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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61화 (260/328)

261화

“그랬더니 바로 답변이 오더군요.”

엔필름 측에서는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을 것이다. 더러운 사리사욕으로 사람을 심어 넣었는데, 그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걸로도 모자라서 기를 쓰고 누르려던 서도경에게 도움을 받게 된 사건이었다.

물론 서도경은 엔필름을 도와주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실상을 따지고 보면 이건 경고에 가까웠다.

다음부턴 좀 더 철두철미하도록. 누를 거면 확실하게 누르라는 엄포처럼 보였다. 조금이라도 책이 잡히면 곧장 반격을 할 만한 사람이긴 했다.

아마 당분간은 엔필름 측에서도 잠잠할 듯한데. 이후부턴 서도경이 어떤 작전으로 나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 뒤로는 소름이 돋다 못해 살벌한 내용들이 이어졌다. 잘못 찍혔네, 그 사람들……. 적이었지만 동정이 절로 일었다.

“불미스러운 일을 방관했을 수도 있는 인물들이니, 모든 걸 상관인 제게 일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불법적인 루트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대해 제가 하는 모든 처리를 묵인해 주겠다는 서명을 받았죠. 가장 위에 있던 조진만 씨는 저희 쪽이 아니라 엔필름 측에서 징계 해고 절차를 밟을 것 같습니다. 말로는 기업 면담을 통해 일을 정리하겠다고 했는데, 이미 엔필름 타 지부를 비롯해 본사 여론이 좋지 못하거든요. 아마도 징계는 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거기에 자료를 빼돌리지 않겠다는 입사 서류상의 계약을 위반했으니 법적 처벌도 무시 못 하겠네요.”

그 정도면 완벽한 몰락이었다. 메이터스 내부에서 서도경의 힘이 강해지는 걸 경계하던 엔필름이었는데.

상관이라고 부르며 서도경이 하는 모든 일을 묵인해 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건 서도경이 제 입지를 다진 중요 포인트였다. 아직 완전히 포기했을 거라곤 보이지 않으나, 메이터스 내부의 사람을 통해 서도경을 압박하는 건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피로가 몰려드는 나와 반대로 멤버 대다수가 흡족하단 느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저 두 놈, 권혜성과 이정원. 쟤네는 너무 눈에 띄게 좋아했다.

히죽거리며 작게 만세를 부르는 권혜성의 곁에서 악당인 것처럼 길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이정원이 부끄러웠다.

“…어째, 우리가 못된 사람들 같잖아.”

피해자는 전부 우리인데. 그런 나를 공감해 주는 인물도 하나 있긴 했다.

더 내쉴 한숨도 없는 것 같은 강태오였다.

“이거, 이대로 괜찮은 거야?”

“…그러게.”

강태오와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로 끼어든 이유준에 의해 말이 끊어졌지만.

이유준이 가리킨 곳에는 권혜성에게 휘말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문채민과 멍한 얼굴로 권혜성에게 흔들리는 중인 윤명이 있었다.

“그래도 좋지 않아? 다들 편해 보이잖아.”

“뭐, 그건 맞지.”

따지고 보면 이건 전부 잘된 일이었다. 최한성 사건을 마무리 짓고, 이정원의 오명을 해결했으며, 역으로 우리를 괴롭히던 블릭투와 온다 레이블의 말로를 볼 수 있었다.

거기에 내부로 파고들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던 조진만 패거리가 정리됐다.

변명할 여지가 없는 엔필름 측에서도 당분간은 조용할 거로 예측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오직 MXP뿐이었다. 새로운 적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동안은 활동에 집중할 수 있을 듯하다.

* * *

“컴백?”

그렇게 며칠이 지난 이후였다. 크라운 게임으로 일어난 소동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휴식기에 들어갔다.

거실에 누워서 모처럼 여유를 맘껏 누리고 있었는데. 방에서 달려 나온 문채민이 나를 붙잡고 흔들었다.

