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99화 (298/328)

299화

컴백 준비 막바지에 돌입한 날이었다. 연습실 바닥에 뻗어 있는데 먼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유준이 보였다.

…이걸 애들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

컴백 관련 건으로 미팅을 가진 이후 이유준과 나는 독대를 나눴었다.

이유준이 타이틀로 A&R 팀과 나눴던 주제 때문이었다.

A&R 팀은 이번 주제로 콤플렉스, 즉 감정적인 부분을 쓰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이유준에게서 나왔다는 걸 밝혔다.

우리는 거기서 모두 놀랐었다.

생전 그러지 않았던 멤버가 자신의 자아를 콤플렉스 같은 예민한 주제로 들고 왔는데, 그 누가 걱정하지 않을까.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별말은 없었지만, 이유준의 상태에 대해 걱정했다.

대놓고 물어보기도 뭐해서, 리더라는 자리를 맡은 내가 먼저 나서 보기로 했었다.

방까지 음침하게 하고 있길래, 영락없이 큰 문제일 줄 알았더니.

그날 나눈 대화가 스쳐 지나가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단둘만이 남은 방 안에서 이유준이 내게 한 이야기는 이거였다.

‘자아 7부작이라고 하니까, 못난 부분을 좀 보여 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아, 그렇다고 지금도 그렇다는 건 아니고. …조미를 좀 했달까? 알잖아, 연예계. 자극적이면 자극적인 대로 족족 관심받는 것.’

‘…그게 무슨 소리냐?’

‘음, 형들이 걱정하는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건데, 나 유어돌 전에는 조금 삐딱했거든. 사고를 쳤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 속에 담아 둔? 열등감, 이런 게 좀 있었단 뜻이야. 혹시나 해서 계속 말하는 건데, 지금은 절대로 아니다?’

그건 과거 트레픽에서 사건을 겪은 이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남들에게 열등감을 느꼈었단 소리였다.

거기까지만 됐으면 멤버들 모두가 걱정할 만한 이유를 지닌 거였을 텐데. 그 뒤 붙이는 말에 나는 넋이 나갔다.

…그러니까 이유준은 지금 아무렇지 않다는 뜻이었다.

털고 일어난 건 오래전이며, 그조차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더듬더듬 조각처럼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린 모두 이유준과 A&R 팀에게 낚인 거였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고?’

‘내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여?’

아니, 사실 정말 이유준은 너무도 멀쩡해 보였다.

커튼을 쳐서 어두운 방 안, 노트북 불빛 하나를 지지해 웃고 있는 녀석치곤 지나치게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대로 힘이 빠져 머리를 되짚곤 고개를 내저었었다.

…다행이다, 멀쩡해서. 아니, 근데 그래도 그렇지. …다른 애들한테는 어떻게 이걸 설명하냐. …근데 지금은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복잡한 머릿속에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숨을 내쉰 기억만 났다.

‘…그럼, 그럼 채민이 걔는 도대체 뭐야. 미팅 때 왜 그런 말을 해서…….’

그러다가 A&R 팀과의 미팅 자리에서 문채민과 이유준이 했던 대화가 스쳤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이유준을 걱정하게 된 데에는 대수롭지 않게 폭탄을 떨어트린 A&R 팀과 거기에 대고 조용히 미소 짓던 이유준 그리고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문채민이 있었다.

앞의 둘까지만 있어도 속아 넘어갈 법한데, 우리 중 가장 이유준을 오래 알고, 또 이유준과 사건에 연루된 적 있었던 문채민이 그렇게 나와 의심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건 됐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달라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었다.

문채민의 이름에 이유준은 잠시 미팅 자리에서의 일을 회상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아, 그 말이 다른 사람 입장에선 의미심장하게 들렸을 수도 있었겠구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니까 자세히 좀 말하라고…….’

따질 기력도 없어 눈살을 찌푸리자 간신히 웃음을 멈춘 이유준이 말을 이었다.

‘채민이 말은 그거지. [형이 그렇게 감성적인 방향을 택했어? 신기하네. 근데 이해는 할게. 좋아한다면야 뭐…….]’

‘…뭐?’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데.’

이유준의 말에 힘이 빠져 있던 고개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내가 생각한 속뜻과는 너무도 다른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유준과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이유준의 취약한 부분을 문채민이 받아들여 준 줄 알았더니. 이유준의 대사를 들어 보니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던 듯했다.

이건 마치… 그래, 그거군.

알고 지내던 형의 아픔을 안고 이해해 주는 게 아니라, ‘저 형이 왜 그러지, 평소 취향 같지 않은 걸 골랐네. 하지만 하고 싶다면 이해는 해 줄게.’ 같은 다소 퍽퍽하고 무던한 감상이었다.

그제야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을 느꼈다.

윤명과 권혜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숙소를 떠나던 것과 달리 유달리 무던해 보이던 문채민이 떠올랐다.

친한 형의 치부를 티 내지 않기 위해 조용히 사라져 주는 건 줄로만 알았더니……!

문채민은 이유준이 대수롭지 않게 주제를 고른 걸 알고 본인 역시 개인 약속을 나간 것이다.

낚였네, 그것도 저 둘에게 모두가 낚였어.

하지만 거기서 대놓고 이유준이나 A&R 팀, 또는 문채민에게 원망의 화살을 날릴 수는 없었다.

의미심장한 뉘앙스를 보이긴 했지만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으니, 철저히 우리가 오해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민망함이 차오르며 웃고 있는 이유준이 보였다.

