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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12화 (311/328)

312화

“너희도 알지? 형 가정사.”

안겨 있던 문채민과 매달려 있던 윤명을 떨어트리고 형광등이 켜져서 밝아진 미팅 룸에 자리한 상태였다.

아무렇게나 대충 서 있던 아까와 달리 테이블에 자리하여 정식으로 멤버 둘에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문채민은 가정사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뭔가를 떠올린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지, MXP에서 내 이야기를 그렇게 크게 터뜨렸었는데.

보육원 출신에 가족이라고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신 은사님네가 전부인 천애고아였다.

“…그것도 이거랑 연관이 있는 거야?”

윤명은 거기서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늘어뜨려 놓았다.

당사자도 그냥저냥 받아들이고 있는데, 뭐가 그리 열받았는지 생전 보이지 않았던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겨진 미간에 얼굴 좀 피라며 낄낄 웃어 보이자 입술을 쭉 내민 윤명이 느린 몸짓으로 턱을 괬다.

“…형은 속도 좋다, 진짜.”

“그러게. 아까부터 계속 얘기하는 거지만 정원이 형이랑 유준이 형이 그러는 거 전부 이해 가.”

막내 포지션이던 멤버들에게 이런 얘기를 듣게 된 것은 뒤로 넘긴 이후였다.

여기서 나는 키워드 룸, 그러니까 기억 키워드를 전환하여 과거로 돌아갔던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어. 그저 보육원 앞에 버려진 인생을 다시 보게 됐구나, 이 정도였거든. 그런데 키워드 룸을 반복해서 쓰다 보니까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더라고. 살면서 어떻게든 무시하려고 했던 것들이었는데…….”

왜 내게는 좋은 일들이 오려다가 사라지는 걸까.

시작부터가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선상에 놓여 있던 사람이었다.

평범함이란 게 대단해 보일 정도로 뭔가 묘한 차이가 있는 인생이었다.

부모? 그래, 개인의 사정으로 나를 두고 떠났을 수도 있지.

그런데 보육원에서조차 내겐 가족이라는 존재가 생기지 않았다.

하나둘씩 입양되어 떠나가는 친구들 속에서도 나 혼자만 꿋꿋하게 남게 된 이유였다.

가족이 다시 찾으러 온다는 배경이 있는 녀석들과 달리 나는 계속 혼자였다.

그래서 은사님도 내게 더 마음을 쓰게 되신 거였겠지.

결론으로 따지자면 좋은 엔딩이었으나 그 결과에 도달하기 전인 과정에선 여러모로 의아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기억 키워드가 알려 줬다.

아니, 정확히는 시스템이 내게 말하고자 했던 바였다.

“버그, 버그 때문이야.”

“…버그? 그거 혹시…….”

“형이 아까 말했던 거 아니야? 유어돌 때 갑자기 나타나서 페널티? 라는 걸 줬다는…….”

“어.”

윤명과 문채민은 아까 얘기해 준 버그를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유어돌 경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버그라는 게 생성됐고, 그로 인해 페널티가 발생하여 힘겨운 연습을 했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쳤으면 참 좋았을 텐데, 버그는 매 이벤트마다 풀리고 생기기를 반복했다.

매번 알 수 없는 이름과 함께 다양한 방식의 제재를 가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상기시켰던 것이었다.

그런데 버그가 여기서 다시 나타나니, 단순히 시스템의 일면이라고 생각했던 문채민이 놀랐다는 얼굴로 미간을 찡그렸다.

윤명은 뭔가를 또 고민해보고 있는지 침착한 눈으로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중얼중얼 뭐라고 질문을 던졌다.

“형… 그 버그라는 거, 시스템이랑도 연관이 있는 거지.”

“그래.”

촉이 좋은 놈답게 윤명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눈치챘다.

“유어돌에서 겪은 버그, 그 이후로도 계속 이벤트를 통해 나타난 버그, 그건 모두 아주 작은 부속품 같은 거였어.”