“어, 매니지먼트실 팀장님이 알려 주셨는데. 우리보고 아직 모르고 있었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부스스 흩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며 몸을 일으키자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이정원이 가까이 다가왔다.

외출한 이유준과 강태오를 제외하고 남아 있던 모든 멤버가 거실로 모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른스럽지만 안 그러는 척 막내의 느낌을 풍기던 문채민은 사측 직원들에게 제법 사랑받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 오곤 했는데. 오늘은 거물이 하나 걸린 모양이었다.

아니, 뭐, 굳이 따지자면 슬슬 타이밍이 찾아온 것 같기는 했다. 해외 팬덤 인지도와 더불어 국내의 지명도가 확 오른 참이었으니까.

이 기세를 밀어서 보다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게다가 난… 저 파란 창. 이벤트가 걸려 있었다. 저번 타이틀론 이루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이번 흐름만 잘 타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너무 빨리 알게 된 거 아니야? 정석이었으면 벌써 박 매니저님이나 오 매니저님한테 얘기 듣고, 미팅 룸에 앉아 있었겠지.”

“응, 내가 봐도 아직 기획 단계인 것 같기는 해.”

이정원의 질문에 문채민이 꿇어앉은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큰 편이었다.

잘했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머리를 마구 헤집어 줬다.

“으악!”

“허이구, 언제 이렇게 마당발이 되셨어요, 문채민 씨?”

“아~ 형, 놀리지 마! 나 열아홉이야!”

“응, 그래~ 형은 스물셋이야~”

평화로운 휴일 오후였다. 이정원이 이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까 좀 서운하네.”

“뭐가?”

“김성하 씨, 나한테 아무 연락이 없었거든. 같은 매니지먼트실에 있으면서…….”

이정원은 나름 친분이 있던 직원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해 골이 난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김성하 그 사람도 꽤 이런저런 일을 많이 알고 있었다. 다소 유들거리는 행동이 이런 사건에 가장 앞장설 것 같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선 아무런 얘기를 해 주지 않았었나 보다. 오히려 입이 무거워 보이던 팀장님 측에서 문채민에게 힌트를 줬다고 했다.

뭔가 준비하고 있나? 꽤 재밌을 것 같았다. 하이사인으로 데뷔한 이래로 별의별 일들을 겪다 보니까, 간이 커지기라도 했었나 보다.

그때 소파 위쪽에서 윤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부터 두 명이 조용하다 싶었다.

바닥에 누워 있던 나와 그 옆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은 문채민,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다가 우리 주변으로 걸어온 이정원을 제외하고서도 거실에는 두 명의 멤버가 더 나와 있던 상태였다.

소파에 구겨져 앉아 있던 윤명과 권혜성이었다.

평소 투닥거리는 했으나 룸메이트에 이어 동갑내기였던 탓에 친분이 강하던 놈들이었다.

엉겨 붙어서 다리를 쪼그리고 어깨에 고개를 기댄 자세로 앉아,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다.

개중 왼쪽에 있던 윤명이 입을 열었다. 나와 이정원을 향한 말이었다.

“…형들, 제보합니다. 권혜성, 얘. 이상해.”

“…야! 내, 내가 뭘……! 새, 생사람 잡고 있어!”

“음?”

윤명의 생뚱맞은 물음에 이어 옆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치를 보고 있던 권혜성이 지른 것이었다.

붙어 있던 몸을 떼어 내더니 당황했다는 얼굴로 윤명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눈치도 빠르고 약은 구석도 있었지만 이런 데에선 영 순진한 놈이었다.

누가 봐도 ‘나 뭔가를 알고 있어요.’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풀거리는 곱슬머리를 보다가 그게 거짓말 탐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권혜성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냥 넘어가 줄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걸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굳이 지금 얘기해 주지 않아도 나중이 되면 전부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곁에 있던 문채민과 이정원은 나와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무릎을 꿇고 있던 문채민이 소파 쪽으로 팔을 걸쳤다.

