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15화 (314/328)

315화

치치지직- 점점 커지는 기계음에 돌아가려는 고개를 억지로 참아냈다.

혹시… MXP에서 건든 게 이건가? 라이브 AR을 깔지 않아 노래를 놓치면 대놓고 비어 버릴 파트가 걱정됐다.

- 감정이 줄지어 밀려들어 와

설렘이 겹치고 겹쳐 핑크빛으로 물들어

- 네가 알아주길 기다리며 쌓인 그 마음이

- 어느새 나를 가득 뒤덮었어

- 온 세상이 Colorful해 난 그럼 또 깜짝 놀라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다른 멤버들의 상태도 확인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평온하게 무대에 임하고 있었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았나? 어쩔 수 없다며 인 이어에서 들리는 노이즈음을 무시한 채 다시 무대에 집중해 보려고 했다.

[!DANGER!]

[!DANGER!]

[!DANGER!]

새빨간 창이 나와 멤버들 주변으로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도. 계속 그렇게 무대에 집중했을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시간이 멈춘 것 같지는 않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무대를 이어 가던 상황이었다.

저게 뭐지? 시스템 업데이트나 버그의 등장이 아니고서는 처음 보는 새빨간 창이었다.

제로-원-나인, 좀 나와 봐! 시스템 신해신, 어딨어!

2절이 시작됨을 확인하며 파트 체인지에 맞춰서 몸을 돌렸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관리자들을 부르는데, 그때 시스템으로 보이는 파란 창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거기서 나는 지금 이 사태에 대한 것을 알게 됐다.

[(구매 불가)D 트레일러 – 다회성 아이템]

버프: 사용자의 위험 상황을 예고해줍니다. (횟수: 3회)

[D 트레일러]

사용 가능 횟수: ☆☆

[D 트레일러 ‘위기 경보’를 알립니다.]

[D 트레일러 ‘위기 경보’를 알립니다.]

[D 트레일러 ‘위기 경보’를 알립니다.]

.

.

.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6단계 – 위험]

아무래도 이건 과거에 받았던 아이템, D 트레일러가 본 기능을 발휘한 것 같았다.

이게 어떨 때 어떻게 알려 주는 거랬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새로운 창은 눈앞에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6단계? 위험? 아무튼 뭔가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머리가 아팠다.

고민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사이, 새로운 창이 나타나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해 줬다.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6단계 – 멤버의 머리 위를 조심하십시오.]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6단계 – Target 조정]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6단계 – Loading…]

[D 트레일러 ‘위기 경보’ 6단계 – Target 확인]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멤버들과 무대 전체를 감싸듯이 떠돌고 있던 위기 감지 창이 한 명에게로 몰려들었다.

[!DANGER!]

[!DANGER!]

[!DANGER!]

저건… 아까 나타난 창을 온몸에 휘감은 채 아무것도 모르고 댄스 브레이크를 추고 있던 인물.

- 오락기를 아무리 눌러 봐도 내 사랑은 일방통행

너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지루하고

또 두근거려 그러니까 어서 나를 원해 줘

랩에 맞춰 권혜성과 턴을 돌며 갈라서듯 제 동선을 찾아가고 있는 멤버.

“태오야!”

“강태오~!”

바로 댄서 포지션인 강태오였다.

- 언제나 너를 기다리며

작은 상자 속에서 마음을 원하고 있어

버튼만 누르면 뽑히는 사랑이니

준비가 되면 뒤돌아봐 Girl

언젠가는 네게 내가 가득하길 바라

강태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지 랩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팬들에게 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로 너머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데, 저도 모르게 그 모습에 D 트레일러가 알려 준 머리 위를 올려다보게 됐다.

끼덕-

…저게 왜? 길게 레일로 연결된 조명 중 하나가 겨울바람에 맞춰 불안하게 흔들리는 걸 발견했다.

두꺼운 쇠 봉으로 이어진 탄탄한 구조물임이 틀림없었지만, 혼자만 위아래로 끄덕거리는 게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이것도 D 트레일러의 능력이었는지 흔들리는 조명 옆의 선이 끊어져 있는 걸 보게 됐다.

