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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18화 (317/328)

318화

“아니, 이번 사건도 사건인데. 그러니까 신해신, 네가 26살이라는 거지?”

이정원의 반응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 힘들 만하지. 나는 뭐든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윤명, 문채민. 너희가 이상했던 거라니까. 이정원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이며 서로를 돌아보던 둘을 확인했다.

권혜성이야… 윤명 그리고 문채민과 같은 과였는지 금세 둘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둘에게 다가가 있는 걸 발견했다.

“야! 어떻게 너희 둘만 이런 걸 알고 있을 수가 있어! 그럼 형, 형 나도 그 스탯인지 뭔지가 보여? 나 유어돌 때 보컬 엄청 약했는데. 으악, 부끄럽네!”

…저기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남은 건 여기 있는 형님들 쪽이었던 모양이다.

“왜, 네가 물어봤잖아. 옥상 때.”

믿기지 않아도 이게 진실인 걸 어떡해. 사실을 밝히는 일로 멤버 사이에 불화가 생기면 안 되니까. 옥상에서의 일을 빌미 삼아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 보려고 했다.

“그래, 그거면 말이 되네. …강태오, 너도 알고 있었냐.”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래서 그런 거였어. 어쩐지 이상한 형이다 싶더니….…”

강태오, 뒷말은 빼도 되지 않을까. 이유준의 물음에 강태오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유준은 특유의 유들거리는 분위기로 내가 말한 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강태오도 피곤한 느낌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보고 겪은 게 있어서 그랬는지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풍기진 않았다.

그저 좀 더 정리할 생각이 필요하다며 손바닥을 보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셋 중에서 제일 심각한 상태는 이정원인 건가. 팔짱을 낀 채로 허공을 노려보고 있던 이정원이 신경 쓰였다.

메모리 서칭 엔진으로 쥐 잡듯이 굴 땐 언제고. 직접 와닿는 이야기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보다.

여기도 시간이 필요할까 싶어서 한발 물러서 주려던 무렵, 이정원이 한 말에 넋이 나갔다.

“…그러니까, 네가 나보다 연상이라고? 어떻게? 왜? 그럼 나 너 형이라고 불러야 하냐. …그건 싫은데.”

“…뭐?”

어안이 벙벙한 건 막내 삼인방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나를 옆에 끼고 앉아 있던 문채민이 당황했단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정원이 형. 혹시 지금까지 그랬던 게…….”

“쟤가 어떻게 나보다 연상이야. 하는 짓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인데.”

“…해신이 형,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나지막한 윤명의 말에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이정원 쟤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 영혼이 자신보다 연상이었음을 부정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왜 그게 가장 중요한데!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서 왜 이정원이 걸고넘어지는 게 나이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 회귀했다니까? 로또 당첨금만 수십억이 걸려 있다고 했잖아. 이거 실패하면 파산한대!

과거사나 시스템의 정체까진 말하지 못했는데도 멤버들의 믿음에 놀라기 바빴다.

그런데 이유준은 이런 그림이 오히려 마음 편했던 것 같았다.

이정원을 향해 슬쩍 웃어 보이며 말을 걸었다.

“정원이 형이 해신이 형 말을 못 믿을 리가 없지. 우리 모두가 아니라고 했어도, 정원이 형은 형 믿었을걸?”

“이유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하하, 왜. 부끄러워하기는.”

이유준의 태클에 이정원이 민망하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설마. 이유준의 말이 정답이었단 것인 양 이정원이 침묵을 지켰다.

“…정원이 형, 귀 빨개졌ㄷ……!”

“…쉿. 권혜성 진짜 눈치도 없어.”

“형, 방금 형 목숨 우리가 살려 준 거야.”

뒤를 보인 이정원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걸 목격했다.

권혜성은 이정원을 향해 손가락질하려다가 윤명과 문채민에 의해 입이 틀어막혔다.

이정원은 잠시 권혜성의 말에 여기를 돌아보는 듯했다.

삼인방을 슬쩍 훑어보고는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한테 뭔가 있다는 걸 제일 먼저 눈치챈 건 바로 나거든? 내가 네 얘기를 못 믿어 줄 것 같았냐.”

“이정원, 너…….”

닭살 돋는다. 이상해지는 분위기에 눈을 굴리며 입을 떼려고 했다.

그런데 그건 이정원도 마찬가지였는지 저쪽에서 먼저 선수 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너……! 연습실 귀신 너 맞잖아!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옥상에서의 일도 그렇고, 도대체 뭔데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시스템이란 건 또 도대체 뭔데. 아는 거 있으면 다 밝혀. 난 저기 저 흐물흐물한 놈들처럼 안 넘어가 줘!”

“…흐물흐물.”

“하하, 우리 얘긴가. 강태오 얘는 그렇지만 나는 아닌데.”

이정원이 강태오와 이유준을 가리키며 씩씩댔다. 아니, 씩씩거리는 척을 하고 있었다.

너도 이런 건 못 참는 타입이구나. 일부러 저렇게 나오는 걸 알아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타이밍에서 내가 왜 회귀하게 됐는지, 시스템의 정체가 무엇인지. 녀석들의 기억을 어떻게 넘나들었는지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기로 했다.

“얘기하자면 긴데 내가 태어났을 때…….”

진지한 분위기에 멤버들이 여기를 돌아봤다.

사정을 알고 있던 문채민과 윤명만이 조금은 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뭐라고 못 하게 하려고.”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난 이후였다.

할 말을 잃은 듯한 얼굴의 이정원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돌아섰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었는데. 여럿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서였을까, 아니면 오랜 텀을 두고 알게 된 진실이라서 그럴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해신이 형~!”

“혜성이 형, 형 환자야. 매달리지 마.”

