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11화 (310/328)

311화

“어, 일단 어디서부터 얘기해 줘야 할까.”

내 말에 문채민과 윤명이 서로를 돌아봤다.

창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희끄무레한 빛을 제외하곤 어두컴컴한 미팅룸 안, 그렇게 나는 거기서 윤명과 문채민에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너희, 회귀라는 거 알아?”

“…회귀?”

“사전적인 용어로는 아는데.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겪었던 시간에 반해 이야기하기에는 짧은 감이 있어 다소 허망하기까지 한 스토리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원래는 26살을 먹은 스태프였다는 것과, 로또에 당첨되어 퇴사를 하고 난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22살이 되어 있었다는 걸 설명했다.

대뜸 멤버들을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꿈이라도 꿨냐며 모두 나를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옥상에서 마주한 진실이 있었기 때문인지 둘 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거기서 이야기는 길바닥에서 마주한 시스템으로까지 진행됐다.

지금도 내 눈앞에는 이렇게 생생한데. 녀석들에게 보여 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간결한 설명이었다.

시스템이 내게 아이돌이 되라고 시킨 것과, 스태프 시절 맡았던 프로그램명이 유어돌이었다는 걸 알게 된 문채민이 입을 떡 벌렸다.

윤명은 내가 맡았던 미래 시즌의 얘기를 듣고는 언젠가 만들어질 후속 그룹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무수하게 이어진 미션과 이벤트,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시스템과 스타 코인을 벌어 하나씩 능력치를 쌓아 올렸단 소식을 전했다. 거기서 게임광 문채민은 다소 신기하단 눈빛을 보였다.

…너, 진짜 나를 믿어 주는구나? 밑져야 본전이라고 이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바짓가랑이를 붙들든 같은 말을 반복해서 질리게 만들든 어떻게든 이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믿어 주는 기색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유어돌 출연이 내게는 아이돌 데뷔를 넘어 인생 파산이란 중대한 결정사가 걸려 있었다는 점에선 천하의 윤명도 앓는 소리를 내뱉을 정도였다.

“…독하다, 그 시스템이라는 거.”

“그러게. 그럼 해신이 형은 데뷔 못 했으면 그대로 파산이었다는 거야?”

“그게 그렇게 되나. 어찌 됐든 너희랑 같이 데뷔하긴 했으니까.”

어느덧 내 사연에 몰입했는지 윤명과 문채민이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싸늘하다 못해 숨 막혀 하던 녀석들이.

근본은 착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이라 금방 마음이 풀릴 줄 알고 있었다.

순하고 다정한 놈들답게 공감 어린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알다시피 우리에겐 적이 많았잖아. 다른 그룹이었다면 크게 흔들렸을 법한 위기도 많았고. 뭐, 전부 루머긴 했지만 정정하는 것에는 품이 많이 들었을 법한 사건들이 끊이질 않았지. 그걸 해결하는 데에 시스템의 힘이 컸어.”

“…역시, 전부 형이 한 거였구나.”

윤명은 내 말에 짐작했다는 듯이 눈을 굴렸다.

시스템과 말도 안 되는 회귀에 대해서 받아들여 줬던 인물답게 뒷일까지 모두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촉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하여간에 머리가 좋은 녀석이라며 낮게 실소를 내뱉었다.

문채민 역시 전후 사정을 들으며 뭔가 기억이 났는지 턱 위로 손가락을 올리며 고민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

“…태오 형 학폭 논란 때 반장이었단 사람.”

“눈치챘냐.”

문채민은 내 말에 놀랍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강태오가 학교 폭력 논란에 휘말렸을 당시 메모리 서칭 엔진을 사용하여 강태오의 편에 서 줄 인물의 연락처를 찾아낸 일화였다.

반장이라고 했었지, 해외에 거주 중이라 연락이 뒤늦게 닿은 편이었는데.

