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95화 (294/328)

295화

“나는 가왕 페어 편, 그 대망의 첫 번째 우승자는……!”

2주간 나눠 촬영했던 나는 가왕 페어 편의 마지막 단계, 우승자 발표 시간이었다. 모든 이의 시선이 MC에게 쏠려 있었다.

여기서 지면 이정원의 보컬 스탯에는 변화가 없으려나.

무대 자체는 즐거웠기에 우승에 대한 욕심은 크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 출연한 이 녀석을 떠올리니 차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 팀인 체셔와 시계 토끼가 두 손을 꽉 쥐며 기도를 했다.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나 싶어서 이정원을 쳐다보려는데, 이정원 측에서 먼저 팔을 뻗어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괜찮아. 즐거웠으니까 충분해.’ 왠지 이런 말이 전해지는 듯했다.

저 욕심 많고 승부욕 강한 인간이 웬일이야.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빠지며 이정원의 의견에 수긍했다.

그렇게 잠깐의 뜸 들이기가 이어지고, 벌어질 듯 말 듯 애를 태우던 MC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축하합니다! 피터팬과 웬디!”

“꺄아악!”

“……?”

“……!”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 위에서 달려드는 이정원에 한껏 몸이 짓눌렸다. 음성변조를 돌리고 있었음에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진짜 이겼다고? 우리가? 즐거운 마음에 팔을 들어 녀석을 끌어안다가 옆에서 박수를 쳐 주고 있는 상대 팀의 두 명을 발견했다.

감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눈 앞으로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이건 얼마 전에도 본 적 있는 것이었다. 권혜성의 스탯이 올라가는 걸 확인했던 바로 그 알림이었다.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 ‘이정원’의 보컬 스탯 업데이트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컬 스탯: A+ → S]

[이정원]

나이: 23

외모: A-

보컬: S

댄스: B-

운: D

끼: B-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들의 스탯을 업데이트해 주세요.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종료 기한 – 7인 모두 달성 시

보상 – 랜덤 지급

[멤버]

이정원 – 보컬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S]

이유준 - ??

강태오 - ??

권혜성 – 끼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윤명 - ??

문채민 -??

나를 제외하고 멤버들 중 처음으로 S 스탯에 들어간 녀석이었다. 황금색 이펙트가 넘실거리는 부근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손을 들어 이정원의 머리를 헤집었다.

웬디 탈에 막혀 딱딱한 감촉이 장갑 너머로 느껴졌지만, 일단 뭐든 좋다는 감상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우승자인 우리는 높은 곳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로 가게 됐다.

준우승자인 시계 토끼와 체셔가 먼저 노래를 부르며 얼굴을 공개하는 사이, 우리가 우승자라는 장면을 녹화하기 위해서였다.

유어돌 이후로 또 이렇게 떨리는 건 처음 같네. 쌍둥이처럼 나란히 놓인 빨간색과 금장의 장식이 달린 의자에 앉아 아래에 있는 무대를 바라봤다.

마이크는 이동하는 순간 스태프들에 의해 제거가 되어 있었기에 작은 목소리라면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앞쪽에서 바쁘게 녹화 준비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이정원을 향해 슬쩍 몸을 숙였다.

“…축하해.”

우승한 것도, 스탯을 올린 것도 그리고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으로 무대를 선 것도.

이정원은 잠시 내 말에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과장될 정도로 크게 만들어 놓은 캐릭터의 눈 속에서 여길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애써 아무 말 하지 않은 척 몸을 정면으로 트는데, 이번에는 이정원에게서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맙다.”

“…….”

“같이 무대에 서 준 것도 그렇고, 꿋꿋하게 그룹의 중심이 되어 주는 것도 그렇고. …뭔가 말은 못 하겠는데 네겐 늘 감사하고 있어.”

나는 가왕에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이번 무대가 무언의 터닝 포인트라도 되는 것처럼 이정원이 제 뜻을 술술 밝혔다.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뭐가.”

“너, 종잡을 수가 없어. 이상하리만치 뭔가 특별한 힘이라도 갖고 있는 것 같아.”

“…….”

하여간에 촉도 좋은 녀석 같으니라고. 뭔가 낌새를 눈치챈 것 같긴 했지만, 자세한 사정은 물어보지 않는 이정원에 정면을 바라봤다.

녀석들에게 모든 사실을 밝힐 수 있을까. 밝히더라도 그걸 믿어 줄지가 미지수였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모든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칭찬으로 듣는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내 뜻을 이해한 이정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무대 아래에서는 얼굴 공개를 앞두고 체셔와 시계 토끼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절 후렴이 끝남과 동시에 간주에 들어가고, 상대팀이던 두 사람이 무대 뒤쪽으로 몸을 돌려 가면을 벗으며 고개를 털었다.

“시계 토끼와 체셔는 바로……!”

“All my mine~”

“그대로 내 곁에 있어 주면 돼~”

…어? 저 사람은? 다소 익숙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무대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인클루(INCLUE)의 멤버 서은휘 씨와 모델 겸 배우, 서세이 씨입니다!”

지원겸네 그룹의 멤버 중 하나이자, 유어돌 당시 파이널 곡을 선물해 줬던 그룹 내 작곡 담당 멤버인 서은휘였다.

옆에는 낯이 익은 여성 모델 겸 배우가 하나 있었는데, 무슨 사이였는지 그 둘의 등장에 패널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 둘, 남매야.”

“뭐?”

“서은휘 선배님이랑 서세이 선배님, 둘이 남매라고. 넌 몰랐을 것 같아서 알려 주는 거야.”

이정원에게서 들은 말에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이돌 멤버가 이런 경연에 혼성으로 나온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이제야 모든 사태가 파악됐다.

