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54화 (253/328)

254화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나도 밀릴 동선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기서 저렇게 뛰어내릴 줄은 몰랐기에 놀란 마음이었다.

저 무데뽀……. 그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서로를 질색한다는 뉘앙스의 속마음이 이어졌다.

‘으엑, 정원이 형. 대박 터프하네.’

‘…맞다. 저 형, 운동 잘하지.’

‘겁도 없다, 진짜. 뭐, 그래서 다행이지만.’

권혜성과 윤명 그리고 강태오와 함께 4인으로 이루어진 팟이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인가.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 숨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이상 있냐는 의미로 눈짓하니 위쪽에 있던 문채민이 괜찮다는 뉘앙스로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앞쪽에 있던 이유준이었다. 마이크를 차고 있는 상태에서 말도 못 하고 한숨 쉬는 듯한 리액션을 반복했다.

…저런, 우리 알아서 해결하자. 일단 나는 놈을 믿고 있었다.

이유준도 그걸 알고 있었어서 그랬는지 가만히 어깨만 으쓱였다.

‘유준이 형은 무슨 일이야, 대체.’

‘아~ 한번 해 보지, 뭐.’

대형 스크린 아래로 꽉 다물려 있던 비밀 장치였다.

위이잉-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위쪽 스크린 아래에 있던 철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환해지는 시야 너머로 팬들의 함성이 들리고. 그다음은 발밑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감각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 야간비행 저 하늘을 향해

높게 날아올라 바람을 느껴

앞으로 밀려 나가는 대형 단상 위 우리가 걸터앉아 있던 것은,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든 경비행기였다.

비록 사람 두셋 무게 정도만 견딜 수 있는 모형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임팩트는 상당할 것이다.

여기서 이유준이 지닌 문제를 파악했다. 바로 프로펠러가 안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표정 관리하며 바닥을 내려다보자 길게 이어진 코드의 중간이 끊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돈을 얼마를 줬는데. 사실 이건 나보다 서도경이 더 열받아 할 일이었다.

모니터링을 하며 구린 미소를 짓고 있을 대표가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뭐, 그건 다른 놈들이 뒷감당으로 떠안으면 되는 부분이었다.

하이사인의 로고와 그룹 컬러로 이루어진 경비행기 몸체에서 몸을 일으켰다. 위쪽에 서 있던 문채민이 뛰어내리고 앞 프로펠러 쪽에 손을 얹고 있던 이유준이 낮은 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이유준은 전면에 서 있던 놈이라 그 뒤에서 이어지는 바람을 쐬며 랩을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한 걸 깨닫고는 재밌는 동작을 추가했다.

바로 단상에서 뛰어내리기 일보 직전에 프로펠러를 세게 손으로 돌려 놓는 것이었다.

이를 악물어 턱에 힘이 들어가며 다소 격한 장면이 만들어졌는데. 수동이었지만 슬그머니 이는 바람에 녀석의 머리칼이 살랑거렸다.

그걸 본 문채민이 워커의 끈을 묶는 척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이거 원, 내가 제일 바보 같잖아.’

‘…유준이 형이 먼저 해서 다행이다.’

- 밤하늘을 향해 그대로 뛰어들어

싸비로 들어가는 도입부가 시작됐다.

순간 화려해진 음악이 빠른 비트로 전환되어 웅장한 느낌을 내세웠다. 신비롭게 이어지는 신디사이저의 소리를 들으며 7인의 대형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드디어 다 모였군. 이제 더는 걱정되지 않았다. 놈들의 속마음이 들려서 웃음을 참는 게 제일 힘들 정도였다.

군무는 크게 소품을 쓰는 점이 없었으니까 연출에 맞춰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권혜성과 강태오의 주도하에 양측으로 갈라진 동선이 만들어지고.

경비행기 뒤쪽으로 둥글게 선 댄서들이 우리의 백업을 하며 춤을 췄다.

처음부터 나열되어 있던 공구가 걸린 타공판들과 지도가 걸린 게시판이 분주히 움직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한 개라도 덜 움직이는 게 있는지 파악하며 주변을 돌아보기 바빴다.

멤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자기가 가야 하는 동선과 안무에 맞춰 유들유들하게 제스처를 이어 나갔다.

발목을 옥죄고 있는 워커로 바닥을 차며 윤명의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우리 팀의 댄서 둘에게 하고 싶었던 걸 전부 넣어 만들라고 했던 안무인 만큼 도무지 쉬는 구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한동준 이 인간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처음으로 권혜성과 강태오가 미워졌다.

멤버들도 속으로 그와 비슷한 말들을 하고 있는게 우스웠다.

