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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48화 (247/328)

248화

류정의 부탁으로 단체 대화방을 개설한 날이었다. 김환준, 지원겸, 류정, 이민석 넷 모두의 연락처를 갖고 있던 건 나뿐이었으니까.

이정원 사태에 휘말리게 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팀의 리더라는 사명으로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겠지 싶은 마음이 강했다. 3차 녹화가 끝난 이후 최한성과 이정원의 대면 자리에서 같이 있던 걸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말을 맞추자는 의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이 사람들을 너무 진지하게만 보고 있었나 보다. 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을 확인하곤 머리를 싸맸다.

류정 [그럼 민석 씨는 ○○일이랑 ○○일만 된다는 거죠?]

이민석 [네, 아니면 ○○일 저녁도 괜찮기는 해요. 선배님들은 시간 되세요?]

김환준 [뭐, 안 될 거야 없죠.]

지원겸 [야, 민석아. 근데 꼭 다 같이 모여야 하냐?]

이민석 [그럼 선배님은 안 오실 거예요?]

지원겸 [지금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잖아, 멍청아.]

김환준 [이 대화방 재밌네요.]

지원겸 [미친놈아, 너 때문에 가기 싫다는 거거든.]

지원겸 [그리고, 야, 신해신. 숫자 줄고 있는 거 다 보이는데 왜 안 나와? 나 지금 전화한다?]

김환준 [지원겸, 네 전화는 잘 받아 주나 보네? 왜 내 전화만 무시해요? 좀 서운한데.]

이민석 [신해신 인기 많네. 그런데 하나도 안 부럽다. ㅋㅋㅋㅋㅋㅋㅋ]

지원겸 [이민석, 그거 지금 무슨 뜻이냐?]

김환준 [^^]

류정 [해신 씨, 보고만 있지 말고 나와요. 혼자 발 빼면 안 되죠.]

“…이런.”

신해신 […보고 있어요. 그런데 도대체 왜 만나자고 하시는 건데요.]

이 인간들, 블릭투 때문에 만나자고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폭풍 같은 연예계 속에서 살아남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모두 보통 멘탈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민석이나 류정만큼은 믿고 있었는데. 지원겸과 김환준에게 휘말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런 놈들이었던 건지. 모두 한 무리처럼 비슷하게 행동한다.

난 또 사건 개요라도 알려 달라고 하는 줄 알았다. 사담이 훨씬 많은 대화방을 무시하기도 몇 날 며칠, 류정에게서 다 같이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냥 놀자판이잖아.”

하지만 나는 밥이나 먹자는 이 시시한 대화를 벗어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그렇게 각 팀의 리더들이 시간을 맞췄다. 활동기에 접어든 사람들 위주로 맞춰 모인 어느 날의 낮이었다. 이번에도 지원겸이 잘 알고 있다는 프라이빗한 식당에서 만났다.

여론이 좋지 못한 블릭투가 있었으나, 거기 리더만 제외하고 회동하는 모습은 대중들에게 보여서 좋을 게 없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각자 사생을 피하고 시간 차이를 둬 가며 조용히 가게로 모여들었다.

내가 가장 마지막이었나 보다. 모두 각양각색의 차림으로 앉아서 식사하고 있었다.

제법 왁자지껄한 풍경에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젓가락을 든 지원겸이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들겨 댔다.

“안녕하세요.”

“여~ 여기 앉아라. 네 건 우리 거랑 똑같은 거로 시켜 놨어.”

적당히 앉으니 모두에게서 안부랍시고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다. 아무 생각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류정이었다. 이 모임의 주최자이자 블릭투에겐 경연 초반에 당한 것이 많은 팀의 리더이기도 했다.

“거긴 완전히 끝난 거죠?”

“일단 분위기로 봐선 그런 것 같은데요. 최한성… 씨가 리더였잖아요. 주축이 될 사람이 그렇게 됐으니, 파이널에선 제대로 무대가 나오려나 모르겠어요. 모두 그런 쪽으로 강한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요.”

팔짱을 낀 류정 옆으로 이민석이 턱을 괬다. 저기도 블릭투에게 얼티밋 나인과 비슷한 일을 당한 전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자연스레 우리를 도왔다. 어떻게 보면 천운이었다.

