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66화 (265/328)

266화

다시 다음 게임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만보기 카운트였다. 상황극에 의의를 두고 싶었는지 간단한 규칙이다.

만보기를 차고 1분 동안 가장 많은 숫자를 획득한 사람이 게임에서 1등을 차지한다는 것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와 문채민은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더 이상 힌트를 받는 건 무의미한 데다가 증거인지 뭔지만 찾아내면 바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당장 티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혜성이 형, 안 그러는 척 눈치가 빠르지?”

“…어, 만만하게 보면 안 돼.”

- 혜성이 취급 뭐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러는 척 ㅋㅋㅋㅋㅋㅋㅋㅋ

- 하이사인에는 딜 장인들이 많구나

- 주된 대상이 하나여서 문제임 아기강쥐는 보통 당하는 편 응응

권혜성이 생각보다 머리를 잘 쓰는 타입이라서 말이야. 자기가 용의선상에 올라갔다는 걸 알면 증거를 숨기려고 들 게 분명했다.

도리어 타인을 몰아서 은근슬쩍 벗어나려고 할 가능성도 컸다.

괴도 사인의 역할을 맡았다면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경품으로 뭘 줄 지는 모르겠지만 권혜성 저놈 성격에 그걸 안 받으려고 할 리가 없었다.

에휴, 어쩔 수 없다며 성심성의껏 게임에 참가하기로 했다.

문채민에게도 그러란 의미로 눈짓하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혜성 쟤는 다른 이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전력으로 힌트를 받으려고 하겠지.

1라운드였던 턱걸이 때부터 멤버들이 힌트를 받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던 녀석이 떠올랐다.

원래 쾌활한 타입이라서 방송에 몰두한 줄 알았더니 가만 보니까 오늘 유달리 열정적인 감이 있었다.

“그럼 우선 두 분 먼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제작진의 설명하에 강태오와 이유준이 첫 타자로 나섰다. 원하는 부위에 차면 된다는 설명과 함께 만보기가 주어진 이후였다.

한 번에 경기를 펼치면 그림이 재미가 없다나 뭐라나. 이것도 눈치껏 반칙하는 그림을 만들어서 유쾌하게 진행해 달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불안한 얼굴로 뒤를 힐끔거리는 강태오가 보였다.

“…이유준, 넌 괜찮은 거야?”

“뭐가?”

“말을 말자.”

- 아 태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성격 친근한 게 제일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하이사인의 찐 엄마롤

- 왜 아이돌 자컨에서 육아의 향기가 나죠

유달리 막내 삼인방에게 많이 치였던 강태오였다. 공감을 살 상대를 잘못 골라서 체념했다는 표정으로 만보기를 찼다.

만보기를 오른 다리에 착용한 이유준과 오른팔에 착용한 강태오가 몸을 풀며 대기했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스크린에 초시계가 켜졌다. 당장 내게는 쟤네의 경기보다 다른 일이 더 중요했다.

바로 범인인 권혜성에게서 어떻게 증거를 빼앗아 오냐는 것이었다.

“야, 야! 권혜성! 이러기 있어요? 이게 무슨 경기야!”

“하하……! 엇, 명아……! …너, 거기서 뭐 해?”

사방을 울리는 비명에 눈앞의 광경을 쳐다봤다. 역시 가만히 있질 않는구나.

강태오의 오른팔을 잡아 저지한 권혜성과 이유준의 오른 다리에 매달려 주저앉은 윤명이 제작진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무슨 게임 하나가 진행이 안 돼.”

“너도 저랬잖아.”

“난 저 정도는 아니었거든.”

- 이정원 특기:얼굴에 철판깔기

- 정원아 너의 뻔뻔한 점까지 사랑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ㄱ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 정프들이 제일 성격 센 게 웃겨 나 지금 빡빡 웃고 있음

- 돌 따라 가는 팬덤

이정원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권혜성이 평소 장난기가 많던 성격을 적재적소로 이용하여 다른 인물들이 힌트를 차지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었다.

윤명은 휩쓸린 거군. 겉만 봐선 권혜성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았으나 실상은 윤명 쟤도 권혜성에게 자주 휘말렸던 인물이었다.

오늘도 그 흐름을 타서 저도 모르게 녀석을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권혜성이 범인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쏟아지는 한숨을 집어삼키는데 강태오의 팔에 매달린 권혜성의 옷자락이 요동치는 걸 발견했다.

…어라? 거기서 나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우리와 다른 점 하나를 발견했다.

혜성이 녀석, 왼쪽 종아리에 뭔가를 착용하고 있었다.

옷자락이 들려서 보인 건 아니고, 강태오가 권혜성을 떼어 내려고 잡아당긴 사이 타이트하게 붙은 옷이 윤곽을 드러내며 형태를 보인 것이었다.

2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슬쩍 보였다가 사라진 흔적이었다. 권혜성은 아차 싶다는 얼굴로 잽싸게 손을 내려 바지춤을 매만졌는데.

