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휴식기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곧바로 컴백 준비에 돌입했다.
서도경도 나도, 멤버들도 모두 원하는 바가 있었기에 연말 시기에 맞춰 새 앨범을 내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얻은 다음 센터 후보로는 이유준이 지목됐다.
A&R 팀에서 정해 준 곡의 컨셉에 멤버들이 놀라는 와중에도 이유준은 제법 담담해 보여서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유준 씨를 모티브로 한 이번 컨셉은 바로 ‘Complex’입니다.”
“이유준 쟤가요……?”
누구보다 의아해하던 것은 이유준에게 항상 당하던 동갑내기 강태오였다.
한쪽 미간까지 찡그리며 자신이 알고 있는 콤플렉스와 A&R 팀에서 말하는 콤플렉스의 어원이 같은 건가 고민했다.
나 역시도 자아 7부를 진행하던 우리 컨셉을 알았기에 이유준에게 맡겨진 부분이 새로웠다.
저 능글맞고 어디 가서 지는 법이라고는 모를 이유준이 콤플렉스? 열등감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던 멤버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멤버분들은 모르셨나 보네요? 유준 씨가 먼저 제안한 거였는데.”
“엥? 유준이 형이요?”
“…형,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어?”
권혜성과 윤명의 물음에 이유준이 머쓱하단 얼굴로 미소 지었다. 이유준의 옆에 앉아 있던 문채민은 이런 이유준을 잘 알고 있었는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 방면으로 시도할 줄은 몰랐는데. 형이 정 그렇다면야…….”
“하하, 채민이는 너는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일단은 정해진 걸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마저 미팅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다시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이정원과 이유준이 함께 공동 작사로 들어간다는 얘기와 함께 얼추 미팅이 종료된 이후였다.
각자 짐을 정리하고 일어날 채비를 하는데, 눈앞으로 파란 창이 떠올랐다.
[이유준]
나이: 21
외모: A-
보컬: C / 랩 A-
댄스: B-
운: C
끼: B-
*업데이트 확률 상위 스탯*
랩: 83% (컴백 무대를 활용해 보세요.)
운: 57% (자체 콘텐츠를 활용해 보세요.)
권혜성과 이정원, 그다음으로 스탯을 올려 줄 녀석의 등장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아 이유준은 랩을 올려 주는 게 정답이었다.
컴백 무대를 활용하라니, 이번 앨범의 센터로 지목되는 멤버가 이유준인 만큼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수월한 성공이 예상됐다.
그러기 위해선 저놈이 콤플렉스란 주제를 택한 것에 대한 이유를 좀 알아봐야겠지.
콤플렉스라는 단어와는 가장 멀어 보이던 멤버의 이상 행동에 대해 고민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일들이 밀려 들어왔다.
* * *
간단한 미팅도 종료되고 일단 휴식을 위해 숙소로 돌아간 참이었다.
가족과 약속이 있다는 일부 멤버들과는 흩어진 터라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 있었다.
저녁부터 있을 작업을 위해 낮잠을 자겠다는 이정원을 돌아보곤 그대로 방을 빠져나와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는 막내 삼인방이 외출해서 홀로 남은 강태오가 자리해 있었다.
모처럼의 여유가 즐거웠는지 독일어로 된 책을 읽고 있는 강태오를 살폈다.
…또 피아노 관련 서적이군. 저번 학교 폭력 사태에서 아버지의 도움으로 가족과의 사이가 좋아진 이후부턴 얼굴이 부쩍 피었던 녀석이었다.
방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목적을 이루고자 등을 돌려 피하려던 무렵이었다.
언제 나를 눈치챈 것인지 책장을 넘긴 강태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유준 살피러 가는 거지?”
“…눈치도 빠르다.”
