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01화 (300/328)

301화

- 꼬일 대로 꼬인 마음

어루만지는 손가락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확인했어

아, 이렇게 파랗구나

깨달은 사실 하나로 모든 걸 인정해

백업으로 더블링을 깔아 주던 문채민이 이유준과 함께 안무 동선에 합류했다.

철저하게 분담으로 나눠진 파트가 퍼즐 조각처럼 딱딱 맞아 움직이고 있었다.

1절과 달리 2절의 싸비는 문채민과 강태오가 맡은 것 같았다.

문채민의 싱잉 랩에 강태오의 묵직한 보컬이 합쳐지자 1절과는 또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가 됐다.

- 그 Complex를 벗어나

벗어날 수가 없다면

- Complex를 안고

한 바퀴 자리를 돌아

그 노래가 귓가에 맴돌아

사이사이로 이정원이 고음을 치고 올라가는 애드리브를 깔아 화음을 겹쳤다. 이정원의 화음에 또 화음을 넣어 소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것은 신해신이었다.

- 벗어날 수 없다면 안고 돌아

춤을 춰 외롭지 않아 빙글빙글

가사에 맞춰 몸을 돌린 멤버들이 센터에 남은 이유준을 두고 둥글게 허리를 숙였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대가 되어 견뎌 주는 것인 양 하나처럼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대로 이유준이 라스트 피날레인 싱잉을 내뱉었다. 나레이션 같기도 하고, 보컬 같기도 하고. 이번 곡에서 가장 정체성이 도드라지는 파트라고 볼 수 있었다.

- Complex MY complex

Help me Save me

Find me Hold hand

이젠 모두 괜찮아

그렇게 점차 사그라드는 조명 아래에서 몸을 돌린 이유준이 멤버들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 얹었다. 어느덧 하나가 되어 눈을 감은 이유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까맣게 점멸된 조명 사이에서 카메라가 점점 하이사인과 멀어졌다. 그렇게 쏟아지는 환호성을 들으며 나는 틀어막고 있던 입에서 손을 떼어 냈다.

“…미친.”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최애인 신해신의 분량이 많다고는 할 수 없는 곡이었지만, 너무 좋다는 감상이 뒤를 따랐다.

센터였던 이유준을 돋보이게 해 준 것과 동시에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역할을 부여해 준 무대가 마음에 들었다.

옆에 후배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주접을 부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버릇처럼 티위터에 접속하여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려다가 후배의 존재를 떠올리곤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부터 얘가 조용한데? 이상한 기운에 흘낏 눈을 돌리자 나와 같이 핸드폰을 보던 자세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는 후배가 보였다.

얘가 왜 이러지? 눈치를 살피며 후배를 부르니 그제야 후배가 퍼뜩 어깨를 떨었다.

“…현경아?”

“…아!”

후배, 이현경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나를 돌아봤다. 슬며시 벌어져 있던 입하며 넋이 나간 얼굴까지. 저건 내게도 퍽 익숙한 모습이었다.

저건 바로 그거였다. 권소현과 권소현의 자취방에서 유어돌 무대를 보고 난 뒤 나나 권소현이 짓곤 하던, 멤버의 매력에 깊이 빠졌던 그 표정.

거기서 나는 후배 이현경이 하이사인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단 걸 깨달았다.

완벽한 입덕까진 아니더라도 머글이던 경지에서 반쯤은 탈피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애들, 무대 마음에 들었니?”

“어…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예전에 본 아이돌 무대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요.”

이현경은 방금 본 무대를 되짚어 보고 있는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중 최애가 있을 텐데, 후배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서 은근슬쩍 떠보기로 작정한 이후였다.

나부터 까면 얘도 마음을 내려놓겠지? 태연한 얼굴로 신해신의 이름을 꺼냈다.

