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서도경, 이것 때문에 거기부터 건드렸던 거였구나.”
한동준의 기사로 크라운 게임의 전 출연진 팬덤이 들썩였다.
블릭투는 이미 최한성의 사건으로 절벽 끝까지 몰려 있었는데, 한동준의 조작설이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된 것이다.
지금 타이밍에 조작설과 커넥션 관련 이야기라… 이러면 대중들의 눈길은 한곳으로 쏠릴 게 분명했다. 블릭투, 근래 가장 행실이 좋아 보이지 않던 그룹이었다.
사실 프라이버시 문제나 다른 이유로 이런 조작설은 담당자 외 그룹명까진 오픈되기가 힘든 현실이었다.
관계자 정도는 밝혀질 수도 있겠으나, 그건 지금보다 화력이 한참 떨어진 이후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서도경은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인터넷에서 가장 핫한 주제로 떠오를 때 화살의 방향이 블릭투 쪽으로 향하도록 돌렸다.
진짜 같은 편이라서 다행이야. 면담 때까지만 해도 의아하던 마음이 컸는데, 날카로운 여론을 보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지금 블릭투는 절벽도 아니었다. 이젠 완전히 추락하고 있었다.
- 개동준 ㅅㅂ놈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조작 그룹 ㅂㄹㅌ 빼박임 내 친구가 방청 다녀왔는데 나중에 본방보고 왜 저 점수 되냐고 이상하다고 하더라
- 못하진 않긴 했는데 다른 팀 제치고 그 정도로 유리한 위치 선점한 게 수상쩍었지 ㅋㅋㅋㅋㅋㅋ
- 나 궁금한 거 있음 ㅇㅌㅁㄴㅇ이랑 ㅇㄷㅂㅇㅈ도 한동준 커넥션에 연루된 거? 쟤네도 초반에 꽤 좋은 순위 유지했잖아
- ㅠ 윗익 아무것도 모르나 봐 쟤네 아니래 응 개같이 이용당함~
- 저기 팬덤이 들으면 뒤로 넘어갈 소리다 ㅋㅋㅋㅋㅋㅋㅋ 댓삭추야 익아 ㅜㅠㅜㅠㅜㅠ
- 아 어쩐지 방송에서 언플 존나 해준다 싶었지 아니 근데 한동준 이 새끼도 이상해 엔넷 소속이면 엔필름이잖아 줄을 태워 줄 거면 ㅎㅇㅅㅇ을 태워야지 왜 저기로 가냐고 ㅋㅋ
- 윗익 먹금 애들 고생한 거 보여서 오열 티비인데 괜히 루머 만들 여지 주지 마
팬들이 한동준 커넥션의 주인공을 블릭투로 확정 지은 것이었다. 처음 블릭투 팬덤에서는 공식이 나오지 않았는데 억까 아니냐며 반박이 심했다.
그러나 그것도 회사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하자 점차 위축됐다.
“당연하지, 진짜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좋게 포장하려고 해도 포장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거짓으로 올렸다간 그 후폭풍이 더 심할 테니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사건 규모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둘 마음이 없었다.
엔넷 측에서 사과문을 올림과 동시에 한동준의 행동은 독단적인 선택이었음을 밝혔는데. 그날, 나는 갖고 있던 증거를 하나 더 풀었다.
그게 바로 2차 경연에서 연출과 곡 샘플링을 카피하여 블릭투가 무대를 꾸렸었다는 부분이었다.
메이터스가 공식으로 푼 건 아니고, 서도경의 비밀 인맥을 이용하여 SNS에 먼저 흘린 것이다.
길게 나열된 표와 이미지 자료가 인터넷에 올라간 시각, 척 봐도 먹잇감이 많아 보이는 상황 속에서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곤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해당 게시글 관련 내용을 조사하여 논란 기사를 내보냈다.
- 그러니까 체인지 업 때 내부정보 빼돌려서 가로챈 거라고? ㅂㄹㅌ가?
- 미친 거 아니냐 어떻게 그걸 가로채 ㅅㅂ
- 아니 근데 이건 좀 억지 같은데 걔네 연습 때 라방했다가 유출됐었잖아 미리 하고 있던 거 아니었음?
- ㅁㅈ 난 ㅎㅇㅅㅇ이 해당 컨셉했다는 걸 못 믿겠는데 약간 이때싶 억ㄲㅏ 아닌가 싶기도 하고
- 그 팬덤 이용하여 우리 팬덤 올려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ㅋ
초반에는 우리 측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냔 반응이 많았다. 이유 없이 비난하는 부류를 떠나 확실히 이건 애매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긴 머리 잘 썼다고 인정해 줄게. 블릭투가 라방에서 먼저 유출했던 것 덕분에 우리가 두 번째로 밀린 상황이었다.
