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16화 (315/328)

316화

“…이걸 노린 건가.”

어떤 정신으로 병원에 실려 왔는지 모르겠다.

울며불며 비명을 지르는 팬들과 사색이 되어 여길 바라보고 있는 멤버들을 쳐다보다가 구급차에 탑승하자마자 의식을 잃었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골절됐다는 이야기에 긴급 수술을 들어갔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나 그나마 쉬운 수술이었다고 설명들었다.

살다 살다 깁스를 다 해 보네. 스태프 시절에도 이렇게 큰 부상을 입어 본 적이 없어서 이상했다.

그 뒤로는 멤버들이 뒷수습을 마치고 여기로 달려오는 중이라고 전달받았다.

동행했던 오병은이 회사에 보고하러 가 보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이었다.

메이터스에서 잡아 준 1인실에 누워 핸드폰을 확인했다.

역시… 티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무대 붕괴]

[신해신 부상]

[○○○○ 페스티벌]

[하이사인 부상]

[조명 붕괴 영상]

[○○○○_아티스트_보호해]

[메이터스 공식]

.

.

.

팬들이 많이 있었던 만큼 영상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람 심리가 그렇다고, 엄청난 리티윗 수와 마음이 찍힌 동영상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단은 나도 확인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그중 적당한 게시물을 클릭하여 영상을 재생했다.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했더라, 사실 사고 당시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았었다.

정신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일단 강태오를 구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주변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사고를 맞이했었다.

[꺄아아!]

[해신아!]

영상을 누르자 시끄러운 소리가 병실 안으로 울려 퍼졌다.

Rail heart, 무대에서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가 부르고 있던 곡이었는데.

팬들의 응원과 비명에 조바심을 느끼며 끝까지 영상을 지켜봤다.

1절 싸비가 끝나고 2절 중반에서… 기억하던 구간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나와 멤버들의 모습을 주시해 봤다.

“크게 티는 안 나네.”

이상한 쪽으로 의심받을 일은 없겠군. 시스템에 의한 효과인지 크게 도드라지는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그저 노래를 부르던 내가 문득 이상함을 감지했다는 듯이 천장을 올려다봤고, 놀란 얼굴로 강태오를 바라보던 순간, 우지끈하며 조명을 지지하던 쇠봉이 무너져 내렸다는 정도였다.

중간에 강태오의 스탯 업데이트 방법이 떠오른 거나, 아이템을 사용하며 꽤 시간이 지체됐다고 생각했으나 영상에서는 그리 큰 폭으로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진짜 시간이 멈추기라도 했던 건가. 도리어 하나하나 움직임을 확인하기가 힘들 정도로 민첩한 몸놀림이 이어질 뿐이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조명 사이로 팬들의 경악 어린 비명이 터져 나오고.

사람들에게 떠밀렸는지 마구 흔들리는 화면 사이로 바닥에 엎어져 있는 나와 강태오가 보였다.

무대 효과 중 하나던 스모그와 알 수 없는 흙먼지로 자욱한 시야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 형태가 꽤 충격적이었다.

“…이런, 다들 괜찮으려나.”

조명에 다리를 맞은 내가 강태오의 위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안무를 추던 멤버들이 우리 주변으로 몰려들었을 땐 사태가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를 응원하러 온 게 아닌 다른 팬덤에서도 봤으면 공포를 느꼈을 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안 돼서 무대 위로 뛰어 올라온 스태프들에 의해 적당히 가려지긴 했다만 사람이라면 응당 트라우마가 될 법한 이미지였다.

“MXP 이놈들.”

거기서 나는 MXP의 목적에 대해 깨달았다. 단순히 무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선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좋지 못한 이미지를 심어 주려고 했군.

하이사인은 데뷔 초부터 유어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법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나온 그룹이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적당한 명성과 함께 편안한 활동이 이어졌을 테지만, MXP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었었다.

