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멤버들은 함께 밴을 타고 오며 강태오의 얼굴을 봤었나 보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이미 알고 있었단 표정을 지었다.
“어…….”
“야, 신해신. 넌 또 어딜 가냐니까!”
“형, 가만히 있어……!”
어디 아프냐? 당황스러운 마음에 침대 아래로 발을 디뎠다.
몸을 일으켜 세워 강태오에게 다가가려 하니 이정원과 권혜성이 나를 저지했다.
팔뚝은 이정원에게 틀어잡히고 허리는 권혜성에게 끌어안겨져 강태오를 바라보기 한참이었다.
두고 본다면 내가 걸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윤명이 강태오의 등을 떠밀었다.
“…태오 형이 많이 놀랐나 봐. 아무래도 자기 대신 형이 다쳤으니까.”
강태오를 대변한 문채민의 말에 귓가가 웅웅 울렸다.
야, 나 진짜 괜찮아. 학폭 사태 때도 아버지와의 일로도, 저런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마음이 이상했다.
“미안해할 필요 전혀 없다니까? 의사 선생님이 금방 나을 거랬어. 뼈도 튼튼하다고 앞으로 활동하는 데에 전혀 지장 없을 거래.”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냐.”
“…넌 좀 도와주든가.”
어느 정도 진정한 것인지 이정원의 타박이 날아들었다.
그럼 넌 저걸 가만히 두고 보고 있냐. 말하는 와중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강태오를 보며 무섬증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다 들었어. 형, 오늘 무대에서 무슨 일이 있을 거 알고 있었다며. 심지어……!”
그때, 강태오의 뒤에서 별말 없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유준이 성을 냈다.
아, 저기도 있었지. 강태오의 안색에 시야가 가려져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멤버들 중에서 이번 사태로 크게 충격을 입은 것 같던 멤버였다.
이유준이 한숨 비슷한 걸 내쉬더니 그대로 마른세수했다.
그러곤 강태오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지쳤다는 얼굴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유준이 형, 진정해.”
다 들었다니. 이유준의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멤버들을 살피자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정원의 뒤에서 권혜성이 작은 목소리로 앞전에 있던 일을 설명해 줬다.
“…김환준 선배님이 뒷정리할 때 와서 살짝 얘기해 주셨거든. 형, 이것 때문에 아침에 고민한 거였어? 대기실에서부터 계속 이상했잖아.”
김환준… 아무래도 내가 사고로 실려 간 이후 김환준이 멤버들에게 찾아갔던 모양이다.
거기까지만 들었어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을 텐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늘 일에 대한 힌트를 흘려 준 것 같았다.
비밀이라며, 비밀이라며……! 김환준 특유의 능글거리는 얼굴이 떠올라 열이 뻗쳤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들고 애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냐며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숨을 고르며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일단 현재 상황부터 타개할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어, 그러니까. 별건 아니고…….”
“뭐가 별게 아닌데.”
내 말을 기점으로 강태오에게서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말을 아끼고 있던 멤버답지 않은 빠른 발언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낮은 음성로 화를 내듯 캐묻는 강태오가 낯설었다.
보통 이런 건 옆에 있는 이정원이나 이유준이 주로 도맡아 해 줬지, 강태오는 그 옆에서 다른 멤버들을 뜯어말려 주던 중재자 역할을 하던 놈이라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강태오는 거기서 그칠 생각이 없었는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희게 질린 안색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본인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정원이 형이나 이유준이 형을 잡았을 때는 너무 몰리는 것 같았어. 한 명쯤은 형 편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주려고 했던 거였어.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매번 이래? 누가 나 대신 다쳐 달래?! 누가 나 대신……!”
거기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무사히 무대 사고를 넘겼음에도 강태오의 스탯 창이 그대로인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번엔 내가 잘못한 거구나. 멤버들을 위한다는 핑계를 대며 독단적으로 행동했던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강태오는 이번 사태로 충격이 클 예정이었다.
많이 다치지 않았으니까. 또 이렇게 멀쩡한 얼굴을 보였으니까. 무던하다 못해 무신경한 성격이 멤버들에게 상처를 줘 버린 듯했다.
일단은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열리지 않는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강태오와 이유준을 확인하며 나를 보고 있던 윤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하더니 좌우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해신이 형, …나 형이 알아서 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윤명? 넌 또 왜 그래~!”
권혜성의 걱정 어린 타박에도 불구하고 윤명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리곤 눈을 마주한 채 이야기할 뿐이었다.
“이제, 그만 얘기해 주는 게 어떨까.”
윤명의 말에 멍해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그런데 윤명의 의견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던 듯했다.
권혜성의 옆에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문채민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큰일에 있어선 다소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던 막내 녀석이 한숨을 내쉬며 윤명과 나 사이에 직접 끼어들었다.
저기도 윤명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어딘가 결연한 각오가 서려 있는 음성이었다.
“나도 그래. 우리한텐 얘기해 줬다지만, 아직도 형 혼자 짊어지고 있잖아.”
“채민아.”
문채민과 윤명의 제안에 머릿속이 맑아졌다. 안 그래도 이야기할 타이밍을 찾고 있긴 했었는데. 사태를 보아 지금이 제격인 듯했다.
내 마음이 아니더라도 오늘은 몽땅 설명해야 할 날이구나.
담담한 얼굴로 멤버들을 향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옆쪽에서 섬뜩한 미성이 들려왔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윤명, 문채민. 너희 뭐 알고 있어?”
“…아! 아파!”
“넌 아파도 싸. 이게 무슨 소리냐고. 당사자가 말해.”
