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파이널이라…….”
멤버들과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오늘은 본격적인 파이널 준비에 들어가기 전, 리프레시를 가지기로 한 날이었다.
서도경의 허락하에 갖게 된 휴식일이었는데 각자 할 일들 하라니까 굳이 굳이 거실로 모여 앉았다. 얘네들, 친구가 없었나? 놈들이 들었으면 야유를 퍼부었을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가운데에서 노트북을 딸깍이는 문채민과 핸드폰을 살펴보는 이유준을 둘러싼 상태였다. 대충 소파 인근에 기대앉아 있자 허벅지 위로 묵직한 무게가 떨어졌다.
뭔가 싶어서 살펴보니 권혜성이 빈둥거리는 자세로 누워 있었다. 주변에 널린 쿠션들을 놔두고 나를 인간 쿠션 삼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무거워, 권혜성.”
“얼마 전에 형만 쏙 놀러 갔잖아. 그 벌이야~”
“내가 놀러 간 거냐?”
힘든 인간들 상대하러 간 거지. 예전에 멤버들에겐 리더들의 모임을 설명해 놨었다.
괜히 뒷말 나오게 하기도 싫었고, 얘네라면 이야기가 새어 나갈 걱정도 없었으니까 말해 주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었다.
사건의 당사자이던 이정원은 미안했던 마음 때문인지 묘하게 불만스러워 보기도 했었다. 뭐, 그것도 결국은 가지 말라고 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날을 기점으로 처음 쉬는 휴식일이다 보니 다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크라운 게임의 파이널은 우리에겐 다른 의미로 중요한 무대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반응은 진짜 좋아졌는데?”
“…고생한 보람이 있네.”
“윤명, 네가 뭘 했다고?”
“권혜성 너나 나나야…….”
“형들은 제발 그만 좀 싸워.”
오늘도 문채민은 인터넷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3차 경연 이후 팬덤과 SNS를 살펴보며 분위기를 파악하기 바쁜 듯했다.
누가 이유준이랑 친하던 놈 아니랄까 봐. 하여간에, 둘이 하는 짓이 똑같았다.
문채민의 이야기를 듣고 핸드폰에서 시선을 뗀 저놈, 이유준도 문채민과 같은 것을 보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윤명의 잔소리를 듣고 욱해서 몸을 세운 권혜성은 넘겨 버렸다. 아무래도 문채민의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어 봐야 할 것 같았다.
거실 테이블 인근에 앉아 있던 강태오와 차를 마시던 이정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휴식을 취하긴 그른 듯하다.
“자, 봐 봐.”
“흐음, 확실히 좋은걸?”
내 위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이정원이 만족스럽단 웃음을 흘렸다. 문채민이 보여 준 화면 너머로는 3차 경연에 대한 여러 가지 본방 후기가 올라와 있었다.
[나 하이사인 입덕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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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 관두고 좀 쉬다가 볼 것 없어서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크겜 3차 보고 입덕한 것 같음 미쳤다
인생 탈덕은 없다고 언젠가 누구는 다시 잡겠지 했는데 걔네가 얘네가 될 줄은 몰랐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닛부터 그냥 거의 불도저던데? 얼티밋 나인이랑 하이사인이랑 합 맞는 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얘네 분위기 완전 상반된 멤들 아니었나 보컬 라인이라고 하지만 음색 차이가 많이 나서 이걸 어케 살리냐 ㅇㅈㄹ했는데 예… 제가 아직 많이 모자랐네요 멍청했습니다
선곡부터 진짜 미친 맛도리 이 노래를 신해신이 하자고 말했단 것부터 유잼 시작이었음