아까부터 권혜성만 주시하고 있던 내 눈엔 전부 보인 후였다.

혹시 누가 봤을까 봐 힐끔거리는 권혜성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척을 했다.

“태오 씨, 승리!”

“팔 빠지겠어.”

그사이에 첫 번째 대결의 승자가 나왔다. 그나마 움직이기가 편했던 팔을 택한 강태오였다.

이유준은 그 허약한 체력으로 팀 내 가장 장신인 윤명을 다리에 달아 쉽게 움직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처참한 성적에 하하 미소를 짓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좋아! 그럼 다음은 나다!”

기회다……! 자연스럽게 마지막 타자로 발을 뺀 나와 달리 권혜성이 윤명과 이정원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증거가 어디 있는지도 발견했으니까 더는 게임을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채민아!”

“어!”

앞에서 제작진과 다른 멤버들이 만보기의 숫자를 확인하느라 정신없던 사이에 문채민에겐 모든 작전을 설명해 놓았다.

그래서 내가 이름을 부른 순간 문채민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목표는 권혜성의 왼쪽 종아리였다. 오른쪽 팔목에 만보기를 차느라 손이 다 묶인 권혜성을 보고 문채민과 함께 권혜성의 다리를 낚아챘다.

“우아악! 뭐, 뭐야!”

“괴도 사인, 당신을 체포합, 으악, 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아, 형, 가만히 좀 있어!”

“문채민, 허리 똑바로 잡아!”

- ㅊ챔니 쿠ㅜㅜㅜㅜㅜㅜㅜㅜㅠㅜㅠㅜㅜㅜ 우리 막내 상황극이 그렇게 재밌었어요??

- 아니 근데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음?? 탐정이라며 쟤 혼자 경찰인데

- 해신아 네가 고생이 많다…

- 왜 저 뒤에서 인간극장 다큐가 흐르는 것 같지

- ㅋㄲ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ㅋㅋㅠㅠㅜㅠ

어리둥절해하는 멤버들을 뒤로한 채 비명을 지르기 바쁜 권혜성을 붙잡았다.

문채민은 그 와중에 상황극에 몰입하여 쓸데없는 대사를 내뱉고 있었다.

우리 형사 아니고 탐정이라니까……. 아무튼 참 요란한 광경이었다.

내가 왼쪽 바짓단을 낚아채니 권혜성의 발버둥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제야 측면에 있던 이정원이 뭔가를 알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야, 설마 너희들……!”

“악! 좀 놓으라니까! 왜, 왜 그래!”

“…권혜성, 쟤, 범인이야? …왜?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았어?”

윤명의 의문이 섞인 질문은 권혜성의 외침 속에 파묻힌 상태였다.

간신히 놈의 바짓단을 걷어 손으로 종아리를 훑어 내렸다.

“으하학! 가, 간지러워! 으악!”

“해신이 형, 멀었어?!”

“…찾았다!”

그때 손에 보송보송한 재질의 아대 하나가 만져졌다. 권혜성의 발을 힘껏 잡아끌어 아대를 벗겨낸 순간이다.

“…왁!”

우당탕, 문채민과 나 그리고 권혜성이 한데 얽혀 엎어졌다. 괜찮냐며 달려온 멤버들 사이에서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곤 아대를 쥔 손을 번쩍 들어 올려 크게 외쳤다.

“범인, 권혜성! 증거 확보했어요!”

그건 바로 하이사인의 로고가 자수로 그려진 아대였다.

“괴도 사인 체포에 성공하셨습니다. 채민 씨, 해신 씨. 탐정 두 분의 승리입니다!”

“아자!”

권혜성이 머리를 털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어떻게 안 거야!”

문채민과 하이 파이브를 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이가 없어 보이는 강태오와는 눈이 마주친 뒤였다.

“진짜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니, 그 전에 채민이 쟤랑 한편을 먹었다고? …형, 저기 둘이랑 얘기하던 것 같았는데.”

“야, 신해신. 너 어떻게 된 거야. 우리한테서 정보만 쏙 빼간 거야?”

“와… 당했네. 하하, 채민이한테도 그렇고, 해신이 형한테도 그렇고.”

“…다 사기꾼 아니야, 이거. 나만 공정하게 게임 한 거야? 권혜성, 넌 왜 또 범인인 건데……?”

- 돌고 돌아서 이렇게 이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해신이도 배운 거야 애들한테

- 난 문채민이 제일 웃겨 절대막내온탑 챔니온탑

- 가만 보면 제일 덜 고생하고 우승한 거 아니야???

- 명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원이나 유준이나 태오는 우승자 보고 어이없어하는데 아가명 혼자 권혜성보고 배신감에 치를 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헛웃음을 내뱉는 이정원과 이 상황이 재밌는지 웃기 바쁜 이유준, 거기에 문채민에게 속고 권혜성에게 이용당한 윤명이 말을 이었다.