근데 그걸 알아야지. 이런 걸 생각하지 않고 터뜨릴 만큼 서도경은 바보가 아니었다.
해당 작전을 제안했던 나도 막무가내로 덤빈 것이 아니었다.
미끼용 컨셉과 곡 편곡에 대한 진행이 이뤄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꾸준히 올리고 있던 자체 콘텐츠 중간에 안 그러는 척 해당 부분이 담긴 화면을 넣어 올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의 짧은 구간이라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간 모양인데.
이제는 해당 소재로 이야기가 들끓으니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저기서 먼저 눈치채지 못하면, 우리 쪽에서 여론으로 풀면 되는 일이고 말이다.
이 일이 뜻대로 진행된 것은 애매하단 반응이 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가 예전에 올렸던 자체 콘텐츠에서 조각조각 정보를 모은 익명의 네티즌이 이번 사태를 정리하여 게시물을 올려 줬다.
[크겜 하이사인 컨셉 유출됐었던 거 맞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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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 하이눈도 아니고 그 팬덤도 아님 ^^
욕먹을 것 알고서도 이건 모르고 넘어가면 걔네가 너무 불쌍해서 내가 공익성으로 올린다.
1. n월 n일에 올라온 하이사인 회사 방문 브이로그
15분 37초 여기 보면 문채민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잖아. 문채민이 말하는 목소리 빼고 들어보면 방음이 잘 안되는지(ㅋㅋㅋㅋㅋ)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더라고.
노이즈 빼고 해당 목소리 사운드 키우면 이렇게 말하고 있음
[녹음 파일]
A - …드웨이풍… 이 부분에 악센… 주고…
B - …대 …성을 보면 바텐… 소… 제작… 전…
대충 추측해봤을 땐
A – 브로드웨이 풍 무대를 할 거면 이 부분에 악센트를 주고…
B – 무대 구성을 보면 바텐더가 들어가잖아요. 소품 제작은 전체 밸런스에 따라…
정확하진 않을 수 있더라도 여기서 브로드웨이 느낌의 연출과 바텐더라는 소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볼 수 있더라.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고? 응 미팅룸. 브이로그 15초 정도 미뤄보면 바로 옆에 있던 방이 미팅룸이라는 걸 방 패널로 알 수 있음. 물론 확대하고 화질 또렷하게 만들어야 읽을 수 있었지만.
참고로 블릭투 라방 나온 것보다 n일 앞이더라. 연출에서 하이사인이 관련 아이디어를 먼저 내고 있었단 증거론 충분하지 않냐.
그럼 다음은 편곡 관련이겠지? 내가 이것도 다 준비했다 얘들아 ^^
2. n월 n일에 올라온 디렉터 T의 사클이랑 아웃스타그램 스토리
이 사람이 누구냐고? 메이터스 A&R팀이 종종 계약 바이 계약으로 같이 작업하는 디렉터야.
알려지진 않은 것 같은데 하이사인 얘네 무대 끝나면 늘 관계자들이랑 다 같이 단체 사진을 찍더라고.
2차 경연 종료된 이후 사진 구석에서 여기 캡 모자에 후드 뒤집어쓰고 있는 이 사람이 T임. 거기서 해당 경연에도 같이 작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근데 T는 프리라 종종 개인 사클에도 음원을 올려. 찾아보니까 좋아하는 템포나 비트, 사운드가 확고한 스타일 같던데. 그게 딱 블릭투가 2차에서 했던 거랑 유사한 라인이야.
…ㅋㅋㅋㅋㅋㅋ 이제 내가 무슨 얘기하는 지 알겠지?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좀 애매한데. 그래서 준비한 게 아웃스타그램 스토리. 부계 쓰는 것 잘 찾아왔다. n월 n일 과거 캡박본 올려 줄게.
[재작업 쭈고 오늘도 밤샘 예약 (천사)]
[좋아하는 건 잠시 내려두겠습니다. (눈물)]
이거 보면 딱 느껴지는 거 있지 않아? 하이사인이 해당 경연에서 불렀던 노래 편곡을 두 번 한 것 같은 거야.
좋아하는 거 내려두겠다는 말 보면 개인 사클에서 반복적으로 보였던 스타일로 진행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걸 전부 뒤집어 엎었다고 봐.
그럼 뭐다? 1차 편곡도 블릭투가 빼 와서 따라 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것만 봐도 이제 하이사인이 불쌍해지지 않냐. 중간에 아예 뒤집어엎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남들 무대 2개 준비할 때 3번 한 건 확실해 보임.
