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63화 (262/328)

263화

“나 탐정 이유준은 오전 11시 10분에 미술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떨어진 상가 마트에서 장을 봤습니다.”

“저 형이 장 보면 망하는데?”

- 궁금하신 분들 하이사인 캠핑 자컨 보고 오세요

- 아 감사; 재밌다는 소식듣고 왔는데 이 드립 이해 못하고 있었음

“하하, 너무해. 구매 품목으론 사과, 요구르트, 파프리카, 돼지고기를 샀으며 그 증거로 마트 영수증을 제출합니다.”

“…저게 무슨 조합이야. 진짜 망했네.”

웃느라 바쁜 이유준의 뒤로 멤버들의 태클이 밀려들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도보 5분 거리면 11시에 그림 훔치고, 11시 5분쯤에 마트 도착해서 물건 대충 고른 뒤 10분에 계산하면 되는 거 아니야?”

“오, 대박! 범인은 유준이 형이다!”

“형, 형은 진행 아니었어?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어떡해.”

“누가 진행이래. 나도 범인 찾아야 퇴근하거든.”

- 신해신은 다르다

- 신해신이 한다

- 신해신이 해결해준다

- 근데 퇴근하고 싶은 마음을 곁들인

화면 위에 나타난 영수증과 미술관에서 마트까지 가는 길의 지도를 살피며 가능해 보이는 가설을 설명했다.

안 그래도 실실거리며 남들 골려 먹기 좋아하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니까. 그걸 아는 회사 직원들이 이유준을 범인으로 만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이유준, 너. ‘Catch me now’ 할 때도 괴도 역할 했었지.”

- 오~

- 오~

- 오~

- 아니 해신이 왜 이렇게 바보 취급이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 나름 리더인데요 ㅠ

- 몰이에서 벗어나니까 신기해서 ㅎ

“…어?”

“와, 진짜네? 이유준, 너 맞잖아. 얼른 자수해라.”

“다들 왜 이래. 아직 알리바이도 다 안 들었어. 태오, 네 차례다. 빨리 해라.”

강태오의 날카로운 추측이 이정원의 추리에 불을 붙인 모양이다.

한숨을 내쉰 강태오가 손을 들어 제 알리바이를 설명했다.

“…하, 나 탐정 강태오는 오전 10시 30분에 미술관 건물 1층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시각은 10시 57분이며 증거로 식당 CCTV 화면을 제출합니다.”

강태오의 뒤로 사진 한 장이 나타났다. 저거, 우리 대기실 아니야? 녹화 직전 대기실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던 사진이었다.

“와~ 저기가 식당이에요? 뭐, 그래도 태오 형은 맞네.”

“이런 거 올린다는 말씀은 없으셨잖아요.”

“괜찮아, 그래도 형은 잘생겼으니까!”

- 어휴 순간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인 줄 알았네

- 혜성이 맘 내 맘 365일 24시간 같이 붙어 있는 혜성이도 아직 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쩌겠음

- 그러니까 ㅅㅏ진 좀 많이 풀어 태오야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강태오 밥 먹는 사진 겟

강태오도 몰랐던 사실인지 어이가 없어 보인다. 그사이 윤명에게서 제법 날카로운 추측이 이어졌다.

“…태오 형도 알리바이는 의미 없어. 1층 식당이라며. 밥 먹고 바로 뛰어 올라가면 11시에는 맞추겠지.”

“…그게 그렇게 되는 거냐?”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게임에 진심이 되어 버린 듯하다. 쉽게 끝날 느낌이 아니었다.

모두 돌아가며 각자의 알리바이를 말했다.

윤명은 강태오와 비슷한 시간에 미술관 건물 바로 옆의 카페에 앉아 있었다고 했으며, 문채민은 이유준이 방문한 마트의 스낵 코너에서 간식을 구매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권혜성은 미술관 건물의 옥상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말했다.

이거 원, 이름만 알리바이지. 시간으로 끼워 보자면 충분히 괴도를 할 수 있는 조건들이었다.