덕메인 권소현은 윤명이었으니까. 후배가 다른 사람을 잡으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내 최애는 해신이라고, 그 1절 싸비… 라고 하면 알려나? 1절 후렴에서 랩 하던 애랑 같이 노래 부르던 애인데. 아, 너 유어돌 봤다고 했지? 거기서 7위로 데뷔한 애. 현경이 너도 혹시 마음에 드는 친구 있었니?”

“어…….”

…진짜인가 보네? 이현경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한 뉘앙스를 비쳤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되겠어. 본격적인 영업을 위하여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티위터에 접속했다.

내 계정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뒤로 넘겼다. 하이사인의 공식 오피셜 계정에 들어가서 이번 타이틀곡인 ‘Complex’의 개인 티저 포스터를 보여 줬다.

멤버 한 명, 한 명을 차례대로 가리키며 설명하던 중이었다.

이정원은 아니고, 강태오도 패스… 혹시 막내 라인을 좋아하나? 윤명과 권혜성 그리고 문채민까지 잘생겼다는 반응은 나왔지만 이렇다 싶을 만한 호응이 따라오지 않았다.

…설마 해신이야? 반신반의하며 해신이를 보여주려고 스크롤을 내리다가 후배의 입이 다시 벌어지는 걸 확인했다.

“어!”

“…헐.”

아주 잠시였지만 후배 이현경이 스치듯 반응한 곳이 있었다. 이번 타이틀 곡의 센터인 이유준, 바로 이 멤버였다.

유어돌에서 중간 순위로 데뷔하며 기존의 코어 팬이 탄탄한 멤버였다.

하얗고 청순한 얼굴에 걸맞지 않은 저음의 목소리가 은근히 마니아층의 수요를 불러들이곤 했었다.

성실해 보이는 외관으로 유들거리는 구석이 있어서 머글들에게 첫인상으로 누가 가장 마음에 드냐 묻는다면 단연 앞자리에 손꼽히던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이현경을 반응을 보아 이번에도 이유준이 머글 한 명의 마음을 훔쳐 온 것 같았다.

흑발이 잘 어울리는, 현실에선 보기 힘든 남자 친구 st가 강한 이미지였으니, 아이돌 판에 크게 관심이 없던 이현경이 이유준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이해가 됐다.

“유준이가 좋아?”

“어, 좋은 것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무대 보니까 음, 이런 느낌이었나? 싶어서요. 잘생기긴 다들 참 잘생겼네요.”

후배야, 영혼이 없다. 이현경은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다른 멤버들의 이미지를 가리키며 얼렁뚱땅 넘기려 들었다.

안 그러는 척 이유준의 개인 이미지를 자꾸 넘겼다가 오는 게 보이는데 말이다.

거기서 나는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권소현, 보고 있냐? 학교에서 함께할 덕질 메이트가 생길 거라는 것이었다.

이 가설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이현경에겐 넌지시 제안을 던져 봤다.

“애들, 이제 활동 들어가서 오프 많아질 텐데. 가 볼래? 언니가 데려가 줄게.”

“…진짜요?”

“물론, 네가 관심만 있다면.”

넘어와라, 넘어와라. 간절히 기도했던 탓일까, 이현경이 고민하는 뉘앙스를 보이다가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이 판에 아예 발을 담그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있어도, 한번 담근 발을 빼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나였다.

후배는 내 학교 덕메가 될 예정이었다. 음방을 보기 전에는 반신반의했던 일이었는데. 뜻대로 되는 것 같아서 놀라울 뿐이었다.

* * *

‘Complex’란 곡으로 이유준을 센터에 세워 컴백한 지가 벌써 일주일째였다. 오늘 중 나온다는 초동 결과를 기다리며 음악 방송의 엔딩 녹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야, 윤명. 우리 1위 후보라던데, 들었어?”

“…아침에 다 같이 들었잖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바보야.”

“저 형들 또 싸우네. 그나저나 이번엔 선배님들도 많이 계셔서 가능할까?”

“우리는 무대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야.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평소 같았다면 나도 저기 껴서 긴장을 풀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유달리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형, 왜 그래? 오늘 좀 이상하다? 무대에서 무슨 실수라도 했어?”