지지대로 잡아 놓은 쇠 봉 사이에서 그 구간만 너트와 볼트가 빠져 있는 것도 알게 된 상황이었다.

아, 안돼…. 휘익- 바람이 크게 불며 조명을 지지하고 있던 쇠봉이 무너지듯 틈을 벌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조명이 아래로 치우쳤다.

말도 안 되게 큰 크기는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맞는다면 절대 무사히 제 발로 걸어 나갈 수 없을 예정이었다.

…강태오는, 강태오는 댄서인데! 운이 좋게 피하더라도 몸 어딘가를 맞는다면 최소 부러지는 사태를 맞이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내 눈앞으로 강태오의 스탯 업데이트 창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이럴 때, 두 개를 동시에 올릴 수 있는 스페셜 미션이 등장했다.

스페셜이고 나발이고, 안중에도 없는 정신이었지만 말이다.

[스페셜 스탯 오픈!]

2개를 동시에 올릴 수 있는 특별한 기회! 위기로부터 멤버를 구해 주세요.

[강태오]

나이: 21

외모: A+

보컬: B+

댄스: A-

운: B+

끼: A-

*업데이트 확률 상위 스탯*

댄스: 91% (출연 무대를 활용해 보세요.)

운: 91% (출연 무대를 활용해 보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긴 했어. 더 이상 고민할 겨를은 없어 보였다.

머릿속으로 D 트레일러와 비슷한 시기에 얻게 된 아이템을 하나 떠올렸다.

‘운명 디펜서’ D 트레일러와는 다르게 일회성으로 단 한 번밖에 못 쓰는 아이템이었지만.

내가 녀석에게 일어날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었으니 뭐든 있는 건 전부 사용해 볼 속셈이었다.

그래서 강태오와 내 이름을 연속으로 불렀다. 강태오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운명 디펜서, 사용할게! 대상자, 강태오. 타깃, 신해신!

[‘(구매 불가)운명 디펜서’를 사용합니다.]

[대상자: 강태오 → 타깃: 신해신]

[두 사람의 ‘운명’을 교체합니다.]

그와 동시에 환한 빛이 눈앞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Rail heart’의 MR을 들으며 무대를 가로질러 달렸다.

빛 너머로 서 있을 멤버, 강태오를 향해 팔을 뻗던 찰나였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동시에 조명이 무너지며 굉음을 내뿜었다.

손끝에 닿는 녀석의 옷자락에 있는 힘껏 몸을 밀며 뒤쪽으로 강태오를 빼냈다.

우당탕탕, 끊어진 전기선으로 무대 위가 깜빡이고, 관객석과 사방에서부터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악!”

“얘들아!”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머! 어떡해!”

솟아오른 흙먼지가 잠잠하게 가라앉고 급하게 끊은 노래 너머로 듣기 싫은 기계음과 노이즈 소리가 맴돌았다.

다급하게 올라오는 스태프들과 사람들의 비명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사실 그 정도이기만 했어도 나름 어떻게 무마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윽…….”

“형!”

“강태오! 신해신! 너희 괜찮아?!”

“해, 해신이 형, 태오 형……!”

“다, 다치셨어요?!”

“119 좀 불러 주세요! 해신이 형이 조명에 맞은 것 같아요!”

“어떡해……! 해신아아……!”

강태오를 밀어낸 내가 다리에 조명을 맞았단 것이었다. 이거였구나, 운명을 바꾼다는 게.

통증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신음만 간신히 내뱉고 있었다.

다리가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지배한 것 같았다.

페널티는 약과였어. 데뷔 쇼케이스에서 겪었던 위통과는 비교 못 할 아픔에 이를 악물었다.

“…혀, 형?”

“…윽!”

“강태오! 일단 너도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떠밀리듯 뒤로 몸이 빠져서 그런 걸까, 바닥에서 나를 받치듯 깔린 강태오가 놀란 표정으로 여길 올려다보고 있었다.