슬슬 추리로 넘어가려나 싶었는데, 곁에 있던 이정원과 이유준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턱 하고 누르는 무게에 휘청이자 날카로운 눈빛의 이정원이 고개를 까딱였다.

“너는 왜 말 안 해.”

아, 깜빡했다. 어수선한 멤버들을 정리하기 위해 진행을 자처하느라 잊고 있던 거였다.

손에 쥐고 있는 쪽지를 펼치려는데 권혜성과 윤명에게서 미심쩍다는 뉘앙스의 눈초리가 이어졌다.

가늘게 뜬 눈과 길게 흘리는 비음이 왠지 얄밉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형, 수상해.”

“그러게, 혼자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 것 보면… 해신이 형이지!”

나왔다. 스무 살 둘의 주특기. 평소엔 싸우기 바쁘다가 이럴 땐 합이 참 잘 맞는 둘이었다. 됐다는 의미로 고개를 내젓자 이유준이 스물스물 웃어 보였다.

“이건 나도 좀 공감하는데? 형, 슬쩍 넘기는 일에 재능 있잖아.”

“…….”

- 어째 오늘은 안 당하고 넘어가나 했다

- 남의 집 리더가 괴롭힘당하는 게 이렇게 재밌다니

- 원래 해신이는 좀 구겨져야 함

- 존나 너무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비닐봉지냐 뭘 구겨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리는 건가. 당황했다, 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턱에 손을 괸 문채민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강태오의 귓가에 숙덕거렸다.

“태오 형, 내가 평소였다면 혜성이 형이나, 명이 형 말은 안 믿겠는데… 왠지 오늘은 일리 있는 것 같지 않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그리고 이거 귓속말 맞아? 권혜성이랑 윤명이 쳐다보잖아.”

강태오의 질색했다는 반응과 더불어 스물 동갑내기 둘이 문채민 쪽으로 달려들었다.

이때다 싶은 마음에 들고 있던 쪽지를 펼쳐 제작진이 적어 준 내용을 빠른 속도로 읽어내렸다.

“나 탐정 신해신은 미술관 2층 A 구역에서 10시 55분 다른 작품을 관람하였습니다. 도난당한 그림이 걸린 곳은 4층의 B 구역이며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증거로 2층 A 구역에서 마주친 목격자의 진술을 제출합니다. …음, 이거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니에요? 내가 제일 불리한데?”

제작진이 정해 준 알리바이라고 할 게 퍽 의심스러웠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내용을 준 건지 모르겠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범행이 가능하다곤 생각했었다. 다들 범행 현장으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적당히 그 중 미심쩍은 놈을 골라 맞히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이 내가 될 팔자였다.

말로나 다른 층에 있었다고 하지, 실상은 뛰어가면 충분히 가능할 시간이었다.

심지어 증언도 목격자라며. 55분에 보고 11시에 훔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안타깝게 멤버들도 나와 같은 추론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스물스물 거리를 좁히는 몇 놈을 바라보며 질색한다는 기운을 내비쳤다.

뒤쪽 스크린으론 목격자라던 B씨의 증언이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 왼팔을 잡은 문채민이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채웠다. 소품으로 있던 분홍색 장난감 수갑이었다.

“당신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 문챔니 광역딜 조준합니다 대상 신해신

- 수갑은 또 어디서 난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럴듯하게 말해서 더 얼척없음

- 막내 킹랑스러워 문채민 내가 낳을걸

“이건 또 어디서 가져온 거야. 아니,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체포하기가 있어? 저기요, 전 무고하거든요. 아니, 그 전에 나도 탐정이라니까?”

장난인 걸 알면서도 괜히 무서웠다. 아직 묶이지 않은 오른팔을 들어 무고함을 피력하자 뒤로 다가온 이유준이 문채민에게 말을 걸었다.

“채민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아. 게임을 통해서 알리바이를 거짓으로 진술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죠? 그럼 그거 바로 해 봅시다. 이겨 보면 확실하겠지. 해신이 형이 괴도인지 아닌지 말이야.”