반장이라는 녀석의 당시 언급과 루머글 유포자가 설명한 이야기와는 다른 점들이 밝혀지며 강태오가 무고하단 사실을 입증해 냈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강태오의 아버지, 강난오 씨가 등판하긴 했겠지만.

일단 초반을 열어 준 건 메모리 서칭 엔진의 힘이라고 봐야 했다.

문채민의 말에 내가 긍정 어린 대답을 하니 그 옆에서 윤명이 또 다른 사례를 꺼내 들었다.

“……블릭투, 최한성 그 사람 일도 형이 한 거야? 그때는 정원이 형이 휘말렸었잖아.”

윤명의 이야기도 전부 정답이었다.

“응.”

최한성, 그 망나니가 이정원을 경계하며 벌어졌었던 일이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못 잡아먹어 안달이더니, 데뷔 후 이정원이 잘나가는 게 썩 배가 아팠는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뒤집어씌워 이정원을 매장하려고 했었다.

이정원은 힘이 없는 일개 연습생 신분이었기에 당시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지.

그다음으로 넘어간 솔라 미디어에서까지 친하던 연습생 동생과 불화가 있었기에, 꼬투리 잡힐 만한 사항이 끊이지 않던 와중이었다.

그걸 보다 못해서 내가 최한성의 약점을 잡고자 메모리 서칭 엔진을 사용했던 일이었다.

멤버가 아닌 적에게 쓰기가 영 껄적지근했으나, 저 정도로 비뚤어진 마인드를 갖고 있는 놈이라면 뭔가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던 것은 이정원이 아닌 최한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더불어 증언을 해 줄 만한, 최한성에겐 악감정이 있을 인물을 찾아, 서도경에게 그 인적 사항을 부탁했었다.

꽤 험난했는데. 제법 시간이 지나 있던 터라 여론을 뒤집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최한성에게 있던 비밀이란 비밀은 전부 찾아냈었다.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됐을 때는 문채민이 혀를 내둘렀다.

윤명도 보기 드물게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 부분에서 그치지 않고 한동준 PD가 MXP와 뒷거래한 정황을 포착했던 사항들에 대해 말했다.

어차피 전부 밝히기로 한 거, 녀석들에겐 모두 다 털어놓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스태프 시절 일을 했던 경험을 바탕 삼아 아이템을 써서 신분을 감추고 크라운 게임 제작진 측에 들어갔던 당시 설명이 시작됐다.

“형, 너무 위험하잖아!”

“…정원이 형이랑 유준이 형이 해신이 형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났던 거 이해된다…….”

윤명의 말에 이 부분은 이정원이나 이유준에겐 설명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너희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를 몰랐다면 파이널 때 한동준이 우리 무대에 한 일을 유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파이널, 그러니까 럭키 챌린저 아이템을 사용하던 날을 떠올렸다.

“와, 그 무대 진짜 아찔했는데. 형들 목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던 게 내 망상이 아니었구나.”

“…나도 꿈꾸는 줄 알았지. 무대가 끝나고 난 뒤엔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어…….”

생방송이었는데 아이템과 시스템이 없었으면 정말 엉망이 될 뻔했었다.

이쯤 되니 문채민은 시스템을 무슨 만능 기계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이렇게만 들었을 땐 그 시스템이란 거 마냥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야, 채민아… 거기에 해신이 형 파산이 걸렸다는 걸 잊으면 안 되지…….”

“아차, 그러면 형, 아직도 그건 현재진행형인 거야?”

문채민의 물음에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려받은 몫이 결코 적지는 않았으나 최종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메인이 남아 있던 상태였다.

…그럼 이제 여기도 얘기해야 하는 거겠지?

이야기는 흘러 흘러 기억 키워드, 즉 내 버그와 인생에 관련된 곳까지 도달했다.

실직적으로 내가 왜 회귀를 하게 됐는지, 그 이유와 아주 밀접한 부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윤명과 문채민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티를 내진 않는다고 하긴 했는데, 수심이라도 발견했는지 서로를 돌아보며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시초가 궁금하지? 거기도 설명해 줄게. 그러니까…….”

