 보고 머리를 굴렸다.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해!”

“그럼 넌 뭔데 나한테 없는 죄까지 뒤집어씌웠냐?”

“…하,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이정원의 이야기를 들은 블릭투 멤버들이 헉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설마 쟤네,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가. 뒷공작을 벌인 게 블릭투와 블릭투의 소속사 그리고 MXP의 연계란 것 말이다.

아직 어린 것 같긴 했는데, 이상한 곳에서 순진한 구석이 존재했다.

바로 반격하지 않았던 것은 증거를 잡으려고 기다렸던 것뿐이었다. 가만히 있으니까 무슨, 호구로 봤던 모양이다.

최한성은 이미 몰릴 대로 몰린 상황이었다. 블릭투 멤버 중 두 놈이 정신을 차리고 최한성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그 손을 뿌리치고, 되는 대로 말을 던졌다.

“야, 한성아. 그만해.”

“맞아, 형…….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아, 뭘 그만해! 나한테 손대지 마!”

그때, 지원겸이 휘익하고 높은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 한술 더 뜨네. 하지 말라며 손가락질을 하자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번앤유 때는… 그래, 네가 어렸으니까. 뭐, 행동이 과하긴 했지만, 어려서 모든 걸 넘어가 주려고 했어. 그땐 나도 참 물렀지. …회생 가치가 없으면 진즉 밟아 놨어야 했는데.”

이정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팔을 뻗어 녀석의 어깨를 잡았다.

“…야, 이정원.”

그리고 그런 내 행동을 보던 지원겸과 김환준에게서 작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 센데요?”

“살벌하네~”

하지만 이정원은 이런 주변의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최한성과 담판 지으려고 마음먹었던 게 사실이었나 보다.

괜찮다며 내 쪽을 힐끔 쳐다본 뒤 다시 최한성을 향해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가까이 있는 우리가 아닌 이상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차분한 태도였다.

확실히 멀리서 본다면 최한성만 길길이 날뛰고 있는 걸로 보일 정도의 여유였다. 막가파인 것치고는 철두철미한 구석이 있었다.

“솔직히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거든? 네가 과거에 사고를 쳤든, 과거를 세탁하고 데뷔를 했든, 우리만 안 걸고 넘어졌으면 신경 안 썼을 거야. 그런데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더라? 특히…….”

그대로 눈을 굴려 나와 시선을 맞춘 이정원이었다. …내 가정사를 얘기하는 거군. 저기 때문에 모두에게 알려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미리 알아냈던 것도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전세를 역전시킨 일도 존재했다. 그래서 크게 상처받았다거나 한 건 없었다.

그런데 이정원은 나에 대한 폭로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쓸데없이 정은 많아서. 이러면 뜯어말리기도 미안해진다.

“지금 심정 같아선 네 인성 다 폭로하고 다신 방송국에서 안 마주치게 만들고 싶거든. 그런데 나도 지켜야 할 게 있어서 말이야. 다 됐으니까 앞으로 나 아는 척하지 마. 나뿐만 아니라 우리 애들 그 누구한테도 신경 쓰지 말라고. 이상한 소문이나 루머로 사람 곤란한 짓거리 만드는 것도 그만둬라. 그냥 아예 우리한테서 관심 자체를 꺼 버려.”

“너, 지금 명령하냐?”

“아니, 이건 경고야. 알잖아, 지금 네 상황.”

이정원이 최한성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이정원을 확인한 최한성의 눈썹이 까딱였다.

“…너, 설마. 강연희 일, 네가 한 거야?”

전 여자 친구 이름이군. 서도경을 통해 들었던 이름이 기억났다. 그 사람 덕분에 최한성과 블릭투의 소속사를 건드릴 수 있었다.

최한성은 자신의 과거를 폭로한 글의 배후가 우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럼 우리가 안 터뜨리면 이 타이밍에 이런 얘기가 나오겠냐.

어처구니없는 마음으로 블릭투 놈들과 최한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딱히 긍정은 하지 않았다. 이정원도 그게 유리하단 걸 알고 있었는지 고개만 슬며시 기울일 뿐이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너, 이 자식.”

이정원에게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누가 들어도 비웃음이 확실했다.

저런 얼굴을 보인다면 말로만 부정했을 뿐이지 맞다고 얘기해 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여간에, 우리 멤버였지만 참 성격이 나쁜 듯했다.

이정원의 긍정 아닌 긍정을 확인한 최한성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여기선 먼저 치는 사람이 지는 거야. 최한성은 이미 몰락의 전철을 밟고 있었으니까.

다신 못 건드리게 한다는 게 이런 거라는 걸 깨달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정원이었다.

“혀, 형!”

“최한성, 미친놈아! 너, 정말 끝장이야!”

“죽을 거면 혼자 죽든가! 제정신이야?”