“…이유준, 너. 지금 나 의심하고 있는 거야?”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이유준이 얄미웠다. 공정하게 내 편을 들어 주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었나 보다. 분위기만 봐도 저건 문채민을 달래는 이야기였다.

지금 애매하게 잡지 말고 증거를 내밀어 반박하지 못하게 하자는 뜻이었다.

억울함을 피력해 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결국은 제작진이 설명하는 게임 규칙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 * *

제작진이 설명하는 게임들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상황극을 주력으로 잡았던 콘텐츠답게 모두가 알고 있는 심플한 오락들이 이어졌다.

심플하다고 해야 하나? 사실 스튜디오에서 볼 게임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가장 먼저 우리가 하게 된 것은 턱걸이였다. 바퀴가 달린 철봉이 질질 끌려 나타났을 때는 천하의 권혜성도 입을 떡 벌렸다.

- 이런 거 안 해도 우리 애들 운동 잘하는 거 안다

- 하지만 고맙습니다

- 아전체 이후로 간만에 보는구나 ㅜ 피지컬도 좋은 애들이 아 쫌 뛰어다녀봐!

- 아전체는 싫지만 죽이는 피지컬 감상은 좋아하는 팬덤

간단한 게임이라며……. 갑자기 체력장이 됐다.

스태프 둘에 의해 철봉과 매트가 세팅되고 그걸 바라보는 멤버들 앞에서 미술관의 사장을 연기하던 사람이 말했다.

“모든 게임은 개인전입니다. 첫 번째 게임은 턱걸이~ 가장 많은 숫자의 턱걸이를 해낸 분께 알리바이에 대한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질문권을 드립니다.”

“…저기요, 그림 도둑맞아서 슬프신 게 아닌…….”

“어흑, 탐정 여러분, 어서 빨리 저희 미술관의 작품을 되찾아 주세요.”

싱글벙글 신나서 설명하던 사람을 보고 강태오가 질문을 던졌다. 태세 전환도 이런 태세 전환이 없다고 눈물을 찍는 듯한 행동이 이어졌다.

물론 강태오는 할 말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도대체 턱걸이와 탐정과 괴도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던 터라 의미 불명이란 뜻을 전달했다. 양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이자 제작진에게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탐정에겐 체력이 필수죠. 그러니까 어서 하세요.”

“…우린 아이돌인데.”

“아이돌도 체력은 좋아야겠지. 누구부터 할래. 나부터 할까? 난 범인 아니야. 그러니까 먼저 할게.”

“우와! 정원이 형, 틈새 공략 장난 없다!”

수긍이 빠르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 웃긴 상황이 즐거웠던 건지. 이정원이 선뜻 앞으로 나섰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데 관절에서 살벌한 뼈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원이 형, 살살해.”

“그건 윤명, 너한테 할 말이거든.”

- 오 대박 흥미진진

- 스피드 웨건: 놀랍게도 하이사인 운동 투탑은 윤명과 이정원이다.

- 알고리즘 타고 왔습니다 뒤에 있는 다른 남자들은 하찮나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찮기까진 아니고요 저기 곱슬머리 강쥐까진 괜찮은데 나머진 종목별로 갈립니다

- 타종목 가면 ㅎㅏ찮아지는 멤이 몇 있어용 공 갖고 노는 거에선 해신이랑 유준이가 많이 구려집니다

- 구려진데 미쳤나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너네 피지컬 그렇게 쓸 거면 나 줘

- 공식 개발은 이유준 공식 개손은 신해신

그러고 보니까 저기 저 둘, 우리 팀에서 운동 실력으론 원투 톱이었다. 견제하는 것 같은 윤명의 말을 끝으로 풀쩍 제자리에서 점프한 이정원이 철봉에 매달렸다.

불편하다며 벗어 던진 재킷 아래로 셔츠의 팔을 걷은 이정원이었다. 마른 체격으로 힘도 좋다 싶어서 가만히 놈을 바라봤다.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이정원이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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