유어돌 때 까지만 해도 꽤 잔잔한 이미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 순간 독기레전드남 돼서 크겜 MC인 안지하 노래하자고 땅 박는 게 돌아버린 서사야 ㅜ
이정원이 자기 리더 말은 무조건이란 듯이 씨익 웃는 거 보고 해프들 정프 겸덕 삼은 순이 겁나 많아졌다며 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들아… 너희 우정 포에버…
얼티밋 나인 반응도 개웃겼는데 ㅋㅋㅋㅋㅋ 재밌다고 더 얘기해보라는 류정을 보며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오정오 (주 얼티밋 나인 막내)
사실 나이로만 따지면 해신이나 정원이 또래인데 분위기상 완전 막내 포지션 맡게 돼서 상대 팀에는 말 못 하는 것도 웃겼음
신해신이랑 서로 낯가리는 것도 돌아버린 듯 엔넷은 어서 비하인드 영상을 더 푸시오 ㅈㄴ
아무튼 그렇게 정해진 유닛 걍 무대 부셨습니다 니들이 짱 먹어라 나 여기서부터 입덕했다
선곡명 뜨자마자 무대 구석에 있던 안지하 얼굴 클로즈업되고 씨익 웃는 장면 넣은 스태프 누구냐 존나 맛잘알 인정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시발 이게 뭐지??? 하고 몰입도 천퍼센트 올라감
예 무대 보고 저희 집이 이태리 존나 근사한 카페 앞 무드 넘치는 밤 골목이 되었네요 노래 듣는 내내 내 앞에서 배 발라당 하고 누워있던 댕댕이 초코(털이 북슬북슬한 시츄 나이 7세)가 아프간하운드로 보이기 시작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가 오면 나와 춤을 춰 줘요 제목이랑 합이 미친 무대라서 하이사인 얘네 컨셉 장인 맞다는 거 인정했다 ㅠㅜㅠㅜㅠㅠ
아 얼티밋 나인도 물론 그럼 근데 솔직히 해신이가 아이디어 잘 짜는 것 같긴 하잖아 ㅎ… (예민하게 보진 말아주라 우리 한 팀이야)
애들 화음 쌓아가면서 서로 백업해주는 거 고막 녹다 못해 강탈당했네 응 다 너네 거해 그 밤중에 술 까고 싶어져서 냉장고 뒤졌다 ㅠㅜ
진짜 손 내미는 안무할 때 티위터 지인들 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면에 지 손 내밀고 사진찍어서 올려가지고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쉬발 티친들 다 똑같네하고 개같이 웃음 ㅋㅋㅋㅋㅋㄱㅋㅋ 빠순이 팬덤 대동단결 사건
진짜 이건 실제로 봐야 했었는데 마지막에 젖은 남자들… 미쳤나요 엔넷? 크겜 12세 아니었음? 방통위한테 경고 안 먹었냐? 셔츠에 정장 바지 입고 빅밴드 있는 블루스 풍 노래를 하는 남자들을 적셔??? 내가 왜 신해신이 미친레전드독기남이라고 한지 알겠지…? 얘가 꺼냈다 이거….
하 아직 본 경연은 꺼내지도 못했는데 유닛에서 스크롤 존나 길어졌네
얘들아 하이사인 봐라 두 번 봐라 경력직 바순이가 말하는 건데 얘네 파이널에선 더 오지는 무대 나온다 ㅠㅜㅠㅜㅠㅠ 그래 너네 짱먹어 ㅜㅠㅜㅠㅜㅠㅠㅜ 늦덕은 방송 재탕하러 갈게 ㅠㅜㅠ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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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쓰니 존나 유쾌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공감해서 더 웃김 ㅋㅋㅋㅋㅋㅋ
- 티위터에서 보인 사진이 이거였구나 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갑자기 탐라에 티친들 손바닥이 도배돼서 이게 뭔지랄이여 이랬잖아
- 하이사인 얘네 머리 잘 쓴다는 거 인정함 나 크겜 출연 중인 타팬 빠인디 솔직히 매 무대 곡 활용도 장난 없었어; 투자하는 건 다들 비슷하겠다 치고 걍 어라, 여기서 이런 생각을? 싶은 걸 잘 꺼내던데
- 어때 마 이게 바로 서바이벌 경력직의 맛이다
- ㅅㅂ 좋은데 슬퍼 슬픈데 좋아 우리 애들 이제 실력으로 인정받는 거지? ㅠㅜ
- 내가 말했잖ㅇㅏ 서바빨 아니라고!!!!!
- 근데 솔까 분위기 몰아서 밀어붙이는 것도 있지 않냐 여기서 안지하 노래는 반칙이지 ㅋㅋㅋㅋㅋㅋㅋ
- 응응 암만 봐도 아부성 정정당당하게 붙자
- 아부는 무슨 아니 선곡 자율이었는데 이건 머리를 잘 쓴 거지
- 윗익 윗윗댓이랑 윗윗윗댓은 무시해 쟤네 원래 여기 정병으로 유명함 잘나가는 돌만 보면 발작하는 버튼 눌리는 애들인데 저거 보면 우리 애들 슈스란 거 인정한 거다
- 이거 바이럴 아님??
