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04화 (303/328)

304화

……이게 뭐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지금 놀라고 있었다.

옆을 보고 있는 제로-원-나인으로 추정되는 실루엣과 그 맞은편에 서서 당황했다는 얼굴로 제로-원-나인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

지금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저건 바로 나, 신해신이었다.

깨달음과 동시에 반투명하던 몸에서부터 빛이 일렁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너 설마. 제로-원-나인은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는지 맞은편에 서 있던 신해신에게서 눈을 돌려 나를 힐끔 쳐다봤다.

지금보단 좀 더 큰 키와 20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는 성숙한 외관. 아무래도 저기 있는 신해신은 나보다 나이가 있는 신해신이었던 것 같았다.

아니 말이 좀 이상한데? 직관적으로 얘기하자면 아이돌로 데뷔한 내가 아닌 과거 스태프 시절의 나를 말하는 거였다.

26살보다 더 먹었나? 유어돌 스태프로 있던 당시보다 월등히 짧아진 머리가 낯설었다.

군대를 다녀왔을 때가 아니라면 저런 머리를 한 적이 없었는데. 저건 26살 이후의 미래라고 보는 게 정답이었다.

스태프 신해신은 내가 보이지 않는지 연신 당황했다는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긴, 나 귀신 같은 건 안 믿었지. 제로-원-나인과 조우하기 전까지는 심령 현상도 믿지 않았다.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어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는 저 행동이 이해가 갔다.

제로-원-나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고 있는 내게서 시선을 떼어 스태프 신해신을 바라봤다.

그 녀석 정체를 알 것 같아서 달려왔더니. 보여 주는 게 너무도 원초적인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번 얘기해 봐. 이게 제로-원-나인 식의 설명임을 알아 멈춰 있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둘의 얼굴이 아주 잘 보이는 곳까지 다가가 팔짱을 꼈다.

미간을 찡그린 스태프 신해신이 제로-원-나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개꿈인가…….’

‘적나라하네~’

‘…네?’

스태프들 사이에서 거친 말을 배웠는지 털털하게 머리를 턴 스태프 신해신이 제로-원-나인을 바라봤다.

‘일단 어디서부터 설명해 줘야 하나.’

제로-원-나인은 태연한 얼굴로 손가락을 튕기고 있었다. 펑, 스태프 신해신의 머리 위로 내게는 다소 익숙한 창이 하나 나타났다.

[Bug] 잘못된 시작(악성)

그래, 모든 건 여기서부터겠지. 스태프 신해신에겐 낯설 존재, 악성 버그였다.

빨간빛으로 위험하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글자에 스태프 신해신이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제 뺨을 꼬집어 보고 나서야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란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 아픈데.’

‘당연히 아프지. 꿈 아니라니까?’

‘그럼 그쪽은 누구신데요. …혹시 저 죽었어요?’

스태프 신해신이 농담 삼아서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어떻게 농담인 줄 알았냐 하면 나 자신이라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마음에 회피한 거군. 넋이 나간 얼굴을 보다가 제로-원-나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녀석에게서는 다소 충격적인 답변이 들렸다.

‘어, 너 죽었어.’

‘네?!’

…이런 말은 해 준 적이 없잖아, 너!

놀란 건 스태프 신해신이 아닌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죽었다고? 저 젊은 나이에?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외관인데 허탈함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스태프 신해신은 황급히 자신의 차림새를 확인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을 뻗어 더듬거리더니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제로-원-나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저, 지옥 가나요?’

‘푸핫! 이렇게 한 방에 인정하는 거야? 죽었다는 사실을?’

‘…그다지 운이 좋았던 인생은 아니었으니까요.’

다소 씁쓸한 말이네. 그런 스태프 신해신을 보며 제로-원-나인이 자세를 눞혀 측면으로 몸을 틀었다.

‘농담도 못 하겠어~ 저기나, 여기나 둘 다 진지해서 원.’

‘…네?’

‘농담이라고. 너 안 죽었어. 네가 왜 죽어. 이제부터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저 자식……. 아무래도 죽었다는 건 제로-원-나인 식의 우스갯소리였었나 보다.

긴장을 풀게 해 주려는 건 알겠는데 말이야.

화가 날 새도 없이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제로-원-나인에 스태프 신해신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건 녀석을 잘 알고 있던 나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제로-원-나인은 이 틈을 타 스태프 신해신에게 여태까지에 대한 설명을 해 줬다.

내 인생에서 잘못된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 버그인지 뭔지 하는 글자 몇 개 때문에 제 인생이 뒤틀렸단 소리죠?’

‘어. 이건 나도 면목이 없다고 생각해. 시스템 관리자로서 부끄럽다.’

부끄러우면 그 자세라도 어떻게 하든가. 제로원 나인이 주저 앉아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나는 정말 사람, 아니 상대의 말을 잘 들었구나. 인생에 가진 게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쉽게 수긍하는 모습을 보며 입맛이 쓰다고 느꼈다.

스태프 신해신은 제로-원-나인의 설명에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궁금한 게 있었다는 듯이 제로-원-나인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저는 왜… 죽은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래, 아무래도 그게 제일 중요한 거겠지.

기억 키워드를 통해 들어온 나도 이런 장면을 볼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 녀석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우선은 스태프 신해신이 던지는 저 질문부터 파악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제로-원-나인은 스태프 신해신의 질문에 민망하다는 듯이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대뜸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 아니, 이건 내게 주어진 기회지. 업무 중에 발생한 사고를 바로 고칠 수 있는 기회거든.’

‘기회?’

‘응. 신해신, 너. 인생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있어?’

