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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13화 (312/328)

313화

아무튼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윤명과 문채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이후였다.

사라졌던 우리 셋이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을 땐 멤버들에게서 걱정 어린 잔소리가 쏟아졌었다.

나도 나인데, 문채민과 윤명의 분위기가 영 냉랭했으니, 탈이라도 났을까 봐 우리를 찾아 나서려던 모양이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돌아가서 그랬을까, 이정원과 이유준이 서로를 쳐다봤었다.

권혜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윤명을 바라보고, 강태오는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기 바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나를 잡아 데려가려는 이정원을 윤명과 문채민이 사이좋게 저지해 줬다.

정확히는 윤명과 문채민의 돌발 행동에 이정원이 넋이 나가 몸을 멈춘 것이었다.

‘연습하자, 형.’

‘…연습, 안 해?’

‘…어? 어.’

윤명과 문채민은 기합이 제대로 들어가 있었다.

멤버들의 스탯을 올려야 한다는 지령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는데.

최종 이벤트에 내 파산이 걸렸다고 이야기했던 부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소 기구하게 느껴지는 팔자에 마음이 쓰였는지, 하루하루를 낭비할 수 없다며 더욱 강한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면 나야 잘된 일이지. 안 그래도 나는 곧 있을 연기 대상의 축하 무대에서 윤명과 문채민의 스탯을 올려 주고 싶었다.

이유준 때의 일만 봐도 당사자의 마음가짐이 시스템 기준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제야 한시름을 덜어 낼 수 있었다.

나름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며칠간이었다. 바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에 비하면 나쁘지는 않은 일상이었다.

아니, 일상이었다고 해야겠지.

훌쩍 다가온 연말, 축하 무대 녹화를 며칠 앞에 두고 김환준과 지원겸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이제 시작인가. 서도경이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했었는데. 양측엔 이런저런 말들을 전달해 놨는지 핸드폰이 쉼없이 울려 댔다.

어쩌다 보니까 만들어진 단체 대화방에서 만나자는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걸 확인했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히 뭉개고 넘어가려고 들었겠지만, 이상하게 불안한 기운이 가시지 않아 참석하기로 한 자리였다.

연습이 끝난 후 어딜 가냐 묻는 이정원과 이유준의 방어를 문채민과 윤명에게 맡긴 후, 도망치듯 만남 장소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먼저 도착해 있었는지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던 김환준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예, 그러게요.”

김환준은 서도경과 무거운 이야기를 나눈 것에 비해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리어 생글생글 더 웃어 보이는 것이 멘탈이 참 강한 인물이란 생각이 스치던 중이었다.

중요한 얘기를 꺼내기 전에 안부라도 물을 목적으로 자리에 앉아 입을 막 떼려는 찰나였다.

물잔을 들어 올리는데 김환준이 테이블 위로 턱을 괴곤 슬쩍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얼굴, 좋아 보이네요? 근래 하이사인 분위기가 재밌다던데.”

“풉… 켈룩!”

“저런, 뱉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여기 휴지요.”

어떤 뉘앙스인지 목적을 알 수 없는 질문 한마디에 크게 사레가 들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머금고 있던 물을 김환준에게 뿜어 낸 것이 아니란 것이었다.

아니, 그냥 저기에 뱉을걸. 병 주고 약 주기의 달인답게 김환준이 휴지를 건네줬다.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아,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인간이었지.

안 그래도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잊고 있던 인물의 성향이 떠오르며 관자놀이가 다 지끈거렸다.

그때, 어수선한 상태에서 내가 들어온 문이 다시 열리며 그 사이로 투박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니네, 지금 뭐 하냐?”

“…멘토님, 안녕하세요.”

“어, 왔네. 불러 모은 당사자가 너무 늦다?”

스케줄이라도 다녀온 건지 숍에 갔다 온 티가 나는 화려한 차림새의 지원겸이었다.

단정하게 사복을 입고 있던 김환준과 연습실을 다녀와서 다소 추레한 복장의 나와는 많이 동떨어진 모습에 미간이 찡그려졌다.