움직이지 좀 마, 진짜 아파. 입 밖으론 뭐라고 말도 못 한 채 끙끙거리길 한참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픈 와중에도 강태오는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운명 디펜서, 이 결과를 보아 아마 강태오는 내가 아니었더라도 조명을 피하긴 했던 것 같았다.

다만, 나처럼 떨어지는 조명에 스치든 아니면 다른 반사 작용에 의해서든, 이 무대 위에서 다리를 다치는 일이 벌어졌을 것 같았다.

운명 디펜서, 쓰길 잘했네. 다 같은 가수이긴 했지만 강태오의 그룹 내 포지션이 떠올리며 사용하길 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춤추는 놈 다리를 분지르는 건 말도 안 되지. 정확하게 부러졌다고 판단할 순 없겠으나 꼼짝도 못 하겠는 걸 봐선 최소 골절이 확실했다.

아픔에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강태오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다치지 않았냐는 의사를 표현했다.

인마, 난 보컬이야. 다리가 부러져도 금방 다시 붙을 테니까. 그놈의 표정 좀 어떻게 해 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웅성거리는 팬들과 핸드폰 셔터음이 터지는 광경을 가리고자 스태프들이 담요를 가지고 올라왔다.

주변을 에워싸듯 둥글게 가리고는 곧 도착할 119 구급대원을 찾아 헤맸다.

“…혀, 형.”

“괜찮… 아! 윽…….”

“신해신, 이 멍청아! 가만히 좀 있어!”

“정원이 형, 마이크, 마이크!”

“…형! 해신이 형!”

“…권혜성, 저기 가지 마.”

“다리는? 안 움직여? 거기 말고 아픈 곳은? 형, 정신 놓지 말고.”

걱정됐는지 울먹이는 권혜성부터 그런 권혜성을 달래면서도 여길 힐끔거리는 윤명이 보였다.

뒤처리에 정신이 없는 문채민을 비롯하여 화가 났는지 씩씩대는 이정원과, 내 상태를 체크하느라 바빠 보이는 이유준까지 엉망진창이었다.

다행히도 나 말고는 모두 괜찮은 모양이네. 저 멀리서부터 구급차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멤버들과 관객석에는 피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참고 있던 통증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생전 겪을 일이 없던 과도한 아픔에 몸이 반항하듯 호소를 하는 거였는데.

가물거리는 눈가에 마지막으로 강태오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너, 진짜 아픈 데 없는 거지? 희게 질린 얼굴 너머로 넘어지면서 쓸렸는지 뺨에 입은 생채기가 보이고.

그거 꼭 반창고 붙여라. 내가 실려 간 뒤 나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진료를 받지 않으려고 들까 봐 염려스러운 마음을 모두 표현했다.

최대한 버텨야 해. 그 마음 하나로 내 옆에 바짝 붙어 상태를 체크하던 이유준에게 말을 걸던 중이었다.

“유준아, 윽… 너희도 검사 다 받아라. 특히, 강태오 얘, 혹시 모르니까 꼭…. 엑스레이 다 찍어 보라고.”

“신해신, 넌 가만히 좀 있어! 구급차는요? 오고 있대요?”

“거의 다 들어온 것 같아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해신 씨, 태오 씨!”

멀리서부터 달려온 오병은과 박재민을 비롯하여 회사 스태프들이 발을 구르는 모습도 보였다.

한쪽은 전화로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게 아마 곧 서도경과 한지헌의 귀에 들어갈 듯했다.

이젠 정말 안심해도 되겠네. 뭐가 됐든 이런 일이 터졌으니 당분간은 모든 무대가 철통 보안으로 진행될 건 분명해 보였다.

백스테이지 너머로 유니폼을 입은 구급대원들과 그 사이에서 급하게 뛰쳐나왔는지 헐떡이고 있는 타 그룹의 아이돌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원겸, 김환준. 내가 대신 다 받았다.

저기에는 나중에 밥이라도 얻어먹자며 우스갯소리를 떠올렸다.

얄미운 구석들은 존재했지만, 그걸로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를 바라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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