“부속품?”

정확히는 내게 걸려 있는 진짜 버그와 시스템의 정체 그리고 이 모든 사실들을 알려 주기 위한 힌트였던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윤명과 문채민에게 ‘잘못된 시작’이라는 이름의 악성 버그를 알려 줬다.

내가 왜 이런 운명에 처했는지, 그 모든 것에 시초가 되는 존재였다.

“기억 키워드를 통해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거기엔 늘 버그가 있었어. …아니, 정확히 처음엔 뭔지 몰랐지. 빨간 불빛 정도로 밖에 안 보였으니까. 그런데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중반부를 넘어서니까 알 수 있더라. 회귀 이후가 아닌, 내겐 태어났을 때부터 버그란 존재가 달려 있었다는 걸 말이야.”

“…….”

윤명은 내 말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문채민은 신음을 내뱉으며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괴로운 인생은 아니었지만, 버그 때문에 더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들었다.

어쩌면… 정말 가설일 뿐이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내게도 가족과 평범한 일상이 존재했을 수도 있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하단 건 아니야. …아니, 오히려 아주 행복해. 회귀 초반엔 어리둥절하기만 하고, 왜 내 인생은 이런가, 좌절하기도 했었거든? 근데 결국은 모든 걸 되찾았어. 무엇보다…….”

하이사인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하여 스태프 신해신, 또는 평범한 신해신이었으면 못 만났을 사람들을 알게 됐다.

멤버들을 비롯하여 팬들의 사랑도 잔뜩 받게 됐고, 어려운 일에 끼어 있지만 내 편이 되어 주는 좋은 동료 연예인들도 생겼다.

그래서 모든 진실을 알았어도 무너져 내리지 않은 거였다.

도리어 지금은 내게 남아 있다는 그 악성 버그를 해치우고, 지금 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있었다.

아무튼 다시 덤덤한 얼굴로 뒷일을 마저 설명했다.

악성 버그의 존재를 알면서 마주치게 된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것이었다.

제로-원-나인의 허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기억 키워드 사용 당시, 제로-원-나인이 시간을 끌어 멤버들에게 들통난 사례가 존재했다.

이쯤 되면 너도 밝히라고 한 거지? 등을 떠밀었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기에 죄책감은 전부 내려놓은 상태였다.

제로-원-나인과의 만남, 그리고 내 인생의 시초를 들은 윤명과 문채민은 모든 걸 알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아직 끝이 아닌데. 여기에는 숨겨져 있던 시스템 관리자, 또 다른 나, 관리자 에이치가 존재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시스템이란 걸 형도 같이 하고 있다고?”

“…정확히는 또 다른 해신이 형이겠지. 스태프 시절이라며. 그것도 스물여섯보단 더 나이가 있는.”

“응, 나도 딱 한 번밖에 못 만났어. 지금의 나랑은 조금 다르더라. 제로-원-나인이란 그 녀석, 꽤 사람 약오르게 만들거든. 그런 녀석이랑 같이 일을 해서 그런가? 조금 더 신경질적이고, 조금 더 날카로워. …그래도 근본은 좋은 놈같아. 아, 내가 날 이렇게 설명하니 무슨 나르시스트같네.”

“……아니야, 다 이해해. 게다가 날카로운 해신이 형이라니.”

“명이 형도 그래? 나도 전혀 상상이 안 가는데.”

윤명과 문채민은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심각한 이야기가 넘어가서 그랬는지 이젠 제법 가볍게 웃을 줄도 알았다.

날카로운 데다가 스태프 시절 일을 했던 내가 상상이 안 간다며 장난까지 걸어왔다.

집요한 구석이 있던 멤버 둘의 이름까지 꺼내며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유추를 해 보곤 했다.

“얼굴은 해신이 형인데 말투는 정원이 형 같은 느낌이려나?”

“…으응, 난 오히려 유준이 형 스타일일 것 같은데. 해신이 형이 날카로워 봤자, 집요한 느낌 정도겠지.”

