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14화 (313/328)

314화

오늘은 경기도 외곽 부근에서 무대에 출연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건 지역 페스티벌로 방송사에서 개최하는 규모의 큰 공연이 아니었지만, 케이 팝 팬덤 사이에선 좋은 퍼포먼스와 레전드 홈마 사진이 속출하는 걸 빌미 삼아 나름 입소문이 퍼져 있던 유명한 축제 자리였다.

“날이 흐리네.”

“우천 취소만 아니면 난 괜찮은데~”

핸드폰으로 바깥 날씨를 확인하던 이유준과 권혜성의 대화를 들었다.

연말 무대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우리가 출연하게 된 것까진 괜찮았는데.

얼마 전 지원겸 그리고 김환준과 함께 나눈 대화가 떠오르니 기분이 영 찜찜했다.

그 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내게는 제법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멘토님 말씀으로는 MXP 쪽에서 공연업계에 알바를 빌미 삼아 사람들을 풀어놨다 이거죠?’

‘어.’

한동준 PD의 뒷돈 리스트가 온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이후로 한동안 몸을 사리던 MXP가 다시 활개를 치려 한다고 했다.

사실 여기까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찾아올 게 찾아왔다는 감상이 들었었다.

MXP는 케이블이라지만 그 엔필름을 거느린 엔넷의 PD에게까지 뒷돈을 줬던 곳이었다.

인터넷과 인맥으로 대충 인력을 구겨 넣는 급한 공연들에서 얘네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별거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잖아.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거라면 한동준 PD 사태로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겠고, 지방이나 특선 무대 같은 경우에는 사람을 밀어 넣어 봤자 아르바이트 정도일 텐데. 거기가 할 수 있는 건 별거 없지 않나?’

김환준의 반응에 지원겸이 미간을 찡그렸다.

반박할 말이 없는 건 맞아 보였지만 뭔가 아주 찜찜하단 느낌이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굳이 너넬 불러 모았겠냐? …아무튼 불길해. 이러면 늘 사고가 터졌어.’

지원겸의 말에는 나도 일부 공감하던 바였다. 사람을 풀어놨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가만히 넘어갈 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지원겸과 김환준의 사이에 껴서 MXP의 꿍꿍이에 대해 고민해 볼 무렵이었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 있던 지원겸이 내 쪽으로 몸을 틀며 제 고개를 들이밀었었다.

‘야, 신해신. 너희 연말 무대까지 스케줄 다 나왔지.’

‘네? 네, 일단 그렇죠. 긴급 출연 아니면 거의 정해져 있을걸요.’

‘그거, 우리한테 공유 좀 해라.’

‘네?!’

지원겸에게서 갑작스러운 제안이 이어졌다. 스케줄 표를 공유하라는 이야기였다.

그건 나와 하이사인에서 끝난 이야기가 아니었는지 김환준을 돌아보며 투덜거리는 뉘앙스로 말을 이었다.

‘단체 대화방에 지금 올리라고. 야, 김환준. …디레스트 건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너희 것도 같이 올려.’

‘웬일이야?’

‘뭐가 웬일이야. 우리 둘보단 너라도 하나 더 껴 있는 게 나으니까 그러는 거지. 잔말 말고 얼른 공유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원하는 대로 해 줬다.

지원겸과 김환준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있는 SNS 대화방에 서로의 스케줄 표로 추정되는 이미지가 1장씩 총 3장이 올라갔었다.

의미불명의 지시에 무슨 생각일까, 지원겸을 바라봤다.

그 뒤를 이어 아까부터 핸드폰만 내려다보고 있던 김환준이 길게 비음을 흘렸다.

‘…위험할 것 같은 부분을 찾나 보네.’

‘어.’

‘아.’

‘신해신, 이제 알았냐?’

김환준과 지원겸의 대화에 3개의 스케줄표를 보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이 안에는 하이사인과 인클루, 디레스트가 공통으로 출연하는 행사들이 있던 것이었다.

