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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60화 (259/328)

260화

서도경의 설명은 이러했다. 조진만이 내부에서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증거를 잡아 상부에 제출했다는 설명이었다.

“김현석 씨가 한몫해 주셨죠.”

“…김현석 씨요?”

“네, 그 김현석 씨요.”

여기서 나온 이름 하나에 이정원의 표정이 구겨졌다. 김현석, 그 사람은 우리의 2차 경연 당시 곡을 유출했던 내부 직원이었다.

겉만 봐선 해고 처리가 된 것 같아 보이는데, 실상은 서도경에게 목줄이 잡혀 그의 휘하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멤버들은 모르고 있었다. 나와 서도경 그리고 그 밑에 한지헌 정도만 공유하던 점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정원이 살벌한 기운을 내뿜자, 옆에 있던 강태오가 한숨을 내쉬며 제 쪽으로 포커스를 돌려 버렸다.

궁금한 점이 있는 것처럼 손을 들어 올리더니 서도경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이 여기서 갑자기 왜 나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얘기하자면 조금 긴데… 신해신 씨? 부가적인 이야기 좀 해도 되겠죠?”

이런… 능글맞게 웃는 서도경을 보니 골치가 아팠다. 아마도 그것 이 뜻일 것이다.

지금까지 몰래 숨겨 왔던 것들을 약간은 밝혀야겠다는 이야기 말이다.

멤버들도 슬슬 알고는 있어야겠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이유준은 내가 난처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미소가 한층 짙어지는데, 이거 원, 뒷일이 두려웠다.

“김현석 씨는 표면적으론 해고 처리되어 있었습니다… 만, 알고 있는 게 더 있으신 것 같아서 말이죠. 법적인 관례에서 호의를 베풀어 주는 조건으로 이중 스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중 스파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단어를 골라도 꼭 저런 무시무시한 걸 골랐다. 그 때문인지 문채민의 눈이 함지박만 해졌다. 권혜성은 대놓고 어깨를 들썩이며 곁에 있던 윤명의 옷깃을 잡아 흔들었다.

어지러운지 미간을 찡그린 윤명이 서도경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네, 왠지 배후엔 사람이 더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일개 사원이, 그것도 별로 공식적인 루트로 입사한 것 같지도 않은 인물이 이렇게 간이 큰 짓을 했을 리는 없잖아요? 아무리 돈을 주고 회사 쪽으로 연계를 해 준다고는 했지만… 업계가 이렇게 좁은데 그런 헛된 일을 막 저지를 리는 없죠. …뒤쪽에 뭔가 더 큰 힘이 있거나 압박이 가해졌으면 모를까.”

“…그게 조진만, 그 사람이란 거잖아요.”

더는 길게 끌어 봤자 그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한숨을 내쉰 뒤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멤버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아, 부담스러워.

특히 저기서 삐죽 눈매를 세우고 있는 이정원과 뭘 더 알고 있냐는 느낌으로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이는 이유준, 이 둘이 심하게 압박이 됐다.

“그건 또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던 거야, 형?”

“…꽤 됐어.”

“꽤? 처음부터가 아니고?”

“에헤이~ 정원이 형, 해신이 형도 다 생각이 있었겠지.”

사뭇 공격적으로 나오는 이정원의 말에 권혜성이 분위기를 풀려는지 손을 내저었다.

지금은 변명만이 살길이야. 그렇게 각오하니 뻔뻔해질 수 있었다.

문채민이 눈을 굴려 서도경을 바라봤다. 어지간히도 궁금했는지 조목조목 여러 가지 사태에 대한 질문을 늘어놨다.

“그럼 조 이사님… 아니, 조진만 씨가 온다 레이블과 MXP 쪽의 사람이었단 건가요? 처음부터? 아니면 중간부터인가……. 그런데 조진만 씨는 엔필름에서 대표님을 저지하려고 넣었던 사람이잖아요. 엔필름이 당했다는 건지, 아니면 알고서도 사태를 키우려고 이렇게 한 건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왠지 몰랐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 별로 안 똑똑한 것 같았어…….”

“와~ 윤명, 말에 가시가 있네.”

“…너라면 안 그러겠냐, 질리도록 공격받았는데…….”

문채민과 윤명의 말을 들은 서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윤명의 말이 정답이었나 보다.

“이거 원, 많이 꼬여 있어서 아주 초반부터 설명해 줘야겠군요. 쉽게 얘기하자면 엔필름은 조진만 씨의 일탈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 이걸 일탈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저를 압박하려고 투입한 건 맞는데, 여태까지의 진행 상황으로 보아 능력으로 누르는 것보단 실적을 만드는 데 방해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메이터스와 여러분도 엔필름의 자산 중 하나이니 크게 망가트릴 생각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냥 나중에 저만 치울 목적으로 그런 계산을 했던 것 같은데…….”

“사람을 잘못 골랐던 거네요.”

“네, 맞습니다. 우선 조진만 씨가 예상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나왔던 거겠죠. 여기서부터 엔필름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챘을 겁니다. 제게 몇 번 공적인 일을 핑계로 사태 파악을 하려는 듯한 뉘앙스의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땐 이미 늦은 상태였겠죠. 함부로 다시 빼기가 불가능했던 겁니다. 저희에게야 대충 얼버무리면 되겠지만, 조진만 그 사람이 중간에 버려지면 입단속을 할 리가 없잖아요?”

“우와… 진짜… 바보 같다…….”

“원래 회사란 게 그래. 생각보다 대충 굴러가고, 이게 이렇게 되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운영되는 케이스가 많아. 겉만 봐선 멀쩡하겠지. 규모가 이렇게 큰데, 전부 거짓말이 아닌가 싶은 정도라니까.”