“와, 나 이거 정원이 형한테 일러도 되나?”

“…문채민 너, 치사해…….”

이제는 싸웠던 기억까지 모두 잊은 채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녀석들이 보였다.

…다행이다. 모두 받아들여 줘서. 일단 이 둘에게 오해를 풀게 해야한다는 마음 하나로 대뜸 모든 걸 밝힌 상황이었다.

도박에 가까운 시도였는데. 자세한 계획도 없이 녀석 둘을 불러내서 주절주절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거라고 볼 수 있었다.

근데 그걸 전부 믿어 준 걸로 모자라서 나를 위로해 주려는 모습을 보이니 묘한 감상에 사로잡혔다.

“혜성이 녀석, 이젠 좀 안도하겠지. 태오도 그렇고.”

“…권혜성, 그 바보. 눈치는 좋으면서 쓸데없이 빌빌거리는 구석이 있어.”

“형, 그렇게 말해도 형이 혜성이 형 제일 좋아하는 거 알아. 태오 형은….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숙소에서 자주 찾아왔는데, 내가 문전박대했거든.”

문채민과 윤명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의 짐 중 일부를 덜었낸 기분이었다.

“…그래서 형, 앞으론 어떡할건데?”

그때, 윤명에게서 조금은 매서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뭐, 본인은 별 생각 없이 꺼낸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러게…. 앞으로 어떡해야 할까. 사실 해야 할 건 전부 정해져 있었다.

최종 이벤트으로 추정되는 상을 수상하고, 잘못된 시작, 악성 버그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메이터스와 하이사인을 끊임없이 건드리는 MXP를 처리해야 했다.

겸사겸사 프로젝트성 그룹인 하이사인을 지키기 위해 서도경과도 딜을 해 볼 작정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는 게 표정에서 훤히 드러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바로 앞에 앉아 나를 보고 있던 문채민이 걱정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명이 형.”

“…응, 왜.”

“…해신이 형, 또 위험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응, 그렇긴 한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처럼 보이니까.”

“하아.”

문채민의 한숨에 퍼뜩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미안한데, 이것만큼은 나도 양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슬슬 연습실로 돌아가 볼까. 생각보다 지체된 시간에 우리를 제외한 멤버들이 모두 모여 있을 것 같았다.

어서 가자며 몸을 일으키자 내 쪽을 살핀 윤명과 문채민이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따라 나오겠다는 의사로 보고 문고리를 막 돌리려는데. 등 뒤에 서 있던 윤명과 문채민이 진지한 얼굴로 여길 쳐다봤다.

그리고는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대뜸 말을 꺼냈다.

“형, 도와줄게.”

“…같이 해.”

“…어?”

그대로 어깨를 틀어 녀석들과 마주보자 서로를 힐끔 쳐다본 윤명과 문채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문채민은 팔짱을 끼고, 윤명은 뒤쪽 테이블에 팔을 짚으며 비슷한 소리를 했다.

“그 최종 목표인지 뭔지, 거기까지 가는데에는 우리 힘도 필요한 거잖아. 거기다가 MXP? 나도 거기 싫어. 형이 저지한다는 데에는 다 방법이 있겠지. 거기에 우리도 힘을 보탤게.”

“야, 그건 너무 위험ㅎ…….”

“…형, 형도 아이돌이거든. 근데 지금까지 그 많은 걸 전부 혼자 해낸 거잖아. 형이 했으면 우리도 해. …우린 혼자 해낼 자신은 없지만, 형을 도와줄 자신은 있어.”

윤명의 말에 나는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렇게까지 얘기해 주는 녀석들에게 거절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묘하게 장하지? 마냥 어리게만 보고 있던 막내 포지션의 둘이었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성숙한 얼굴로 여길 지켜보는 것이 믿음직스럽다 못해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럼 그전에 너희 스탯부터 좀 올려라. 물론 이건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보상인지 뭔지 좀 받게. 윤명과 문채민은 스탯을 올려 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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