MXP는 소속사를 상관하지 않고 자기네에게 방해가 되는 그룹들 위주로 뒤처리하곤 했다.

MXP에서 활동하는 연예인 중 그들과 라이벌 격으로 이름이 불리는 연예인들이 주된 타깃이라는 소리였다.

우리가 데뷔한 이후부터는 분포되어 있던 그 경계망이 많이 좁혀져 있었다.

간단하게 치워질 줄 알았던 하이사인을 비롯하여 자기네 휘하에 있던 디레스트가 우리 쪽으로 이적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MXP의 입장에선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보단 거치적거리는 우리부터 치우고 싶어 할 게 분명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스턴즈부터 나름 연줄로 이어 오던 한동준 PD와 잘 써먹고 있던 타 소속사의 블릭투를 모두 정리해 버린 것이 이쪽이었다.

…아마도 혈안이 되어 있겠지. 가는 길마다 방해하다 못해 초를 쳐 온 그룹들이었다.

게다가 크라운 게임에서는 블릭투를 제외한 나머지가 하나로 힘을 뭉쳤었다.

그 안에서 리더 격으로 주도하던 그룹이 하이사인과 디레스트 그리고 인클루였다.

우리 셋이 공통으로 출연하는 무대 중 외부 공연은 MXP가 손을 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적격인 공격 장소란 이야기였다.

‘그럼, 대형은 제외하고요?’

‘아니, 거기도 일단은 눈여겨볼 거야. 하지만 크라운 게임 때처럼 무대엔 헛짓 못 하겠지. 가장 위험해 보이는 곳, 거기부터 확인하려고.’

지원겸이 스케줄표에서 한곳을 가리켰다.

인클루와 디레스트 그리고 우리 하이사인까지 모두 출연하기로 했던 공연. 바로 오늘 이 무대였다.

하필이면. 리허설을 끝마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주변을 훑어보는데, 공연장 위로 보이는 하늘이 영 심상치 않았다.

꾸물꾸물 먹구름이 해를 가리고 빛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늦은 오후부터 시작되는 공연이라 리허설은 꽤 이른 아침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한참 밝아야 할 시간부터 날씨가 이러니, 불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일단 리허설에서 만큼은 별 탈 없이 동선을 잘 확인했다.

다른 멤버들이 연출과 간략한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나는 눈을 굴려 여기저기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이렇다 할 특이점이 보이지 않아 찜찜하게 무대를 내려왔다.

중간 쉬는 시간에 지원겸과 김환준을 만나 대화를 나눴지만 다들 알아낸 게 없었다.

거기서 지원겸은 소속사 사장에게 이야기를 해 뒀었는지 골치가 아프단 얼굴을 해 보였다.

‘공연 책임자는 그런 쪽으로 말이 도는 사람이 아니래. 연출진도 꾸준히 이 무대를 해 왔던 사람들이고. …그런데 한 가지가 영 거슬린단 말이지.’

‘뭔데요?’

‘…여기, 이번에 외부 인력을 많이 구했다더라. 손이 모자랐는지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사람을 많이 데려왔는데, 왠지 그 안에 MXP 인간이 있을 것 같아.’

아, 거기서 나도 김환준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서도경에게도 언급해 두긴 했지만,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손을 댈 수는 없었는지 여기도 별다른 수확이 없던 차였다.

그런데 지원겸에게서 저런 찜찜한 이야기를 들으니 불길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설마 별일 있겠어? 관객만 해도 수천 명인 공연장이었다.

애써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가라앉혀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때가 되었다.

관객들의 입장이 완료되고, 출연 연예인들이 의상을 갈아입은 상태에서 타임 테이블에 맞춰 한 팀씩 무대에 올라갔다.

올해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고 상당히 좋은 성적을 얻었던 우리는 거의 끝인 뒤쪽을 배정받았다.

연차 때문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는 못 간 것 같았지만 순서로 보아 상당히 클라이맥스에 가까운 구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분명 기뻐해야 하는데. 대기실이 있는 건물 바깥에서 공연 중인 음악 소리와 관객들의 호응을 들으며 심란함에 잠겨 있었다.