강태오는 안 그러는 척 이유준이 제법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바로 저번 활동인 레일 하트 때도 권혜성이 A&R 팀과 접촉하여 원하던 컨셉을 쟁취해 내긴 했지만. 그때와 이번은 사태가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권혜성이 자신의 자아를 보다 유쾌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풀어냈다면, 이유준 쪽은 다소 비관적인 주제를 선택했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제법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한숨 자야겠다던 정원이 녀석도 저녁쯤에는 이유준과 단둘이 있을 시간이 만들어질 테니까. 그때를 노려 물어보겠다는 분위기를 풍겼던 게 기억났다.
막내 삼인방이야 외출을 빙자해 바깥으로 나섰지만. 집에 돌아오면 뭔가를 바리바리 사 들고 올 게 분명했다.
진지한 대화를 하기엔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물량 공세로나마 형의 마음을 돌봐 주려는 것이었다.
강태오도… 태연한 척 가만히 있긴 했지만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확실했다.
나한테 부탁하는 거구나? 이런 건 자신보단 내가 더 적격이라며 이유준의 심경에 대해 좀 파악해 달라는 의미였다.
하여간에, 삐딱하다니까. 직접 나서지 못해서 부탁을 하는 녀석이 이해가 되면서도 신기했다.
피식 미소 지으며 이유준의 방을 향해 턱짓하니 책장에서 힐끔 시선을 돌린 강태오가 나를 돌아봤다.
“정 그러면 같이 가 보든가.”
“…그건 좀.”
민망했던 건지, 아니면 위로가 체질에 안 맞았던 건지 미간을 찡그린 강태오가 봐 달라는 느낌으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데려갈 생각은 없었어, 인마. 장난이라며 손을 내젓자 강태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슬슬 가 볼까. 미팅에서 그런 폭탄을 던져 놓고 홀로 있는 이유준이 걱정스러웠다.
이만 가 보겠다며 몸을 돌리자 강태오가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부탁해.”
뒤돌아봤을 때 강태오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책만을 읽고 있었다.
진짜 서툴러, 강태오도 이유준도. 그리고 멤버들도 모두 서툴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려 가장 안쪽에 있는 이유준과 문채민의 방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 얇은 문너머로 누군가가 움직이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유준아, 해신이 형인데. 들어가도 되냐.”
말이 끝나자마자 덜컥이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날도 밝은데 왜 시커멓게 하고 있는 거야.
어두운 걸 좋아하던 룸메이트 문채민 탓에 평상시에도 그리 밝다고는 볼 수 없는 방이었지만 오늘따라 칙칙하게 쳐져 있는 커튼이 거슬렸다.
“형?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무슨 일이야. 나 좀 들어간다.”
태연하다 못해 의아하단 얼굴의 이유준을 보자 한숨을 절로 나왔다.
방 밖으로 나오려는 녀석을 떠밀어 방 안에 집어넣고는 등 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고 거실과의 공간을 차단했다.
저녁부터 이정원이랑 작가 관련 미팅에 들어간다더니…….
이유준의 책상 위로 켜져 있는 노트북이 눈에 띄었다. 암막 커튼을 쳐서 낮이라곤 볼 수 없는 어두운 방 안에 유일한 불빛을 밝히고 있는 물건이었다.
흰 화면 위로 뭐라 쓰다 만 글자들을 쳐다보곤 녀석을 끌어 책상 근처 침대 위에 자리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내게 손목을 잡혀 끌려온 이유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 그러니까…….”
호기롭게 들어온 것까진 좋은데. 그제야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생각 좀 해 보고 올걸. 콤플렉스라는 단어와 강태오의 모습에 제대로 대화할 주제도 고르지 못한 채 떠밀리듯 들어와 있었다.
말을 고르다가 시작할 곳을 찾지 못해 벅벅 머리를 털었다. 이유준은 눈치가 빠른 녀석답게 대충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알아챈 것 같았다.
“…형, 혹시 이번 컨셉 때문에 그래?”
“…알면 먼저 말 좀 해.”
긍정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놀랐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인 이유준이 나를 쳐다봤다.