아까부터 내 팔뚝을 그러쥔 상태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정원이었다. 나름 힘 조절은 한 것 같았지만… 유어돌 배 팔씨름 대회 우승자의 악력은 무시할 바가 못 되는 듯했다.
“아프다잖아. 살살 좀 다뤄.”
“…일단 형은 좀 앉혀 놔.”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 내자 여기서 가장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던 이유준과 강태오가 먼저 이정원을 뜯어말렸다.
어라? 이거 이정원이 일부러 분위기를 풀어 준 건가? 시큰둥한 얼굴로 몸을 잡아당긴 이정원이 나를 침대에 앉혔다.
이정원의 격한 행동에 당황했는지 강태오와 이유준은 지금까지 화를 내고 있던 것도 잊은 채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러곤 허리를 숙이며 아까 미처 확인하지 못한 몸 상태를 살폈다.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선 내게 흉터가 없는지 얼굴을 훑어보는 강태오나, 한쪽 무릎을 접어 앉은 상태에서 다리에 차고 있던 깁스를 보는 이유준이나.
하나같이 착하다 못해 마음이 여린 녀석들이었다.
나는 그사이 강태오와 이유준 몰래 이정원을 흘낏 돌아봤다.
팔짱을 낀 자세로 딴청을 피우며 나와는 반대 방향을 돌아보고 있는데.
이정원이 내 시선을 발견하고 슬쩍 눈을 굴려 이쪽을 쳐다봤다.
“…뭘 봐.”
피식, 녀석에겐 고맙다는 의미로 작게 웃어 줬다. 이정원도 그에 맞춰 슬쩍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해피 엔딩인가.”
“정원이 형이 이럴 때가 다 있네.”
“…야, 뭔데. 뭔데 너희 둘만 알고 있는 거야. 윤명, 문채민. 치사하게, 나만 왕따 시키기 있어?”
이어지는 윤명과 문채민의 대화에 권혜성이 매달리듯 끼어들었다.
그렇지. 아직 거기가 있지. 나를 살피는 강태오의 얼굴과 이유준의 정수리를 확인하다가 천장을 바라보며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야기인지 뭔지 좀 들어 보자.”
이정원의 반응만 봐도 오늘은 모든 걸 설명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좀 더 그럴듯한 자리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얘기해 주고 싶었는데.
내 인생에서 그렇게 멋있는 모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렴 뭐 어때. 어떻게 보면 찾아올 시간이 찾아온 거였다.
* * *
“…그러니까, 네가 26살이라고?”
그래, 이게 보통의 반응이지. 땅거미가 지고 깜깜해진 병실 안, 환하게 켜진 전등 아래로 심각한 얼굴의 이정원이 보였다.
부상 사태로 난리가 나면서 멤버들에겐 모든 진실을 밝히기로 했던 이후였다.
모든 걸 알고 있던 문채민과 윤명은 내 뒤에 서서 멤버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설명할 권한은 내게 있다는 듯이 가만히 추임새만 붙여 주길 한참이었다.
내가 왜 유어돌에 참가하게 됐는지, 일반인으로 여기까지 올라오게 됐는지. 배경에 담긴 일화를 설명하자 이정원의 미간이 구겨졌다.
다소 허무맹랑하다고 볼 수도 있는 사실들이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회귀? 그게 현실에서 가능한 거야? 형?”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눈이 커진 권혜성이 이유준을 붙잡고 질문했다.
이유준은 내 설명이 시작된 이후부터 마이페이스이던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선 입가를 손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이게 정상이라니까? 문채민과 윤명을 향해 조용히 속삭이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칠 걸 알고 있었던 거야? 형?”
강태오가 침착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칠 걸 알지는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냥 정황상 이번 무대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리란 것 정도만 알았지.
심지어 그것도 시스템을 통해 안 것이 아니라 지원겸과 김환준 그리고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로 유추하여 알게 된 것이었다.
“아니, 이건 진짜 아니야. 멘토님과 선배님과는 크라운 게임 때부터 정보를 주고받았었어.”
“크라운 게임 전인 건 맞는 거냐.”
“…날카롭기는. 그래, 멘토님은 데뷔 초부터다. 됐냐. 근데 김환준 선배님 쪽은 크라운 게임 때가 맞아.”
이정원의 타박에는 꼬리를 말고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 줬다.
“쉽게 말하자면 해신이 형은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이번에 뭔가 있을 거란 걸 알았고, 사고를 알게 된 건 그, 시스템… 이란 게 알려 줬다는 거잖아.”
“어.”
여기서 나는 강태오가 다칠 운명이었다는 걸 밝히진 않았다.
강태오의 운명과 나의 운명을 맞바꿔 대신 다리가 부러졌다는 소리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것만 얘기해 줘도 충분하겠지. 안 그래도 강태오는 무대에서의 일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녀석에게 너를 위해 내가 희생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차라리 다른 걸 밝히며 스포트라이트를 돌리는 게 나았다.
강태오는 사고 얘기를 듣자마자 얼굴이 희게 질려 있었다.
급한 마음에 달래듯이 말을 덧붙이니 그제야 진정된다는 듯이 손으로 제 가슴께를 내리눌렀다.
“랜덤이었어, 누가 다칠지는. 근데 내가 그냥 나선 거야. …너희들 중 그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 정도는 선의의 거짓말로 쳐 주라. 멤버들에겐 다시 한번 미안하다며 사과하던 찰나였다.
아까부터 혼자 서 있던 이정원이 골치 아프단 얼굴로 뒤통수를 벅벅 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