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94화 (293/328)

294화

“2라운드의 승자는~! 피터팬&웬디입니다!”

“와아아!”

MC의 발표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기쁜 마음으로 웬디 탈을 쓰고 있는 이정원을 돌아봤다. 해냈다는 느낌으로 팔을 뻗은 녀석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하이 파이브를 하고 MC와 제작진의 안내 하에 백스테이지로 돌아왔다.

마지막 라운드이자 결승전인 3차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대기실에 돌아가던 길이었다.

멀찍이서 들리는 상대방의 목소리와 놀라는 듯한 관객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복도를 거닐었다.

노래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었구나. 아이돌 생활에 마음이 빼앗겼다는 건 진즉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계속 새로운 점들이 발견되자 신기하단 감상이 뒤를 따랐다.

두근거리는 심경으로 노래에 몰입했던 감정을 추스르길 한참이었다.

대기실 문을 앞두고 발걸음을 멈춰선 이정원이 고개를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해신아, 너도 느꼈지.”

“어.”

“나, 너랑 같이 무대 서는 게 즐겁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여길 보는 듯한 시선이 퍽 부끄러웠다. 비록 웬디 탈로 인해 서로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차라리 한 겹이라도 가려져 있어서 다행인 것 같았다. 손을 들어 코밑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비비다가 들어가자는 느낌으로 이정원의 등을 한 대 두들겼다.

“…나도.”

녀석을 지나치며 작게 한마디 내뱉자 이정원이 여길 보고 웃는 느낌으로 고개를 숙였다.

쓸데없이 이상한 분위기 만들고 있어. 안에서도 이런 흐름이 이어져 속이 간질거릴까 봐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기우였던 모양이다.

“브라보~! 형들, 결승 진출 축하해!”

“어? 뭐야?”

불쑥 나타난 손 하나가 얼굴 위에 씌워져 있던 탈을 벗겼다.

환해지는 시야에 미간을 찡그리니 활짝 웃는 얼굴로 축하의 멘트를 내뱉는 권혜성이 보였다.

대기실 안에는 멤버들이 들어와 있었다. 녹화 전까진 무대 인근에서 경연을 보겠다며 사라졌었는데. 우리가 승리하는 걸 보자마자 바로 돌아온 듯했다.

나를 뒤쫓아 들어오던 이정원 역시 여긴 웬일이냐며 질문을 던졌다.

근처 소파에 앉아 있던 문채민이 대기실 구석에 붙어 있던 모니터를 가리켜 보였다.

“관객석 어디 구석에서 몰래 보고 있었는데, 거기 있다간 패널들한테 걸릴 확률이 있을 것 같다고 형들 얼굴 밝혀지기 전까진 숨어 있어 달라고 하셨어. 결승전에는 다시 그쪽으로 가겠지. 그나저나 형들, 3라운드 진출 축하해. 해신이 형이랑 정원이 형이 나간다고 해서 걱정은 없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더 잘하더라.”

“맞아. 둘 다 실력이 늘었던데. …특히 해신이 형.”

“어?”

문채민의 옆에 앉아 있던 윤명이 그 특유의 알 수 없는 멍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보컬, 더 좋아졌어.”

“그래? 쟤랑 같이 연습해서 그런가 보네.”

윤명의 촉은 정말 인정해줘야만 할 것 같았다.

1라운드에서 무대를 선보이고 스탯을 올린 부분을 기가 막히게 캐치 했다.

대충 이정원 덕분에 좋아진 것 같다며 두루뭉술하게 짚어 넘기니, 뒤에서 들어오던 이정원이 탈을 벗고 투덜거렸다.

“나랑 같이 연습했는데, 왜 너만 늘었냐. 하여간에 신해신 저거, 분명 뭔가 있어.”

“칭찬이지? 칭찬으로 듣는다?”

장난기가 섞인 멘트에 땀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정원 넌 곧 올라갈 건데.

녀석은 모르는 내용을 되짚으며 피식 웃었다.

3라운드에선 져도, 이겨도 얼굴 공개가 될 예정이었기에 다시 세팅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다가오는 걸 보며 메이크업 의자에 앉았다.