“이래서 사람이 마음을 못되게 쓰면 안 된다니까. 크라운 게임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식의 동맹이 맺어질 줄은 몰랐잖아요? 무엇보다, 해신이 너랑 이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야,”

“그건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유어돌 때를 회상하는 듯한 이민석이었다. 식사라도 굶고 온 건지 열심히 밥을 먹던 지원겸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야, 솔직히 그건 내가 할 말 아니냐? 제자 놈들이랑 편 먹고 싸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블릭투, 그 자식. 살살 긁어 대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론 안 나갔잖아. …심지어 이놈이랑 내가 이러고 있을 줄이야.”

지원겸이 엄지로 슬쩍 가리킨 곳에는 물을 마시고 있는 김환준이 있었다. 본인에게 쏠린 시선을 보고서도 느긋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인 인간이었다.

피식, 여유롭게 미소 짓더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본다.

“그보다 신해신 씨, 저 물어볼 거 있는데요.”

“네? 네…….”

나를 제외한 넷 중에선 가장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걸 상기하며 과거 일은 제쳐 두기로 했다.

“뒤에 더 숨겨 놓은 거 있죠? 우리 공유 좀 합시다. 네?”

취소, 김환준 이 인간은 이성적인 것보단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거로 넘버원이었다. 속을 훤히 꿰뚫는 듯한 질문이었는데.

하여간에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김환준의 말 한마디로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형식상 대선배라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입 밖으론 내뱉지 못한 채 고개를 숙여 궁시렁거리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지원겸이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낄낄거린다.

“열받지, 저 자식 무지 열받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 여기 이런 관계였구나.”

사람이 많아서 그랬던 건가. 말 한마디가 나오면 백 마디가 따라붙는 기이한 현장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저녁을 넘어서서 날밤 지샐 것 같았기에 한숨을 내쉰 뒤 원하는 답을 들려주기로 했다. 그냥 포기한 참이었다.

“하~ 네, 맞아요. 숨겨 놓은 거 있어요.”

“헐, 진짜? 신해신, 아직 거기 끝난 거 아니야?”

“이건 흥미로운데요……. 해신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제완이 녀석이랑 친해진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놀랐다는 듯한 이민석과 휘익 휘파람을 부는 류정의 모습에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김환준은 줄곧 입꼬리를 올리고 있던 상태였다.

그때, 덤덤한 얼굴을 한 지원겸이 팔꿈치를 세워 내 옆구리를 찔렀다. 툭 하고 던진 말을 보아 여기도 뒷일을 눈치채고 있었나 보다.

“굳이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저 새끼만 알 바엔 나도 같이 들어야겠다. 그래서 뭔데. 믿고 얘기해. 이런 자리까지 가졌으면 우린 한배 탄 거랑 다를 바가 없어. 야, 이민석, 류정 씨. 내 말 틀린 거 없죠? 배신하면 죽어요.”

“예~ 그렇죠~ 근데 죽는다니. 너무 무섭잖아요, 선배님.”

“경연을 떠나 지금 상황에선 믿어도 괜찮아요. 아, 그래도 무대는 별개입니다?”

류정의 너스레에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김환준의 진득한 시선을 느끼며 대강의 계획을 설명하던 참이었다.

“온다 레이블, 곧 무너질 거예요.”

“온다? 거기 블릭투 놈네 회사잖아. 최한성 건으로 휘청거리긴 하고 있는데. 그룹도 아니고 멤버 한 놈 때문에 레이블이 무너진다고?”

지원겸이 의문스럽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저기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뇨, 소속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회사 때문에요. 선배님, 알고 있었죠? MXP랑 온다랑 뒤가 좀 구린 거.”

김환준. 돌아본 시선의 끝에서 턱을 괸 자세로 씨익 미소 짓고 있는 남자였다.

“물론 알고 있었죠.”

“아, MXP라면…….”