엔넷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남현욱은 유들거려서 열받는 점만 빼면 제법 좋은 상사였지만 말이다.

윗사람들과 미팅만 하고 오면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간혹 지나가다가 들리는 말로는 온갖 비난을 서슴지 않았었다.

‘에휴, 그 머저리들.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요~?’

‘왜요? 또 상부에서 뭐라고 했어요?’

‘상부의 상자는 상머저리의 상자에서 떼온 게 분명하다니까? 나 가끔 궁금해. 그 사람들 도대체 그 자리엔 어떻게 올라간 거야?’

‘음… 인맥?’

‘그래, 그게 정답 같다. 더러운 세상 같으니……. 일이나 하자.’

대충 들어도 무능력한 상사들에 대한 욕이었다.

과거 스태프로 일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련해지려 하던 찰나였다. 멤버들과 더불어 서도경까지 이쪽을 바라봤다.

“응? 뭐야, 왜 그렇게 봐?”

“…아니, 형, 방금 우리 누나 같아서. 퇴근하면 가끔 그런 얼굴이었거든.”

윤명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퍼뜩 차려진다. 맞아, 여기의 나는 이제 24살 먹은 아이돌이었다. 사회 경험이라곤 아르바이트와 방송 출연이 전부였는데.

회사 생활로 한껏 구른 듯한 분위기를 풍기니, 모두가 의아해하는 시선으로 본 것이었다.

급하게 얼버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 하하……. 멋쩍게 웃으며 서도경에겐 눈짓했다. 뭐 해, 빨리 본론 말 안 하고.

“…라고 어디서 많이 들었어. 그, 왜 TV만 봐도 이런 얘기 많잖아.”

“흐음…….”

“뭐, 일단 그런 걸로 치죠.”

“다들 전혀 도와주진 않는 분위기인데, 형.”

물론 내 뜻대로 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길게 비음을 흘리는 이정원의 뒤로 피식 헛바람을 흘린 서도경이 다리를 꼬았다.

다시 마저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 근처에 있던 이유준이 재밌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녀석은 무시하고 서도경부터 바라봤다.

“아무튼 그 상태에서 엔필름이 조진만 패거리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습니다. 메이터스로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MXP 측과 내통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쪽과 손을 잡은 건 분명한 일이니까 말입니다. 김현석 씨가 전부 자백했습니다. 자료를 빼내는 데에는 조진만 씨의 묵인이 있었고, 도리어 그 시작이 거기서부터였다고요. 아마도 연계해 준 거겠죠. 뭐, 조건은 자신과 비슷하게 돈과 그리고 인맥? 회사에 꽂아 넣어 주겠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대표님은 2차 때부터 알고 계셨던 거예요?”

“네, 물론이죠. 전 대표니까요.”

이건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최한성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난 이후부터 뭔가 이상한 태도를 보인다 싶었더니.

이것과 연계할 계획을 짜고 있었나 보다. 하여간에 머리는 진짜 좋아요. 배신감을 담아 쳐다보니 서도경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까딱였다.

철두철미한 성격답게 돌파구를 찾은 이후로도 증거를 찾아 헤매고 있던 모양이다.

“김현석 씨는 회사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료를 쫓는 게 수월한 편이었는데, 그 위쪽은 디지털보단 아날로그로 소통을 하는 편이라 꼬리를 잡는 게 꽤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온다 레이블이 무너지는 바람에, MXP에서도 허점을 드러낸 거죠. 아니, 정확히는 조바심이 인 조진만 씨가 제풀에 무너진 거겠죠?”

아무래도 조진만 그 사람, 촉 자체는 제법 좋은 편이었던 듯하다. 블릭투를 비롯한 온다 레이블이 MXP에게 버려지는 걸 보며 조바심이 일어났었나 보다.

확실히 그건 이런 큰 일을 꾸며내고 있던 사람에게 압박이 가해질 정도의 빅뉴스였다.

제가 잡은 줄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믿었건만,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 MXP는 처음부터 조진만을 크게 기용할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대외적으로 상대방 약 올리기에는 이만한 재능이 없었지만, 사람이 허세도 좀 있고, 같은 편으로 두면 언제 좀먹을지 모를 타입이었으니까 말이다.

여기도 하청의 하청이었네. 조진만의 어리석음에는 고개를 내저었다.

“증거는 모두 확보하여 엔필름 측에 보고했습니다. 초반에는 꽤 조심해서 만나는 것 같더니, 후반에는 CCTV를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 같더군요. 그렇다고 회사에서 통화를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왠지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우스갯소리로 주차장 쪽 엘리베이터 앞은 사운드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었거든요. 바로 잡혀 주시더군요. 덕분에 아주 통화 내용도 잘 녹음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는 거니까, 그 앞에선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으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아.”

“…네.”

“…그러겠습니다.”

서도경 이 인간, 조진만을 무너뜨릴 계획으로 여기저기 함정을 파 두었었다. 그건 또 언제 흘려 댄 거래? 이쯤 되면 엔필름이 사람을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저 사람은 절대로 적이 되면 안 되는 독한 타입이었다.

잠깐, 그렇다면 나머지 미꾸라지들은? 조진만이 무너져 내리는 걸 확인하니, 그의 휘하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한 놈만 치워선 끝이 아닐 걸 알기에, 뒤가 궁금해진다. 놔뒀다간 후일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양반들이었다.

이유준 역시 나와 비슷한 추측을 하고 있던 것 같았다. 턱을 괸 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장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기, 그럼 조진만 씨의 입김으로 들어왔던 직원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일단 처우 방면은 엔필름 측으로 떠밀어 놨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거였다. 너희가 더럽힌 건 너희가 치워라. 참 고상한 말로 비난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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