“…잠깐만.”

“어?”

딱 달라붙어 있는 입을 떼려는데 윤명에게서 말을 막는 듯한 손짓이 이어졌다.

그러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문채민을 바라보더니 어느 한곳을 향해 턱짓했다.

“야, 채민아.”

“응.”

문채민은 그 행동에서 윤명이 뜻하는 바를 바로 캐치한 것 같았다.

알겠다는 듯이 몸을 돌려 미팅 룸 문 옆으로 다가갔다.

문채민이 한 것은 어두컴컴하던 미팅 룸의 전등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었다.

번쩍,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밝아진 시야에 묘한 통증을 호소했다.

앞에 있는 윤명의 실루엣이 아른거리며 점차 또렷해지는데. 멀리서부터 걸음을 움직여 내 앞으로 다가온 문채민이 손을 내밀었다.

“…채민아.”

대뜸 바닥을 짚고 있던 내 손을 잡아 두어 번 토닥였다.

“명이 형, 형도 와.”

“…나 땀 냄새 나는데, 참아, 형.”

문채민의 말에 가까이 다가온 윤명이 나를 돌아 등 뒤에 매달리듯 붙었다.

앞에는 문채민, 뒤에는 윤명에게 끼인 채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문채민은 나와 손을 잡은 걸로 모자랐는지 내 팔을 잡아 양쪽으로 벌렸다.

오픈된 자세에서 내게 푹 안긴 거였다.

멤버들 중에선 체구가 크다고 할 순 없는 녀석이었지만, 성장기인 놈이 가볍게 느껴지진 않았다.

“야, 너희 뭐 하냐.”

앞에서 들이닥치는 무게에 뒤로 휘청이자 이번엔 뒤쪽에서 나를 지탱하고 있던 윤명이 내 머리에 턱을 괴며 중얼중얼 뭐라고 읊조렸다.

“해신이 형은 말을 안 하니까. 항상 손이 많이 간단 말이야…….”

“…뭐?”

“형, 형 지금 표정이 어떤지 모르지? 여기에 정원이 형이나 유준이 형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권혜성이나 태오 형이 없는 건 좀 아쉽다. 그랬으면 형 등짝엔 권혜성도 나랑 같이 붙어 있었을 텐데.”

“그럼 태오 형은 형 넘어진다며 옆에서 우리를 떼고 있었겠지? 하하!”

아무래도 윤명과 문채민은 나를 위로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나름 숨긴다고 숨겼으나 부대끼며 활동한 게 2년 가까이 되어 있었다.

유어돌 당시부터 알고 지낸 시기로 따진다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거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둠 속에서도 내 얼굴 위를 스친 감정을 곧바로 알아챘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며 매달리는 행태에 피식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얼굴만 앳되지, 딱딱한 신체를 가진 사내 자식들이 앞뒤로 엉겨 붙어 있는 지금 이 광경이 너무 웃겼다.

아까까진 살벌하기 짝이 없었으면서. 눈만 마주치고서도 척하면 척이라고 죽이 잘 맞는 둘의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끌어올려졌다.

“무거워. 윤명, 넌 이만 내 등짝에서 내려오고, 문채민, 덥다. 너도 그만해라.”

“10초만 더~”

“음, 그럼 난 15초만 더…….”

제재를 가해 줄 성향의 멤버가 없어서 그랬던 건지 오늘따라 더 질척이는 감이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렇게 직접 마음을 써 주니 숨기고 있었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던 나로서는 기분이 좋았다.

슬슬 마저 얘기 들어야지, 얘들아.

조용히 속삭이는 내 목소리에 윤명과 문채민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는 형의 인생에 대한 얘기야. 너희가 아는 것도 있고, 전혀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어. 조금 지겹긴 하겠지만. …끝까지 들어 줄래?”

윤명과 문채민은 내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