간신히 얼굴을 수습하며 왔냐고 인사를 하자 뭐라고 불만을 내뱉던 지원겸이 문을 닫고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다 됐으니까 불러 모은 목적이나 말해.

어쩌다 보니까 서로 위험한 일에 얽혀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게 아니어도 충분히 할 일이 많던 사람으로서, 또 도망치듯 빠져나왔지만 멤버 몇의 눈초리가 날카로웠던 걸 기억하는 바로써, 얼른 본론을 끝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신해신, 쟤가 또 뭐라고 했냐?”

“…아뇨. 뭐.”

“얼굴이 보기 좋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하여간에 나한테는 참 인색해.”

“또 쟤가 뭐라고 지랄했구만, 지랄겸은 무슨. 원조 지랄은 쟤다, 쟤.”

투덜거리는 지원겸과 김환준을 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피곤해, 아니 그전에 이 인간들은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나를 불러낸 건가 이쯤 되니까 궁금해지려고 했다.

음식이 나오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슬며시 손을 든 참이었다.

김환준을 향해 뭐라고 욕을 하고 있던 지원겸이 내 움직임을 포착하곤 눈을 굴리며 작은 목소리로 응답해 왔다.

“성격 급하다.”

“좀 봐주세요.”

“하긴, 해신 씨네는 바쁘죠? 타이틀 활동 시기가 딱 좋은 타이밍에 맞물려서 여기저기 많이 불려 다니잖아요. 아, 조만간 m 본부 시상식 축하 무대도 한다고 들었는데. 거기 때문에 정신없겠네요. 연말 시상식이랑 연초에 열리는 어워드 공연도 같이 하고 있어요?”

김환준에 말에 멈췄던 기침이 다시 터져 나올 뻔했다.

저 인간, 어떻게 우리 스케줄을 훤히 꿰고 있는 거지.

김환준이 말하는 바는 전부 정답이었다. 사실 우린 m 본부 연기 대상의 축하 공연뿐만 아니라 연말 시상식과 연초 시상식에서도 특별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연기 대상 축하 공연 컨택 이후로 물밀듯 들어온 무대들 중 하나였는데.

상을 타야 하는 입장에서 뭐든 눈에 띄는 활동은 긍정적인 신호란 판단이 내려졌다.

멤버들 역시 올 한 해 주목을 받았던 것에 대해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성대한 연출의 공연을 하고자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건 전부 내부 스케줄이었다. 극비까지는 아닐지언정 전체 라인업이 팬들과 대중들에게 공개가 되지 않은 상황이란 뜻이었다.

그 와중에 김환준이 정확하게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것을 말해 왔다.

회사에서 마주치기라도 했으면 모를 텐데, 활동기가 엇갈려서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던 인물이 우리 쪽 일을 너무도 훤히 알고 있어서 놀란 바였다.

“다 아는 법이 있죠.”

김환준은 그런 나를 보며 가볍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쯤 되면 제로-원-나인보다도 저기가 더 무서운 느낌이었다.

“저 스토커 자식……. 야, 쟤 조심해. 내가 그래서 음습하다고 한 거야.”

지원겸에게서 별로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이 이어졌다. 일단은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지원겸이 다소 어두운 얼굴로 입가를 문질렀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와 겹치는 주제가 있었는지 본격적으로 대화에 들어가려는 느낌이었다.

“아이 씨, 야, 넌 그런 것 좀 알았으면 빨리 얘기하든가.”

“내가 뭐. 그나저나 지원겸, 너 뭘 알고 있는 거야. 해신 씨, 오해는 말아요. 나도 저쪽에 불려 온 입장이거든요. 아, 대표님 건은 나중에 나랑 단둘이서만 얘기합시다. 이른 게 아니고 협력한 겁니다, 거기랑은.”

“넌 지랄 말고. 내 얘기나 들어.”

다소 격한 지원겸의 말에 나는 조용히 양쪽 모두를 쳐다봤다.