‘아, 저기 공구함 방해되는데. 움직일 수가 없잖아, 혜성이 형!’

‘어라? 여기 괜히 타이트하게 짰나? 야, 윤명, 윤명! 너, 시간 비지. 저것 좀 옮겨 봐.’

‘…에휴. 내가 발로 밀어야겠네. 다음에는 정원이 형 백으로 섞여 들어가야겠다.’

‘벌스 치고 빠지면 또 프로펠러 돌려야겠구나. 이거 전달해 줘야겠다. 오늘은 유달리 바쁘네~’

‘권혜성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야, 권혜성. 나 앞에 훅치고 뒤로 빠져서 사고 난 것 좀 막는다.’

‘나랑 해신이는 못 움직인다. 우리 싸비랑 더블링이야.’

- 가로등 하나 없는, 이정표 하나 없는

깜깜한 활주로를 달리고 또 달려

목표는 오직 하나 바로 저 별, 너

- 충돌이 무섭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야

추락이 두렵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야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삼키곤 윤명의 중음과 이정원의 고음이 터져 나오는 싸비를 들었다.

중간중간 내 몫의 더블링을 깔아 파트의 밸런스를 맞춘 뒤 눈짓하는 문채민의 옆으로 옮겨 갔다.

반대편에 있던 권혜성과 대칭이 되는 자세를 취하기 위함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칼 아래로 활짝 웃음 짓는 권혜성과는 눈이 마주쳤다. 방금 전 안무에 대한 사죄라도 하듯이 혀를 빼꼼 내밀고는 윙크를 던지고 있었다.

그건 나보다 저기 바쁜 윤명에게 하지. 일단 됐다며 눈짓으로 타이밍을 쟀다. 그러고는 같은 파트를 불렀다.

- 더는 외롭지 않고 싶어서 떠난 조금은 급한 여행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을 거야

높게 치솟는 음에 맞춰 인 이어를 붙잡고 고개를 트니 앞쪽에서 카메라 휙 하고 돌아갔다.

나와 권혜성은 그를 확인한 후 각자의 자리를 찾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부 댄서들 사이에 섞여 재간을 부리며 테이블을 옮기는 중이었다.

이건 또 왜 여기 있어? 한동준이 한 짓 사이에는 댄서 매수도 있었는지 옮겨져 있어야 하는 소품들 일부가 방치되어 있었다.

동선에 방해가 될 물품 몇 개를 발견하고 나선 권혜성과 안무인 척 적당히 밀고 끌고를 반복해야만 했다.

엇갈리는 공간에 있던 권혜성은 아예 수레에 올라탄 상태였다. 그 자세에서 윤명에게 끌어 달라며 처음부터 연출된 척을 하고 있었다.

‘야, 얼른 밀어.’

‘…저만 좋은 것 하네. 끝나고 두고 봐.’

권혜성은 윤명이 미는 수레에 올라타 팬들을 향해 손인사를 했다.

경비행기 뒤쪽으로 핀 라이트가 번쩍이며 그 앞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음영이 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강태오. 먼저 나올 댄스 브레이크를 담당해 줄 녀석이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음악에 맞춰 안무를 추는데 코레오에 힙합 무드를 섞어 스텝이 빠른 동작이었다.

저기선 다행히도 문제라고 할 게 없었나 보다. 하긴 지금 당장은 백업해 줄 만한 멤버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윤명의 수레에서 뛰어내린 권혜성이 강태오와 바통 터치를 했다. 저와 비슷하게 조금은 내추럴한 복장을 한 댄서들을 사이에서 경쾌한 무드의 춤을 이어 갔다.

강태오가 무게를 잡는 파워풀한 댄스 브레이크를 선보였다면, 권혜성은 장난기가 넘치는 텐션이 높은 타입이었다. 둘의 보컬이 앞뒤 파트를 메웠다.

- 과열된 엔진에 맞춰 심장 박동을 느껴 봐

저 하늘과 맞닿을 수 있다면 이 정돈 이겨 낼 수 있어

이제부터는 숨죽이고 있던 래퍼 둘의 등장이었다. 가장 고조된 음에 맞춰 메인 위치인 경비행기의 앞으로 5인이 모여들었다.

래퍼들만 측면에 서서 서로를 바라본 채 쏟아지는 이정원의 애드리브와 나 그리고 윤명의 파트에 맞춰 랩을 내뱉었다.

우리에겐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구간이었는데. 마치 랩과 보컬이 하나의 화음처럼 서로를 잇는 것이었다.