얘들아, 게임은 실전이다. 이기는 게 장땡이라며 어깨를 으쓱이자 문채민에게서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유준이 형이랑은 다른 힌트를 들었거든. 혜성이 형 알리바이가 거짓이라던데? 뭐, 다른 사람도 거짓말이면 골치 아팠겠지만. 해신이 형이랑 명이 형은 맞다고 하잖아. 그럼 정답은 하나뿐이지.”

“…신해신, 너. 설마 우리한테 들은 정보, 채민이 쟤한테 넘긴 거야?”

“네가 먼저 나 의심했잖아. 승부엔 팀 따윈 없다.”

“하하!”

이정원의 보복이 조금 두려웠으나 일단 이 정신없는 게임을 무사히 끝낸 것이 만족스러웠다.

권혜성이 울상을 짓고 졌다는 의미로 양손을 들었다.

“예~ 예~ 범인 괴도 사인은 접니다~ 아, 다음 게임까지만 버텼으면 내가 우승하는 거였는데!”

진 것이 어지간히도 억울했던 모양이다. 문채민은 제작진에게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래, 우리가 이렇게까지 한 데에는 경품인지 뭔지 그게 있었다.

솔직히 엄청난 걸 주리라곤 예상치 않았다. 그래도 뭔가 받는다니까 기대가 됐다.

서도경, 씀씀이가 적진 않았어. 은근히 계산하게 된다.

“우승하신 두 분께는 포상 휴가 이틀을 드립니다! 참고로 대표님 컨펌이 완료된 사항입니다.”

“…예?”

“네?”

“휴가요?”

- 얘들아 제발 좀 쉬어라

- 얼마나 안 쉬면 자컨에서 휴식을 상품으로 주냐

- 대표님 컨펌이 있다니 이거 회사에서 주는 연차 아님?

- 근데 나같아도 연차 경품으로 준다면 이 악물고 게임한다

- 얘네는 그거 모르고 한 거잖아 ㅠ

- 아 쓰바 저도 이틀 쉬게 해주세요

…쉬어도 되는 거야? 이렇게? 비활동기라고 해도 우리는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편이었다. 개인 시간을 얻은 것이 반갑기는 했다.

컴백까지 멀지 않은 팍팍한 일정에 이틀이라도 여유가 생긴 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일단 고맙단 의미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문채민은 벌써 휴가 내내 뭘 해야 할까 이런저런 계획을 짜는 듯했다.

“하루는 본가 갔다 오고 하루는 형들이랑 놀아야겠다.”

“…채민아, 우린 못 쉬거든. …너, 놀 거면 선택지 해신이 형밖에 없어.”

“갑자기 거기서 내가 왜 나와. 난 쉴 거야. 안 놀아.”

“그래? 그럼 해신이 형이랑 놀아야겠다.”

“아니, 난 안 논다니까. 문채민, 내 말 어디로 들었어.”

- 형아 말 냠냠 귀여워 ㅠ

- 정말 별게 다 귀엽다

왠지 우승 경품이 아닌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정신이 없는 클로징 멘트를 촬영하는 중이다.

그런데 권혜성이 대뜸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쩐지 가만히 있다 싶었지.

“우리 다음 상황극은 또 뭘 하게 될까. 게임 관련된 거를 잔뜩 하려나……. 아, 전 인형 뽑기에 자신 있습니다. 모두 참고해 주세요!”

“…야!”

“헉, 혜성이 형…….”

“…이거 괜찮은 거야?”

“…생각 있지 않을까. 아, 권혜성이지…….”

“편집 부탁드립니다.”

- 어라??? 어라라?????????

- 이거 혹시 그거임? 스… 로 시작하는 그것?

- 우리 애들이 스포일러를??? 메이터스 드디어 미친 거??????

- 자컨에서 스포를 던지는 남성들이 있다? 근데 왠지 합의가 안된 것 같은 분위기를 곁들인

- ㅅㅂ 편집해달라고 했는데 안 한 회사도 징함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정도면 사전에 해도 된다고 말해줬을 듯

- 나 지금 궁예한다 인형 뽑기? 게임? 우리 애들이?? 나이트때 같은 분위기야?? 도대체 뭔데??

- 미친 plz 더 줘

- 벌써 타싸에 추측 글들 올라옴 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 가봐라 ㅋㅋㅋㅋㅋ

- 아니 근데 솔직히 조용히 넘어갔으면 몰랐을 걸 애들 다 아닌데요 아닌데요;;; 이래서 모르는 척도 못 해주겠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혜성아 고맙다 아이고 우리 강쥐 아기는 스포 좀 해도 괜찮아 응응 하이눈은 오히려 좋아

다급하게 권혜성의 입을 틀어막은 이정원과 놀란 문채민이 제작진을 돌아봤다. 괜찮냐며 물어보는 윤명의 뒤에서 강태오가 차분하게 권혜성을 돌려 욕했다.

그래, 지금 이건 다음 타이틀에 대한 스포였다. 그것도 좀 작은 게 아니라 대형 스포일러 말이다.

권혜성, 너. 서도경한테 허락은 받았냐? 하여간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안도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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