지원겸은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로 나와 김환준을 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뒤통수를 벅벅 긁더니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뜸 말해 왔다.

“아~ 몰라, 알아서들 하겠지. 야, 신해신, 김환준, 너희 둘 다 당분간 무대 조심해라.”

“네?”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다소 뚱딴지스러운 이야기였는데 지원겸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 긴장이 됐다.

김환준도 장난스럽던 자세를 바로잡고 굳은 표정으로 지원겸을 쳐다봤다.

무대라니… 직업상 빠질 일이 없던 장소의 등장에 이상하게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쪽도 걔네 동태를 살피고 있겠다고. 대표님이 붙었어. 아, 너흰 알려나?”

“대표님이요? …멘토님네 대표님이요?!”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긴데.”

지원겸에서 이어진 이야기는 그거였다. 인클루가 우리와 엮이며 MXP에게 같이 공격을 받자 인클루 회사의 대표가 이 싸움에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단 것이었다.

인클루는 데뷔초부터 디레스트를 통해서 많은 견제를 받아 왔던 그룹이었다.

간신히 연차가 쌓이고 좀 벗어나나 싶었더니, 이제는 더한 수법으로 괴롭힘을 받았다.

인클루 회사의 대표는 더 이상 그를 참지 않기로 했었나 보다.

보지 못하겠다는 듯 처리를 결심했다는 말을 들었다.

마침 메인으로 나서 주는 회사가 있으니 이건 절호의 찬스이기도 했다.

그게 바로 서도경이군. 보아하니 인클루 회사의 대표와 서도경은 우리가 모르는 새에 비밀 회동이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게 우리 무대랑 무슨 상관인 거지.

의아한 얼굴로 지원겸을 돌아보는데, 그 속마음을 꿰뚫어 본 것인지 지원겸이 테이블 위로 턱을 괴며 내 머리통에 손을 뻗었다.

“으악!”

“에휴, 얘 괜찮으려나.”

그러고는 동네에서 마주친 개를 쓰다듬는 것처럼 내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속 내용물로 따지면 댁이나 나나인데, 왠지 모르게 동생 취급을 받은 기분에 묘한 얼굴로 지원겸을 바라봤다.

“됐으니까 무대 이야기부터 해 봐.”

김환준에게서 진지한 물음이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이야기는 이해했지? 우리 대표님이 열받아서 너네 그 대단하신 대표님이랑 손을 잡은 거. 거기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니네 대표님은 너희한테 말 안해 줬나 봐? 우리 대표님은 입이 좀 가벼워서 나한테 죄다 풀어 놨거든. 서도경, 그러니까 메이터스 측은 MXP의 뒤쪽을 알아보고, 우리 쪽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앞쪽을 확인하고 있었대. 그러다가 딱 걸린 거지, 근래 걔네의 수상한 행보를.”

“…수상한 행보요?”

지원겸의 이야기에 머리속으로 하나의 퍼즐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서도경이 비리 쪽을 캐면 지원겸네 회사 대표 쪽이 MXP의 계획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MXP는 온갖 권모술수를 다 썼으니까, 어느 방향으로 공격하려는 건지 사전에 차단하려는 이유에서였던 것 같았다.

지원겸은 조금 짜증이 난 것 같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김환준의 표정이 굳어졌을 정도로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던 중이었다.

“연말에는 시상식이나 큰 퍼포먼스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공연업계가 바쁘잖아. 그래서 외부 인력을 많이 구하는 편인데, 근래 MXP 쪽에서 사람을 푼 것 같다나 봐.”

“…그게 무슨 소리야, 지원겸.”

“무슨 소리냐니? 너 다 이해했잖아. 신해신, 기억나냐. 우리 크라운 게임 파이널 때.”

“…아.”

이건 그 이야기였다. 생방송 무대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한 일 말이다.

그때 당시에는 소소하게 무대 장치 정도로 경연을 망치려고 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 규모가 다른 것 같았다.

지원겸의 표정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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