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아직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지? 어두운 백스테이지 너머, 댄스곡으로 무대에 서 있는 선배 그룹을 확인했다.
MC들이 투입되기 전인 걸 보아 몇 분가량은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스탯 업그레이드가 중요한가, 멤버 멘탈 상태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지. 그 일념 하나로 이유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인파로 북적이던 곳이라서 조금 구석에 서 있는 것 정도는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
“쉿.”
그대로 내게 잡혀 멤버들에게서 뽑혀 나온 이유준이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암막 커튼 바로 옆 기계 장비로 우거진 공간에 들어서서야 스태프와 아이돌 무리의 시야를 벗어날 수 있었다.
어둠에 흐릿한 시야 너머로 이유준은 어리둥절하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거 다 너 때문이거든? 백스테이지로 오던 길, 복도에서 자신이 한 말은 그새 까먹기라도 한 건지. 여러모로 태평한 구석이 있는 멤버 녀석에 한숨지었다.
자신을 왜 이리로 불렀냐는 이유준의 물음엔 주먹으로 가볍게 어깨를 때리며 반문했다.
“형, 여긴 왜…….”
“시간 별로 없어서 길게는 말 못 한다? 땅굴 좀 파지 마, 멍청아.”
“어?”
“다른 멤버들이 센터였던 곡이 1위를 했던 거? 그것도 대단하고 좋은 일이지. 가수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고 또 감사할 일이니까. 하지만 1위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건 아니야. 그 1위를 받는 것에 센터가 모든 역할을 다했던 것도 아니고. 팀이 있어서, 또 우리를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이 있어서 받을 수 있었던 건데. 게다가 너, 잊고 있는 거 아니지? 네가 그 많은 경쟁자가 있던 유어돌에서 데뷔한 놈이란 거. 그것도 최종 7인 중에 무려 4위였다고, 4위, 그게 얼마나 대단한 숫자인 줄 알아? 네 능력과 매력이 그만큼 뛰어났단 뜻이잖아.”
급한 마음에 생각해 둔 말을 길게 내뱉었다. 이유준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해 주고 싶었던 말을 다 꺼내는 게 더 중요했다.
놀랐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걸 보아, 못 알아먹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말이다.
나는 모르겠다, 이미 최선을 다했기에 나머진 알아서 하라며 말끝을 흐렸다.
“푸핫!”
그때, 이유준에게서 영문 모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민망함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들리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려 이유준을 쳐다봤다.
뭐가 그리 웃긴지 이유준은 제 배를 부여잡고 허리를 숙여 가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방송 중이란 사실만큼은 기가 막히게 떠올렸는지 끅끅거리며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다.
…얘가 부담감에 짓눌려서 어디 정신이라도 나갔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한 걸음 다가가 녀석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곤 괜찮냐며 물어보려는데 벌떡 허리를 일으킨 이유준이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참고로 슬퍼서 흘린 눈물은 아닌 것 같았다. 웃다가 생리 현상처럼 고여 버린 눈물이었다.
“해신이 형, 나는 가왕 페어 편에서 랩을 잘한다 싶었더니. 형, 빨리 말하는 것에 재능이라도 있는 것 같아.”
“…넌 지금 그게 할 말이냐?”
그래, 이래야 이유준답지. 당장 나누고 있던 주제와는 전혀 다른, 어딘가 생뚱맞은 이야기였다.
나를 놀리는 게 분명해서 무표정으로 대꾸하니 깊이 숨을 내쉰 이유준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곤 이내 속이 시원해진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복도에서 봤던 조금은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과는 전혀 상반된 분위기였다.
한껏 또렷해진 눈빛에 이유준이 마음을 제대로 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도 멘탈이 그렇게까지 강한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금방 돌아오리란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을 따로 불러 잔소리 겸 응원의 말을 남겨 주려던 거였다.
그런데 그게 너무 잘 통하니 도리어 내 쪽에서 얼떨떨해졌다.
이유준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 상태에서 그대로 팔을 뻗어 내 어깨를 꽉 눌렀다.
아, 슬쩍 밀려오는 아픔에 뭐 하냐며 이유준을 째려보자 슬며시 미소를 지은 이유준이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 맞아, 나 유어돌 4위였지.”
“지금 7위 놀려?”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참 신기해.”
“…뭐가.”
“형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본 건데 유어돌이 한 2화만 더 방송했어도, 형 순위가 바뀌지 않았을까?”
지금 날 놀리는 거야, 뭐야. 이유준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하니까 자국이 남지 않도록 힘을 빼서 살살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엄살 대마왕 이유준은 오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프다는 듯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야…….”
“징그럽다. 이제 그 수법은 안 통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까 더는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멀리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순서였던 선배 그룹의 무대가 종료되어 엔딩 녹화에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늦었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따라오라는 느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등 뒤에서 들린 말에 발이 멈췄다.
“진심이야. 형, 분명 1위 할 수 있었을 거야. 아, 참고로 이건 명이한텐 비밀?”
“…얘가 이상한 소리를 하네.”
이유준의 얘기에는 애써 무뚝뚝한 태도로 대응했다.
낯간지럽게끔 뭐 하는 짓이람. 그룹 생활을 하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지만, 이런 일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작은 목소리로 이유준에게 대꾸했다.
“윤명한텐 잘 전해 주마. 이유준이 유어돌 1위로 네가 아닌 날 꼽았다고.”
