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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10화 (309/328)

310화

활동기가 끝났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열기에 휩싸인 연습실 안이었다.

우리는 곧 있을 M 본부 연기 대상의 축하 무대를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돌입해 있었다.

순탄하게 연습만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지금 심란한 심경을 감출 길이 없었다.

시스템을 사용하며 허공에 나타난 장면을 멤버들에게 들통났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여도 충분히 버거운 느낌인데,

“…나 물 좀 떠올게.”

“야, 윤명! 가, 같이 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본인 몫의 물통을 주워 들고 물을 떠오겠다며 연습실 바깥으로 나서는 윤명이 보였다.

그런 윤명의 뒤로는 멤버들과 이미 나간 윤명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황급히 윤명을 따라가는 권혜성이 있었다.

“채민아, 목 안 말라? 카페에서 음료수 좀 사 줄까?”

“아니, 괜찮아.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윤명과 권혜성을 보던 이유준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문채민의 안색을 살폈다.

태연한 게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만 거절의 뉘앙스를 뽐내는 문채민이 낯설게 느껴지는 듯했다.

“하.”

윤명과 문채민, 싸운 거지. 멤버 둘의 분위기가 냉랭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견 불일치로 어색한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직접 목격하진 못했다.

내가 서도경과의 면담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른 녀석들을 통해 정보라도 습득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나 역시도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저 녀석들은 한 놈씩만 어색한 거지. 나는 전 멤버와 쉽게 말을 터놓을 만한 환경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눈치껏 살피며 귀를 기울인 결과, 내가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의 개요를 알게 됐다.

윤명과 문채민이 나를 두고 대화하던 이정원과 강태오의 의견에 힘을 보태 주다가 엇갈린 결론을 두고 감정이 상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내 탓인가.

내가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이정원과 강태오가 내 비밀에 대해 논의를 진행한 모양이다.

시간을 길게 주면 도망가 버릇한다며 초장에 진실을 털어놓게 해야 한다는 이정원의 편에 이유준을 비롯한 윤명이 같은 의견이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 반대편에 선 강태오는 이미 시간을 주기로 한 것에 모두 동의하지 않았었냐며 스스로 입을 열기를 기다려 주자고 말했다고 했다.

여기서 강태오의 편을 들어 준 것이 문채민과 권혜성이었던 듯하다.

숙소로 돌아오고 있는 나에 대한 처분이 갈라지며 묘한 대치가 계속해서 이어진 것 같은데.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워낙에 개성이 넘치는 녀석들이다 보니까 종합인 정리가 쉽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가 강태오와 이정원을 대신하여 한마디씩 꺼낸 윤명과 문채민이 말싸움을 하게 됐다.

‘…원래는 나도 조금 더 두고 보자 파였긴 했는데. …해신이 형은 안 그러는 척 저돌적인 구석이 있어. 알잖아, 근래 위험한 노선을 타던 것…. 해신이 형을 위해선 급하더라도 물어보는 게 낫지 않아?’

‘음, 이번엔 명이 형이랑 나랑 의견이 갈리네. 형 말도 일리는 있는데, 나는 반대야. 해신이 형, 안 그러는 척 겁 많은 거 알면서. 대표님한테 불려간 것도 실장님은 개인 면담이라고 했지만, 그룹 일일 가능성도 크잖아. 우리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는 형을 걱정된다는 이유 하나로 몰아붙이기는 그렇지 않나.’

‘…채민아,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형을 괴롭히는 것 같잖아.’

‘…명이 형, 형은 우리가 해신이 형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얘기했잖아.’

아, 얘기가 왜 그렇게 이어졌는지. 나로서는 미안하고 머리가 아팠다.

그나마 한 놈이 입을 열어 줘서 알게 된 망정이지.

윤명의 뒤를 쫓아 나간 권혜성을 떠올렸다.

권혜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내가 안쓰러웠던 것 같았다.

며칠 전 조용히 나를 윤명이 나가 빈 제 방으로 불러들이더니 나만 모르고 있던 나에 관련된 대화들에 대해 말해 줬다.

‘명이도, 채민이도 형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마디씩 얘기했는데. 위험한 일이 많았으니까 그걸로 둘 다 조금 예민해져 있었던 것 같아. 아, 그렇다고 해서 형 잘못이 있다는 건 아니고. …형도 머리가 복잡할 텐데 혼자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건 너무 힘들잖아.’

‘…고맙다, 혜성아.’

아무튼 그게 연습 내내 이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윤명과 문채민은 단절된 대화처럼 서로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던 멤버들이었기에 연습에는 큰 지장이 주지 않았으나, 개인적으로 대면을 할 일이 생기면 무섭도록 분위기가 얼어붙은 것이었다.

적극적인 놈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먼저 말을 붙여서 화해했을 텐데.

윤명은 눈치와 촉이 빠른 것에 비해 자기 세상이 강하고 입을 열지 않는 면모가 있었다.

거기에 반대인 문채민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구석은 있었지만, 겁을 먹으면 움츠러드는 버릇이 존재했다.

그래서 둘 다 서로에게 사과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회피하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었다.

타이밍이 안 맞았는지 한쪽이 반대편을 신경 쓸 때면 반대편이 그 기색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반복됐다.

그걸 불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멤버들 중 누구라도 저기에 껴서 일을 해결해 주기를 바랐지만, 모두 옥상에서 봤던 일에 정신이 빠져 있었는지 윤명과 문채민의 사이에는 깊게 관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죄인이야. MXP와의 결전을 앞두고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는 멤버들의 묘한 냉전이 걱정스러웠다.