어쩐지 노래를 잘하더라. 무대를 보며 박수를 치니 서은휘가 우리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질을 하며 씨익 웃었다.

저긴, 벌써 정체를 파악했나? 깊은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원겸의 멤버라고 생각하니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2절까지 멋진 무대 매너를 보여 준 두 남매는 MC와 짤막한 인터뷰를 거쳤다.

오빠를 닮아 노래를 잘한다는 서세이 덕분에 패널 모두가 당했다며 장난스러운 야유를 던졌다.

백스테이지로 인사하며 들어가는 둘을 보다가 스태프의 부름에 맞춰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 역시 노래를 부르며 얼굴을 공개해야 하기에, 목을 가다듬었다.

모두의 관심과 신경이 쏠림을 느끼고 암전된 무대에서 몸을 풀었다.

준비됐지, 이정원? 그래, 가자. 마지막인 만큼 이벤트성으로, 또, 추억을 다질 겸 준비해 둔 노래의 MR이 흘러나왔다.

청량하고 몽환적인 피아노 건반 소리가 울리는 이 곡은 유어돌 출연 당시 내가 가장 처음 부른 지온의 ‘Deep Blue Sea’였다.

이건 이정원이 먼저 제안해 준 곡명이었다. 자신도 유어돌 녹화 당시 그 무대를 감명 깊게 봤다며 한 번쯤 멤버들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이유준과 함께 페어로 무대에 섰었는데. 이번에는 데뷔하여 이정원과 함께 부르다니 여러모로 기분이 참 묘했다.

[웬디]

저 깊은 바다 너머

네게 보여 주고픈

나의 작은 비밀 Area

[피터팬]

빛에 일렁인 푸른 물결에

손에 감기는 차가운 감각이

이게 바로 눈앞에 드리운

아름다운 세계 Oh

준비해 둔 짧은 댄스와 함께 각을 맞춰 몸을 움직이자 여기저기에서 환호성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패널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아 우리의 정체를 유추하는 것에 실패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피터팬]

파도가 부서져 Deep Blue Sea

이건 황홀한 Swimming in the area

[웬디]

좀 더 깊은 곳으로

Down Down Down Down

널 지켜 줄 비밀 공간

Down Down Down Down

화려하면서도 유려한 음율에 맞춰 라이브를 하다가 1절이 끝나는 구간에 들어가자마자 몸을 틀었다.

이정원이 미성이 귀에 남아 있을 무렵, 얼굴 공개의 타이밍이 찾아온 것이었다.

무대 뒤쪽 구석으로 들어가 목덜미에 걸려 있는 끈을 풀었다. 이 근처에서 관객석이 존재했기에 그들로부터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양 볼에서부터 천천히 떨어져 나가는 인형 탈에 시원한 공기가 와 닿았다.

이내 후련한 마음으로 탈을 완전히 벗어 던지고 땀에 젖은 머리를 훌훌 터는데. 이정원도 비슷한 타이밍에 얼굴이 드러났는지 구석 자리의 관객들이 눈과 입을 크게 벌렸다.

제 옆자리에 있는 남자 지인의 어깨를 마구 두들기는 여성 관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MC의 말에 맞춰 몸을 돌려 무대 전면으로 걸어 나갔다.

물론 옆에는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이정원도 함께 있었다.

“나는 가왕 페어 편, 그 첫 번째 우승자!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준 네버랜드의 피터팬과 웬디의 정체는……! 그룹 하이사인(HISIGN)의 멤버 해신 씨와 같은 하이사인(HISIGN)의 멤버 정원 씨 입니다!”

“으악!”

“진짜야? 아이돌이었어?”

“꺄아악!”

사방이 비명으로 온통 난리였다. 손을 크게 한번 흔들고 패널들 방향으론 꾸벅 허리를 숙인 뒤 이정원과 다시 대형을 갖춰 무대를 꾸려나갔다.

[해신]

조금씩 빠져 들어 봐 Deep Blue Sea

더 큰 세상에 몸을 맡겨 봐

바다의 조각이 Feel like wave

[정원]

눈앞에 펼쳐진 빛나는 이 세계

오감을 깨워 현실을 벗어나

그대로 이렇게 Down Down Down Down

[해신]

Down in the deep blue sea

Take a dive in the area

원래라면 이유준의 파트였을 랩을 나눠 부르니 그 환호성이 더욱 크게 이어졌다.

스케줄 틈틈이 시간을 쪼개 가며 연습했던 안무를 추면서 이정원과는 마지막 구절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해신]

파도가 부서져 Deep Blue Sea

이건 황홀한 Swimming in the area

[정원]

좀 더 깊은 곳으로

Down Down Down Down

널 지켜 줄 비밀 공간

Down Down Down Down

점점 작아지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이정원과 서로 등을 맞댔다. 나는 위쪽으로, 이정원은 아래쪽으로 손을 내린 뒤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훑어 내렸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느껴졌지만, 상관은 없었다.

이정원도 마찬가지였는지 팔을 뻗고 마지막 동작을 향해 몸을 틀었다.

[해신&정원]

이곳이 바로 나의 작은 Area

너와 함께한 우리 둘만의 깊은 바다

환상적인 멜로디에 맞춰 정면을 보며 씨익 웃었다. 잠잠해진 무대 너머로 박수와 함께 나는 가왕 페어 편의 무대가 종료됐다.

거센 호흡을 정리하며 몸을 트는데 눈이 마주친 이정원과는 그대로 손뼉을 마주쳤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튀어나간 몸이라 녀석도 나도 그저 웃길 뿐이었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MC를 확인하며 그대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마도 저기 어디에 우리 멤버들이 있겠지. 눈이 따가운 조명 너머 관객석을 훑어보며 어딘가에 있을 녀석들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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