너는 왜 그런 폭탄을 던지고 방에 혼자 남아 있어서……! 거기다가 커튼까지 친 채로 어두침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따지고 보면 모두 이유준의 평소 생활 루틴이었다.

다 같이 있는 시간이 아니면 말이 그리 많지 않던 놈이라 평범한 일상생활을 보낸 거라고도 볼 수 있었다.

힘이 빠져 앉아 있던 상태에서 뒤로 몸을 기울여 드러눕는데,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유준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렇게 걱정해 주니까 기분은 좋은걸. 신경 쓰이게 한 건 진짜 미안한데. 형, 나 이번 타이틀 진짜 잘하고 싶거든.’

아무래도 이유준은 이번 곡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둑한 분위기로 쓰면 감성이 좀 살아날 줄 알고 작사 소스라도 캐고 있던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책상 위를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노트북을 바라본 것이 그 방에서 나오기 전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뒤 있었던 일들은 정말 별게 아니었다.

이유준의 방문을 닫고 나오자 거실에 남아 있던 강태오가 염려를 담고 나를 쳐다본 것과 방 안에서 낮잠을 잔다던 이정원이 잠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뒤척이고 있던 일.

저녁 무렵 돌아온 권혜성과 윤명이 평소 이유준이 잘 먹던 음식을 사 와 거하게 저녁을 먹은 일만 빼면 정말 별게 아니었다.

…아직도 문채민과 나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이유준과 이번 타이틀곡의 주제에 대해 묘한 오해를 품고 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차라리 대놓고 물어보든가. 방에 돌아가지 않고 거실에 남아 있던 강태오는 굳이 내게 안에서의 대화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내가 어련히 잘하고 왔으리라 믿어 주는 건 고마웠으나, 이쯤 되면 차라리 그냥 대놓고 물어봐 주길 바랄 정도로 난처함이 느껴졌었다.

평소 저돌적이던 이정원 역시 이유준과의 저녁 작업에서 큰 쾌거를 얻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뒷일을 처리하고 다니던 것과 이거는 사례가 다르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었다.

저 둘이 저러고 있을 정도면 권혜성과 윤명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나나 이정원, 혹은 강태오가 뭐든 해 주기를 바라며 이유준에게 살살 져 주며 살았다.

…이렇게 되면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건데.

나는 이유준에게서 전달받은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어찌 전달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간은 흐르니 어느덧 컴백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다들 이유준에 대한 걱정으로 센치한 모습을 보여서 녹음도 안무도 뮤직비디오 촬영에서도 훌륭한 감정선을 이어 갔었다.

이쯤 되니까 그냥 오해하게 두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모두 아련함을 담았다며 좋은 피드백이 난무했던 일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당사자와 당사자에 대해 잘 아는 멤버 하나를 제외한 나만 중간에 껴서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래도 오늘은 말하자. 이제 진짜 컴백 무대를 며칠 안 남겨 두고 있었다.

늦게 밝히면 늦게 밝힐수록 나만 더 힘들어질 것 같은데.

이유준도 문채민도 유들유들하고 마이페이스적인 구석이 강했던 멤버들이라 타격은 없을 게 분명했다.

뭐라고 한들 한 귀로 듣고 흘려 넘기거나 호탕하게 웃으며 즐거운 얼굴을 보일 게 뻔해서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그때, 연습실 전면 거울 너머로부터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물을 떠서 돌아왔는지 막 연습실의 문을 닫은 이정원이었다.

…표정이 왜 그러지? 연습하던 당시만 해도 생김새에 맞춰 처연한 기색을 뿜어내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 잠깐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내가 잘 아는 다소 기가 세 보이는 얼굴로 변모해 있었다.

탁, 이정원이 문을 닫고 들어와 조용히 들고 있던 물통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고는 척척 걸음을 옮겨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 그래?”

“…….”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이정원이 풀썩, 내 옆에 주저앉았다.

“야, 이정원, 뭐라고 말 좀 ㅎ…….”

“…이유준, 문채민. 너희 이쪽으로 좀 와 봐라.”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연습실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이유준과 문채민을 불러들였다.

“어? 왜?”

“나도?”

거기서 나는 대충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직감했다. …이정원 이 녀석, 전부 알았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정원이 어딘가에서 이유준과 문채민의 비밀 아닌 비밀에 대해 모든 진실을 알아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유준과 문채민이 이정원의 앞으로 다가온 순간, 이정원이 팔을 걸어 내 목을 끌어당겼다.

“신해신, 너, 다 알고 있었지.”

“어, 어?”

“이유준 저 자식, 이번 앨범 컨셉 던진 이유가 진짜 별 뜻 아니라는 거! 문채민, 넌 어딜 도망가!”

이정원의 호통과 동시에 다가오던 이유준이 슬쩍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문채민은… 이정원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신에게 벌어질 일들을 예상했는지 부리나케 연습실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멍청아, 그 소리잖아. 유준이 형이랑 문채민 저 자식한테 우리 다 당한 거야. …가자!”

평소 큰소리를 치는 법이 없던 윤명이 목소리를 높인 뒤 권혜성의 몸을 잡아끌었다.

권혜성은 얼떨떨한 얼굴이었지만 윤명이 잡으러 가자니 일단 따라가는 행색이었다.

“…설마, 형.”

그 옆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강태오가 마시던 물을 내려놨다.

…미안하다. 그러니까 나는 죄가 없는데…….

우리 앞에 서서 싱긋 웃고 있는 당사자, 이유준을 제외하면 모두가 혼란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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