먼저 의자에 앉아 있는 이정원을 보다가 거울 너머로 우리를 구경하고 있던 멤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들 덕분에 우리도 같이 고평가받고 있는 건 알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턱을 괸 채 싱글거리는 이유준의 물음에 이정원이 툭툭 말을 끊었다.

저거, 또 부끄러워하네. 이정원의 성격에는 익숙해진 이유준이 알고 있던 사실들을 늘어놨다.

“형들, 우승 후보래. 1차 방송 때부터 반응이 좋았는데, 거기서 형들 이름도 많이 나왔잖아. 하이사인은 모두 실력파라나 뭐라나. 나는 가왕은 주말 예능이라 시청 연령대가 넓은 편이니까.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한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야.”

이유준의 말은 그거였다. 아이돌이라고 하면 편견이 있곤 했는데. 그게 이번 녹화로 인해 어느 정도 무뎌진 듯하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아직 우리의 정체가 밝혀진 건 아니긴 했지만, 팬덤의 반응을 통해 우리라고 유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돌이 이렇게 잘할 리가 없다며 내려치기 하는 악플러들이 없던 건 아니었으나, 우리가 맞다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실력파가 아니었냐는 좋은 반응들이 뒤를 따랐다.

얼굴만 공개되면 팀플레이에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 이정원과 내 스탯의 업데이트를 위해 출연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파생된 나비효과들이 적지 않으니 좋은 양상을 띄고 있었다.

만족스러움에 슬쩍 엄지를 치켜세워 주자 이유준이 팔을 들어 곁에 있던 강태오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도 뭐 좀 말해 봐. 형들 무대 넋 놓고 보더니.”

“…내가 언제.”

아까부터 말이 없던 강태오를 놀리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런 동갑내기 둘의 행동에 메이크업을 고치고 있던 이정원이 눈을 굴려 녀석들을 쳐다봤다.

“강태오, 부끄럼 타냐?”

“하여간에 어디 말을 못 해요.”

지쳤다는 듯 받아치는 강태오와 대수롭지 않아 하면서도 강태오를 놀리는 이정원까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광경이었다.

좋아, 이대로 3라운드도 무사히 해내자. 시스템의 정체를 안 이상 나는 이 녀석을 제대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그건 나의 인생을 위해서도, 이 그룹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 * *

무대 백스테이지에 서서 상대 팀을 분석했다. 여성 하나와 남성 하나로 이루어진 듀엣곡이 들렸다.

그때, 이정원이 장갑을 벗고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살갗이 드러난 피부에 놀라 쳐다보자 내가 끼고 있던 장갑도 벗긴 채 손바닥 위로 뭐라고 글씨를 썼다.

[목소리가 어려. 목 관리를 잘했어도 나이나 경력이 있으면 창법에서 티가 나는데 여긴 그게 전혀 없어.]

주절주절 길어지는 멘트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강하면 어떻고, 약하면 또 어때. 아까 대기실 문 앞에서 이정원이 얘기해 준 사실들이 떠올라 그런 것 같았다.

나도 이정원의 손을 잡아 손바닥을 뒤집었다. 그리고는 그 위로 천천히 글을 적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바로 일보 직전이니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 것이었다.

[이기자]

이정원은 단출하다 못해 짧은 내 이야기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상대 팀의 곡이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 웬디 탈이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렸다.

이제는 우리도 무대에 올라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스테이지 위에서 우리를 소개하는 멘트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재우며 암전이 된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적막 속에서 조명이 켜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이크를 세게 움켜쥐었다.

천천히 흐르는 MR에 귀를 기울였다. 블루스적인 터치가 많지만, 리듬 자체는 밝은 편인 팝 발라드.

포근한 멜로디에 OST, ‘너를 봄이라 부르고 싶어’였다.

이건 고우림이 주연으로 나왔던 ‘사랑은 벚나무 아래에서’와 그 이후 성인 버전의 연작 ‘겨울 나무 아래에서 당신을 기다려요’의 마지막 통합 OST인 곡이기도 했다.

1라운드에서 연애 초기의 감정을 말하고, 2라운드에서 재회를 통한 사랑의 이면을 말했으니 이번에는 그 둘의 엔딩 이후를 보여주자는 뜻에서 선정한 노래였다.