그 이유도 아래에서 설명해줄게. 리얼 짠내나서 나 지금 바다에 와 있는 것 같으니까. ㅠ
3. 경연 n일 전 하이사인 자컨 개인 일상 브이로그 윤명&권혜성 편
시작하자마자 휴식 날이라고 하면서 회사 연습실로 가는 장면 보이지? 난 여기서부터 눈물 나더라. 직장인으로 치면 여름휴가 반납하고 출근한 거 ㅅㅂ
무대 갈아엎느라 쉬지를 못했다는 뜻 아니야?? ㅜㅠㅜㅠㅜㅠㅠㅠ
윤명 - …연습실 가고 있어요. 전체는 잡았는데 디테일이 덜 맞는 곳이 있어서요.
권혜성 - 아, 저번에는 완벽했는데!
윤명 – 조용히 해. 바보야….
처음에는 그냥 아직 안무가 완벽하지 않구나 싶은 정도였지. 근데 이번 사태 파악하고 나서 무슨 소린지 전부 알게 됐잖아. ㅋ
저번에는 완벽했다 = 1차 편곡
전체는 잡았는데 아직 디테일이 덜 맞는다 = 2차 편곡
이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ㅜㅠㅠㅠㅠㅠㅜㅜㅜ 무대 구성+노래 편곡+녹음+안무 = 한 마디로 전부 다 갈아엎었다는 뜻인 듯
바 좀 당겨서 7분 51초 구간에 멈춰보면 권혜성이랑 윤명 한참 뒤로 신해신이랑 강태오가 앉아 있는 거 보일 거야.
한 10배 확대해서 화질 개선해보면 신해신이 들고 있는 종이가 악보인 것도 알 수 있는데, 안무 연습 중간중간에 짬을 내야 할 정도로 타이트하게 진행한 게 느껴지더라.
이쯤 되면 알겠지 얘들아? 쓰다가 감정 이입해서 하이사인 편드는 것처럼 되어버렸네.
잘 봤다 ㅎ 호기심으로 얘네 알아보던 익이 자연스럽게 하이눈 가입 알아보고 있어
이게 바로 하며들었다는 걸까…….
다음 기수 언제 열리냐 얘네 상시 모집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억까는 자제해줬으면 좋겠다는 예비 하이눈임. 있을 때 잘해 존나게 후회하지 말고.
이상 글 봐줘서 고맙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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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를 경우의 수를 대비하여 증거를 여기저기에 뿌려 놓은 상황이었다. 1개만 심어 놓으면 그게 밝혀지기까지의 확률이 좀 떨어지겠지만 10개를 심어 놓으면 그만큼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전부 찾아낸 것 같지는 않았으나 과반수의 질적으로 이해가 되기 좋은 증거들을 발견해 줬다.
특히 편곡에 대한 부분이 걱정됐었는데. 디렉터 T에 대해 알아챈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윤재희가 맡겨 달라고 해서 믿고는 있었으나, 머리를 잘 써 준 듯했다.
멤버들도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 준 녀석들에게 칭찬이라도 해 주고 싶어졌다.
이따가 만나면 하이 파이브라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게시물은 SNS를 타고 널리 퍼져 나갔다.
- 정리 잘 됐는데 이거 보니까 의심할 게 없더라
- 내가 하이사인이었으면 가슴만 퍽퍽 내려쳤음
- 난 이미 쳐서 멍들었다
- 지금까지 입 다물어 주고 있던 것만 봐도 동료 대우해 준 것 아니야 ㅠㅜㅠㅜㅠㅠ
- 매너킹 인정 아니 근데 같은 엔필름에서 한쪽은 조작러고 한쪽은 천사인 거 가능한 것임?
- 저거 지금 한동준이랑 메이터스 따로 봐달라는 거지?
- ㅋㄱ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ㅋㅋㅋ 윗익이 쉿 (닥쳐
- 피자 들고 들어갔더니 불지옥 난 짤 수준 ㅜ 크겜 시작할 때만 해도 몰랐어요 진짜 개싸움이 날지
- 이때싶 억까들 사라진 거 봐 아직도 졸렬하게 엥 이건 좀… 충들 고소장 먹고 입 다물었으면 좋겠다 ㅜ
- 아직도 있음? 걔네도 참 다른 의미로 한 우물 파기 대박이다
중립을 외치던 사람들도 이제는 우리 쪽으로 돌아선 뒤였다. 사건이 커진 만큼 대중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말이다.
길게 늘어지는 갑론을박을 보며 다음 스텝을 확인했다. 게임 종료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