안 그래도 모두 밝힐 생각이긴 했는데. 숙소에 돌아가면 바로 입을 열려고 했으나, 윤명과 문채민의 사태를 접하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호시탐탐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와중이었다.

하필이면 하고 많은 타이밍 중에 지금이냐. 얼마 전 새로 떠오른 시스템 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명]

나이: 20

외모: A

보컬: A-

댄스: B

운: A+

끼: C+

*업데이트 확률 상위 스탯*

끼: 91% (축하 무대를 활용해 보세요.)

댄스: 63% (연말 무대를 활용해 보세요.)

[문채민]

나이: 19

외모: A-

보컬: B+ / 랩 A+

댄스: B+

운: A-

끼: B+

*업데이트 확률 상위 스탯*

보컬: 63% (연말 무대를 활용해 보세요.)

랩: 89% (축하 무대를 활용해 보세요.)

윤명과 문채민의 스탯 업데이트 가이드가 나타났다.

타이밍도 타이밍인데 골라 나온 애들의 상태가 영 아니었다.

게다가 나란히 축하 무대?

둘 다 확률이 높은 것을 골라야 하는데, 선택지가 축하 무대로 좁혀져선 둘의 관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굳이 이게 아니더라도 그 차분하던 윤명과 그 여리던 문채민이 어색한 사이가 됐다는 게 슬펐다. 간접적이긴 하나 시작점이 나였다는 것도 마음이 쓰이는 바였다.

곡을 선택하고 안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축하 무대에 맞춰서 댄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는 어떻게든 둘과 관련된 이야기로 의견을 주도했다.

워낙 실력이 좋은 녀석들이라 어색한 사이에서도 뛰어난 합을 보여 줬지만…….

“뭔가, 그림이 안 사는데.”

“정원이 형 말에는 나도 공감해. 뭔가 중심이 덜 잡힌 것 같지.”

얼핏 들려오는 이정원과 강태오의 대화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구석에 박혀서 눈을 가린 채 누워 있던 문채민과 그 곁에 있는 이유준에겐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다.

연습실 뒤쪽 벤치에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내겐 전부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와, 진짜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실력을 떠나서 팀워크가 무너지게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분위기를 봐서 모든 걸 밝히려던 플랜을 지우고 윤명과 문채민부터 불러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 *

“…해신이 형? 어디 있어?”

“여기.”

늦은 오후, 1차 연습이 종료되고 중간 휴식 시간을 가진 참이었다.

다른 팀에 볼일이 있다는 멤버들을 살핀 후 몰래 자리를 빠져나왔다.

사용 예정이 없는 미팅 룸을 발견하곤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윤명을 미팅 룸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윤명은 미팅 룸에 들어와 홀로 서 있는 내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기울였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방안이 어색하단 얼굴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런 윤명을 확인하자마자 문을 닫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의아하단 기색이 강하긴 했으나 얌전히 내 말을 따른 윤명이 문을 닫고 미팅 룸 안쪽으로 걸어들어왔다.

“명아, 너랑 얘기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어?”

윤명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평소에도 늘 저런 얼굴이기는 했으나, 윤명을 오래 본 나로서는 지금 윤명이 조금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밝히고 싶지는 않았는데……. 윤명이 바로 앞에 도착한 이후였다.

“윤명, 나이 20세, 외모 A, 보컬 A-, 댄스 B…….”

“…형, 지금 뭐 하는 거야?”

윤명을 앞에 두고 윤명의 스탯 정보가 담긴 창을 읊조렸다.

윤명은 내가 하는 말에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무슨 이야기인지 캐물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렇지, 일반인이 보기엔 이건 단순히 개인 능력에 대한 평가처럼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진실인데. 이제부터 그걸 믿게 만들어야만 했다.

“옥상에서 날 봤을 때.”

“…….”

“모두가 내게 설명해 달라고 말했지?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꿈은 아니라고.”

“…형.”

“…나 때문에 너랑 채민이가 어색한 사이로 지내는 건 싫어. 너희 둘에겐 내가 폐를 끼쳤다. 그래서 먼저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 믿어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게 무슨.”

그때였다. 윤명의 등 뒤에서 끼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두침침하던 미팅 룸 안으로 한 줄기의 빛이 들어오고. 그 사이에서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의 문채민과 눈이 마주쳤다.

사실 나는 윤명만 불러낸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윤명을 ‘먼저’ 불러냈다.

윤명이 나와 한참 이야기를 나눌 시점에 문채민이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세팅해 놓은 것이었는데.

정확히 시간에 맞춰 도착한 문채민이 나와 윤명을 번갈아 쳐다봤다.

“채민아, 뭐 하냐.”

안 들어오고. 문채민은 내 말에 홀린 것처럼 문을 닫고 미팅 룸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무슨 상황인지, 또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것 같았으나 윤명과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질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포커스는 내 쪽이었으니까. 그걸 받아들였는지 문채민도 그쪽으론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윤명은 자신의 옆자리에 나란히 서서 나를 보고 있는 문채민을 쳐다봤다.

연습실에서 틈만 나면 자리를 피하려던 얼굴과 달리 제법 담담한 기색이었다.

그럼 마저 얘기해 볼까. 나머지 멤버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었다.

여기가 정리되면 너희에게도 말해 줄게.

나는 오늘 문채민과 윤명에게 시스템에 관련된 이야기를 모두 해 줄 생각이었다.

허상과 망상 공상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세하고 기나긴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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