“선배님네 예전 회사죠? 그렇게 나쁘진 않게 끝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민석, 넌 그걸 믿냐. 쟤네 신해신네 회사로 넘어가고 한동안 개고생했잖아. 메이터스가 꽤 방어를 잘하긴 한 모양인데? 다른 놈들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말이야. 하긴, 쟤네 대표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지.”

“그런 거였어? 신해신?”

“뭐, 얘기하자면 길어요.”

이민석과 류정은 이제 모두 눈치챈 것 같았다. 사건의 내막에는 블릭투와 블릭투네 회사만이 아닌, 좀 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너네, 무섭다고 발 빼지 마라? 실행에 옮기는 건 저기 저 녀석인데. 입만이라도 잘 다물고 있어 주라고.”

MXP의 규모가 컸던 탓일까. 지원겸이 류정과 이민석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웬일이래, 나를 다 생각해 주고.

파이널에서 도움받는 건 염두에도 안 뒀기에 그저 입단속만 잘해 주기를 바라던 무렵이었다.

지원겸의 이야기를 들은 류정과 이민석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그렇게 가벼워 보였냐는 불만도 섞여 있는 듯했다.

“하, 저기 엄청 무겁네~”

“그래도 꽤 재밌지 않아요? 해신 씨,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저희 대표님이 하신 일입니다. 오해 마세요.”

서도경, 지금 이 자리에 없으니까 나 대신 부담 좀 짊어져라. 아무리 봐도 평범한 아이돌로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온다랑 MXP가 크라운 게임 PD와 유착 관계예요. 돈이든 뭐든 주고받은 거래가 있었는데, 그거에 대한 증거물을 포착했거든요. 아마 그래서였겠죠. 민석이 형네랑 류정 씨네가 1, 2차 경연에서 이용당했던 거요.”

“하긴, 거긴 제작진의 힘이 없는 이상 그렇게 되지 못하지.”

“역시…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온다는 MXP 쪽의 지원을 많이 받아서 모든 걸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 블릭투가 난리잖아요? 멤버 하나의 타격이 작지 않으니, 이미 이기긴 그른 싸움이라고 보고 있겠죠. MXP에선 슬슬 발을 빼려고 들 겁니다. MXP가 꼬리를 자르면 온다는 끝이거든요.”

“아, 다들 궁금해할 것 같아서 얘기해 주는 건데, MXP가 온다랑 손을 잡은 건 하이사인과 우리, 디레스트 때문입니다. 원래도 신인 죽이기에 진심이었던 회사인 건 다들 알잖아요? 하이사인은 스턴즈 건으로 원한을 샀었거든요. 우리야, 뭐 알죠? MXP를 버리고 온 거. 실상 지금 가장 큰 원인은 우리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소속 아티스트 하나 출연하지 않은 회사가 이렇게까지 개입한 이유요.”

내 이야기를 들은 김환준이 류정과 이민석을 향해 숨기고 있던 사실들을 알려 줬다. 아니 알려 줬다기도 뭐하지. 이건 그냥 조금만 끼워 맞춰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자기 패는 다 안 까겠다 이거구나. 김환준의 선택을 지원겸은 알아챈 모양이다. 뭐, 나도 비밀을 갖고 있었기에 이해는 해 줄 수는 있었다.

“블릭투는 최한성 말고 나머지도 곧 논란이 터질 거야. 쟤네, 아, 그러니까 하이사인 걸고서 귀찮게 한 일들이 많았거든. 그 외에도 내가 좀 들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말이야.”

이제 보니 지원겸 저기도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었나 보다. 고수긴 고수들이었다. 김환준도 그렇고 지원겸도 말이다.

“대충 스턴즈 걔네 꼴이 나지 않을까 싶은데. 활동은 간간이 이어 가더라도, 전만큼 좋은 이미지로 높은 자리를 노릴 순 없겠지.”

지원겸의 설명을 마지막으로 좌중이 침묵에 물들었다. 표정들을 보아 크라운 게임 파이널 까진 한편처럼 움직일 수 있을 듯했다.

웃기게도 지금 이 자리는 블릭투 그 녀석들이 만든 모임이었다. 그렇게 적 좀 작작 만들라니까. 어이가 없는 상황 속에서 파이널 경연에 대한 결의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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