제로-원-나인의 제안에 스태프 신해신이 두 눈을 끔뻑거렸다.

누군들 저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하지 않을까. 나야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지만.

저기 저 스태프 신해신에겐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다시 산다니요?’

‘내가 말했잖아. 그 버그, 적어도 네가 스태프로서의 인생을 산다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을 거야. 뒤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겠지만, 잘못된 시작이라는 악명답게 계속 꼬인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고. 나는 지금 그걸 풀 방법을 제시하는 거야. 확실하진 않아. 그래도 지금보단 훨씬 행복한 인생이라고 장담할게.’

제로-원-나인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스태프 신해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스템 관리자인지 뭔지 이제 보니까 도를 믿습니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네.

하지만 스태프 신해신에겐 이게 구원의 손길처럼 보이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제로-원-나인이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들어 올려 진지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거, 가능한 거예요?’

‘물론.’

…이런 식이었구나. 내가 회귀를 하게 된 시작이.

거기서 나는 말로만 들었던 모든 일의 시초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행복, 그 짧은 단어 하나에 스태프 신해신이 제로-원-나인에게 손을 뻗은 것이었다.

스태프 신해신과 제로-원-나인의 손이 맞닿는 순간 번쩍하는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스태프 신해신의 머리 위에는…….

[Bug] 주어져선 안 될 행운(특수)

[Bug] 잘못된 시작(악성)

‘주어져선 안 될 행운’ 제로-원-나인이 입이 닳도록 설명했던 특수 버그가 생성되어 있었다.

그걸로 모자랐는지 제로-원-나인은 스태프 신해신과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가볍게 얘기를 해서 그러는데 실상은 무엇하나 간단한 내용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신해신 너는 회귀를 할 거야. 우리가 돌릴 수 있는 한계, 22살의 너로. 거기선 지금 여기 있던 일도 모두 기억하지 못하겠지. 이 파편들을 되찾는 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되찾아요?’

‘응, 되찾아. 그건 장담할게.’

그 순간 제로-원-나인이 나를 바라봤다.

능글맞은 녀석 같으니. 스태프 신해신의 얌전한 모습에 제로-원-나인은 개구지게 웃을 뿐이었다.

‘아차, 이대로 가는 건 안 되는데? 이름을 정해야지.’

‘이름이요?’

‘응, 널 도와 줄 능력의 이름. 개발하느라 바빠서 이쪽을 신경 못 썼거든.’

제로-원-나인이 말하는 그 능력이란 것은 스타 코인과 시스템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 하면… 뒤에 보인 제로-원-나인의 행동 때문이었다.

제로-원-나인은 머쓱하단 얼굴로 입고 있던 로브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휙휙 던져지는 물품들이 제로-원-나인과 신해신 주변을 둥둥 떠다녔다.

그때 제로-원-나인이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음, 저거 좋네.’

‘동전… 인가요?’

‘응, 이 세계에도 화폐는 가치가 있거든.’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금속, 동전이었다.

제로-원-나인은 의아해하는 스태프 신해신을 보며 동전을 움켜쥐었다. 위아래로 던졌다가 받기를 반복하며 눈을 빛냈다.

‘넌, 부족한 사랑을 되돌려받아야 하니까. …스타, 그래. 스타가 좋겠다.’

‘네?’

‘스타를 도와주기 위한, 아이템. 스타 코인. 응, 스타 코인이야. 모든 시스템은 그 코인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해 줄게.’

‘네? 도대체 무슨 소리인…….’

그 이름이 이런 식으로 지어진 거였어?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의 스태프 신해신을 보다가 제로-원-나인의 기행에 기가 막혀 헛웃음을 내뱉었다.

너, 저번엔 내 앞에서 살살 기더니. 이제 보니까 원래는 좀 더 능글맞은 성격이었나 보다.

제로-원-나인은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신해신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나랑 같이 하자!’

‘…아까부터 소리를.’

‘고생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너 자신도 아깝잖아! 그러니까 신해신, 너, 나랑 같이 관리자 하자!’

‘……?’

제로-원-나인이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스태프 신해신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정확히는 스태프 신해신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진 거였다.

나와 같이 반투명한 상태로 영혼이 분리된 신해신이 바닥에 쓰러진 제 몸을 보며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이게, 이게 뭐예요!’

‘하하! 뭐긴 뭐야. 분리된 너지. 빈껍데기만 뺀 건 아니야. 네 영혼을 둘로 쪼갰어.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건 버그로 이미 인생을 한 번 살아 버린 너고. 저기 바닥에 쓰러져서 의식을 잃은 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너의 전신. …즉 회귀할 영혼이야.’

제로-원-나인, 은인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원수라고 하기도 뭐한 시스템 관리자의 행동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순진한 얼굴로 당황한 채 바닥에 쓰러진 자신과 제로-원-나인을 바라보기 바쁜 스태프 신해신의 안위가 궁금해질 정도였다.

저런 놈과 같이 일하니까 성격이 그 모양이 되지. 이제야 모두 맞아떨어진 퍼즐 조각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제로-원-나인, 너 도대체 나를 얼마나 괴롭힌 거야. 같이 일하자고 제안해 놓고 사람을 그렇게까지 바꿔 놔?’

그 녀석의 정체. 그건 바로 스태프 시절의 나, 신해신이었다.

무심한 구석은 있어도 나름 마음이 약했는데. 저번 제로-원-나인과의 만남에서 더 이상의 접근은 안 된다며 소리를 친 또 다른 나를 떠올렸다.

회사 동료를 잘못 만나서 성격을 버린 일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 계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