강태오의 물음에는 뭐라 답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고개만 내저었다.

넌 편해서 좋겠다. 내가 이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존재했다. 그건 바로…….

“이유준 쟤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오늘 좀 묘한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이유준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스탯이 안 올라간 거지?

컴백 무대를 펼치면 곧바로 올라갈 줄 알았던 이유준의 스탯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었나? 그건 아닌 것 같았는데. 그럼 혹시 실수라도 했나? 그랬다면 인터넷에서 욕을 뒤집어썼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난처한 상황이었다.

컴백 무대를 활용하라던 시스템의 설명에 맞춰 움직여 왔던 것이 다였기에 지금 이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놈의 시스템, 어려워 죽겠네, 진짜. 시간이 들었을지언정 시킨 대로 했더니 무사히 업그레이드가 된 이정원이나 권혜성이 떠올라 속이 두 배로 더 쓰렸다.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다는 판단하에 일단은 눈앞에 떠올라 있는 시스템 창부터 살폈다.

사실 내게는 오늘 이 무대에도 중요한 것이 하나 더 걸려 있었다.

[이벤트 발생]

‘인정은 강렬하게’

더블 밀리언 셀러를 달성하세요.

실패 시: 잔고 ‘0’원 + 파산

인정은 강렬하게, 더블 밀리언 셀러를 달성하라는 이벤트였다.

이미 한번 겪어 본바, 이번 기회에 실패한다고 해서 바로 페널티를 받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컴백 한 번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 또 우리가 무기한 그룹이 아닌 끝이 있는 프로젝트성 그룹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단기간에 성공하는 것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 이유준의 스탯까지 말썽이니 머리가 아팠다. 아, 모르겠다.

컴백한 지 딱 일주일 차였으니까, 초동 결과도, 이유준의 스탯 업그레이드에 대한 성공 유무도 오늘 모두 알게 되겠다며 반쯤 내려놨다.

마지막 순서에 가까운 그룹이 무대 위로 나타난 걸 보며 슬슬 움직여야 할 타이밍이란 걸 알았다.

문이 열리고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에게서 결과 발표에 대해 스탠바이 해 달라는 명이 떨어졌다.

제로-원-나인, 진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허공을 향해 몇 번이고 질문을 던졌으나 묵묵부답인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다며 그대로 몸을 일으켜 멤버들과 함께 방송국 복도를 거닐었다.

가장 앞에서 걷고 있는 것은 권혜성과 문채민 그리고 윤명이었다.

그 셋이 영 불안했는지 강태오 바로 뒤에서 녀석들을 살피고 있었다.

태연한 얼굴의 이정원은 옆에서 합류하는 그룹들과 인사를 하며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원래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나 녀석이 잘해 줘서 뒤로 빠져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슬며시 걸음을 늦춰 몸을 물리니 가장 뒤에서 우리를 쫓아오고 있던 녀석과 동일 선상에 서게 됐다.

“어?”

그건 바로 아까부터 말이 없던 이유준이었다.

“어는 무슨 어냐.”

너, 도대체 뭐가 문제야? 왜 스탯이 안 올라가는 거냐고. 녀석의 어깨에 팔을 건 뒤 무게를 실어 몸을 누르자 이유준이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서 불만스레 쳐 버린 장난이었다.

“뭐 심란한 일이라도 있어? 왜 이렇게 죽상이야.”

“그런 거 전혀 없는데. 그냥 좀 긴장돼서 그랬어. 다른 멤버들이 센터였던 곡은 늘 1위를 받았었잖아. 근데 이번에 못 받으면 내 책임이려나, 싶어서.”

아, 그거였냐. 이유준의 말에 조용히 헛웃음을 내뱉었다.

1위 하면 잘된 거고 못 하면 다음에 하면 되는 거지. 이상한 구석에서 땅굴을 팔 줄 아는 멤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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