이정원 역시 들고 있던 잔을 식탁에 내려놓은 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서 있던 자세에서 소파 팔걸이에 기대앉고는 특유의 콧소리를 길게 냈다.

“흐음…….”

권혜성, 쟤, 잘못 걸렸네. 문채민까진 어떻게 넘길 수 있겠는데.

이정원이 저 모드로 나오는 거라면 빠져나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동정하는 느낌으로 손을 모으자 그걸 목격한 권혜성이 빽 소리를 질렀다.

하여간에, 위로해 줘도 그래요. 내가 제일 나쁘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해신이 형이 제일 심해! 방관하지 마!”

“그럼 뭐, 같이 부추겨 줘? 도대체 뭔데 그래?”

“으윽……!”

“…말해라 짝, 말해라 짝.”

“윤명, 이 배신자…….”

무덤덤한 어조로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윤명이 주변을 부추겼다.

문채민의 지긋한 시선 옆에서 이정원의 무서운 미소가 얹어지니 압박을 이기지 못한 권혜성이 제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아, 말하면 되잖아, 말하면~! 하여간에, 문채민 쟤도 도움이 안 돼요! 그건 또 어디서 듣고 온 거야?”

“내겐 죄가 없어. 죄가 있다면 팀장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게 전부지…….”

“말을 말자.”

제법 뻔뻔해진 문채민이었다. 권혜성이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얘기해 준다는 걸 보면 그렇게 심각한 비밀은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건지, 계속 우물쭈물하는 것이 사람의 호기심을 건드렸다.

“빨리 말 안 해?”

“마, 말해. 정원이 형, 그렇게 좀 보지 마, 무서우니까.”

이럴 때 특효약이 바로 이정원이었다. 이정원의 말 한마디로 권혜성은 알고 있던 정보를 술술 불어 놨다.

여기서 듣게 된 게 제법 재밌는 사실이었다. 이 녀석… 제법 머리를 쓸 줄 아는 것 같았다.

“그, 민망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했는데?”

“…이, 이번 타이틀 센터 나라고!”

“어?”

기획 단계에 접어든 새로운 타이틀곡 센터가 권혜성으로 정해졌다는 점이었다.

파이널 경연에서 권혜성이 컨셉 하나를 말하려고 했을 때, A&R 측에선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었지.

아마 그게 이번 앨범 이야기였나 보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 건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자 아직 애는 애란 생각이 든다.

“오, 선수 쳤다 이건가? 권혜성, 너. 좀 한다?”

“…좀 한다니, 정원이 형은 너무 격해.”

“…맞는 말이잖아, 배신자. 언제 그렇게 얘기했냐.”

“…그럴 목적으로 A&R 팀에 들락날락한 건 아니거든. 그냥 우리도 이런 거 한번 해 보는 게 어때요, 하고 물어봤는데. 팀장님도 그렇고 엔지니어분도 좋다고 하잖아. 언젠간 할 줄 알았지~! 그래도 센터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일 줄 알았단 말이야!”

“다들 진정 좀 해. 그리고 혜성이, 네가 센터인 게 뭐 어때서. 슬슬 턴 돌 때 되지 않았나. 명이, 나, 정원이. 그다음은 혜성이 너란 말이잖아. 좋네, 분위기가 반전되겠어.”

권혜성은 내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이정원에게선 바로 전 타이틀의 센터를 했던 자신과 권혜성이 반대되는 이야기냐며 태클이 걸려 왔지만, 못 들은 척 혜성이 녀석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뭘 하길래? 더 알고 있으면 얘기 좀 해 봐.”

“우와… 해신이 형. 상대방 방심하게 만들고 터는 수법 장난 없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소파에서 뛰어내려 품을 파고든 권혜성을 살살 달랬다.

빼먹을 수 있다면 멤버라고 한들 제외하지 않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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