권혜성이 등 뒤에서 매달리려다가 문채민과 윤명에게 저지당해 잡힌 걸 보고 나서야 병실 안이 무거운 침묵으로 휩싸여 있단 걸 깨달았다.

야, 나 진짜 괜찮다니까. 회귀와 저당금이 잡힌 시스템 이야기만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유준? 강태오? 나 진짜 아무렇지 않아.”

“해신이 형, 다른 의미로 멘탈이 강하네.”

“…이유준, 처음으로 네 말에 공감한다.”

이유준과 강태오가 무거운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던 이정원에 이어 할 말을 잃은 듯한 이유준과 강태오를 보니 괜히 밝혔나 싶은 후회가 들었다.

시스템까지만 말할 걸 그랬나? 어떻게든 녀석들을 달래 보고자 침대 배드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데, 귀신같이 내가 움직이려던 걸 알아챈 멤버들이 팔을 뻗었다.

“형은 좀 가만히 있어!”

“으악, 형 다리!”

“아, 진짜 이 형이랑 활동하다간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어.”

“이래서 알 수가 없다는 거야.”

한마디씩 내뱉는 잔소리에 피식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해신, 넌 진짜…….”

“이제 좀 괜찮냐?”

“그게 지금 중요하냐. 너, 환자만 아니었어도 잔소리 3시간이었어.”

이정원이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피곤하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 넘기는 행동을 보며 괜히 슬쩍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그 시스템이라는 자식.”

“…일단 거기에 나도 있거든.”

“너 말고. 제로 어쩌고! 보고 있냐? 안 나와?!”

이정원이 허공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밤중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격한 목소리였다.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는 게 보여 실소를 내뱉었다. 네가 제로-원-나인을 찾아서 뭐 하게. 이정원의 목적이 궁금해졌다.

“관리자라는 게 뭐 이렇게 대책이 없어! 애를 저 상태로 만들었으면 책임져야지! 아니, 애초에 버그인지 뭔지만 잘 관리했어도 얘가 이런 꼴은 안 당했잖아. 남의 인생을 뒤집어 놓고 지금 장난해?”

“야, 야…….”

시스템이 다 듣고 있어. 이정원의 호통에 놀란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멤버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정원의 분노에 한마디씩 말을 얹었다.

“근데 솔직히 맞는 말이잖아. 형, 그 시스템에서 잘못된 시작인가 뭔가만 잘 걸러 줬어도 형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었던 거 아니야?”

“…하지만 그랬으면 형이 유어돌에 나올 일은 없었겠지. 채민이 너도 들었잖아. …시스템이 시켜서 유어돌에 나갔다고.”

“헐,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그래도, 그래도 이건 너무 슬프잖아……!”

아무튼 참 엉망진창이었다. 보다 못한 강태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정원을 앉히지 않았다면 병원에서 소란으로 경고를 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이정원은 그렇게 허공에 손가락질을 해 놓고서도 분노가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댔다.

야, 당사자인 나도 괜찮다는데……. 어이가 없다기보다는 성격 상 내가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대신 해 준 녀석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제로-원-나인, 시스템 신해신. 보고 있냐. 너희 욕했다고 쟤네한테 페널티 줄 생각은 하지 마라.

이걸 보고 있을 제로-원-나인이 억하심정으로 애들을 괴롭힐까 봐 걱정됐다.

고생하는 건 나 혼자여도 충분하고. 나름 인생에 굴곡이 있던 녀석들이라 이 이상의 문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남은 게 뭔데. 1군? 그것만 하면 끝이라는 거야?”

“뭐, 일단 시킨 걸 하고는 있는데. 사실 시스템이 시켜서 한다기보다는.”

…나도 이 직업에 애정이 생겼고,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는 거지.

파산만 막을 수 있다면 다른 것에는 크게 욕심이 없었다. 유일하게 바라는 게 멤버들과 팬들을 위해서 좋은 무대를 선보이고자 하는 거였다.

우리가 수상해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도 해야 하고.

시스템이 시키는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감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태에서 멤버들이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우니, 왜 진즉 밝히지 않았나 싶었을 정도로 마음이 따듯해졌다.

“하자, 1군.”

이정원의 말에 고개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형은 그거 안 할 생각이었어?”

“권혜성, 넌 좀 조용히 해. 나 지금 신해신 쟤 때문에 참고 있는 거야.”

물론 중간에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목적이었는지 권혜성이 초를 쳤지만 말이다.

권혜성이 머리 뒤로 뒷짐을 지며 싱글벙글 웃었다.

“원래도 목표로 하곤 있었지만~ 이거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면 토하겠다.”

“왜, 윤명, 너도 팬들 반응 좋으면 밤새 댓글 읽잖아~”

“…넌 진짜 입으로 매를 버는 타입이구나.”

권혜성에 이어 윤명까지 비슷한 뉘앙스를 풍겼다.

“해신이 형, 우리도 모두 목표가 있어서 데뷔한 거야. 그리고 방금 그 목표에 형의 인생도 포함됐어.”

“채민아.”

“1군이라, 멋진데. 팬분들 생각해서라도 더 올라가야지. 아니, 이젠 쟁취해야지.”

“이유준.”

“…얼른 낫기나 해. 다 나으면 연습에서 절대 안 봐줄 거니까.”

강태오의 말을 마지막으로 이정원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신해신, 넌 우리 리더잖아. 네 뒤엔 우리도 그리고 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잔뜩 있어. …그러니까 힘내라.”

이정원의 말에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진심으로 이 녀석들과 한 그룹이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버그인지 뭔지 시작은 잘못되었을지언정 더 이상 후회는 되지 않았다. 지금 내 인생만큼 행복한 삶은 불가능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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