얼마 전에 겪은 한동준 PD의 뒷돈 거래 사태까지, 우리가 바라던 일은 아니었으나 제법 큰 규모의 트러블에 끼어 버렸었다.

안 그래도 자주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로 입소문이 도는 듯한데.

이번엔 잘 일어날 수 없는 무대 사고까지 발생한 상황이었다.

이건 동정론이 아닌 부정적인 감정을 야기할 수 있는 구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케이 팝 팬덤 활동은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도가 높은 취미였다.

아이돌을 사랑하고 좋아한다지만 그걸로도 이기기 힘든 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본진의 잦은 루머 연루였다. 해당 아이돌에게 잘못이 없는 사태일지라도 누군가는 음모론처럼 좋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기 마련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걸 상대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마 하이눈은 이번 일로 정신적인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영상까지 이렇게 돌아다닌다면… 응원은 계속해 주겠지만, 충격을 받았을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온갖 이야기들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메이터스에서 어느 정도 나서 주는 건 있겠으나 그걸로는 감당이 안 될 게 분명한 판이었다.

하필이면 가장 바쁜 연말 시기에. 부러진 다리를 보며 멤버들과 그 자리에 있었을 관객들 그리고 힘들어할 팬들이 떠올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작은 조명이었다지만 그걸 떨어트려?”

그러다가 문득 분노가 치밀어 올라 이를 짓씹었다. 강태오가 어떻게 피하긴 했을지언정, 재수가 나빴으면 다른 곳에 맞았을 수도 있었을 노릇이었다.

운이 좋아서 다리였지. 만약에 머리였다면……. 끔찍한 상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게 무대가 아닌 관객석 앞 열로 떨어지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었잖아.

그나마 나 혼자 맞아서 다행이지, 운이 나빴다면 정말 큰 대형 사고가 될 뻔했다.

연례 없는 세트장 붕괴 사고에 사람들이 말을 더 얹는 이유이기도 했었다.

얘네 진짜 안 되겠다. 적당히 치우고자 했던 마음이 모두 사라짐을 느꼈다.

MXP 얘네는 이 판에서 존재하면 안 될 해악이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일단은 고민하며 핸드폰을 내려놓은 찰나였다.

똑똑-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와 함께 아는 얼굴들이 우르르 병실로 들이닥쳤다.

“…혀, 형!”

“해신이 형!”

그건 뒷수습을 끝마쳤는지 병원에 막 도착한 멤버들이었다.

하나같이 사색이 되어 내가 앉아 있는 침대 주변을 에워쌌다.

권혜성과 문채민은 다친 내게 매달리진 못하고 침대에 엎어졌다.

함부로 만질 용기가 없었는지 내려놓은 손가락만 슬쩍 터치하곤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입을 웅얼거렸다.

바보 같긴. 아무렇지 않다는 의미로 녀석들의 머리를 헤집자 권혜성이 크게 표정을 구기며 이불을 꼭 그러쥐었다.

“…너, 괜찮아? 수술했다며.”

그 옆에서 울지만 않았다 할 뿐이지 혈색이 빠져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정원이 나타났다.

당시에는 제일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처럼 느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정원, 뭘 그렇게 놀란 거야. 피식 실소를 내뱉으며 권혜성과 문채민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걷어 이정원을 향해 까딱여 줬다.

“이리 와 봐.”

“…….”

다소 지친 걸음걸이로 다가온 이정원에게 팔을 뻗었다.

그러곤 그대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정원의 어깨와 팔뚝을 두 번 토닥였다.

내가 빠져서 나 대신 리더 역할을 해 줬지? 고생했다. 고맙다는 의미 반, 또 미안하다는 의미 반으로 녀석을 위로했다.

물론 이정원은 그런 내 모습에 미간을 세게 구겼지만 말이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환자라서 참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라리 아파서 다행이다. 아니었다면 잔소리를 잔뜩 들었을 기분이었다.

“…유준이 형.”