이것 덕분에 우리 둘이 사벚아에 나온 배우가 아니냐는 추론도 있었지.

고우림과 여자 주인공의 동창생 중 하나로 나온 배우의 이름을 들었던 기억에 탈 속에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이라이트와 나레이션이 따로 있는 구성이니까, 최대한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기로 했었다.

[피터팬]

우리가 만난 봄이 됐어

내게는 일과가 된 시간이야

용기 없는 내겐 이것뿐이니까

학창 시절, 짝사랑에 가슴앓이하던 소년의 마음을 담아 음을 되짚었다. 다음 파트로는 바로 이정원의 미성이 흘러나왔다.

[웬디]

꽃이 피었는데, 잘 지내지

나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연습하며 수백 번은 더 들었던 나도 놀랐다.

얘가 왜 보컬 스탯이 S가 아닌 거지. 사실 이미 올라갔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로 능숙한 보컬에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피터팬&웬디]

추억 속 나무 아래

전달하지 못한 고백을 해

흘러나오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화음을 불렀다.

잔잔해지는 건반 소리를 듣던 타이밍에 맞춰 등 뒤 스크린으로 사전에 정해 둔 영상이 흘러나옴을 느꼈다.

그리고 여기서 사전에 녹음해 둔 나레이션이 진행됐다. 내 목소리임에도 어딘가 낯선 기분이 느껴졌다.

[피터팬]

(사랑은 때로 기적을 불러온다)

아마도 지금쯤 드라마에서 주인공 둘이 재회한 장면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 감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통통 튀는 피아노 건반 소리가 들렸다.

마치 겨울이 끝나고 새싹이 움트며 다시 벚꽃이 핀 것만 같은 발랄한 리듬이었다.

거기서 밴드 구성의 악기들이 추가되며 어쿠스틱한 느낌이 추가되었다.

이 뒤부턴 그냥 무대를 즐기면 되는 거였다.

감정에 집중하느라 힘을 주고 있던 자세를 풀고 자연스럽게 박자를 타며 이정원과 시선을 맞췄다.

[피터팬]

꿈일까 지금 이 순간

흩날리는 꽃비 사이로

네가 보이는 것 같아

[웬디]

그날과 같이 웃어 주는 너

기약 없던 기다림이 끝나 버렸어

[피터팬]

내게 기회가 온 걸까

[웬디]

묻어 둔 비밀 전하지 못한 연애편지

[피터팬&웬디]

그 시절의 추억을 그리며 말해

[피터팬&웬디]

보고 싶었어

네가 그리웠어

고조되는 비트에 패널들이 몸을 일으키며 큰 동작으로 박수를 쳐 줬다.

그곳을 향해 손짓하며 발을 굴리자 타이밍 좋게 피아노 반주가 이어졌다.

이정원과 함께 후렴을 변형한 악절로 들어갔다.

난이도가 있는 노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탯이 올라간 이유에서였을까, 편안함을 느꼈다.

[피터팬]

아마 나는 계속

[웬디]

앞으로도 너를

[피터팬&웬디]

좋아할 것 같아

[피터팬&웬디]

이 마음을 허락해 줄래

내 봄이 되어 줄래

등 뒤로 환한 분홍빛 빛이 쏟아져 나왔다. 길게 치고 올라가는 이정원의 애드리브를 배경 삼아 나도 한껏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

턱끝까지 차오른 숨은 신경 쓸 틈도 없었다. 그저 음악과 무대와 이정원에게 푹 빠져 노래를 불렀다.

밴드의 구성이 폭발하듯 화음을 만들어 내면, 그 사이의 음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는 구성이 반복됐다.

연습하지 않았던 담백하지만 풍성한 느낌의 기교와 화음을 맞추며 무대의 끝을 향해 달려 나갔다.

[피터팬]

눈이 녹았어

[웬디]

꽃이 피었어

[피터팬&웬디]

그리고 네가 내게 와 줬어

그렇게 마지막 구절을 내뱉은 이후였다.

가뿐 호흡에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데 쨍하고 내리쬐는 조명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정원, 너도 지금 비슷한 감상이냐? 저도 모르게 이정원을 향해 몸을 틀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이정원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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