인클루는 곧 들어가겠지. 디레스트는 방금 끝났고. 대기실 안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서 계속 주위를 살피던 중이었다.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지만… 나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리고 우리에게 스탠바이 해 달라는 이야기가 전달되기 전까지 말이다.

“아자~! 힘내자~!”

“…문채민, 알지?”

“어.”

“너희, 저번부터 좀 이상하다? …열심히 하는 건 좋긴 하지만 말이야.”

멤버들이 차례대로 문을 나서는 걸 보며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긴 복도를 넘어서 무대 뒤쪽 백스테이지에 자리해 다음 출연을 기다리던 찰나였다.

긴장한 모습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내 어깨 위로 손을 올리지만 않았으면 계속 그러고 있었을 예정이었다.

“……!”

언제부터였는지 나를 보고 있던 이정원이 말을 걸었다.

“너, 이상하다?”

짝, 시끄러운 음악과 비트 소리 사이로 살과 살이 마주치는 파열음이 들렸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이정원의 손을 세게 쳐 버렸다.

이정원은 그 행동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우리의 소란이 멤버들에게도 모두 들렸던 걸까. 장난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몸을 풀던 멤버들이 여기를 돌아봤다.

그중 가장 놀라 보이는 건 단연 문채민과 윤명이었다.

이 둘은 내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뒤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담담함을 유지하던 내가 극도의 불안감을 표현하니, 몸을 돌려 즉각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형, 왜 그래……?”

“…혹시 또 뭐가 나타났어? 막 미션이라든가, 이벤트라든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정원의 뒤쪽에서 벙긋벙긋 뭐라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이정원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제 뒤에 있던 둘을 보며 현재의 사태에 대해 고민해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강태오와 이유준이 우리 사이에 껴서 사태를 진압하려던 무렵이었다.

바로 앞 팀의 공연이 모두 종료됨을 확인했다.

“…이런. 신해신, 너 운 좋다? 이거 끝나고 얘기 좀 하자.”

“형, 나도 같이 좀 들을게.”

“…이건 편 못 들어 줘.”

이정원을 비롯하여 이유준과 강태오가 차례대로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그대로 암담함에 뒤를 따라 걸었다.

윤명과 문채민에게는 나중에 설명해 주겠다며 일단은 스테이지를 향해 이동했다.

일단은 인클루도 괜찮았으니까. 우리보다 약간 더 앞 순서에서 문제없이 무대를 끝낸 동지 중 나중에 끝난 한쪽을 떠올리며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노력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부터 올라간 무대는 환한 조명으로 반짝 빛이 들고 있었다.

눈부신 시야에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근심 걱정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활짝 웃었다.

* * *

- 두근두근 비트에 맞춰

마음을 움직이는 1픽셀의 Pink

- 그게 모이고 모여 커다란 Heart가 됐을 땐

얼굴이 빨개져 펑 하고 불타올라

- Rail heart oh- rail heart

Love me like that

Rail heart oh oh- 너도 알잖아

진짜 괜찮은 건가? 무대에서 한참 공연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Complex’ 바로 전에 활동했던 타이틀곡인 ‘Rail heart’가 무대 위로 울려 퍼졌다.

당시 곡의 센터이던 권혜성이 무대 위를 화려하게 누비는 모습이 보였다.

싸비에 들어가며 동선이 바뀌고 제스처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 이건 Rail heart oh- rail heart

사랑이 쏟아져 내려 이어진 우리만의 Rail heart

MR이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 이정원과 스쳐 지나가며 인 이어를 다시 매만지던 찰나였다.

흐르는 땀이 눈가를 스쳐 지나가며 조명 빛이 화하게 번진 걸 발견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닦아 내고 다시 노래에 집중하려 하려던 순간, 치지직- 어디선가 듣기 싫은 노이즈 소리가 들렸다.

…인 이어가 이상한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안무를 하며 뒤로 빠지려던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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