- 크겜에서 뭔 바이럴… 얘네 정규 앨범 때도 바이럴 안 돌린 애들이야 (ㅅㅂ 그땐 좀 돌려)
- 다사다난했다… 하이눈 이제 남은 건 독기와 누구와도 싸울 수 있는 용기밖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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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 미션에 대한 반응부터 좋았다. 제작진 이놈들이 곡을 정하는 회의 장면을 안 쓸 리가 없었으니까.
얼티밋 나인과는 정규 녹화 전부터 여러 번 자리를 가지며 작전을 짜곤 했었다.
그런데 그게 잘 통했던 것이었는지 선곡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온 듯하다.
MC인 안지하의 노래를 골라 어그로를 끈 것도 괜찮았었나 보다. 거기서 오는 임팩트를 노린 것은 사실이었는데. 여러모로 그걸 맞힌 악플러들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소 뒷걸음 치다가 쥐 잡은 격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문채민이 넘겨 주는 페이지를 살펴보며 유닛 무대에 대한 의견들을 확인했다. 본무대도 아닌 곳에서 생각보다 좋은 시너지를 얻은 게 확실했다.
그때 이유준이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구석을 가리켰다.
“잠깐, 채민아. 이거 한번만 눌러 줄래?”
“응? 응. 어? 이게 뭐지?”
“허, 뭐야? 신해신, 너. 혹시 이것도 노렸던 건 아니지?”
“우와! 대박!”
나도 서둘러 화면을 살펴봤다. 언제 소파에서 내려온 건지 모를 강태오는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 형, 점점 더 대표님 같아지네.”
이유준이 가리킨 곳에는 나도 처음 보는 게시물이 하나 올라가 있었다.
[ㅁㅊ 크겜 하이사인/얼티밋나인 무대 안지하가 개인슨스에 올렸다]
그건 바로 크라운 게임의 MC이자 우리가 했던 노래의 원곡자인 안지하가 개인 SNS 스토리에 우리 무대를 홍보해 줬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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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면 나와 춤을 춰 줘요’ 빅밴드 ver.
후배님들 짱 감동받았어요.
무대 보면서 울컥했는데 말로 표현 못해서 아쉬웠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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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방송에서도 시작하기 전에 안지하의 묘한 얼굴이 나타나긴 했었다. 하지만 거기엔 문구에 적힌 느낌보단 ‘재밌네?’ 같은 호기로운 분위기가 강했었다.
그걸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서 상당히 집중력이 높은 무대가 완성됐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안지하는 우리 무대가 마음에 들었었는지 직접 사진과 영상을 올리며 글까지 써 줬다.
어쩌면 본인의 그 거센 이미지를 누르기 위했던 장치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상당한 효력이 가해진 행동이었다.
“신해신, 너. 이거 같이 노린 거 맞지.”
“내가 말했잖아. 저 형, 독한 구석이 있어.”
“해신이 형, 이제 만만하게 못 보겠네~”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흘기는 이정원과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는 강태오 그리고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샐쭉 미소 짓는 이유준을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뭐… 다른 곳에서 이것 관련하여 질문이 들어오면 답 정도는 해 주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본인이 먼저 나서서 해 주리란 기대는 크지 않았기에 나도 신기한 바였다.
하지만 노리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대충 긍정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아까 강태오가 얼핏 던진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강태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했어.”
“뭐가.”
“…….”
서도경이랑 닮았다니. 악플러들의 무근본 욕설보다 저게 더 멘탈에 지장을 주는 듯했다.
왠지 여기서 더 이야기하면 나만 손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우스를 잡고 있던 문채민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채민아, 본경연 반응도 좀 보여 줄 수 있어?”
“응, 어디 보자…….”
“그거라면 내가 먼저 찾아놨지.”
모니터를 바라보는 문채민의 뒤에서 내려놓은 핸드폰을 든 이유준이 말했다. 열심히 뭔가를 검색하는 것 같더니, 여기 역시 여론을 살펴보고 있었나 보다.
“…나도 볼래.”
“나도, 나도!”
중요한 이야기에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크라운 게임이 우리에게 수혜가 되도록 하려면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