“어? 그럼 큰일인데. 명이 묘하게 뒤끝 긴 거 알면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칭얼거리면서도 묘하게 웃음기 담긴 대화를 들으며 다시 걸었다.
어느덧 내 뒤까지 바짝 쫓아 붙은 이유준이 느껴졌다. 애도 아니고 뭐냐.
이유준의 손끝에는 조심스럽게 부여잡은 내 옷깃이 쥐어져 있었다.
* * *
“이번 주 1위는……! 축하드립니다, 하이사인~!”
펑! 꽃가루가 휘날리며 대형 스크린 위로 우리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안겨 주는 MC 둘에겐 감사 인사를 남긴 채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뭐랬어, 이 멍청아. 1위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한 건 떨어져 서 있던 이유준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결과가 발표된 이후부터 이유준은 줄곧 넋을 놓고 있었다.
경쟁자 선상에 서 있던 선배 그룹과 후배 그룹에겐 나중에 보자는 얘기를 들으며 앵콜 무대 준비에 들어갔다.
“하이눈~ 고마워요!”
“사랑해요!”
팔을 휘적거리며 팬덤에게 인사를 남기는 권혜성과 문채민도 확인한 이후였다.
MR이 나오기 전 빠르게 객석으로 허리를 숙이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고마워요, 오늘도. 말로는 제대로 전하지도 못할 깊은 감사였다.
팬들의 환호성 속에서 번쩍거리는 조명이 느껴지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전에 품에 안고 있던 꽃다발을 다시 쥐었다.
이유준에게 다가가 이걸 건네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몸을 틀고 있던 이정원 그리고 강태오와 눈이 마주쳐 서로를 마주 보게 됐다.
…이 녀석들. 이제 보니까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간에, 솔직하지는 못해서들. 피식 웃으며 이정원과 강태오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꺄아악!”
귀가 터질 것 같은 함성이 마냥 기분 좋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뭐야, 왜 그래?”
“…형, 나 안무 춰야 하는데.”
“다들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자, 이정원, 강태오. 이건 너희가 줘라.”
핸드 마이크에서 입을 뗀 이정원과 강태오가 의아하단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런 두 녀석들에게 MC로부터 받았던 꽃다발과 트로피를 건네줬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중인 이유준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
“가 봐.”
저쪽으로 가라며 등을 떠밀자 이정원과 강태오가 뻘쭘하단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고 저를 바라보고 있는 이정원과 강태오를 이유준이 먼저 발견했다.
그대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이정원이 이유준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 뒤는 미간을 찡그린 강태오가 이유준에게 1위 트로피를 건네줬다.
마이크를 떼고 있어서 말은 들리지 않았으나 대충 입 모양으로 대화가 유추됐다.
‘야, 네 몫이야.’
‘강태오, 역시 츤데레구나.’
‘츤… 뭐?’
‘아니, 고맙다고. 하이눈~! 잘생긴 태오 얼굴 좀 볼래요?’
‘…야, 넌……. 아니, 됐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참 사이가 좋은 동갑내기 둘이었다.
어느새 발을 물린 이정원은 내 옆으로 다가서 앵콜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대로 이번 타이틀곡 ‘Complex’의 MR이 흘러나왔다.
이유준이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 ‘이유준’의 랩 스탯 업데이트에 성공하셨습니다.]
[랩 스탯: A- → A]
[이유준]
나이: 21
외모: A-
보컬: C / 랩 A
댄스: B-
운: C
끼: B-
[히든 스탯 깜짝 미션]
멤버들의 스탯을 업데이트해 주세요.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종료 기한 – 7인 모두 달성 시
보상 – 랜덤 지급
[멤버]
이정원 – 보컬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S]
이유준 – 랩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강태오 - ??
권혜성 – 끼 스탯 업데이트 완료 [A- → A]
윤명 - ??
문채민 -??
이유준이 랩 스탯을 올리는 것에 성공했다.
컴백 무대를 활용하라고 한 후, 올라가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아무래도 이유준의 불안해하는 마인드가 방해 요소로 적용되었던 모양이다.
센터로 서선 영 자신감을 갖지 못하니 그게 시스템에겐 거슬렸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무사히 올라간 스탯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니까. 이유준을 향해선 슬쩍 미소를 지은 이후였다.
그러다가 내 순서까지 돌아온 파트를 눈치챘다. 이벤트와 달리 이쪽 미션은 시간을 멈춰 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허둥지둥 동선에 섞여 가며 이유준의 파트 밑으로 화음을 깔았다.
목소리는 완벽하게 내면서도 다소 급해 보이는 동작이 티가 났는지 멤버들이 나를 돌아보며 낄낄거렸다.
- 그 Complex를 벗어나
벗어날 수가 없다면
- Complex를 안고
한바퀴 자리를 돌아
그 노래가 귓가에 맴돌아
“고마워요, 하이눈!”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노래 중간중간 애드리브를 섞어 넣으며 앵콜 무대를 선보이길 한참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이유준이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속을 좀 썩이긴 했지만 그래도 멤버라고 장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며 웃고 있던 이유준의 얼굴이 정지했다.
초동, 성공했나 보군. 이건 이번에 내가 두 번째 목표로 삼고 있던 이벤트의 성공 알림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더블 밀리언 셀러를 달성하라는 목표를 이뤄 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