삐끗하면 놓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지만 잘 어우러지면 음악이 풍성해지는 마법 같은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며 노래했다.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나, 그렇게 날아오를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흔들리는 머리카락

눈앞이 흐린 것 같지만 이 정돈 이겨 낼 수 있어

- 야간비행 저 하늘을 향해

높게 날아올라 바람을 느껴

다시 싸비로 넘어가는 이유준의 저음이 흘러나왔다.

- 밤하늘을 향해 그대로 뛰어들어

타이밍에 맞춰 대기하고 있던 이정원이 인 이어를 뽑아내며 고음을 내뱉었다.

그래, 이번에는 래퍼들이 아닌 우리의 문제였구나. 슬슬 음원이 잘 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건 중음 파트를 담당하고 있던 윤명에게도 발생한 일이었나 보다. 이정원의 행동을 확인한 윤명이 내게 입 모양으로 뻥긋거렸다.

‘인 이어, 빼자. 형, 타이밍은 맞춰 볼게.’

오냐, 손을 들어 이정원과 윤명을 본 뒤 나도 인 이어를 빼 버렸다.

그때 아- 하고 이정원이 길게 미성을 쏟아 냈다. 쩌렁쩌렁한 귀 너머로 윤명과 시선을 맞추며 싸비를 불렀다.

혼자였다면 맞추기 힘들었을 테지만, 나는 녀석과 같이 박자를 타는 중이었다. 소리가 밀릴 것 같으면 이정원이 애드리브를 통해 소리 사이를 메꿔 줬다.

- 가로등 하나 없는, 이정표 하나 없는

깜깜한 활주로를 달리고 또 달려

목표는 오직 하나 바로 저 별, 너

- 손에 넣을 그 시간만을 기다렸어

저 별은 정말 따듯할 거야

언제 뒤로 갔는지 모를 권혜성은 경비행기의 프로펠러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러고는 힘껏 날개를 돌려 프로펠러가 회전하게 만들었다.

‘유준이 형, 임무 완료!’

‘그거 힘들지? …콘센트 잘라 놓은 사람은 누구야.’

전달이 빠르네. 이유준이 권혜성에게 프로펠러 이야기를 해 놓았던 모양이다.

랩을 하던 문채민은 한쪽 구석에 올라가 있던 배낭을 들어 경비행기 위쪽으로 던져 놓았다.

그게 이렇게 된 거군. 원래 저걸 해야 할 인물이 프로펠러를 돌린 권혜성이었는데.

자리상 이쪽이 수월할 것 같으니 문채민에게 자신의 역할을 떠넘겨 버린 듯하다.

의도치 않게 힘을 쓰게 된 문채민 역시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권혜성의 반대편으로 다가가 크게 하이 파이브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 재밌다!’

‘이게 되네?’

그러게. 덕분에 모두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왔다.

- 너와 만날 그 시간이 기다려져

나 그렇게 달려갈게

이정원의 애드리브가 쏟아지는 와중에 윤명에게 파트를 넘긴 나도 분주히 강태오가 있던 공간으로 이동했다.

강태오는 옆에 있던 타공판과 테이블의 바퀴를 밀며 무대 사이드로 밀어내고 있었다. 원래 동작이었던 것처럼 안무를 추는데 그게 퍽 신기했다.

‘손 비는 사람 얼른 도와!’

‘간다, 가.’

-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이건 내 야간비행

보이지 않는 활주로를 따라

이정표 하나 없는 서투른 여행

측면에서 합류한 이정원이 강태오의 안무인 척 짐을 옮기는 행태를 도우고 나섰다. 드디어 겨우 7인의 멤버가 모여들었다.

경비행기 앞에 선 상태에서 터지는 꽃가루를 맞이했다. 서로를 마주 본 채 팔을 뻗어 손에 손을 포개니, 점차 잔잔해지는 멜로디 위로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이어진다.

철커덕, 스크린 위 떠오른 활주로는 서서히 밤하늘로 바뀌고 있었다. 별 가루처럼 흩어지는 먼지 속에서 7명 모두가 한 음으로 노래했다.

- 하지만 나 달려갈게

너를 만나기 위해

‘끝났다. 아, 살았다…….’

‘으악, 심장 터질 것 같아!’

‘원래 짜 놓은 연출대로 된 게 별로 없잖아. 이 정도면 거의 즉흥 아니야?’

‘…우리 진짜 대단하네.’

‘범인 가만 안 둬.’

‘후, 끝나긴 했다…….’

각양각색으로 이어지는 속마음은 못 들은 척 그냥 웃어넘기는 중이었다. 아, 끝났다. 다리가 절로 후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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