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52화 (251/328)

252화

파이널 촬영 당일이었다. 생방송 준비로 인해 이른 새벽부터 기상을 했다. 숍에 들려 외관을 정리하고 방송국 대기실에 도착하니 평소와 같이 무던한 얼굴들을 한 멤버들이 보였다.

다들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하고 있었는데. 내가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의 태평함이다.

안 그러는 척 지금까지의 일들로 단련이 된 걸까 생각 이상으로 아무렇지 않아들 했다.

이 정도면 크게 문제는 없겠네. 드라이 리허설을 기다리기 위해 소파에 앉은 이후였다.

지금 내 눈앞에는 다소 생소한 느낌의 파란색 창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

‘활동은 화려하게’ - 부속 미션 그 네 번째

크라운 게임의 1위를 차지하세요.

성공 시 - 보상: 1,000 코인 + 블랙 쿠폰 1매

실패 시 - 페널티: 랜덤 (데미지 크리티컬 6단계 - 내용 비공개)

이건 서도경과의 회담을 마친 날, 새로 나타난 미션이었다. 그래, 이게 빠지면 섭섭하지. 이벤트를 떠나서 다시 시작이었다.

사실 이정원의 확률 성장 트리가 개화할 시기에는 미션이 오픈되지 않아서 부속 미션은 이벤트 하나당 3개가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네 번째’라고 적힌 구간을 보니 그건 아니었나 보다.

…그럼 이정원은 왜 열리지 않은 거지.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메모리 서칭 엔진의 동기화가 또렷해져서인가? 아니면 잘못된 루머를 바로잡고 버즈량을 늘리라는 미션을 이미 한 적이 있어서 그런 건가?

예전부터 느꼈지만 참 복잡한 구석이 있는 시스템이었다.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아 그냥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 미션은 어떻게 보면 쉽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원래 내 목적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크라운 게임 1위를 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하려던 걸 그대로 하면 될 것 같았다.

계획이 비틀릴 걱정도 없이 편하게 시스템을 훑어봤다. 이벤트로 코인 캐기가 금지된 상황에서 남아 있는 코인이 약 7천 코인이었다. 거기에 천 코인이 더해진다면 다음 컴백까진 어떻게 버틸 수 있을 만했다.

아니, 오히려 써도 괜찮은 수준이지 않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거나 조금씩 모아 온 보상을 쓰는 등 자린고비 저리 가라로 아껴 놓은 과거가 지나갔다.

어떻게 보면 오늘은 가장 중대한 시기이기도 했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페널티도 피하고 1,000코인도 받을 수 있는 미션을 위해서라면 지갑을 좀 열어야 할 것 같았다.

오프닝 녹화용 의상을 탈의하러 들어가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아직 내 순서까진 남아 있는 것 같았으니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BOX 상점을 불러냈다.

수중에 지닌 코인을 확인하며 스크롤을 내리길 한참이었다. 팔짱을 낀 자세에서 눈만 굴려 시스템 창을 샅샅이 훑어내렸다.

무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대책용 아이템을 구매해야 할지 아니면 능력 위주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아이템을 사야 할지 긴 고민이 이어졌다.

유어돌 때처럼 개인으로 나온 서바이벌이거나, 우리를 노리는 적이 없었다면 후자를 뽑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특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쉽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이유준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작게나마 기합을 넣은 것 같았는데 거기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방송이라고 하니까, 좀 떨리네. 실수 안 하려면 조심해야겠다.”

이유준의 말이 맞지. 크라운 게임 파이널은 모두 생방송 라이브였다. 특이하고 복잡한 동선으로 카메라 무빙을 잇는 원테이크식 촬영까지 이어졌다.

이 와중에 능력 위주의 아이템이라니, 어쩐지 죄다 소용없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난 이제 팀이잖아. 혼자만 살아남는다고 해서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으며 스태프 진영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유준을 바라봤다. 고맙다, 짜식. 저놈은 알 수 없는 감사 인사를 내뱉은 뒤였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저지해 줄 수 있는 대책용 아이템을 찾아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기왕이면 혼자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멤버들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아이템으로 말이다.

분명 예전에 문채민도 시스템의 효과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보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다.

덕분에 아까보다는 열정적으로 스크롤을 옮길 수가 있었다. 그런 내 노력이 가상하게 보였던 걸까,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원하던 능력을 찾게 됐다.

[‘(프리미엄)럭키 챌린저’ - 일회성 아이템]

버프: 위기로부터 큰 힘을 발휘합니다. 다수 시전 사용 가능 (해프닝 실드 소지 시 연계 가능)

“…럭키 챌린저.”

바로 이거였다. 여태까지 경험으로 보아, 두루뭉술한 설명이 기재된 아이템의 효과는 상당한 편이었다.

위기로부터 큰 힘을 발휘한다니, 어떻게 보면 생방송 최적화 아이템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다수 시전 사용이 가능하다고 기재된 걸 보면,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적용이 가능한 상품이었다. 추가로 괄호 속에 있는 멘트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저기 적혀 있는 해프닝 실드는 내가 갖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영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줄곧 착용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면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망설임 없는 손길로 럭키 챌린저를 구매했다.

[현재 코인]

7,165 코인

[‘(프리미엄)럭키 챌린저’를 구입합니다.]

[아이템 보관함에 ‘(프리미엄)럭키 챌린저’가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쿠폰]

3매

[현재 코인]

4,365 코인

일회성 아이템치곤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이러니까 더욱 신뢰가 되는 것 같았다. 자세한 건 모르겠으나 일단 코인값은 하겠다는 의미겠지.

보관함에 들어간 아이템을 확인하곤 곧바로 장착했다. 해프닝 실드와 연계된다는 문구가 떠올랐으나, 몸 상태로 봐선 크게 다른 점을 알 수 없었다.