“응?”

그때, 이정원에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윤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니라 이유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린 채 바닥을 보고 있던 이유준을 발견했다.

윤명은 그 옆에 서서 이유준의 어깨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설마, 너 우냐? 나는 거기서 이정원이나 권혜성, 문채민을 넘어선 훨씬 큰 사태가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윤명은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어올리고 나를 바라본 뒤 괜찮냐는 물음을 던졌다.

떨떠름하게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타이밍에 맞춰 한숨 비슷한 걸 내쉰 이유준이 얼굴에 얹어둔 손을 쓸어내리듯이 치웠다.

“…야, 이, 이유준.”

“…….”

슬쩍 보인 이유준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를 확인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른 녀석들도 안 우는데, 왜 네가 울어. 눈물을 보이는 놈에겐 무슨 위로가 필요한지 모르던 탓에 당황스러웠다.

이유준은 그런 얼굴을 보이기가 싫었는지 곧장 뒤돌아서며 잠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괜찮은 거지?”

“…어, 어. 당연하지. …그, 미안하다. 놀라게 해서. 나,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다리도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나서 수술도 쉬운 편이었대. 붙는 것도 뼈가 튼튼하다고 금방 붙을 거라고 했어.”

주절주절 말이 길어지는 느낌이었으나 이 정도 이야기는 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쉰 이유준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권혜성, 문채민, 이정원, 윤명, 이유준. …어, 한 놈이 부족한데?

그러다가 지금까지 나와 대화를 나눈 인물 중 한 명이 빠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침대 머리맡에 서서 인상을 구기고 있던 이정원도 그걸 알게 된 것 같았다.

한숨을 참지 않으며 입을 열더니 대뜸 큰 소리로 외치듯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강태오, 궁상 그만 떨고 얼른 들어와!”

강태오, 사고가 나던 당시 스탯 업데이트 창이 뜸과 동시에 조명에 맞을 뻔했던 멤버 녀석이었다.

스탯도 스탯인데, 댄서인 녀석의 몸을 다치게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

슬퍼할 팬들에겐 미안했으나 일단 조금이라도 덜 다칠 만한 사람이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었다.

그 마음 하나로 녀석을 보호했었다.

무대 위에선 약간 패닉인 것 같긴 했어도 구급차에 실려 가던 당시에 본 모습은 나름 안정적인 것 같았는데.

“…….”

이정원의 외침에 열려 있던 병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놀란 것 정도였는지 들어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걸 보다 못했는지 문가 가까이 서 있던 윤명이 병실을 나섰다.

그러고는 팔을 뻗어 입구 바로 옆 벽면에 붙어 있던 사람을 끌고 들어왔다.

“…뭐 해, 형. 해신이 형한테 괜찮다는 거 보여 주기로 했잖아…….”

“…….”

옷만 갈아입은 채 헤어, 메이크업이 그대로 남아 있는 멤버들과 달리 모자를 푹 눌러쓰곤 고개를 숙인 강태오가 보였다.

그 큰 덩치가 작아 보일 정도로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에 놀란 상태였다.

…쟤가 저렇게 작아 보일 수도 있었나? 윤명 다음으로 가는 장신의 멤버가 제 자리에 서서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괜찮은 거 맞아? 혹시 어디 다쳤나 싶어서 꼼꼼하게 녀석을 훑어보던 중이었다.

“…그, 그.”

그러다가 문득 강태오의 어깨가 떨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문제가 있어 보이는 행동에 몸을 일으키려고 침대에서 다리를 내리던 찰나였다.

“야! 넌 어딜 가!”

“형! 가만히 있어!”

“아니, 태오 저 녀석이…….”

“미안.”

내 돌발 행동 때문이었을까. 강태오에게서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왜 사과해? 저런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던 나로선 그저 이 사태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다며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려다가 녀석의 얼굴을 보곤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강태오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가장 환자같은 혈색을 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