멍한 시선에 뭐라고 물어봐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한번 저질러 보기로 했다.
“너, 걱정거리 있냐?”
“뭐?”
“우리 중에서 콤플렉스라는 단어랑 가장 먼 것 같은 놈이, 그런 주제로 컴백하고 싶다고 말하러 간 게 신경 쓰이잖아. …지금 나만 이러는 거 아니야. 다들 티는 안 내지만 걱정하고 있어. 직구로 물어보는 게 미안하긴 한데, 리더로서 형으로서 그냥 넘어가진 못하겠다.”
내 말에 이유준이 눈꺼풀이 깜빡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자식은. 유어돌 당시부터 속을 알지 못하는 놈으로 가장 상위권을 차지한 인물이었다.
속사정을 잘 말하지 않기도 않거니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기가 세다고만 생각했는데.
과거 문채민과 있었던 트레픽 엔터에서의 일만 봐도 이유준이 마냥 강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지. 돌아가며 한 번씩 사람을 걱정시키니, 팀의 리더로서, 또 녀석에게 정이 많이 든 형으로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이유준은 내 말에도 딱히 대답이란 걸 하지 않았다. 내가 한 질문에 놀란 듯 벌어진 입을 보일 뿐이었다.
단정한 눈매가 쉼 없이 깜빡이다 몇십 초가 지났다. 슬쩍 시선을 돌려 제 노트북 화면을 보던 이유준이 별안간 허리를 푹 숙이며 내게 기댔다.
“…어? 야, 왜, 왜 그래?!”
놀란 마음에 허벅지께에 엎어진 이유준부터 살피려고 했다.
뭐지? 어디가 아픈 건가. 녀석의 등을 쓸어내리다가 이유준이 잘게 몸을 떨고 있음을 확인했다.
“너, 너 왜 그래!”
혹시 우나?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에 고개를 숙여 놈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어, 뭔가 이상한데? 그러다가 거기서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큽, …큭, 큭큭…….”
이유준은 엎어져 울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물며 심각한 분위기로 얼굴을 보이기 싫어 감춘 것도 아니었다.
…그래, 이유준은 지금 웃고 있었다. 그것도 터지는 웃음을 참아 내고자 이를 악물어 가면서까지 말이다.
그 큰 손으로 제 입가를 틀어막은 채 소리를 억누르고 있었다.
“야, 너…….”
“큭큭, 큭……. 진짜 미안한데… 큽, 나 웃어도 될까?”
이유준의 반전 모습에 내팽개치듯 허벅지 위에 엎어져 있는 이유준의 몸을 밀었다.
방심하고 있던 찰나 떠밀린 이유준이 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해 웃음을 참느라 다시 구부정한 자세가 되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이유준을 살피니 이유준이 이내 더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큰 소리로 웃어 재끼기 시작했다.
“하하하!”
“미친놈아, 너 진짜 죽는다. 이리 안 와?!”
이유준의 돌발 행동에 모든 사태가 파악되어 얼굴로 열이 몰렸다.
“하하… 아…, 너무 웃어서 미안한데. 좋아서 그래, 좋아서. 형, 나 걱정했어?”
그래, 이유준은 멤버들과 내가 생각한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자세한 사정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내면을 갖고 있었다.
…그럼 우리가 낚인 건가? A&R 팀과 이유준에게? 배신감에 이유준을 쳐다봤다.
어느 정도 웃음이 그친 이유준이 내 어깨를 잡으며 미소 지었다.
“내가 미리 말을 못 해서 미안해. 왜 그런 컨셉을 요청했는지 전부 설명해 줄게.”
납득이 될 때까지 얘기하지 않으면 죽는 줄 알아라. 이유준의 등 뒤에서 번쩍이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에서 낮잠을 핑계로 누웠지만 뒤척대고 있을 이정원과, 거실에서 책을 보는 척 이 방에 온 신경이 쏠려 있을 강태오에게는 아직 비밀인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