[‘(프리미엄)럭키 챌린저’를 장착합니다.]

[‘(프리미엄)럭키 챌린저’와 ‘해프닝 실드’가 연계됩니다.]

[‘(프리미엄)럭키 챌린저’의 대상과 시전 인원을 선택해 주세요.]

깜빡거리는 창 아래로 긴 여백이 나타났다. 속으로 생각해도 되는 것 같아서 녀석들의 이름을 읊조렸다.

[(프리미엄)럭키 챌린저] +해프닝 실드 연계 사용 중

대상자: 하이사인 전원 / 신해신 이정원 이유준 강태오 권혜성 윤명 문채민

여백 위로 천천히 멤버들의 이름이 적혔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충 적용은 된 걸로 보였다.

“해신 씨, 의상 탈의 들어갈게요!”

“…네!”

이제 남은 건 본 경연에 들어가는 일뿐이었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 * *

생방송 녹화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오프닝 촬영이 진행됐다.

객석은 아직 텅 빈 상태로 제작진과 출연진만이 모인 자리였다. MC인 안지하와 메인 PD인 한동준을 기다려야 한다고 전달받았다.

우선은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눴다. 블릭투, 저기 저놈들만 제외하자면 얼추 정이 쌓인 상태였다.

전에 있었던 리더 회동 탓이었을까. 각 팀의 리더들이 유달리 반겨 주는 듯했다. 제발 그만 아는 척해. 이제는 슬슬 부담스러워지려고 한다.

“형, 저기랑은 언제 친해졌어?”

“그냥 어쩌다 보니까…….”

문채민의 질문에는 셔츠 깃의 마이크를 보며 적당히 둘러댔다. 자세하게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환경을 눈치채 달라는 의미였다.

그때, 어둠 속에 잠긴 스태프 진영 속에서 술렁거림이 이어졌다. …왔나 보군. 한동준이 온 것 같았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건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거 스태프로 일해 본 경험을 떠올리면 이건 제법 중대한 사항이 전달되고 있는 거였다.

한동준, 마지막 발악을 시작해 보려는 건가. 블릭투가 저렇게 된 상황에서 PD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가늠해 봤다.

“1분 뒤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조연출로 보이는 남자의 외침에 자세부터 바로잡았다. 정면을 응시하며 고개를 틀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블릭투 멤버들이 보였다.

온다 레이블에서 공지를 내린 것처럼 최한성은 빠진 인원이었다. 원래도 멤버 수가 많은 그룹이 아니었던 터라, 다소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에는 꽤 죄책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최한성과 같은 그룹이라는 이유 하나로 쟤네 전부를 이렇게 쳐도 되는 걸까란 딜레마였다.

그런데 그것도 2차 경연에서 전부 마음을 고쳐먹었다. 김현석이 편곡과 컨셉을 온다로 유출했을 때 멤버 모두가 그걸 자기네 무대인 것처럼 방송했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면 또 몰라. 다른 이유도 더 존재했다. 최한성이 복도를 오가며 이정원을 조롱하거나 의미 없이 시비를 걸 때였다. 최한성을 적극적으로 말리는 멤버가 보이지 않았다.

대충 오가는 시선을 신경 쓰며 팔을 몇 번 건드렸을 뿐, 시선을 회피하고 최한성을 방치한 걸 목격하게 여럿이었다.

결국은 전부 한패였어. 이쯤 되니 내가 저놈들을 안쓰러워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멤버들을 지켜야 하는 리더란 것만 상기하게 됐다.

이제 우리 정말 그만 보자. 다소 씁쓸한 기분으로 조명이 암전되는 걸 지켜봤다. 스탠바이에 들어간다는 외침과 동시에 무대 한가운데로 핀 조명이 켜졌다.

스크린이 갈라지고 등장한 안지하가 진지한 목소리로 시작을 열었다. 드디어 끝이구나. 크라운 게임 파이널에 돌입했다.

* * *

관객들이 들어오자 무대에 대한 실감이 났다. 앞서 진행했던 라운드들과는 달리 양 사이드에 앉아서 대기하던 형식이었다.

팀별로 자리한 계단 좌석 사이로 무대 소품들이 깔렸다. 우리 순서는 네 번째. 그동안은 앞 팀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됐다.

객석 너머로 쏟아지는 환호성을 들으며 그렇게 경쟁자들의 퍼포먼스를 구경했다.

첫 번째 순서로는 제법 친분이 싸인 얼티밋 나인이 나오게 됐다.

어쩌다가 이 무대를 꾸리게 됐는지, 어떤 노래를 하게 된 건지 사전에 촬영한 VCR이 스크린 위로 송출된다.

유어돌에서도 익히 본 편집이기에 악의적인 부분이 없는지를 살피기 바빴다.

눈치껏 동선에 맞춰 자세를 취하려는 얼티밋 나인의 멤버들을 확인했다.

대형 스크린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빛에 의해 아는 얼굴들이 얼핏 얼핏 드러났다.

“…형, 제완이 형이 손 흔든다.”

“어, 어…….”

윤명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손제완으로 보이는 형체가 크게 움직였다. 잘하란 의미로 마주 인사해 주니 우리를 보고 있었던 일부 팬들이 술렁거렸다.

오픈 스테이지가 다소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얼티밋 나인은 제법 당찬 모습이었다.

초반부터 방송사와 블릭투 놈들에게 치이며 이래저래 고생이 참 많았던 팀이었다.

컨셉만 강하지, 내용물은 물렁물렁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어. 비장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는 류정을 보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잘해, 물론 1등은 우리가 할 거지만. 류정이 알았다면 머쓱하게 웃었을 법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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