블릭투 멤버들이 이를 지켜보지 못했다. 달려들려는 최한성의 뒤로 멤버 여럿이 팔을 붙잡았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최한성은 눈이 돌아가 있었다. 더는 우리도 위험할 것 같아서 이정원을 팔을 잡아끌었다.

뒤로 당겨 숨기고는 주변을 감싸고 있던 리더들을 향해서 눈짓을 보냈다. 이 정도로 소란이 나면 다른 사람들이 올 수 있으니 적당히 발을 빼라는 수신호였다.

다들 의도치 않게 동맹이 된 무리였다. 도움을 받은 전적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일에 얽히게 하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러니까 눈치껏 살아남으라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이민석의 뒤에서 류정이 복도 너머로 턱짓했다. 그와 동시에 지원겸과 김환준이 최한성을 붙잡는 시늉을 하며 먼 곳을 향해 팔을 휘저었다.

“매니저님~ 여기요~!”

“자자, 한성 씨도 진정합시다.”

선배 둘의 행동을 본 블릭투 멤버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

“어, 어어…….”

“야! 이정원! 미친 새끼야! 너, 이리 안 와?!”

복도 너머에서 다른 사람들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얄밉지만 머리는 참 잘 굴리는 인간들이란 말이야.

어느 순간부터 입을 싹 다문 채 내 뒤에서 몸을 숨긴 이정원 하며, 여태까지 재밌다는 듯 지켜보기만 하다가 최한성을 뜯어말리는 척 연기를 하는 대선배 둘까지.

이건 완전 남이 보면 최한성이 하극상을 벌이는 행동으로 보일 상황이었다.

살살 골려 먹다가 치고 빠지는구나. 어깨에 고개를 박은 채 큭큭거리는 이정원의 웃음소리가 선명했다. …무서워 죽겠네. 다시는 이정원을 열받게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블릭투 멤버들이 어쩔 줄 몰라 하던 시점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최한성! 너, 뭐 하는 거야!”

“어머, 저기 싸우나 봐…….”

“블릭투 아니야? 갑자기 왜 저래?”

가장 앞에서 달려오고 있던 남자는 블릭투의 회사 관계자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혼자만 있었다면 그럭저럭 무마할 수 있었을 텐데.

먼 곳에는 방송 스태프 내지 방송국 직원들로 보이는 인물 몇이 더 존재했다.

블릭투의 회사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보고 사색이 됐다. 당연한 일이겠지. 이건 누가 봐도 최한성 혼자 길길이 날뛰는 듯한 몰골이었다.

“아… 혹시 그것 때문인가? 저기 다 뒤집어씌웠다고 말 나왔잖아.”

“크라운 게임 거기? 맞다, 아침부터 난리였었댔지. 헐……. 근데 왜 저기가 저기에 화를 내? 반대 상황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게임 끝났군. 방송 일 하는 사람들은 서로 정보 공유가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오늘 있었던 이 일이 업계 내부로 유출될 거란 걸 확신했다.

“야! 이정원! 너, 이 비겁한 새끼야! 지금 나 엿 먹였냐? 어?! 그런 거지?”

“후… 저기, 죄송한데요. 쟤 아까부터 통제가 안 되거든요. 갑자기 와서 막 뭐라고 하는데. 어떻게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아, 네, 네……. 최한성, 너. 이리 안 와? …미쳤어? 이건 우리가 손도 못 봐. 안 그래도 네 일 수습 불가라고 회사 긴급 사태인데. 정신 못 차렸지 아주. …아, 난 모르겠다.”

이정원의 피해자 연기를 본 매니저가 블릭투와 최한성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타박을 던졌다. 블릭투 멤버들은 주변을 보며 무슨 상황인지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너희 팀 빼고 전부 한편이라고. 모두에게 피해 끼친 적이 있었던 터라 그게 원한으로 돌아온 사태였다.

나중에 가서 진실을 알려 봤자 증언해 줄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이크도 백스테이지에서 모두 제거한 뒤 들어온 대기실 복도였다. 놈들의 편을 들어 줄 만한 물증은 하나도 없다고 봐야 했다.

악을 쓰려는 최한성은 매니저와 다른 멤버들에 의해 입이 틀어막혔다. 그러곤 서둘러 여기를 뜨듯이 끌려갔다.

먼 곳에서 수군거리는 음성이 커질 무렵이었다. 바짝 다가온 류정이 귓가에 속삭였다.

“일단 해산하죠. 연락은 해신 씨가 단체 대화방이든 뭐든 하나 좀 만들어 주세요. 말 정도는 맞춰야 할 것 같아서요…….”

“네, 그럴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정과 이야기가 끝난 이후, 이민석에겐 먼저 사라지라며 손짓했다. 지원겸과 김환준에게도 연락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연스럽게 서로 등을 돌려 멀어지는 둘이었다. 나는 그대로 류정과 이정원을 끌고 우리 대기실이 있을 곳으로 걸어갔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정원이 제대로 마무리를 지은 일이었다.

어쩌면 최한성 저 녀석, 파이널 경연에선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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